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목초 강의(상), 제1장 개목

2022. 5. 14. 20:39佛法 .SGI

* 강의에 즈음하여
 
종교는 인간성의 기둥입니다.
철학은 인생의 골격입니다.
창가학회(SGI)는 '검호(劍豪)의 수행(修行)'이라 할 수 있는 교학 연찬의 힘으로 전진했 왔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에게서 직접 지도를 받는다는 마음으로 어서를 펼쳐, 신행학에 깊이를 더하고 용기를 촉발시켜 광선유포의 모든 투쟁에서 승리해 왔습니다. '어서 근본'의 전진에 막힘은 결코 없습니다.
내 가슴속에는 지금도 끊임없이 도다 선생님에게서 받았던 어서 강의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의 강의에는 생명론 행복론 국가론 문화론이 있으며, 평화론 인물론 조직론 사제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활달한 전개를 통해, 대성인 불법(佛法)을 현대 사회와 생활에 소생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서를 통해, "지용의 보살인 여러분, 한 나라를 구제하는 투쟁으로 일어서자"라고 호소하시며 각자의 생명 오저에서 '사명감'과 '용기'를 일깨우는 자애 넘친 지도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만인이 '지용의 보살'이라고 하는 어서 배독 방법은 대성인 멸후 700년간 변함 없다고 확신합니다. 도다 선생님 자신이 옥중도달을 통해 지용의 사명을 깊게 자각하고 어서를 강의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게도 도다 선생님의 강의가 인생을 결정하는 기연(機緣)이 된 것은 말한 나위도 없습니다.
도다 선생님과 운명적으로 만난 것도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을 강의하실 때였습니다. 그리고 입신 후에 청강한 법화경 강의, 또 때때로 이른 아침의 강의에서 들은 심원한 니치렌 불법의 철리(哲理). 도다 선생님은 참으로 강의의 달인이셨습니다.
감동한 나머지 '강의에는 무기술적인 강의, 기술적인 강의, 예술적인 강의가 있구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나도 도다 선생님의 제자로서, 언제나 최일선에 서서 어서를 강의하며 많은 벗에게 대성인 불법을 호소했습니다.
대성인이 발하신 정의의 사자후는 만인의 생명에 잠재한 마성을 타파하는 최대의 힘입니다.
계속되는 대난을 이겨 낸 대성인의 위대한 생명력은, 고난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 그리고 확신과 환희의 파장을 보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깊은 사색에서 나온 말씀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광선유포와 인생의 올바른 궤도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서 근본'은 생활과 인생에서, 또 광선유포의 투쟁에서도 '승리를 향한 올바른 궤도'입니다.
우리 소원은 오로지 21세기를 '민중의 승리' '청년 승리' 그리고 '인간 승리'의 세기로 만드는 것입니다. 세계는 이제 인간주의 종교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맞이해 그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핵이 되고 또 소중한 회원에게 양식이 되는, 대성인의 대사자후이신 <개목초>를 강의하기로 했습니다.
'생명의 세기' '인간의 세기'를 수립하기 위해 니치렌 불법의 정수(精髓)와 그 정통 교단인 창가학회의 정의를 말해 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창가학회 혼의 근간을 남기고 싶습니다.
철학은 승리하기 위해 일으키는 투쟁의 원천입니다.
숭고하고 심원한 실천 철학인 니치렌 불법을 진지하게 배우고 생명에 새기는 여러분은 영원한 '철학박사'가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깊어 가는 현대 사회의 어둠을 희망의 경전(經典)과 영원한 보전(寶典)의 광명으로 비추며 인간 세기를 창조하는 철학의 용사가 되기를 염원하며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 강의*
 
