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5. 11:41ㆍ佛法 .SGI
생사일대사혈맥초 강의 제13회(최종회) 신심의 혈맥 |
|
민중을 위해 불석신명으로 싸우는 사제불이의 실천에 성불의 혈맥이
강 의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사이렌보가 질문한 ‘생사일대사혈맥’에 대해, 오직 ‘묘호렌게쿄’만이 만인의 생사 고뇌를 해결하는 대법(大法)이라고 밝히십니다. 그리고 묘호렌게쿄를 수지하는 신심 자세를 여러 가지 차원에서 나타내고, 상행보살인 니치렌 대성인을 스승으로 희구하는 ‘사제불이의 신심’은 생사를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십니다. 이에 따라 ‘묘호렌게쿄’의 대법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진실한 혈맥은 ‘신심의 혈맥’ 외에는 없다고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이 마지막 결론이 바로 종교 정신입니다. 왜냐하면 생사는 인간의 근본 고뇌이며 생사일대사혈맥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혈맥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법(法)을 설해도 생사의 고뇌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모든 것이 그림의 떡이 됩니다.
‘신심의 혈맥’의 모습
위대한 법을 전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신심’입니다. 성직자나 의식의 권위 등, 불확실한 환상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심’은 참으로 위대한 법을 전하는 데 가장 중요합니다. ‘신심’은 우리 생명을 가린 무명을 타파하고 본디 갖춘 묘법의 무한한 힘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이 전해진다.’는 말은 한사람 한사람에게 묘법의 위대한 힘이 나타났을 때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신심의 혈맥’의 기본 자세에 대해 생각한 바를 충분히 그리고 깊이 있게 설하십니다. 이 점은 강의에서 이미 상세히 배독했으므로 여기서는 요점만 확인하겠습니다. 첫째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과 우리 중생 이 셋은 전혀 차별이 없다고 신해(信解)하는 올바른 신심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믿는가.’ 하는 ‘신심의 내실(內實)’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며, 니치렌 문하로서 이 신(信)을 근본으로 제목을 부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성인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요점은 ‘지금 내가 묘호렌게쿄의 당체이고 즉신성불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둘째로 ‘임종이 지금’이라는 각오로 후회 없는 신심을 완수하고 ‘임종정념’을 이루는 것입니다. ‘월월(月月)·일일(日日)’ 후회 없는 신심과 그 일생의 지속이 일생성불을 결정합니다. 이것은 ‘신심의 깊이와 지속’이라는 측면에서 ‘신심의 혈맥’을 밝히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금생(今生)에 일생성불을 이룸으로써 과거세·현재세·미래세 삼세에 걸친 생사(生死)의 전체가 ‘묘호렌게쿄의 생사’ 리듬 그대로 이어져 ‘불계의 생사’로 나타납니다. 금세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삼세에 걸친 생사’ 본연의 자세를 결정하는 둘도 없는 인생입니다. 셋째로 ‘이체동심’으로 광선유포를 향해 전진하는 신심의 소중함을 나타내십니다. 나 혼자만 묘호렌게쿄의 혈맥을 이어받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묘호렌게쿄의 당체이고 성불하는 혈맥을 이어받을 수 있으며, 그것을 실현하는 일이 부처의 대원(大願) 즉 광선유포입니다. 그리고 광포 대원을 실현하는 주체가 ‘이체동심의 신심’으로 맺은 화합승단입니다. 이것은 ‘광선유포와 화합승’이라는 측면에서 ‘신심의 혈맥’을 밝히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성인은 ‘생사일대사혈맥론’에서, ‘무엇을 믿을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신심의 깊이와 지속’ ‘광선유포와 화합승’을 두고 깊이 있게 ‘신심의 혈맥’에 대한 뜻을 밝히십니다. 이에 따라 생사일대사혈맥이 흐르는 올바른 ‘신심’의 모습을 나타내십니다.
