2021. 3. 14. 22:20ㆍ佛法 .SGI
이케다 선생님 지도선집(指導選集)
「행복과 평화를 창조하는 지혜」
이번에는 지도선집 증보로서 교학연찬의 의의에 관해 말씀하신 이케다(池田) 선생님의 지도를 정리했습니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교학시험을 실시하는 등 교학을 연찬하자는 구도의 숨결이 크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교학은 ‘신행학(信行學)’의 기둥 중 하나입니다.
왜 교학이 중요한가.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학회 교학의 근본은 무엇인가.
이케다 선생님의 지도를 심도 있게 배우면서 올바른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용감하게 나아갑시다.
교학을 연찬하는 의의
교학을 연찬하는 세가지 의의
이케다 선생님은 청년에게 주신 수필에서 ‘교학이 왜 중요한지’를 세가지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심을 심화하기 위한 교학’ ‘광포추진의 원동력이 되기 위한 교학’ ‘새로운 인간주의의 철학을 확립하기 위한 교학’
이케다 선생님 지침
<수필 신인간혁명> “청년과 교학”에서
(1998년 8월 19일)
가장 수준 높은 인간을 만드는 가장 수준 높은 철학이 교학이다. 그 보배와 같은 사상과 철학을 수지한 청년의 열과 힘이 새로운 세기를 만든다.
청년에게 왜 교학이 필요한가. 여러 각도에서 논할 수 있겠지만 나는 교학을 연찬해야 하는 의의가 세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신심을 심화하기 위한 교학’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군부정부의 탄압으로 동지의 대다수가 퇴전한 모습을 보고 도다(戶田) 선생님이 너무나도 원통해하며 하신 말씀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모두 교학이 없었기에 신심을 이해하지 못해 겁먹고 법난(法難)에 지고만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는 이런 실패를 하지 않겠다.”
교학은 신심의 궤도를 비추는 등대다. 다투어 일어나는 장마(障魔)의 복잡한 모습도 불법의 명경에 비추어보면 모두 분명해진다.
자신의 견고한 신심의 골격을 만들고, 인간혁명의 원천이 교학이라고 해도 좋다. 그래서 도다 선생님은 교학을 가지고 학회 재건에 착수해 먼저 법화경(法華經) 강의를 시작하셨다.
둘째, ‘광포추진의 원동력이 되기 위한 교학’이다.
어서는 니치렌불법(日蓮佛法)의 정의와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절복, 홍교의 길을 제시한다. 또 광선유포를 위해 싸우는 자세와 불법의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모습 그리고 인재육성의 핵심도 빠짐없이 설했다.
어서를 배우는 일은 대성인의 정신을 느끼는 일이다. 어본불에게 광선유포의 지도를 구하고 최대로 격려받는 일이기도 하다.
그 어서 말씀대로 행동해야 비로소 교학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실천교학’이 아니면 불법에서 말하는 연찬을 했다고 할 수 없다. 또 그럴 때 무한한 용기가 솟고 최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셋째, ‘새로운 인간주의의 철학을 확립하기 위한 교학’이다.
핵전쟁의 위협, 민족분쟁, 환경문제, 황폐한 교육 등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너무나도 심각하다. 사람들이 세계의 ‘평화’와 ‘행복’을 희구하는데도 사태는 혼미한 정도가 접전 더 심해지고 있다. 생명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빛은 바야흐로 불법밖에 없다. 생명존엄과 자비의 철리(哲理), 색심불이(色心不二), 의정불이(依正不二) 등의 원리로 되돌아가야 비로소 새로운 인간주의의 길이 열린다. 도다 선생님이 발표하신 원수폭금지선언도 인류를 지키는 불법의 철리에서 나온 것이다.
‘21세기를 짊어질 청년들이 불법 사상을 몸에 익히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에 영광은 없다. 우리가 수지한 철학은 전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세계 최고의 철학이다. 그 대법(大法)을 수지한 청년도 다방면에서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도다 선생님의 확신이었다.
교학에 힘쓰는 선생님의 자세는 늘 검호(劍豪)의 수행을 연상시켰다. 어느 날, 선생님이 오사카로 일반강의를 하러 가셨는데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일단 교학부장에게 대신 강의를 하라고 지시하신 적이 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역시 내가 강의를 하겠다. 수량품에 ‘소작불사(所作佛事) 미증잠폐(未曾暫廢)’라는 글이 있다. 부처님은 잠시도 쉬지 않고 불행한 민중을 구하신다는 뜻이다. 내 강의를 들으러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다. 만약 강의하다 죽는다 해도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목숨을 걸고 강의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는 대성인 불법을 전하는 준엄함을 배웠다.
나도 청년시절 철저히 어서를 연찬했다. 중요한 어서는 암기할 정도료 진지하게 공부했다. 그것이 오늘날 내 인생의 모든 기반이 되었다.
신심으로 파고드는 교학
교학에는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교학’과 ‘신심으로 파고드는 교학’이 있다는 도다 선생님의 지도를 언급하며 어서를 몸으로 배독하고 생명에 새기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케다 선생님 지침
<수필 우리가 나아가는 승리의 길> ‘신심 연마를 위한 교학’에서
(2011년 9월 9일, 10일)
오늘도 어서를 펼쳐 어서를 배독하고 공부한다. 그러면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과 늘 인생을 함께 걸으면서 투쟁할 수 있다.