개목(開目)
<개목초> 전체에 일관된 주제는, '개목'이라는 제호밖에 참으로 떠오르는 말이 없습니다.
이 어서의 진필은 현존하지 않으나 본문을 쓰신 화지(和紙:일본 고유의 종이) 65매와 대성인이 표지에 '개목'이라고 쓰신 화지 1매를 합쳐 66매로 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개목'은 문자 그대로 '눈을 연다'는 뜻입니다. 또 '눈을 열라'는 대성인의 호소로 배독할 수도 있습니다.
감긴 마음의 눈을 어떻게 뜨게<열게> 할 것인가. 무명(無明)의 어둠을 어떠한 광명으로 비출 것인가. 그 해결의 길을 여신 분이 말법의 본불이신 니치렌 대성인입니다.
'일체중생을 구제'하고 '입정안국(立正安國)을 실현'하고자 모든 마성과 싸우는 법화경 행자로서, 그 투쟁의 불길은 사도(佐渡)에 유배된 후에도 더욱 불타오르셨다고 배견됩니다.
대성인은 <개목초>의 아주 유명한 다음 한 구절에서 그 심경을 밝히셨습니다.
"결국은  천(天)도 버리시고 제난(諸難)도 당(當)하여라 신명(身命)을 바칠 뿐이로다."(어서 232쪽), "대원(大願)을 세우리라. (중략) 나는 일본국의 기둥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이 안목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의 대선이 되겠노라. 이렇게 맹서(盟誓)한 원(願)은 깨뜨리지 않겠노라" (어서 232쪽)
사회적으로 보면, 대성인은 유형자(流刑者)입니다. 권력의 탄압을 받는 원죄(寃罪)라고 하지만, 사형 다음으로 중죄인 유형(流刑)을 받으셨습니다. 이를테면 천연의 감옥에 갇힌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의 마음을 묶을 수 있는 어떠한 쇠사슬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박해의 수난을 이겨 낸 현인(賢人) 성인(聖人)은 많습니다. 그러나 박해의 땅에서 인류 구제를 선언하신 분은 대성인뿐입니다.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겠노라!"
그 어떤 박해도, 어떤 마성(魔性)도 민중 구제의 서원으로 우뚝 서신 대성인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적(內的)인 생명의 법'을 각성한 인간이 얼마나 존극한 정신의 거인이 될 것인가.
니치렌 불법은 '인간종(人間宗)'입니다. 대승불교의 정수(精髓)인 법화경이 연 '인간 종교'의 대도(大道)를 확립하고, 전 인류의 행복과 평화 실현을 위한 방도를 미래에 남겨 준 분이 니치렌 대성인이십니다.
참으로 대성인은 인류의 '기둥'이고 '안목'이며 '대선'이십니다. 그 '기둥'을 쓰러뜨리려 한 사람이 당시 일본의 권력자였고 첨곡(諂曲)의 축생도(畜生道)에 빠진 승들이었습니다.
 
