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5. 11:28ㆍ佛法 .SGI
생사일대사혈맥초 강의 제3회 본유의 생사
‘생도 환희, 사도 환희’로 내 생명에 진실한 자유와 희망을 〈지난 강의에서는 법화경의 허공회(虛空會)에서 석가·다보의 이불(二佛)이 상행보살에게 부촉한 묘호렌게쿄가 ‘생사일대사의 법’이라는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그 다음에 ‘생사(生死)’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관계를 밝히셨습니다. 여기에서는 과거원원겁부터 묘호렌게쿄와 헤어지지 않는다는 상행보살의 내증(內證), 즉 니치렌 대성인 자신의 내증을 밝히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로써 묘호렌게쿄가 바로 ‘생사일대사의 법(法)’이라는 철학적 이유를 명시했습니다. 생과 사는 묘법이 갖춘 리듬 먼저 ‘묘(妙)는 사(死)’, ‘법(法)은 생(生)’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묘법’은 ‘생사의 이법(二法)’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과 ‘사’는 본래 우주 근원의 법인 ‘묘법’에 포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생’과 ‘사’의 기본적 상태는 우주 근원의 법인 ‘묘법’이 본래 갖춘 리듬 그 자체라는 말씀입니다. 불법에서는 ‘연기(緣起)’라고 해서 모든 것이 상호 의존하는 공존 관계에 있으며, 독립해서 스스로 존립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그런 무한한 상호 관계 속에서 생명과 사물의 인과가 성립하고 변하며 소멸합니다. 돌이켜보면 우주 전체가 무한한 상호 관계에 있는 것도, 그 속에 생명의 생과 사가 있는 것도,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그래서 묘법이라고 합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묘는 사’, ‘법은 생’으로 구분합니다. ‘법’은 나타난 현상을 의미하므로 생명으로 나타나는 ‘생’에 해당합니다. 또 생명이 죽어서 융합하는 무한한 우주는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불가사의를 의미하는 ‘묘’를 ‘사’로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말씀의 주안점은 무한히 펼쳐 놓은 우주 속에 나타난 생명의 ‘생’과 ‘사’ 전체가 ‘묘법’이라고 밝히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해(大海)와 파도의 비유 이 ‘묘법’과 ‘생사’의 관계를 비유로 나타내면 마치 대해에서 파도가 일어나고 그 파도가 대해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대해가 ‘묘법’이고 파도가 ‘하나하나의 생명’, ‘하나하나의 현상’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파도가 대해에서 일어나고 대해로 돌아가는 것은 ‘생’과 ‘사’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파도가 대해에 휘말려 없어지듯이 하나하나의 생명도 죽으면 묘법의 바다에 휘말려 없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겉으로 보면 보이지 않지만, 바다 속에는 여러 종류의 해류가 엄연히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과 사의 차이는 해면에 나타난 파도와 바다 속에서 넘실거리는 해류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죽어서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생도 사도 다 같이 묘법의 큰 물결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다 속의 큰 물결은 해면에 나타나서 파도가 되고 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 큰 물결이 됩니다. 이렇게 생(生)으로 나타난 생명의 파도는 사(死)로 인해 묘법의 바다에 흡수되어 보이지 않지만 크고 사나운 물결로 끝없이 흘러갑니다. 그리고 어떤 기연(機緣)에 따라 새로운 생명의 파도로 나타납니다.
상쾌하고 사이 좋은 구원원초의 세계 다음에 “이 생사의 이법(二法)이 십계의 당체이며”(어서 1336쪽)라고 하신 말씀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말씀은 십계의 모든 중생도 ‘생사의 이법’인 묘법의 당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묘법 자체인 ‘생사의 이법’이 십계 중생의 생명 본체입니다. 예를 들면, 십계 중 지옥계의 생을 받은 중생은 생으로서 나타나는 지옥계의 모습뿐 아니라 사로서 잠재하는 다른 구계(九界)의 가능성도 포함해서, 묘법인 생사의 이법 전체가 그 중생의 본체입니다. 이것이 ‘본유(本有)의 생사’입니다. 인간은 생사에 미혹하고, 노고(老苦)와 사고(死苦)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자신의 생사가 ‘본유의 생사’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깊이 알면 생사의 미혹과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구원(久遠)의 자기 본래 모습을 상기하고 생사의 미혹에서 벗어나는 경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이 오백진점겁 이전의 우리를 관(觀)하면, 그때는 상쾌한 세계에서 아무런 부자유 없이 자유자재로 깨끗하고 즐겁게 놀고 있었으며 그때 사람들에게는 모두 아름다운 동심(同心)이 있었다. 그 상쾌한 세계에 살던 우리가 지금 이 사바세계에 함께 용출(涌出)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깨끗하고 즐겁던 세계가 어제인 듯하다. 어찌 그 상쾌했던 세계를 잊을 수 있겠는가. 함께 자유자재로 유희에 빠졌던 벗을 어찌 잊겠는가. 또 법화회좌(法華會座)에서 함께한 맹세를 잊겠는가. 이 사바세계도 즐겁고 깨끗하며, 상쾌하고 사이 좋은 벗들만 모인 세계인데, 권(權), 소승교, 외도의 무리가 탐(貪), 진(瞋), 질투(嫉妬)의 독을 강제로 먹여, 광인(狂人)이 되어 서로 구원(久遠)을 망각하였으니, 슬프고 가엾기 그지없지 않은가.” 자유롭고 깨끗하며 상쾌하게, 자타 함께 행복을 맹세한 사이 좋은 벗은, 미혹에 오염되지 않은 구원 본래의 자기이고 구원의 세계입니다. 이 본래의 나, 구원의 세계를 회복하려면, 우리 생명이 묘법의 당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고뇌를 주는 미혹의 인과를 초월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본문】 (생사일대사혈맥초 1336쪽 2행~1337쪽 2행)
묘(妙)는 사(死)요, 법(法)은 생(生)이라. 이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 십계(十界)의 당체(當體)이며 또 이를 당체연화(當體蓮華)라고도 하느니라. 천태(天台) 가로되 “마땅히 알지어다. 의정(依正)의 인과(因果)는 모두 이는 연화(蓮華)의 법(法)이니라”고 운운. 이 석(釋)에 의정(依正)이라고 말함은 생사(生死)이며 생사(生死)가 있으면 인과(因果) 또한 연화(蓮華)의 법(法)이라고 함은 분명하니라. 전교대사(傳敎大師) 가로되 “생사의 이법은 일심(一心)의 묘용(妙用)이요, 유무(有無)의 이도(二道)는 본각(本覺)의 진덕(眞德)”이라고 문(文). 천지(天地)·음양(陰陽)·일월(日月)·오성(五星)·지옥(地獄) 내지 불과(佛果), 생사의 이법이 아님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사도 오직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생사로다. 천태(天台)의 지관(止觀)에 가로되 “기(起)는 법성(法性)의 기(起)요, 멸(滅)은 법성(法性)의 멸(滅)”이라 운운.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도 생사의 이법이니라. (중략) 월간법련 : 07/01/01 2007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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