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성불초 강의 제1회 일생성불(一生成佛)

2008. 8. 18. 14:30佛法 .SGI

인생의 근본 목적, 인류 희망의 근원

 

강 의

 

참으로 깊이 있는 인생이란 무엇일까.

진실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최고의 행복 경애를 이룩하고, 자타(自他)가 함께 무상(無上)의 인생을 살아가는 희망의 종교입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 몸 그대로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생 동안에 반드시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훌륭한 성불의 길을 명확히 나타낸 것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입니다. 대성인이 밝히신 ‘일생성불’의 깊은 뜻은 지금까지 알려진 불교를 전환하는 위대한 종교혁명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21세기 현대 세계에서 미래를 여는 큰 변혁의 힘이 넘치는 법리로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에 창립 80주년을 향한 새롭고 활기찬 출발을 위해 〈일생성불초〉를 연찬하겠습니다.

 

‘창제’의 깊은 뜻을 밝히다

 

〈일생성불초〉는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근본 법리와 실천을 밝힌 중요한 어서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동지가 이 어서를 행학(行學)의 지침으로 삼아 진지하게 배독하고 불법의 본질에 대해 연찬해 왔습니다.

이 어서는 진필은 없으며 쓰신 날짜와 수신인도 없으나 1255년 경에 쓰시어 ?도키조닌에게 주신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창제행(唱題行)’의 뜻을 법리적, 실천적으로 밝히신 이 어서의 내용으로 볼 때, 입종(立宗)하시고 얼마 되지 않은 1255년 경에 쓰신 것이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제행의 실천은 대성인 시대 홍교의 골격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기존 종파와 같이 신불(神佛)을 예배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만인의 기심(己心)에 내재하는 불성을 촉발하고 불계의 생명을 용현시키는 창제의 실천으로, 법화경의 이상(理想)인 만인성불을 실현하는 길을 확립하셨습니다.

창제에는 ‘신(信)의 제목’과 ‘행(行)의 제목’이 있습니다.

‘신의 제목’은 마음〈心〉의 차원의 실천입니다. 그 본질은 기심의 무명(無明)과 싸우는 것이고 마성(魔性)과 싸우는 것입니다. 신의 힘으로 불성을 가리고 있는 무명을 타파하고 불계의 생명을 용현시킵니다.

‘행의 제목’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창제이며 제목을 타인에게 넓히는 화타(化他)의 실천입니다. 마음에서 무명과 싸우는 증거로 입과 몸의 차원에서 자행화타의 실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창제는 나와 다른 사람 생명의 불성의 이름을 부르며 불성을 불러일으킵니다. 무명과 싸워 신(信)이 이기면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의 힘이 제목의 소리에 불리어 스스로 자기 생명에 솟아 나오는 것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이 이렇게 성불의 방도를 확립하신 것이야말로 다른 여러 종파들과 명확히 구분되는 중요한 점입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이 성불의 대도(大道)를 입종하시고 입멸하실 때까지 일관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이 인류종교로서 구제의 기본을 〈일생성불초〉의 첫머리에 명확히 쓰시고 있습니다.

“대저 무시(無始)의 생사(生死)를 멈추고 이번에 결정코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證得)하려고 생각한다면 모름지기 중생본유(衆生本有)의 묘리(妙理)를 관(觀)할지어다. 중생본유의 묘리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그러므로 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한다면 중생본유의 묘리를 관하는 것으로 되느니라.”(어서 383쪽)

이 구절의 깊은 뜻에 대한 것은 다음 번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으나 간단히 말하면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묘리를 생명에 나타냄으로써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생사의 고뇌를 멈추게 할 수 있으며, 묘호렌게쿄는 이 묘리의 이름이고 이것을 부르는 창제행으로 묘리(妙理)를 나타낼 수 있다고 밝히시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의미

 

‘일생성불’이란 문자 그대로 범부가 일생 중에 성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점을 바꾸면 범부가 그 몸 그대로 성불하는 것, 즉 ‘즉신성불(卽身成佛)’과 같습니다.

법화경 제바달다품 제12에서 ?용녀의 즉신성불을 설하고 있듯이 즉신성불은 법화경의 성불관입니다. 이전경에서 이에 대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 수행을 계속하여 오랜 세월에 걸친 수행 끝에 겨우 성불한다는 ‘역겁수행(歷劫修行)’을 설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부처의 생명은 영원의 묘법과 일체인 무한한 지혜와 무한한 자비에 넘치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무명(無明)에 쌓인 범부의 생명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부처의 생명을 포착했기 때문에 성불을 부처와 범부 사이의 끝없는 장벽을 극복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역겁수행의 사고방식이 생겼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인간으로 태어난 ‘금세(今世)의 인생’에서 법화경의 즉신성불을 실현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일생성불’의 뜻을 설하신 것입니다.

대성인은 벼에 늦벼와 올벼가 있으나 1년 내에는 반드시 거둬들이듯이 법화경의 행자는 일생 중에 반드시 성불한다고 설하시고 있습니다.?

대성인은 ‘금세의 인생’을 중히 여기시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에 불성이 있으므로 즉신성불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이 ‘일생성불’을 강조하신 것은 역시 인간의 일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배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민감하고 다양하며 풍요롭고 놀라울 정도로 비약하는 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마음에서 느끼는 고뇌도 크며 악에서 악으로 끝없이 타락하는 것도 인간의 마음입니다.

생사유전(生死流轉)하면서 더욱 깊이 악으로 떨어지는가. 반대로 유전의 방향을 악에서 선으로 크게 전환할 수 있는가.

대성인이 어서에서 “마음만이 소중”이라고 호소하셨듯이 마음의 중요성을 예리하게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악에서 선으로, 선에서 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인간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야말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이 설하시는 성불은 ‘일념의 변혁’에서 시작하는 성불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의 흉중에 있는 무명에 지배되는 마음의 작용을 신(信)으로 타파하고 ?법성과 일체의 생명작용, 즉 ‘불계’의 생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삶을 얻은 금세의 인생은 악의 유전에서 선의 유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발췌)



월간법련 : 06/04/01 2006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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