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19. 10:05ㆍ佛法 .SGI
「남묘호렌게쿄」 관련 어서
「삼세시방의 부처는 반드시 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종으로 해서 부처가 되시었도다」(어서 1072쪽)
삼세시방의 부처는 모두 반드시 妙法蓮華經의 5자를 종자로 해서 부처가 되신 것이다. 어떠한 부처라 해도 모두 그 근원은 '묘법의 종자'였다. 모두 같은 법리(法理)이자, 평등의 대법이다. 결코 다른 특별한 방법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단언(斷言)이시다.
지금 우리들은 이 똑같은 '묘법'의 종자를 생명에 심은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어본존의 불력�법력(佛力�法力), 우리들의 신력�행력(信力�行力)에 의해 반드시 '일생성불'(一生成佛)의 실증을 나타내 갈 수가 있다. 이것은 어본불의 약속이시고 절대로 틀림이 없다.
묘법을 수지하지 않은 세계의 어느 누가, 아무리 특별한 듯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절대로 속아서는 안 된다. 말법(未法)에 계율(戒律)을 지키는 그러한 성자(聖者) 따위는 없다고, 전교대사도 또한 대성인도 말씀하셨다.
모두 인간이며 범부이다. 그 범부가 어본존을 끝까지 수지해 갈 때 범부의 모습 그대로 한없는 불계(佛界)의 맛을 시시각각으로 즐기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의 눈으로 볼 때, 광포의 동지 여러분이야말로 무한히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미국창가학회 30주년 기념총회 1990 년 2 월24 일>
「법화경이라고 함은 손으로 잡으면 그 손이 부처가 되고, 입으로 부르면 그 입이 즉 부처니라」(어서 1580쪽)
법화경이라고 하는 것은 손으로 잡으면 곧바로 부처가 되고, 입으로 부르면 그 입은 그대로 부처이다.
묘법을 위하여, 광선유포를 위하여 손을 움직이면 그 손이 부처가 된다. 발을 쓰면 그 발이 부처가 된다. 몸도 마음도 두뇌도 건강해진다. 이것이 '묘'한 '법'이다. 불가사의한 대법(大法)이다. 이 일점을 확신하고 성실하게 행동해 가는 마음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시코쿠 영광총회 1993 년 12 월 3 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신앙(信仰)하는 한, 수행(修行)에 모여들지 않는 공덕(功德)은 없고 움직이지 않는 선근(善根)은 없다」(어서 500쪽, 통해).
니치렌 대성인의 말씀 그대로 자행화타(自行化他)에 걸쳐 묘법을 수행하고 광선유포를 하고 있는 것은 창가학회 밖에 없다. 그 선근은 무량하고 그 공덕은 무변(無邊)이다. <간사이 대표자 협의회 2000 년 12 월 12 일>
「석존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은 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에 구족(具足)하였다. 우리들이 이 오자를 수지(受持)하면 자연히 그의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을 물려주시느니라」(어서 246쪽)
괴로움을 이겨 내는 근본은 창제를 하는 것입니다. 기원하고 기원하여 끝까지 기원하는
것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본존님을 믿고 창제하는 사람은 석존이 수행한 인(因)도, 공덕의 과(果)도 전부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한마디의 창제에도 무량무변한 대공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니치칸(日寬) 상인은 '본존님을 강성하게 믿는 힘'과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행력(行力)'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떤 괴로움도 그대로 본존님께 기원하면 됩니다.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세상살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속임수를 쓰는 사람,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에게 '이 사람은 왜 이럴까 �'하고 화를 내고 싶은 사람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으니까 남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자신이 될 수 있다. 괴로움이 있으니까 인간다운 현명한 자신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유연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유쾌하게 생기 발랄하게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빛나는 것입니다. 자기답게!
혼자 신념(信念)을 가지고 자기 길을 걸어 가면 반드시 벗은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동지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백만대군에 능가하는 지혜가 샘솟습니다. 위대한 생명력(生命力)이 용솟음칩니다.
불법에는 이른바 비장감은 없습니다. 괴로움에 빠져 자신이 자기를 상처입히는 것은 손해입니다. 어디까지나 낙관주의로 살고 또 살아 꿋꿋이 살아주기 바랍니다. <각부대표협의회 2002 년 8 월 11 일>
「물어 가로되 법화경의 의(意)도 모르고 다만 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오자(五字) 칠자(七字)에 한(限)하여 일일(一日)에 한 번, 1월 내지 1년 10년 일평생 동안에 단지 한 번만 불렀다고 해도, 경중(輕重)의 악(惡)에 이끌리지 않고, 사악취(四惡趣)에 향하지 않고, 드디어 불퇴(不退)의 위(位)에 이를 수 있느뇨.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하니라」(어서 940쪽)
질문하기를 "법화경의 의미도 모르고 다만 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오자 칠자의 제목(題目)만을 1일에 한 번, 또 1개월 혹은 1년, 10년, 일생 동안에 단지 한 번만 불렀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경중(輕重)의(여러 가지) 악업(惡業)에 이끌리지 않으며 사악취(四惡趣 지옥�아귀�축생�수라계)에 향하지 않고 드디어 불퇴전의 위(位)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대답하기를 "확실히 그대로이다".