대성인은 젊어서 남편을 잃고 홀로 어린 자녀들을 키운 난조 도키 미쓰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저 정토(淨土)라 함도 지옥이라 함도 밖에는 없느니라. 오직 우리의 가슴속에 있느니라. 이것을 깨달음을 부처라 하고 이에 미혹함을 범부라 하며 이것을 깨닫게 함은 법화경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법화경을 수지하여 받드는 자는 지옥즉적광(地獄卽寂光)이라고 깨닫게 되옵니다.”(어서 1504쪽)
가장 심원한 생명철리를 가장 간단명료하게 설한 성훈이다. 고마운 불법이다.
비록 아무리 지옥 같은 괴로운 처지에 놓이더라도 자기 가슴에 부처의 생명을 엄연히 나타낼 수 있다. 실제로 지금 있는 이곳에서 묘법(妙法)을 끝까지 불러 적광(寂光)의 도읍을 단호히 구축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누구나 자타(自他) 함께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행복경애를 열 수 있다.
그러기 위한 신심이다. 그러기 위한 교학이다.
대성인은 “수리반특은 삼개년(三箇年)에 십사자(十四字)를 암송하지 못했지만 부처가 되었으며, 제바(提婆) 육만장(六萬藏)을 암송했어도 무간(無間)에 떨어졌는데”(어서 1472쪽)라고 준엄하게 경고하셨다. 우둔하기로 유명한 수리반특은 제자의 길을 관철해 성불하고, 방대한 불경(佛經)을 아는 제바달다는 부처를 배반해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요컨대 교학을 잘 안다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잘 알고만 있다면 세간의 지식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교학을 잘 안다는 말과 신심이 있다는 말은 같은 뜻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교학을 잘 안다고 뽐내면서 퇴전하거나 반역한 어리석은 증상만이 나오지 않았는가.
우리 인생의 근본목적은 일생성불이자 광선유포다. 그러려면 ‘법화경의 벙법’으로, 오로지 신심 하나로 노도 속에서 끝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다.
위대한 신심의 행자, 신행의 용자로 성장하기 위한 교학이다. 이것을 착각하면 절대로 안 된다.
도다 선생님은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교학’과 ‘신심으로 파고드는 교학’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도다 선생님과 나는 불이(不二)의 사제(師弟)로서 ‘신심으로 파고드는 교학’으로 싸웠다. 그래서 학회는 승리했다. 실천하면서 교학을 배운 학회원이 당당히 승리했다.
어서에는 무한한 희망과 용기 그리고 미래가 있다. 어서를 읽으면 인생을 승리 하는 지혜가 솟아나고 확신이 깊어지고 싸우겠다는 마음이 불타오른다.
오직 어서를 몸으로 읽어야만 어떠한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이검(利劍)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설마가 실현’이 된 오사카투쟁을 시작하기 앞서 우리가 배독한 첫번째 어서는 “어떠한 세상의 혼란에도 여러분을 법화경 십나찰(十羅刹) 이여, 도우십사고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 강성하게 말하느니라.”(이서 1132쪽) 하는 어서다.
모두 이 어서를 생명에 깊이 새기고 동요하는 시대에 확신에 찬 기원 강성한 신심으로 출발했다.
일을 비롯해 경제고로 괴로워하는 벗과는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어서 1253쪽) 하는 성훈을 배독했다. 지금은 생활이 겨울과 같을지라도 성실하게 신심을 관철하면 반드시 봄과 같은 미래가 끝없이 열린다고 격려했다.
그렇듯 개개인의 상황이나 행동에 맞는 어서를 배독해 실천교학의 중요성을 전했다. 불타오르는 구도심과 싸우겠다는 사제의 교학이 승리를 열었다.
1956년에 실시한 교학시험도 시험을 위한 시험이 아니었다. 행복해지고 승리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일기당천의 투사로 단련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대성인은 법화경이 문자에 관해 “육안(肉眼)인 자는 문자라고 보며 이승(二乘)은 허공이라고 보며, 보살은 무량의 법문(法門)이라고 본다. 부처는 일일(一一)의 문자를 금색의 석존이라고 보실 것이니 즉지불신(卽持佛身)이란 이것이니라.”(어서 1025쪽) 하고 가르치셨다.
같은 성훈이라도 배독하는 경애와 일념의 작용에 따라 깊이가 달라진다. 어서 근본으로 싸우자! 그렇게 정하고 끝까지 배우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힘이 용현한다.
창가 삼대(三代)의 사제와 어서
이케다 선생님은 일찍이 교학운동을 이끌어갈 청년리더와 간담할 때 도다 선생님 슬하에서 교학을 연찬하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교학을 배우는 의의와 자세를 다양한 각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케다 선생님 지침
<21세기를 향한 ‘청년과의 대화’-‘불법’과 ‘인생’과 ‘역사’를 말한다>
(1994년 대백련화 게재)
도다 선생님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구의 의미를 알려고 하기보다 대성인이 위대한 대확신, 광선유포를 향한 준엄한 대정열 그리고 민중을 구제하려는 대자비를 느껴야 한다.”
조금씩이라도 좋습니다. 또 처음에는 잘 몰라도 괜찮습니다. 어서에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하나 생명에 새겨야 합니다. 그것이 쌓여 자신의 마음에 ‘철학의 기둥’을 만듭니다. 마음에 ‘기동’이 있는 사람은 격동하는 변화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행복해지기 위한 교학입니다. 더불어 타인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불도수행입니다.(제1회)
(청년부가 ‘청년부교학시험 1급’에 도전한 보고를 받고)
불법의 위대한 철리를 연찬하는 모습은 참으로 존귀한 모습입니다. 조금씩이라도 좋습니다. 나날이 어서를 읽은 사람은 자신의 생명에 늘 새로운 바람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 신선한 바람이 신심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어서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배독할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있습니다. 새로운 결의가 솟아납니다.
