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성불초 강의 제4회 일념의 전환

2008. 8. 18. 14:42佛法 .SGI

일생성불초 강의 제4회 일념의 전환
생명속의 변혁을 잊으면 일체가 ‘무량의 고행(苦行)’으로

 

강 의

 

무명(無明)과 싸우다

 

묘법의 ‘묘(妙)’에는 ‘구족’ ‘열다’ ‘소생’의 삼의(三義)가 있습니다.

①‘묘의 삼의’는 전부 창제에 갖추어졌습니다. 즉 창제에는 일체법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일법(一法)에 갖추어지는 ‘구족(具足)·원만(圓滿)’의 묘가 있습니다. 또 구계(九界)의 생명에서 불계(佛界)를 여는 변혁의 묘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뇌의 몸이 안락의 몸으로 ‘소생’하는 대공력의 묘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도 ‘묘법의 당체’입니다. 그래서 일체법이 구족하는 것입니다. ② 무명도 법성도, ③ 번뇌도 보리도, ④구계도 불계도 모두 자기 자신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명을 명(明)으로 전환하고 번뇌의 장작에 보리의 불을 켜서 구계의 몸에 불계를 나타내는 생명의 근본적인 ‘변혁’의 묘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전환을 실현하는 열쇠가 ‘마음’입니다.

생명변혁의 열쇠는 어디까지나 ‘나의 일념’에 있습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기심(己心)의 밖에 법(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전혀 묘법이 아니라 추법이니라”(어서 383쪽)고 훈계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내 일념의 변혁을 잊지 않고 열심히 창제를 실천했을 때 ‘묘’의 뜻이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대성인이 넓히신 창제라는 법 자체는 어디까지나 절묘한 법이라는 것은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묘법의 힘도 무명에 싸인 생명으로는 완전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무명이란, 묘법을 믿지 않고 자타(自他)의 불성(佛性)을 똑바로 볼 수 없는 암흑의 생명입니다. 이 무명을 타파하고 불계의 생명을 생생하게 불러나타내는 힘을 지닌 것이 창제행입니다.

무명과 싸우는 것, 즉 내 흉중의 싸움이 창제행의 본질입니다.

 

불법(佛法)을 배우지만 외도(外道)가 되다

 

대성인은 이번에 배독하는 어서에서도 “통틀어서 일대팔만(一代八萬)의 성교(聖敎)·삼세시방의 제불보살도 나의 마음 밖에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말지어다”(어서 383쪽)라고 재차 강력히 훈계하셨습니다. 이 ‘꿈에도’라는 말씀에 심중한 의미를 배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글월은 불교가 총체적으로 ‘기심의 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석존 일대의 팔만성교’ 즉 석존이 설한 모든 가르침도, ‘삼세시방의 제불·제보살’ 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부처와 보살도 모두 내 ‘기심의 법’이라고 결론 지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만행만선(萬行萬善), 즉 일대성교에서 설하는 모든 수행과 제불·제보살에 대한 신앙도 기심의 밖에서 길을 구하는 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웃 사람의 재산을 헤아려도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천태(天台)의 석(釋)를 인용하시며, 마음을 관(觀)하는 수행을 하지 않으면 중죄를 멸할 수 없으므로 결국 기심의 밖에서 만행만선을 수행하는 것은 ‘무량(無量)의 고행(苦行)’이 된다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마음을 관하지 않으면 중죄를 멸할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여기서 말하는 ‘중죄’는 모든 악(惡)의 근원인 무명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방법(謗法)의 중죄는 무명에서 생기는 정법(正法)비방의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 무명을 천태의 불법에서는 관심(觀心)의 수행(修行), 즉 오직 지혜로 멸하였습니다. 그런데 대성인의 불법에서는 신(信)으로써 지혜를 대신하고 신의 이검(利劍)으로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을 대치(對治: 상대하여 다스림)하는데, 여기에 창제행의 본질이 있습니다.

어쨌든 기심의 밖에서 길을 찾으면 악의 근원인 무명을 타파하는 관심의 수행이 아닙니다. 그러면 아무리 만행만선을 수행했더라도 화룡점정(畵龍點睛)을 갖추지 못하게 되며(가장 중요한 끝마무리를 하지 못하는 것) 이는 이웃의 막대한 재산을 헤아리는 것같이 헛수고로 끝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한없이 노력해도 악의 근원인 무명을 멸할 수 없으므로 오히려 모든 노력이 ‘무량의 고행’이 됩니다.

이 ‘무명과 싸우는 것’이 불법(佛法)의 본질입니다. 석존도 생로병사에 따른 고뇌의 근본 원인으로 무명을 지적하시고, 그 무명을 극복하는 길을 설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심의 밖에서 길을 구하는 한, 아무리 만행만선을 해도 불법의 본질에서 이탈하는 것이고 “불법을 배우지만 외도(外道)가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① 묘(妙)의 삼의(三義): 〈법화경제목초〉에서는 묘호렌게쿄의 ‘묘’ 에 대해 ‘구족(具足)·원만(圓滿)’, ‘열다’ ‘소생(蘇生)’의 세 가지 뜻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② 무명(無明)·법성(法性): 무명이란 생명의 근원적 무지(無知), 궁극의 진실을 밝힌 묘법을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가장 근원적 무명을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법성은 만물을 일관하는 근본의 법 자체, 부처가 깨달은 본질.

③ 번뇌(煩惱)·보리(菩提): 번뇌란 생명에 본연적으로 갖추고 있는 각종의 미혹(迷惑).

보리란 깨달음, 혹은 깨달음의 지혜.

④ 구계(九界)·불계(佛界): 생명의 경애를 10종으로 구분한 십계(十界) 중, 부처가 깨달은 경애를 불계라고 하며, 그것에 대한 기타 9종의 미혹의 경애를 구계라 한다.

 

(중략)



월간법련 : 06/07/01 2006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