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에 대한 스피치

2022. 5. 17. 21:37佛法 .SGI

 


리더는 기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에게나 일가 모두에게도 기원이 중요하다. 기원만이 일체를 타개하고 승리의 원천이 된다. 또한 마와 싸우고 마를 타파한다는 강한 기원의 일념이 있는가에 신심의 정수가 있다. 의사는 신체의 이상이 있는지를 본다. 그렇지만 마음의 세계가 어떤지 오저의 일념이 어떠한지를 보는 것은 불법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오저의 일념이 변혁하는 데서 출발한다.

불행한 일이 일어나거나 간부가 퇴전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신심하고 있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본존에 대한 기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다. 기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 때는 '왜 그런가'하고 생각했던 일도 결과적으로 보면 묘법에 비추어 일어난 일은 모두 가장 좋은 방향으로 향해 간다. 범부의 눈으로 당시에는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신심을 관철하면 때와 함께 모두 깊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신심은 '일체가 의미 있는 것이며 최선이다'고 확신 할 때 밝은 경애가 열린다.

어성훈에 비추어 난과 싸우고 묘법 광선으로 열심히 나가는 용자에게 부처의 가호는 엄연하다. 광포에 힘쓰는 불자를 반드시 지킨다. 이것이 석존의 마음이며, 대성인의 대자대비이시다. 그 강성한 기원은 전 우주에 있는 불계의 역용(力用)을 움직이고, 또한 일체의 보살, 이승, 제천의 움직임과도 공명하면서 소원 만족하는 대승리의 인생을 열어 갈 것임을 확신하기 바란다.

나를 만드는 것은 결국 나이다. 그 나라는 것을 요약한다면 일념이다. 일념이란 구체적으로는 기원으로 집약된다. 지용의 용사로서 '서원(誓願)한 기원'만이 나를 한없이 향상시키고 활약하게 하고 완성시키는 원동력이다. 서원- 존귀한 사명이 있는 나의 인생, 무엇을 맹세하고 무엇을 원하며 살아가는가. 그 오저에 있는 일념대로 일생은 전개된다.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누구의 책임이라 할 필요도 없다. 대성인은 자체현조(自體顯照)(어서1055쪽) 라고 말씀하신다. 묘법의 빛은 나의 본연의 모습을 비추어 나타낸다. 빛낸다. 이 '나의 생명에 살아가는' 인생만큼 행복한 인생은 없다.

어떠한 분야의 차원의 활동이든, 광선유포에 대한 진지한 기원에서 출발하여 움직이면 움직인 만큼, 만나면 만난 만큼, 그리고 말하면 말한 만큼 신뢰와 우정이 넓혀진다. 모든 것을 자기 편으로 하여 제천선신의 역용으로 연결되는 것이 이 불법이다.

"기원은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오늘 하루 무사고로 자기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또한 출장이나 여행 등의 출발 때도 무사히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그 밖에 정확하게 일념을 정하여 구체적으로 기념한다. 그래야만 기원은 어본존에게 감응하여 '사(事)의 일념삼천'의 법리에 따라 우주에 있는 모든 차원의 움직임이 기원을 실현하는 쪽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묘법을 믿고 행하는 자의 기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것도 기원하는 측의 '강한 일념'이 있고 난 다음이다. 강한 일념은 목적이 명확하고 구체적인 떄 생겨난다.

묘법의 기원은 자신의 '생명의 변혁'을 가져오고, 그 변혁은 반드시 '주위 사람들이나 생활환경의 변혁으로 이어진다. 지역의 발전도 경제의 호전도 "나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그런 소원이라도 나의 일념에서 말하는 신심의 역용이 어떠한가에 따라 이윽고 엄연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하게 확신하는 것이다.

기원은 말하자면 '생명의 에너지'로서 전 우주에 전해지고 온갖 변화의 원동력이 되어 간다. 방사능도 자외선도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엄연하게 존재한다. 영향을 미친다. 묘법의 기원의 '에너지'도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 힘은 무한하다.

불법은 실천이다. 행체즉신심이다. 진정한 기원과 행동이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리 없다. 광선유포를 위한 불도수행을 거듭하고 신심이 투철해지면 기원은 반드시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활도 명인이 쏘면 하나의 화살로도 과녁을 맞춘다. 모든 기원이 소원 만족되는 신심의 달인, 인생의 달인이 되기를 바란다.

자기 바로 앞에 놓은 과제를 기원하고 전력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시에 '광포를 위해' 라는 기원에 섰을 때 그 커다란 일념에 작은 고민은 전부 포함되고 전부 호전된다. 대우주에도 (혹성의) 공전과 자전이 있다. 광선유포라는 대원을 기원하는 것은 공전이다. 자기의 고민을 기원하는 것은 자전이다. 자전과 공전이 있어야 비로소 자기라는 소우주가 대우주의 궤도와 조화할 수 있다.

아무리 기원해도 사신(邪信:그릇된 믿음)의 기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원이 이루어지기는커녕, 정의를 적대하는 만큼 도리어 자신을 망친다. 이 원리는 광포의 역사에도 엄연하게 보아 왔다.

신심의 근본은 기원이다. 자기의 일, 벗의 일을 구체적으로 기원하는 것이다. 자비의 근본도 기원이다. 지도의 근본도 기원이다. 지도를 받는 근본도 기원이다. 그 근본을 잊으면 이미 어본존에게서 벗어난 '책략'이 되고 만다. 책략은 결국 공전하고 모든 사람에게 폐만 끼칠 뿐이다.

기원하고 노력하고 '어본존께 맡기는' 대확신이 중요하다. 진심으로 묘법에 나무(南無)했을 떄, 무량한 지혜와 힘이 나온다. 불가능도 가능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기원이 근본이다. 기원하는 것을 잊고 방법론으로 달려갔을 경우는 공전하고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