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9. 20:50ㆍ佛法 .SGI
유공양자 복과십호(有供養者 福過十號)
공양하는 자는 열가지 존칭을 갖는 부처의 몸을 공양하는 것보다도 커다란 복덕을 얻는다
‘광포부원가입신청’(이하 ‘광포부원’) 기간이 다가오고 있다. ‘광포부원’은 광포(廣布)
추진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의의가 있으며,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유명(遺命)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홍교(弘敎)는 사람들에게 정법(正法)을 가르쳐 베푸는 ‘법시(法施)’에 해당하며,
‘광포부원’
즉 공양은 그 활동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재시(財施)’에 해당한다.
‘홍교’와 ‘광포부원’은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광포 추진의 원동력이며 보시행(布施行)이다.
그러므로 ‘광포부원’은 성훈에 비춰 보더라도, 그 복운과 공덕이 헤아릴 수 없이 무량무변하다.
이에 이케다(池田) SGI 회장 스피치와 어서(御書)를 통해 공양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스피치에서 배우는 공양 정신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도키전에게 편지를 이렇게 계속하신다.
“또 가로되 ‘그 복이 또한 그보다 더함’ 묘락(妙樂) 가로되 ‘만약 뇌란(惱亂)하는 자는
머리가 칠분(七分)으로 깨어지고, 공양하는 일이 있는 자는 복이 십호(十號)보다 더함’
전교(傳敎)대사도 ‘찬자(讚者)는 복을 안명(安明)같이 쌓고, 방자(謗者)는
죄를 무간(無間)으로 연다’
등 운운.”(어서 978쪽)
또한 “(석존에게 일겁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무수한 언어로 칭찬하는 것보다도
법화경을 수지한 사람을
칭찬하는) 그 복덕이 뛰어나다”라고. 묘락대사는 “(법화경을 수지한 사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자가 있다면 머리가 일곱으로 깨지고, 공양하는 자는
열가지 존칭을 갖는 부처의 몸을 공양하는 것보다도
커다란 복덕을 얻는다”라고. 전교대사도 “찬탄하는 자는 복덕을 수미산처럼
크게 쌓고, 비방하는 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죄를 짓는다”라고.
묘락대사의 말은 어본존 좌우의 상부(上部)에도 도현돼 있다.
<야마구치 영광총회·제5회 주코쿠총회, 1994.11.26>
◇
니치렌 대성인은 말씀하셨다.
“부처를 일중겁(一中劫)동안 공양해 드리는 것보다도 말대악세중(末代惡世中)에 사람들이
몹시 미워하는 법화경의 행자를 공양하는 공덕이 뛰어나다고 설하셨느니라.”(어서 1508쪽)
석가불을 일중겁이란 오랜 기간 동안 공양하는 것보다 말대 악세에 사람들이
강하게 미워하는 법화경 행자를 공양하는 공덕이 뛰어나다.
말법의 법화경 행자란 별(別)해서는 물론 니치렌(日蓮) 대성인이시다. 또한 대성인께 직결해
그 정신을 이어받고, 광선유포를 위해 싸우다가 박해받는 문하다. 창가학회다.
이 어서에 비추어 마키구치(牧口) 선생님, 도다(戶田) 선생님이 얼마나 위대하신가. 창가학회가
불법상, 얼마나 존극한 단체인가.
또 밤낮으로 광포를 위해 노고를 거듭하는 학회원이 얼마나 존귀한가. 얼마나 존귀한 단체인가.
이 숭고한 창가학회만 반석(盤石)이면 일체가 반석같다. 광선유포가 추진된다. 문화가 발달한다.
교육이 발전한다. 휴머니즘이 확대되고 지구민족주의가 확대된다. 국가악을 극복할 수 있다.
<11·18 창립기념 모임, 1994.11.18>
◇
니치렌 대성인은 어느 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으로 말하면 학회의 평범한 부인부가 아닐까.
“감주 한 통·참마·도꼬마리 조금 받았소이다.”(어서 1476쪽)
대성인은 문하의 공양에 항상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정중하게 말씀하신다.
“남편과도 사별하여 의지할 분도 없는 이(尼)부인이 스루가지방의 니시야마라는 곳에서
가이지방의 하키리의 산중으로 보내셨느니라.”(어서 1476쪽)
남편과도 사별해 의지할 사람도 없는 당신(이부인)’이 스루가지방(시즈오카)의 니시야마라는
곳에서 가이지방(야마나시) 하키리의 산속까지 (이 물품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부인은 이제 결혼하지 않겠다고 정한 재가 여성이다. 독신 여성의 생활을 염려하면서
대성인은 그 진심을 따뜻하게 포용하신다.
“남에게 버림받은 성인(聖人)이 추위에 시달려서 얼마나 괴로울까 하고 마음 쓰시어
보내주셨는가. 부모를 잃은 이래 이제껏 이와 같은 친절한 일을 만난 적은 없었나이다.
”(어서 1476쪽)
세상 사람에게 버림받은 성인(기성 사원에 살지 않는 승. 대성인을 말함)이 추위에
시달려서 얼마나 괴로울까 하고 생각해서 보내주신 것일까요. 나는 부모와 사별한 이래,
이러한 친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대성인은 항상 박해의 위험 속에 있었다. 언제 목숨을 빼앗길지 모르는 법전의 연속이셨다.