나는 도다 선생님 슬하에서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철저히 훈련받았습니다.
잊지 못할 1950년 11월의 일입니다. 사업에 실패한 도다 선생님은 학회에 그 책임이 미치지 않도록 이사장직을 사임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선생님을 떠났습니다. 갑자기 돌변해 선생님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도다 선생님은 홀로 유연히 미래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저에게 (만반의 학문과 더불어) 매일 아침 어서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아침 8시경부터 약 1시간 정도, 도다 선생님과 일대일로 연찬했습니다. 선생님은 참으로 엄하셨습니다. 선생님도 진지하고 나도 열심히 했습니다. 도중에 어쩔 수 없이 못한 저도 있지만, 선생님은 서거하시기 직전까지 거의 10년 동안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엄한 자애로 나를 하나부터 열까지 육성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내 윈점입니다.
<입정안국론>을 시작으로 <개목초><보은초><선시초><관심본존초>의 오대부 그리고 <당체의초><어의구전><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 등을 강의해 주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늘 신심에 대한 대학신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불법의 본질을 알기 쉬운 말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입정안국론> 강의 때 선생님은 유머를 섞어 “묘법은 ‘요술방망이’다. 기원하면 무엇이든 나온다. 반드시 행복해진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몽테뉴나 베르그송 등의 서양철학에 친숙한 나는 불법이 어딘지 모르게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전쟁이 끝나 혼란하고 가난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그런 힘 있는 사상을 찾고 있었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 같지만 불법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을 살기 위한 철학임을 배웠습니다.
이런 추억이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이 이사장을 사임하신 다음달로 기억합니다. 나는 선생님과 함께 이토까지 전철을 타고 둘만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전철 안에서 도나 선생님은 <관심본존초>를 강의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차창 밖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태평양과 같은 대경에의 신심으로 어서를 배독하지 않으면 대성인의 마음에 다가갈 수 없다. 그저 재지(才智)로 어서를 알려고 하면 커다란 실수를 범하고 마는 법이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도다 선생님은 어서를 깊이 배독하셨습니다.
‘교학을 위한 교학’은 안 됩니다. ‘확신’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신심의 교학’이 바로 참된 불제자(佛弟子)의 길입니다.
세계도 시대도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언제까지 똑같은 상태가 이어질 리 없습니다. 그 변화 속에서 다양한 사상의 본질을 어떻게 올바르게 간파하는가.
대성인은 “법화(法華)를 아는 자는 세법(世法)을 깨닫느니라.”(어서 254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에는 확신한 세계관, 인간관, 올바른 사회관, 보편적인 시대관 등 온갖 지견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법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강합니다. 무슨 일 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서를 배우는 의의도 여기에 있습니다.
“행자는 무엇인가” - 마키구치 선생님이 배독하시던 어서에 힘찬 필체로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법화경의 행자가 있으면 반드시 삼류(三類)의 원적(怨敵)이 있으리라.”(어서 230쪽) 하신 <개목초>의 구절에 밑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전진하면 마(魔)도 움직입니다. 진정한 불법자에게는 반드시 마가 출현합니다. 그 마와 싸워야 비로소 ‘행자’이자 부처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 불법의 궁극을 회득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마가 종문에 깃들었을 때 그 정체를 간파하고 엄연히 싸우셨습니다. 500일에 이르는 투옥생활에도 ‘모두 어서 그대로다’ 하고 유연하셨습니다.
왜 교학을 배우는가 바로 마를 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학은 ‘마와 싸우는 검’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감옥에서 대성인의 어서를 몸으로 읽으셨습니다. 학회에 만년의 규범을 남겨주셨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대원(大願)을 세우리라.”(어서 232쪽) 하신 <개목초>의 구절에 두 줄로 밑줄을 그으셨습니다. 그리고 크게 ‘대원’이라고 쓰셨습니다.
감옥에서 쓰러지신 마키구치 선생님을 일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의 많은 사람이 생애 대원을 위해 산 마키구치 선생님을 상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선사와 같이 ‘어서근본’ ‘대성인 직결’로 삼세에 빛나는 영광스러운 길을 당당히 나아갔으면 합니다.
빛나는 창가 사계의 길
창가학회는 초대 회장 마키구치 선생님 시대부터 어서 말씀대로 ‘행학의 이도’를 관철했습니다. 그 준엄한 역사를 말하고 ‘행학의 이도’에 ‘빛나는 사제의 길’이 있다고 외칩니다.
이케다 선생님 지침
<여는글〉 ‘행학의 이도는 인간의 가장 존귀한 빛나는 길’
(2006년 9월 대백련화 게재)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이 지침으로 삼아 늘 읽으신 어서가 있다. 나는 이 어서를 학회의 으뜸가는 보물로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 어서에 유독 진하게 빨간 선을 그어 놓고 이중으로 동그라미를 친 구절이 있다.
“행학의 이도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敎化)하시라.”(어서 1361쪽)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 <제법실상초>에서 설한 대로 ‘행학의 이도’에 힘쓰셨다. 분연히 다투어 일어나는 ‘삼장사마’를 온몸으로 받으시고, 법난(法難)의 와중에 감옥에서도 어서를 신독하셨다.