‘사제불이의 신심’이 궁극 목적
그리고 ‘신심의 혈맥’을 모든 면에서 응축하여 체현한 ‘스승’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그 존재가 ‘상행보살’입니다. ‘신심의 혈맥’에 관한 깊은 의미는 틀림없이 말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각자 인생에서 ‘신심의 혈맥’을 확실히 이어받으려면 전체 모습을 체현한 ‘스승’의 존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말은 하나하나를 뿔뿔이 가르치는데 이와 달리 묘호렌게쿄 당체로서 그 인격과 행동을 실현한 ‘스승’의 존재는 신심의 혈맥을 한 번에 이끌어내는 힘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서에서 “상행보살에게서 이어받은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며 수행하시오.”라고 말씀하며, 대성인이 상행보살의 출현에 해당함을 깨우쳐 주십니다. 이 어서는 이와 같이 ‘스승’의 존재를 나타내고 ‘신심의 혈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끝맺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제불이의 신심’만이 신심의 혈맥을 이어받는 요체이고 궁극 목적입니다. 이 어서는 주도면밀하게 말씀하신 ‘신심의 혈맥’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법의 생사관은 인류 희망의 근원
나는 불법(佛法)으로 생사관을 변혁해야 인류에게 헤아릴 수 없는 희망을 준다고 젊은 시절부터 확신했습니다. 또 그것이 인류 평화를 실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바탕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 가지 형태로 이치를 밝히고 논했습니다. 또 세계 식자와 대화에서 첫 번째 대담자인 토인비 박사와 생사에 관한 주제를 정면에서 거론하고 견해를 주고받았습니다. “생명은 죽은 후에도 존속하는가, 아니면 현세에 한한 것인가.” “만약 존속한다면 그것은 영원한가, 아니면 유한(有限)한가, 또 어떤 상태로 존속하는가.” 토인비 박사는 제가 솔직하게 문제 제기한 말을 진지하게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중대한 문제이지만 실증할 수 없는 문제이며, 공간과 시간의 윤곽 속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학자다운 억제력을 살려 언급하셨습니다. 한편 박사는 이 문제는 불법의 ‘공(空)’ 사상이나 ‘영원’이라는 개념에 따라 비로소 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사 문제는 학문보다 종교의 근본 문제라는 지적이고, 이를테면 불법 실천자인 제게 질문의 화살을 던지신 것입니다. 서양 최고봉의 지성이 살펴본 주옥과 같은 통찰입니다. 인류에게 생사 문제야말로 영원한 문제이며 종교적 근본 과제입니다. 종교가 존재하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창가교육학체계》에서 생사 문제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주 생활을 말하면, 누구나 생사 문제에 직면했을 때는 어떤 지자나 학자도 그리고 영웅과 호걸도 힘이 미약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때는 위대한 힘을 지닌 우주 본체의 능력에 대응해서 생활해야 한다. 그러므로 종교생활을 하게 되며 사회생활도 실은 종교생활의 일부로 간주할 수 있다.”(근본뜻) 생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주 본체의 위대한 힘에 대응하는 ‘종교생활’을 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사회생활’도 ‘종교생활’에 포함된다는 말씀에 깊이 주목해야 합니다. 종교생활로 개발한 위대한 생명력은 사회생활을 바르게 영위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과 사를 포함한 우주 본체의 위대한 힘을 살리는 ‘종교생활’의 관건이 바로 ‘신심의 혈맥’입니다.
아부쓰보의 ‘스승을 구하는 신심’
(중략) 월간법련 : 07/11/01 200711호 |
'佛法 .SG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올바른 창제 자세는? (법련 2007년 2월호 38-39p) (0) | 2007.12.07 |
---|---|
법화경의 혼- 방편품,수량품,자아게 전문 (0) | 2007.12.06 |
생사일대사혈맥초 강의 제12회 번뇌즉보리, 생사즉열반 (0) | 2007.12.05 |
생사일대사혈맥초 강의 제11회 상행보살 (0) | 2007.12.05 |
생사일대사혈맥초 강의제10회 본화지용(本化地涌) (0) | 2007.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