그리고 만년에는 산 속에서 홀로 광포의 지휘를 계속하셨다. 이부인은 자신도 결코
유복하지 않지만 미노부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계실 대성인을 생각해 이것저것 염려해
드렸음이 틀림없다. 그러한 부인의 마음을 대성인은 남김없이 헤아리고 있다.
그리고 “최고의 후의(厚意)로써 보내주셨는가 생각하니 눈물도 마르지 않습니다.”(어서 1476쪽)
상당히 무리해서 이 물품들을 보내주셨다고 생각하니 눈물을 억누를 수도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참마 등의 소박한 물품들이며 작은 공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이 기뻐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이것이 부처님이시다. 본불님의 진심이시다.
설령 작은 일이더라도 서민의 진심을 절대로 ‘무(無)’로 하시지 않았다. 남김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이셨다. 서민의 노고를 어느 누구보다도 알아주시고 감싸주신다.
여기에 진실한 종교의 세계가 있다. 신앙의 ‘극의’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성의 빛남이 있다.
이 아름다운 세계를 지금 현실 사회에서 넓히는 것이 우리 창가학회다. 이른바 ‘종교쟁이’는
서민을 비예(매섭게 쏘아보며 위압하는 것)한다. 여지없이 서민을 이용하고 뺏을 만큼 뺏은 뒤
냉혹하게 잘라 버린다. 본불님의 적이다.
민중을 멸시하는 ‘정치꾼’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은 모두 그러한 무리에게 절대로 속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대성인 직결’로 나아간다. 서민을 이렇게까지 소중히 하신 대성인의
마음을 배견해 어디까지나 ‘서민과 함께’ ‘서민의 편이 되어’ 끝까지 살고자 한다.
잘난 체하는 인간, 서민을 멸시하고 학대하는 인간과는 결단코 끝까지 싸운다. 이것이야말로
어서에 나타내신 대성인의 정신이라고 믿는다.
<제64회 본부간부회·도쿄총회, 1993. 3. 24>
어서에서 배우는 공양 정신
“석가불(釋迦佛)이 범부(凡夫)의 몸에 바꾸어 들어가시어 법화경의 행자를 공양하리라는
것을 설하셨느니라.”(어서 1393쪽)
【통해】
석존이 범부의 몸에 들어가 그 몸을 대신해 법화경 행자를 공양한다고 설하셨다.
※ 이를테면 석존의 입기신(入其身: 그 몸에 들어감)이며, 부처의 역용(力用)이라고 설하셨다.
우주에는 불계(佛界)에서 지옥계까지의 십계가 있다. 내 생명에도 십계가 있다. 그 사람의 일념,
경애에 따라 어느 때는 ‘석존’ 즉 불계와 감응(感應)하고 그 역용의 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사람은 각각 불보살(佛菩薩), 선신(善神)의 작용을 한다고 대성인은 말씀하신다.
◇
“법화경을 행하는 자를 제천선신(諸天善神) 등이 혹은 남자가 되고, 혹은 여자가 되어
모습을 바꿔서, 여러가지로 공양(供養)하여 도울 것이라고.”(어서 1445쪽)
【통해】
법화경 행자를 제천선신 등이 어느 때는 (재가의) 남자(신사<信士>)가 되고 어느 때는
(재가의) 여자(신녀<信女>)가 되는 등 모습을 바꿔 여러 가지로 공양하여 도울 것이다.
※ 대성인을 돕는 사람, 즉 본존님을 공양하고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사람은 일차원에서
보면 각각 ‘제천선신’의 작용을 한다고 설하신다.
<불교설화>금주녀
퍼내도 끝없이 나오는 복운의 경애
옛날 비바시불(毘婆尸佛)이라는 부처가 입멸했을 때 모든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사중(四衆)은 그 사리(舍利)를 간직하기 위해 칠보(七寶)로 장식된 장엄한 탑을 세우고 그
가운데 불상을 모셨는데, 얼굴 부분 한군데의 금박이 떨어져 있었다.
이때 가난한 한 여성이 구걸해 얻은 금주(금의 보주)를 내놓고 금공에게 보수를 의뢰했다.
그 공덕으로 그 여성은 91겁(일겁은 일설에는 약 1천6백만년이라는 계산도 있다)이나 되는
긴 기간 동안 금색의 몸으로 태어나 무상의 행복을 누렸고, 이때의 금공도 공덕을 받고
가섭으로 생을 받았다고 한다.
‘금색의 몸’이란 밝게 빛나는 최고 대복덕의 몸을 말한다. 예를 들면 돈이 ‘필요없다’고
거절해도 계속 들어온다. 즉 퍼내어도 퍼내어도 끝없는 복운, 몸에서 넘쳐 스며 나오는
환희의 빛. 이러한 ‘금색의 몸’이 세세생생 계속됐다는 것이다. 불과 ‘금전 일문’이라도
때에 적합한 진심의 공양이라면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얻는다. 불가사의한 ‘마음’의 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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