군부 권력의 압박이 두려워 비겁하게 어서를 삭제한 종문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가혹한 취조에도 입정안국의 대정신을 엄연히 호소해 교도관에게까지 성실하게 불법대화를 하셨다. 또 감옥에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불법을 근간으로 세계의 대철학을 공부하셨다.
이것이 전 세계의 새로운 빛이 되어 전진하는 창가학회의 창립자가 연 ‘행학의 이도’다. 여기에 불법의 진수가 되는 행동과 인간의 궁극적인 실상이 밝혀져 있다.
“행학은 신심(信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어서 1361쪽) ‘신심’이 깊어지면 ‘행학’도 전진한다. ‘행학’ 이 전진하면 ‘신심’도 깊어진다.
이 인과(因果)의 연동 속에서만이 악을 멸하고 선을 낳는 ‘공덕’이 솟아난다. 행복이 결정된다. 영원한 복원이 쌓인다.
‘행학의 이도’가 없으면 비행기가 방위도, 고도도, 목적지도 모른 채 연료도 없이 비행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항로를 이탈하여 결국 속도를 잃을 뿐이다. 난기류라도 만나면 바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행학을 관철하는 사람이야말로 인간으로서 가장 존귀한 승리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자 영원히 물러서지 않고 승리하는 사람이다. 인기 따위는 공허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행동이 바로 충실한 인간의 실상이다.
우리 창가의 어머니들은 아무리 악구매리를 당해도 용감하게 끈질기게 묘법이라는 궁극적인 행복의 법칙을 한 사람 또 한 사람과 꿋꿋이 대화했다. 이보다 성스럽고 늠름한 모습이 어디에 있겠는가.
끔찍한 전쟁 때문에 학교도 다니지 못한 초창기 부인부가 어느 대학 교수를 멋지게 절복했다. 그 보고를 들으신 도다 조세이 선생님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칭찬하시던 모습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퇴전하고 반역한 교활한 무리의 공통점은 착실하고 진지한 ‘행학의 이도’를 게을리 했다는 사실이다. 만심이다. 오만이다. 허세다.
행학의 실천을 멈추면 절대적 행복으로 향하는 생명도 정체한다. 그 정체 속에서 반드시 증상만과 타락 그리고 원질이 생긴다.
도다 선생님은 “행학의 실천이 없는 간부는 회원을 혼란하게 만들뿐이다.” 하고 참으로 엄하게 훈계하셨다.
도다대학 강의에는 만반에 걸친 학문과 함께 교학연찬도 포함되어 있었다. 증(證)<주1>의 중서인 <당체의초>를 깊이 있고 예리하게 배웠다.
그야말로 검호(劍豪)의 수행과 같이 엄격한 단련이었다.
강의를 마칠 때 선생님은 수료증을 주셨다. 작고 보잘것없는 종이였다.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최고로 자랑스러운 영지(英知)의 기별(記別)로써 보은하겠다는 서원을 담아 삼가 받았다.
이 일념이 오늘날 세계에서 200개(당시)에 달하는 명예학술칭호로 결실을 이루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과의 미묘한 ‘연화(蓮華)’의 법을 꿋꿋이 행한 사제의 실증이기 때문이다.(2017년 12월 현재, 이케다 선생님이 받은 명예학술칭호는 374개에 달한다.)
내가 존경하는 토인비 박사는 비록 기분이 내키지 않더라도 반드시 매일 아침 스스로 행동을 시작할 것 그리고 반드시 오늘 하루 책 한쪽을 펼칠 것을 꼭 지켜야 할 일과로 정하셨다. 한 줄이라도 좋다. 어서를 읽어야 한다.
일문일구라도 좋다. 불법을 말해야 한다.
‘행’을 세우고 ‘소리’를 내어 ‘몸’을 움직이면 새로운 생명이 대우주를 운행하는 리듬과 합치하여 회전하기 시작한다.
영원한 스승 대성인의 불법을 넓히고, 인생의 스승 도다 선생님께 한 서원을 완수하기 위해 나는 단호히 ‘행학의 이도’에 힘썼다. 아니 그 결의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행학의 이도’를 떠나 ‘빚나는 사제의 길’은 없기 때문이다.
교학을 배우는 자체가 승리
2002년 9월, 일본 전국에서 교학부 중급시험을 실시했을 때 이케다 선생님이 하치오지의 시험장소를 찾아 긴장한 수험생들을 따뜻하게 격려하셨습니다.
이케다 선생님 지침
교학부 중급시험에서 하신 격려에서
(2002년 9월 29일, 도쿄)
오늘은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정말로 고생이 많습니다.
니치렌 대성인 불법은 우주의 모든 근원을 설해 밝힌 인류 궁극의 철학입니다. 영원하고 보편적인 대철학은 불법밖에 없습니다.
대성인은 “행학의 이도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 행학은 신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어서 1361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행학의 이도가 없어지면 이미 불법은 없습니다.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멀리서 온 분도 또 피곤한 분도 있겠지요. 그러한 가운데 여러분은 교학시험을 보러 오셨습니다. 모두 자신을 위해서이고 대복운을 쌓는 길입니다. 세세 생생 최고로 우수한 학자보다 위대한 철학자로서 칭송받을 여러분입니다.
제목을 부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시험은 붙든 떨어지든 신경쓰지 말고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광선유포를 위해 도전한 것은 모두 영원한 복운이 되고 깊은 추억이 됩니다.