단지 한 번의 창제에 얼마나 위대한 힘이 비침되어 있는가. 단지 한 번만이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행복의 궤도에로 향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물며 광포에 면려해 가는 여러분의 창제의 소용돌이가 얼마만큼의 복덕으로 되는 것인지 헤아릴 수 없다. 또 이 글에 비추어 봐도 가령 조금이라도 묘법과 연을 맺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불법을 기조로 평화�문화�교육을 추진하고 있는 SGI운동, 그리고 여러분의 '회우(會友)'운동은 불법사(佛法史)의 뚜렷한 장거(壯擧)라고 해도 좋다.
대성인은 창제의 이러한 역용(力用)의 알기 쉬운 예로서 「매실(梅實)이 시다는 소리를 들으면 입에 침이 고인다. 세간(世間)의 불가사의조차 이와 같으니 하물며 법화경의 불가사의에 있어서랴」(어서 940쪽) - 매실이 시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것만으로 입에 침이 고인다. 세간의 불가사의조차 이와 같다. 하물며 법화경의 불가사의에 있어서는 더한층 그러한 것이다 - 라고 말씀하셨다.
가령 그 깊은 법리는 알 수 없어도 묘법을 부른 공덕은 절대로 틀림없다. 묘법과 연을 맺는 것은 실로 굉장한 것이다. <태국 대표자회의 1992 년 2 월 2 일>
「그러므로 경(經)에 가로되 "만약 법을 듣는 일이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성불하지 않음이 없도다" 운운. 문(文)의 심(心)은 이 경을 수지하는 사람은 백인이면 백인 모두, 천인이면 천인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불한다는 문(文)이니라」(어서 1580쪽)
그러므로 법화경에 "만약 법을 듣는 자가 있다면 한 사람도 성불하지 않는 자는 없다" 운운 이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이 경문의 마음은 이 경을 수지한 사람은 백인이면 백인, 천인이면 천인 모두 한사람도 남김없이 부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법을 듣는다는 것은 법을 끝까지 수지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전원이 부처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백명이면 백명, 천명이면 천명, 전원이 빠짐없이 성불할 수 있다 - 이것이 어본불의 절대적인 약속이시다. 대성인의 불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세계종교'이다.
'모두가 함께 성불' '모두가 함께 행복' '모두가 함께 영광' - 이러한 화락(和樂)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 불법이다. 그러므로 세계평화의 근간이 된다. <제17회 SGI총회 1993 년 10 월 22 일>
「제목을 봉창하는 소리는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닿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우리들의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제목이라는 대음(大音)에 넣어서 봉창하므로 일대삼천계(一大三千界)에 도달하지 않는 곳이 없다. 비유컨대 소음(小音)이라도 조개 껍질에 넣어서 불면 울리는 것과 같고, 손의 소리는 작지만 북을 치면 멀리 울리는 것과 같다. 일념삼천의 대사(大事)인 법문(法門)이 이것이니라」(어서 808쪽)
제목을 봉창하는 음성은 시방(十方 동서남북의 사방(四方)과 동남·동북·서남·서북의 사유(四維)와 상하의 이방(二方))의 세계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들의 작은 소리라도 제목이라는 '대음(大音)'에 넣어 봉창하는 까닭에 대우주 속에서 도달하지 않는 곳은 없다. 예를 들면 작은 소리라도 소라고둥에 넣어 불 때 멀리까지 울리는 것과 같다. 또 손의 소리는 작지만 북을 치면 멀리까지 울리는 것과 같다. 일념삼천의 대사(大事)의 법문이란 이것이다.
묘법은 대우주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음성'이다. '용기의 음성'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선(善)의 방향으로 바꾸고, 기쁨으로 감싸 가는 '지혜의 대음성'이다. 생명의 대음악이고 대심포니(교향곡)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의 대음(大音)으로 삼세간의 오음(五陰), 중생(衆生), 국토(國土)의 모든 것이 바뀐다. 전 우주의 제천선신, 시방(十方)의 불·보살에 연결되어 승리의 방향으로 움직여 간다. 이것이 일념삼천의 법문(法門)이다.
그러므로 제목의 대음성을 당해낼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제목보다 뛰어난 힘은 아무것도 없다. 이 '대확신'으로 전진해 왔기 때문에 학회의 오늘날의 대발전이 있다. < 제93회 본부간부회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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