사도의 가혹한 환경 속에서 집필 
이 <개목초>을 쓴 유래에 대해 대성인 자신이 <사도초>에 자세히 쓰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두 돌아갔기에 거년(去年)의 십일월부터 생각해 오던 개목초(開目抄)라는 문(文) 이권(二卷)을 만들었는데, 참수(斬首) 당한다면 니치렌의 불가사의를 남겨 두려고 생각하여 침사(沈思)하였느니라.
이 문(文)의 심(心)은 니치렌에 의하여 일본국의 존망(存亡)은 결정되리라. 비유컨대 집에 기둥이 없으면 지탱할 수 없고 사람에게 혼(魂)이 없으면 사인(死人)이니라. 니치렌은 일본 사람들의 혼이로다. 헤이노사에몬은 이미 일본의 기둥을 쓰러뜨렸느니라. 지금 세상이 혼란하여 이렇다 할 사유없이 꿈과 같이 망어(妄語)가 출래하여 이 일문(一門)을 동족상잔(同族相殘)하고 후에는 타국으로부터 침공당하리라. 예컨대 입정안국론에 자세히 말한 바와 같으니라. 이와 같이 적어서 나카쓰카사사부로자에몬노조의 사자(使者)에게 주었노라" (어서 919쪽)
<통해 - 그리하여 (쓰카하라문답이 끝나고) 모두 돌아갔으므로 작년 11월부터 구상하고 있었던 <개목초>라는 책 두 권을 만들었다. 이것은 만일 참수를 당하면 니치렌의 불가사의를 남겨 두려고 생각하여 구상한 것이다.
이 글의 뜻은 '니치렌이 일본국의 유무<존망>를 결정한다'는 것에 있다. 비유컨대 집에 기둥이 없으면 유지할 수 없다. 사람에게 혼이 없으면 죽은 사람이다. 니치렌은 일본 사람의 혼이다. 헤이노사에몬은 이미 일본의 기둥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 세상이 혼란해지고, 어느새 꿈과 같이 거짓이 횡행하고, 호조 일문(一門)이 동족상잔하여 후에는 타국에게 공격당할 것이다. 예를 들면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개목초>를) 써서 나카쓰카사사부로자에몬노조(시조깅고)의 사자에게 보냈다.>
이 구절은 1272년 2월 <개목초> 집필 당시의 마음을 후에 회고하신 내용인데, 우선 '거년의 11월' 즉 사도 도착 직후인 1271년 11월부터 <개목초>를 구상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대성인이 혹한의 땅인 사도의 쓰카하라에 도착하신 때는 11월 1일, 사도의 쓰카하라삼매당이란 "사자(死者)를 버리는 곳"(어서 916쪽) 즉 묘지에 있는 당(堂)을 말합니다.
한 칸 정도의 작은 건물로, 모셔야 할 부처도 없고 마룻바닥은 틈이 벌어졌으며 벽은 헐고 부서져, 완전히 폐가와 다름없었습니다. 찬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고 눈이 쌓이는 환경에서 도롱이를 입고 바닥에는 모피를 깔고 하루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익숙지 않은 북방의 혹한에 더욱이 식량도 부족하여, 11월에는 함께 따라온 몇 명의 제자도 돌려보내셨습니다.
"필단(筆端)으로 쓰기가 어려우니라"(어서 956쪽)라고 하시듯이, 필설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현신(現身)에 아귀도(餓鬼道)를 느끼고, 팔한지옥(八寒地獄)에 떨어졌다고 느끼는 상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에 유배된 자는 끝내 살아난 일이 없으며, 설혹 살아났다 하여도 돌아간 일은 없느니라. 또 때려 죽였다 해도 책망하시지 않는다" (어서 917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니치렌 대성인은 깊이 사색하면서 인류를 구제하기 위한 대저(大著)를 쓰셨습니다. 지금의 200자 원고지로 말하면 200여 매에 상당하는 저술을 약 3개월동안 구상하고 집필하셨습니다.
대성인은 사도에 도착하고 바로 민중 구제의 서(書)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당하실 때의 경지(境地)에 대해 "성불의 경애란 절대적인 행복경(幸福境)이다. 그 무엇에도 침범당하지 않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순간순간의 생명이 맑은 대해와 같고 구름 한 점 없는 허공과 같은 것이다. 사도유죄 당시, 대성인은 이와 같은 경애였다고 배견된다. 그러면 "이 몸을 법화경과 바꿈은 돌을 금(金)으로 바꾸고 분(糞)을 쌀로 바꾸는 것이니라"(어서 910쪽), "니치렌의 유죄는 금생의 소고(小苦)이므로 한탄스럽지 않노라. 후생에는 대락(大樂)을 받게 될 것이니 크게 기쁘구나"(어서 237쪽)라고 말씀하신 것은 본불님의 경애라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도다 조세이 전집>제3권)
사실, 니치렌 대성인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역경에서 어떻게 하면 전 인류를 부처로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셨습니다. 그리고 <개목초>와 <관심의 본존초>를 집필하여 그 방도를 명확히 나타내셨습니다.
옛날부터 대난을 참고 견딘 자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이 더욱 위대한 까닭은, 그 대난에서도 자신보다 민중 구제와 인류 구제를 위해 고뇌하셨다는 점입니다.
 