행학의 이도에 힘쓴 여러분을 누구보다도 대성인이 틀림없이 칭찬하실 것입니다.
최고의 대불법을 각지한 사람은 대성인밖에 안 계십니다. 많은 권력자도 유명인도 참된 불법을 모릅니다.
불법은 우주와 생명을 관철하는 영원한 법칙입니다. 행복을 구축하는 근본을 가르칩니다. 그런 불법을 얕보거나 피하면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평화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불법유포를 위해 앞장서는 분들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부디 자신감을 갖고 시험에 응시하기 바랍니다.
교학을 공부하는 이곳에 모인 자체가 승리입니다. 역사입니다. 생애에 걸쳐 자신의 위대한 신심의 원동력이 됩니다. 정말로 수고많습니다.
민중의 철학운동
소설 《신·인간혁명》에 1961년 2월에 열린 본부간부회에서 야마모토 신이치 회장이 그 다음달에 실시하는 교학시험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교학시험 당일, 야마모토 회장은 수험생에 대한 깊은 자애의 마음을 말했습니다. 이 절에는 교학시험에 대한 이케다 선생님의 심정이 씌어 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 지침
소설 《신·인간혁명》(제4권 제1장 춘람)에서
신이치는 3월 초순에 실시할 교학시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험을 앞두고 지금 여러분 머릿속도 대단히 분주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시험에 합격한 분은 뽐내지 말고 또 합격하지 못한 분도 비굴해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학회의 시험은 니치렌 대성인의 대생명 칠리를 생애 연찬하기 위한 하나의 목표와 격려로서 실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만심을 일으켜 주위의 동지를 깔보게 된다면 신심의 불합격자가 되고 맙니다. 만약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어도 그것을 계기로 분발하여 교학에 힘쓰고 신심의 합격자가 되면 됩니다. 오히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서를 심간에 새겨 어떠한 난이 다투어 일어나더라도 미동도 하지 않는, 강하고 강한 신심을 확립하기 바랍니다.”
교학시험은 3월 5일 일요일, 전국 125개 도시 180여 시험장에서 실시되었다.
먼저 오전 9시에는 강사, 조사에서 조교수, 강사로 승격되는 시험을 실시하고 이어서 오후2시부터 새로 교학부원이 되는 임용시험을 실시했다.
승격, 임용을 포함한 전국의 총수험자수는 11만 정도로, 1959년에 실시된 시험의 수험자보다 약 3.3배나 많았다.
여기에도 신이치가 회장에 취임한 뒤, 눈부시게 전진하는 학회의 모습이 있었다.
수험자 중에는 주부도 있는가 하면 회사 사장, 학생, 교사도 있었다. 연령도 십대 중반의 소년에서 고령자까지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이 일이나 학업, 나아가 학회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어서 공부에 몰두하고 최고의 불법 철리를 열심히 연찬한 것이다.
이 시험공부를 통해 읽기와 쓰기를 할 수 없던 멤버가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각지에서 들려왔다. 시대와 사회의 건설은 민중이 확고한 생명철학을 가지고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전대미분의 민중철학운동이자 대교육운동이었다.
교학시험을 실시한 날 저녁, 야마모토 신이치는 학회 본부에서 야마다이라 주헤이 교학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국의 채점은 순조롭게 되고 있습니까?”
“예, 순조롭습니다.”
신이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수험자 모두 열심히 공부했으니 전원 합격시켜 주고 싶은데….”
“그것은 안 됩니다!”
야마다이라는 힘주어 대답했다. 신이치는 무의식중에 웃음이 나왔다.
“당연하지요. 이건 시험이니까…. 단지 내 심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쁜 부인부가 학회활동을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어서를 배운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느긋하게 공부하려고 해도 아이들이 울고 청소나 식사 준비도 해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어서를 펼치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불도수행이니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시험 결과로 낙담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합격한 사람은 괜찮습니다. 합격하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하면 격려할 수 있을까를 나는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서근본의 대도
여기서는 창가학회가 철저히 어서근본을 관철했기에 어떠한 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전진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선생님 지침
각부대표자회의 스피치에서
(2008년 12월 26일 도쿄)
행학의 이도에 힘쓰는 구도의 숨결은 전 세계로 확대 되었습니다. 세계 민중이 인간주의의 대불법을 배우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불의불칙의 학회가 대성인의 유명(遺命)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어서전집 ‘발간사’ 첫머리에서 <제법실상초>의 “행학의 이도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어서 1361쪽) 하는 성훈을 인용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가학회는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보(牧口常三郞) 선생님이 창설한 이래, 이 금언을 준봉(遵奉)해서 순진하고 강성한 신심을 근본으로 헹학의 이도를 힘쓰고 여설(如說)의 절복행에 매진했는데, 검호의 수행을 떠올리게 하는 듯한 이 엄격한 단련은 학회의 전통이 되고 명예로운 특징이 되었다.”
학회는 어디까지나 어서근본입니다.
어서는 전 인류에게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어서 1253쪽) 하고 제시한 ‘희망의 경전’입니다.
어서는 ‘목숨이 바로 제일의 재보(財寶)’라고 단정하는 ‘생명존엄의 경전’입니다.(“목숨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재보 중에 제일의 재보로다”<어서 1596쪽>)
어서는 ‘입정안국’의 길을 연 ‘평화의 경전’입니다.
그리고 어서는 ‘도리는 권력을 이긴다’ ‘정의는 사악을 이긴다’고 설한 ‘승리의 경전’입니다.
