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19. 10:25ㆍ佛法 .SGI
[사제불이]
○ 법화경과 수량품의 간심과 요체도 사제불이에 있다
○ 왜 불교는 인도에서 멸망했는가 - 부처를 신격화하여 인간과 따로 떼어놓았다 -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는 거리감
○ 부처가 신이라면 사제관계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 만약 부처(스승)가 신이라면, 자신들도 부처와 똑같은 길을 걷자는 사제의 관계가 없어집니다 - 인간석존을 잊었을 때, 불교는 인간의 삶에서 떨어져 나갔다 - 사제의 길도 없어졌습니다 - 그 결과가 불교의 타락이며 권위화 입니다.
○ 석존의 유언 - 법(法)을 의처로 삼아라 - 석존은 영원한 법을 만인에게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기에 그 법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 우리들로 말하면 신심으로 끝까지 살아가는 것입니다
○ 석존이 깨달은 영원한 법 즉 영원한 부처는, 모든 부처가 깨달은 영원한 대 생명이었습니다 -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는 모두 석존과 마찬가지로 구원원초의 부처를 스승으로 해서 깨달은 것입니다
무시 무종이며 자비의 활동을 계속하는 그 대 생명체를 스승으로 섬겨 인간석존은 인간 그대로 부처가 되었던 것입니다
○ 수량품은 석존멸후 특히 말법의 민중에게 준 메시지다 - 내가(석존이) 남긴 법(석존의 스승인 법)을 진지하게 구하시오. 그러면 구원의 부처를 만날 수 있습니다 - 어본존을 연(緣)으로 제목을 부르면 부처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 제목을 부르면 구원의 부처(불성)가 내 생명 속에 나타납니다 - 제목을 부르면 영원한 부처를 내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이것이 석존이 남긴 유언의 본뜻입니다 - 우리가 삼대비법의 대어본존을 믿고 제목을 부르는 것이 올바른 불도수행이라는 것입니다
○ 석존 멸후에는 영원한 법 (남묘호렌게쿄) 즉 영원한 불타를 어떻게 감득하는가가 문제였을 것입니다
○ 내 속에 있는 구원원초의 부처를 연다 - 내 속에서 위대한 부처를 찾는다 - 이것이 불교를 인간화하는 것입니다
발적현본을 생각하면, 어디까지나 인간석존에 떨어지지 않고 ‘영원한 대 생명’을 열어 보이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 지금의 현실에서 떨어지지 않고, 영원을 보라! - 내재에 즉 하여 초월을 구하라! ( 내 속에서 초월된 힘을 구하라) - 그 자리에서 우주적인 것을 열어라 - 내 속에서 위대함을 열어라 - 이것이 발적현본의 마음입니다
○ 내 속의 구원원초의 영원한 부처 (남묘호렌게쿄)를 제목으로 나타낸다 - 위대한 힘을 나타냅니다
- 어본존을 배알하여 어본존의 생명을 이쪽에서 받으면 우리들의 생명자체가 남묘호렌게쿄가 되니까, 어본존의 힘이 우리들에게 나오는 것입니다 - 우주대의 굉장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침, 저녁 제목을 부르면 발적현본 한다- 제목을 부르면 수시로 본불님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 구원의 대생명을 기심(마음속)에 솟아나게 하여 광선유포로 전진한다 - 그 자체가 총하여 나날이 수량품을 몸으로 읽는 것과 통합니다 (자행화타에 걸친 제목은 수량품을 몸으로 읽는 것과 통합니다)
- 대성인은 인간자신에 내재하는 성스러운 대 생명을 열게 했던 것입니다
* 비유컨대 대나무의 마디를 하나 쪼개면 나머지 마디도 또 쪼개지는 것과 같으니라. (어서 1046쪽)
=> 중심자가 지면 그 조직도 지고 맙니다. 학회의 역직은 '책임직'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행복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간부가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 성주가 강하면 지키는 자도 강하고 성주가 두려워하면 지키는 자도 겁낸다. (어서 1190쪽)
* 대장군이 약하면 따르는 자도 보람이 없으며 (어서 1135쪽)
=> 책임이 있으니까 신력, 행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신력(불법을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 능력이나 신념)과 행력(부처의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가르침이나 수행을 닦는 일)이 나오니까 불력, 법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스승이 있을 때는 누구나 성실하게 실천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제자는 스승이 없을 때 지도대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책임감 있는 사람입니다.
* 천 명의 오합지중(까마귀 떼처럼 아무 규율도 통일도 없이 몰려 있는 무리, 또는 군사)도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가 있으면 정예화(여러사람 가운데서 골라 뽑은 뛰어난 사람. 특히 골라 뽑은 날래고 용맹스러운 군사의 이름)되어 복마(말을 끄는 사람이 타는 말)도 준마(썩 잘 달리는 좋은 말)가 될 수 있습니다. 일심의 묘용(妙用)입니다.
* 오직 신심에 달렸느니라. 검이라도 부진한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법화경의 검은 신심이 강성한 사람만이 소요되는 것이며 범에 날개가 돋힌 격이니라. (어서 1124쪽)
* 나의 문가(門家)는 밤에는 잠을 끊고 낮에는 쉴새 없이 이를 생각하라. 일생을 헛되이 보내고 만세에 후회하는 일 없을 지어다. (어서 970쪽)
=> 후회가 없는 싸움을 합시다. 역사에 남는 싸움을 합시다. 함께 열심히 합시다. '졸음'을 이기는 것은 자신이 진지하게 싸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피곤해도, 잠이 와도, 거기에서 자기에게 이겨야만 하루의 승리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침을 이기고, 하루하루 상쾌한 출발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 길이 없는 곳도 우선 한사람이 걸으면 작은 길이 생긴다. 그 다음을 두 사람 , 세 사람, 사람들이 뒤를 이을 때마다 길은 넓혀지고 단단해 진다. 중요한 것은 최초로 길을 여는 사람이 있는 가이다.
* 하루 하루가 결전이다. 어제 성공했으니까 오늘도 성공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제 나빴으니까 오늘도 나쁘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순간 순간의 실상이 소중한 것이다. 그 차감의 실체가 복지(福智)로 되고 일생의 총결산이 된다.
*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는 것입니다.
지극히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려면 먼저 한사람 한사람의 환희에 넘치는 주체적인 활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신심으로 일어서지 않으면 도저히 달성할 수 없습니다. 강성한 기원에서 출발하는 신심이 아니면 안됩니다. 모든 사람의 기원이 하나가 되어 어본존을 향해 갈 때 비로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 어서에 " 부모에게 효도하라 란 설사 어버이가 사물을 기역 하지 못하더라도 나쁘게 말하더라도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좋지 못한 얼굴을 보이지 않고 어버이의 말씀에 일분도 틀리지 않고 어버이에게 좋은 것 을 드리려고 생각하고 하다 못해 드릴 일이 없으면 하루에 두 세 번 웃는 얼굴로 대하라 함이니라 " (어서 1527쪽)
○ "어떠한 세상의 혼란에도 여러분을 ‘법화경 십나찰이여 도와 주십사’ 라고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 강성하게 말하느니라"(어서1132쪽)
○ 기원하고 노력하며 본존님께 맡기겠다는 강(强)한 확신(確信)이 중요합니다. 진심으로 묘법(妙法)에 나무(南無)했을 때 무량(無量)한 지혜와 힘이 나옵니다. 불가능도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기원(祈願)이 근본입니다. 기원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방법론(方法論)에 치우치면 헛돌고 앞이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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