(“불법이라고 함은 도리이며 도리라고 함은 주군에게 승리하는 것이니라.”<어서 1169쪽> “악은 많아도 일선(一善)에는 이길 수 없으니”<어서 1463쪽>)
어서를 펼치면 희망의 빛 한 줄기가 비칩니다.
어서를 배우면 용기가 생깁니다. 지혜가 솟아납니다.
대성인의 위대한 정신이 자기 생명에 맥동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바로 ‘난을 이겨내는 신심’의 불꽃이 타오릅니다.
우리 아내는 어린시절 집에서 열리는 좌담회에서 특별고등경찰이 감시하는 속에서도 어서를 배독하며 사자후하시는 마키구치 선생님의 모습을 생명에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도다 선생님 슬하에서 “여자부는 교학으로 일어서라!” 하는 훈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때에도 어서를 진지하게 끊임없이 배독했습니다.
부인부가 돼서도 때로는 부엌 한쪽 구석에서 시간을 아껴 틈틈이 어서를 읽었습니다. 언론문제라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와중에 어느 신문기자가 나를 취재하러 찾아왔습니다. 그 기자는 부엌에서 묵묵히 어서를 연찬하는 아내를 우연히 보고는 ‘이런 때에도 불법의 가르침을 공부하는구나’ 하고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는 지지 않았습니다. 부인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대난 속에서도 태연자약하게 웃음 지으며 동지를 격려했습니다. 그 승리의 원천이 바로 ‘창제’이고 ‘어서’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어서를 연찬하는 자세에 관해 “한행 한행 매독하며 옳은 말씀이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하고 깊이 배독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한 구절이라도 좋습니다. 날마다 어서를 배독하면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디 많이 깨우고 실천해 불법 승부의 금자탑을 당당히 세우기 바랍니다.
여자부는 교학으로 일어서라
이케다 선생님은 2006년에 개관한 창가여자회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 여자부에 ‘영원한 5지침’을 주셨습니다. 그 두번째 항목에 ‘세계 제일의 생명철학을 배운다’를 내걸고 여자부 시절에 교학을 심화해야 하는 의의를 강조합니다.
이케다 선생님 지침
창가여자회관 개관 3주년 기념 협의회 스피치에서
(2009년 6월 4일, 도쿄)
니치렌 대성인은 “수지한 법이 제일이면 수지한 사람도 또한 제일이다.”(어서 466쪽, 통해) 하고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위대함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재산이나 명성, 미모 등으로는 결정되지 않습니다. 유명해져서 일시적으로 각광을 받는다 해도 긴 일생에서 보면 불행한 길을 걷고 마는 인생도 적지 않습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위대함은 어떤 법을 수지하고 어떤 철학을 배우며 끝까지 실천했느냐로 결정됩니다. ‘세계 제일의 생명철학’을 수지 한 여러분은 ‘세계 제일로 충실하고 고귀한 청춘’을 그리고 ‘세계 제일로 가치 있는 승리의 인생’을 걷고 있습니다.
사람은 아무래도 화려한 세계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세간에서 인기가 있으면 훌륭하게 보입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으면 훌륭하게 생각합니다. 모두 어리석은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보다 더 나은 보물은 없습니다. 자기를 떠나 행복은 없습니다. 본디 자기만큼 멋진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불법입니다. 자기라는 최고의 보물을 빛내야 합니다. 이것이 진실한 철학입니다.
대개 사람은 남과 비교하고 맙니다. 물론 남에게서 뛰어난 점을 배우려는 마음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좋겠구나. 행복한 것 같다. 훌륭한 것 같다.’고 부러워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연마하고, 스스로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승리한 사람입니다. 이 점을 마음 깊이 새기기 바랍니다.
법화경은 ‘여인성불’을 통해 전 인류의 평등과 존엄 그리고 행복해 지는 길을 완전히 연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생명철학입니다.
어서에는 “이 법화경은 여인성불을 본보기로 삼아 일체중생의 성불을 설했다.” “법화경 중에서는 여인성불이 제일이다.”(어서 1311쪽, 통해) 하고 씌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존귀한 선배가 진지하게 기원하고 끈질기게 노력해 드디어 ‘여성의 세기’를 열었습니다. 여러분이 뛰어나갈 경사스러운 무대는 전 세계로 넓혀졌습니다.
<제법실상초>에는 “행학의 이도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 행학은 신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라도 설할지니라.”(어서 1361쪽) 하는 중요한 구절이 나옵니다.
이 가르침대로 ‘행학의 이도’에 힘쓴 청춘이 얼마나 숭고한지 여러분 자신이 체험하고 증명하기 바랍니다.
성훈에는 이렇게도 씌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볍화경을 읽을 때는 입으로만, 말로만 읽지만, 마음으로는 읽지 않는다. 마음으로 읽어도 몸으로는 읽지 않는다. (당신이 이처럼 난을 만나) 몸과 마음으로 함께 읽은 일은 참으로 존귀한 일이다.”(어서 1213쪽, 통해)
대성인의 마음에 조금도 어긋남 없이 정의를 사자후했기에 목숨까지 미치는 난을 받고 온갖 장마(障魔)와 철저히 싸웠습니다. 이것이 창가의 사제입니다. 여자부 여러분은 영광에 빛나는 이 길을 똑바로 계승하기 바랍니다.
“여자부는 교학으로 일어서라.” 이 말은 도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불별의 지침입니다.
니치렌 불법이 인류의 궁극적인 행복과 평화를 위해 얼마나 위대한 대철학인가. 인간 자신을 혁명하고 민중의 마음을 연결해 세계의 운명도 전환하는 근본 방도는 불법의 영지(英智)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날카롭게 갈파하셨습니다.
“외부 세계가 어떤 수단을 쓴다 해도 생명이 행복한 세계로 향하는 것은 어찌해 볼 방법이 없다.” “니치렌 대성인은 어떻게 하면 인류가 행복해 질 수 있을지를 탐구하셨다. 이런 대성인의 생명철학을 우리가 배우고 꿋꿋이 실천할 때 반드시 행복해지는 최고 철학이 빛난다.”
또 선생님은 철학의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철학은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불법은 인생에 왜 필요한가. 그저 제멋대로 해도 된다면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 공부할 필요도 없다. 신앙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러면 반드시 후회가 남는다.
철학을 배우고 불법을 배우고 생명의 심오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넓디넓은 마음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감동하면서 영원한 기쁨, 진실한 행복을 탐구해 체득하는 일이 얼마나 커다란 환희인가. 인생의 깊은 불가사의함과 더불어 무한한 기쁨에 넘치는 자기 생명을 알면 얼마나 기쁠까.”
그리고 선생님은 이렇게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창가학회는 어본존을 근본으로 광선유포라는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나아간다. 그리고 세계 최고인 동양불법의 진수이자 전 세계 최고의 철학인 교학을 가지고 실천한다.”
창가와 더불어 광선유포를 위해 사는 여러분의 숙연이 얼마나 깊은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여자부에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은 인생을 잘 주시하고 자신관, 인생관, 사회관, 우주관 등 이 네가지를 정확히 정리한 철학이다.”
“더욱 어서를 배독해야 한다. 무엇이든 어서에 틀림없이 씌어 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어서를 근본으로 하면 결코 분동하는 일은 없다.”
“묘법이라는 최고의 가치관에 입각하면, 무슨 일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게 된다.”
신심의 눈으로 보면 나아가야 할 길이 보입니다. 허영이나 위선에 현혹되면 안 됩니다. 흔들리기 쉬운 감수성이 예민한 청춘의 마음에 교학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기둥을 세우는 의의는 참으로 큽니다.
창가학회는 니치렌 대성인의 어서를 이미 1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해 세계에 확대했습니다. 그 중 스페인어판 어서를 발간할 때 이케다 선생님이 서문을 보내주셨습니다. 거기에는 니치렌불법, 창가학회와 SGI가 세계종교인 이유가 심도 있게 씌어 있고 동시에 현대에서 어서를 연찬하고 교학을 심화하는 의의가 명확히 씌어 있습니다.
<스페인어판 어서 ‘서문’> 에서
(2008년 5월 3일)
인간에게 얼마나 희망을 줄 수 있는가. 인생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하는가. 여기에 모든 종교가 본디 갖추어야 할 사명이 있다. 인간의 안심입명(安心立命), 민중의 행복과 평화가 바로 본디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바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종교는 ‘인간을 위한 종교’를 근본 목표로 한다.
이 공통점을 깊이 자각하는 일이야말로 국제화라고 일컫는 현대세계에서 종교가 갖추어야 할 요건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문명적 과제인 종교 간의 대화를 추진하는 기반도 여기에 있다.
당연히 각 종교에는 개성이 있고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무엇이 진정한 안심입명이냐 하는 점에서도 종교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신의 사랑’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는 마음’ ‘양심에 따르는 것’ ‘마음의 평안’ ‘번뇌 조절’ 등 많은 종교에서 수많은 해답을 제시한다.
종교의 각종 차이는 인간의 다양성, 시대의 차이, 지역의 차이, 역사적 경위의 차이 등과 같은 요인이 복잡하게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저마다 다른 교의(敎羲)에는 인간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무언가의 통찰과 진실이 포함되어 있다. 현대의 종교 간 대화에서 각각의 차이를 차이로 서로 인정하면서 각 종교의 통찰과 진실을 배우면 틀림없이 인간의 행복을 위한 종교로서 함께 연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모든 종교가 이 대화와 상호연마의 길을 어디까지나 계속 걷고 각각 고유의 가치를 발휘하면서 ‘인간을 위한 종교’로서 하나가 되어 세계평화를 실현하는 큰 힘이 되기를 나는 염원한다.
21세기는 인류의 여러 종교가 처음으로 서로 각자를 인식하게 된 시대라고도 한다. 확실히 20세기는 제1차, 2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비극을 심각하게 반성하면서 인간의 행복과 인류의 평화라는 종교의 본디 목적을 새롭게 자각하고, 그 관점에서 종교가 서로 인식하는 흐름이 일어난 세기다. 이 흐름을 본격적인 조류로 만드는 것이 21세기 종교의 사명일 것이다.
창가학회는 20세기에 일어난 제1차,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창립되었다. 당시 일본 종교는 대체로 국가를 위한 종교로서 국가 체제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사회가 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용기도 힘도 없었다. 그러한 종교적 상황 속에서 창가학회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종교’라는 관점에서 니치렌 대성인 불법의 가능성 및 그 기반인 법화경의 가능성을 재발견하여 인간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신앙 실천을 전개했다. 그 결과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이 당시 군부정부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아 순교하셨다.
대승불교의 진수라고도 할 수 있는 법화경에 따르면 ‘자타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대승보살의 바람이야말로 모든 인간과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본원적인 바람이다. 그리고 그 본위적인 바람에 사람들을 자각시켜 인간의 선성(善性)을 촉발하는 일이 바로 불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본디 갖추어야 할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법화경에는 이 종교 본디의 사명을 짊어진 보살이 현실세계에 무수히 출현한다고 씌어 있다. 이른바 ‘지용보살’이다. 이것은 생명 보위의 바람에 눈뜨면 모든 사람이 지용보살이 될 수 있다는 아주 중요한 과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법화경에서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는 그대를 깊이 존경한다.’ 고 말하면서 예배하고 박해를 받아도 그 예배 행위를 멈추지 않은 ‘상불경보살’(늘 사람을 깔보지 않는 보살이라는 의미)의 실천이 예리하게 빛난다. 이것은 자타의 불성을 믿고 어디까지나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 보살로서 실천의 핵심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니치렌 대성인은 “일대(一代)의 간심(肝心)은 법화경, 법화경의 수행의 간심은 불경품(不輕品)이니라. 불경보살(不輕菩薩)이 사람을 존경한 것은 어떠한 일이뇨.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어서 1174쪽) 하고 엄연히 말씀하셨다. 불경보살의 ‘사람을 존경하는 실천’이야말로 법화경 수행의 핵심이자 부처의 가르침의 진수라고 외치신 것이다.
13세기에 일본에 출현한 니치렌 대성인은 자신이 사는 시대를 만인성불의 실현이라는 부처의 대원을 상실한 시대라고 인식하셨다. 생명 최고의 가능성을 가리킨 부처의 대원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에고이즘에 빠져 탐욕, 진노, 우치라는 삼독(三毒)이 인간의 생명과 사회에 탁류처럼 침범해 이윽고 불행에서 불행으로, 악에서 악으로의 연쇄가 끊이지 않는 시대가 찾아오고 만다.
대성인은 그러한 위기에 처한 시대에서 부처의 대원을 실현하려면 지용보살의 사명과 상불경보살의 실천을 계승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강하게 깊게 넓혀야 한다고 외치셨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교법을 종횡으로 전개하고 나아가 몸소 앞장서서 실천하셨다.
이 어서에 담겨 있는 니치렌 대성인의 저작이나 서간에서 말하는 바의 핵심은 그야말로 ‘자타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보살의 사명과 실천을 밝혀 사람들에게 권하고 격려하는 데 있다.
생각해보면 이 어서의 일본어판 원전인 창가학회판《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이 발간된 때는 1952년 4월로 우리 은사 도다 조세이 선생님이 제2대 회장에 취임하신 지 약 1년 뒤의 일이다.
말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도다 선생님을 중심으로 펼친 창가학회의 본격적인 전진은 어서 발간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일본 학회원은 이 어서 전집을 신심과 생활의 근간으로 삼아 인류의 평화와 행복, 대성인의 유명인 광선유포를 위해 꿋꿋이 달렸다. 그리고 멋지게 법화경이 그리는 보살상을 체현했다.
여기서 이 어서를 자신의 신앙을 심화하는 양식으로 삼을 SGI 벗을 위해 어서 배독의 마음가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을 말해두겠다.
그것은 어서를 배독하는 일은 민중구제를 위해 신명을 바쳐 정법을 지키고 넓히신 대성인의 고결하고도 준엄한 정신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반짝이는 대성인의 정신을 어서 곳곳에서 배독할 수 있다.
일례를 들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동일고(同一苦)는 남김없이 이는 모두 니치렌 한 사람의 고(苦)라고 말하느니라.”(어서 587쪽) 하는 대성인의 서원을 접할 때마다 나는 ‘괴로워하는 사람을 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진실된 대자비를 느끼며 숙연해진다.
이 정신을 접하고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 조금이라도 실천하자고 일어선 단체가 창가학회다. 즉 민중의 고뇌에 동고(同苦)하고 만인에게 불성이 있다는 궁극의 희망을 가르쳐 민중을 격려하고 소생시키는 실천을 관철했다. 이렇기에 오늘날 체계로 확대된 빛나는 철학을 기반으로 희망의 연대가 구축된 것이다.
하나 더 일례를 들자면 “왕지(王地)에 출생하였으므로 몸은 따르고 있는 듯 하지만 마음까지도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니라.”(어서 287쪽) 하는 주옥 같은 어서를 배독할 때마다 나는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깊은 감동을 느낀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이 어서에는 ‘정신의 자유’ ‘신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표현되어 있다고도 배독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권력의 마성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자왕의 마음이 바로 그러한 자유를 쟁취하는 근원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실상 이 ‘사자왕의 마음’을 발휘하여 고난을 이겨내고 정의로운 신념으로 생애를 끝까지 살 때 이 어서를 진정으로 몸으로 읽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서를 배우는 목적은 대성인의 정신을 느끼고 신심을 심화하는 데에 있다. 또 불법의 극리를 배워 자신이 내적으로 간직한 영원 불멸한 희망과 평화 그리고 행복을 확신하는 데 있다. 그리고 난을 이겨내신 대성인의 실천을 배워 고난에 도전하는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 이 ‘실천교학’의 핵심은 삼세(三世) 영원히 불멸하다. 세계 SGI의 벗이 더한층 구도심과 깊은 신심을 불태워 어서를 진지하게 열심히 연찬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2014년 5월호부터 연재된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 지도선집 ‘행복과 평화를 창조하는 지혜’>는 이번 호로 완결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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