발적현본과 개목초
그런데 대성인은 앞의 어문에서 <개목초>를 집필한 동기를 "니치렌의 불가사의를 남겨 두려고 생각하여 <개목초>를 구상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겨 두어야 할 '니치렌의 불가사의'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다쓰노구치 법난 때의 '발적현본(發迹顯本)'이라고 삼가 생각합니다.
이때 대성인은 '명자즉(名字卽)의 범부(凡夫)'라는 적(迹:임시의 모습)을 열어, 내증(內證:내심<內心>의 깨달음)으로 영원한 묘법과 하나가 된 자유자재의 경지(境地)인 구원원초(久遠元初)의 '자수용보신여래(自受用報身如來)'의 본지(本地)를 나타내셨습니다.
대성인이 발적현본하심으로써 범부의 모습 그대로 불계의 생명을 나타내는 '즉신성불의 길'이 만인에게 열렸습니다.
<개목초>에서 자세히 밝히셨듯이 대성인은 계속되는 대난을 이겨 내고 장마(障魔)를 타파하는 투쟁에서 발적현본이라는 '생명 근본의 승리'를 쟁취하셨습니다.
우리도 어떤 장마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는 신심을 관철하면, 반드시 무명을 깨뜨리고 법성을 나타내는 자기 자신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발적현본입니다. 그리고 이 발적현본이 일생성불을 결정하는 근본이 됩니다.
"한 사람을 본보기로 하여 일체중생 평등함이 이와 같다" (어서 564쪽)라고 말씀하시듯이, 니치렌 대성인의 발적현본은 말대(末代)의 모든 범부에게 미치는 성불의 '근본 원리'를 밝히셨습니다. 또 그 증명이고 본보기 입니다.
묘법을 향한 부동(不動)의 신(信)이 있어면, 모든 사람이 범부라는 자신의 육신에 우주대(宇宙大)의 경애를 넓힐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말법에 전 민중의 발적현본을 처음으로 나타낸 분이 니치렌 대성인이십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자신의 발적현본을 증명하려고, 또 일체중생이 발적현본하기 위한 명경(明鏡)을 하고자 본존님을 도현하셨습니다.
참으로 대성인은 전 인류의 기둥이십니다. 일체중생이 불성(佛性)을 열 수 있는 것은 니치렌 대성인의 발적현본 덕분입니다.
이 점에 "니치렌에 의해 일본국의 존망이 결정되리라." "니치렌은 일본 사람들의 혼이로다"라고 말씀하신 깊은 뜻이 있다고 배견됩니다.
'개목'은 이렇게 '대성인에게 눈을 열라'고 호소합니다.
 
불석신명의 정신으로 눈을 열라
'니치렌 대성인에 대한 개목'은 즉 '법화경 행자에 대한 개목'이고 '법화경에 대한 개목'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개목'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고 <개목초>에 그것을 배독할 수 있는 각종 어문이 씌어 있습니다.
여기서 '대성인에게 눈을 열라'고 호소하신 부분을 말하고자 합니다.
먼저 앞에 말한 '대성인의 발적현본에 눈을 열라'에 해당하는 어문은 유명합니다.
"니치렌이라고 하는 자는 거년(去年) 9월 12일 자축(子丑)의 시(時)에 목이 잘렸느니라. 이는 혼백이 사도의 땅에 와서 다음 해의 2월 설중(雪中)에 써서 유연(有緣)한 제자에게 보내니 무서워하지만 나는 무서워하지 않노라. 이 글을 보는 사람은 얼마나 겁먹을 것이뇨" (어서 223쪽)
틀림없이 '대성인의 혼백에 눈을 열라'고 말씀하시는 어문입니다.
여기서 대성인은 "다쓰노구치에서 참수되는 자리에서 범부 니치렌은 목이 잘렸다. 지금 사도에서 <개목초>을 쓰고 있는 것은 니치렌의 혼백 자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혼백'은 발적현본하신 내증인 '구원원초 자수용신'입니다.
여기서 <개목초> 전편의 구성에서 보면, 이 한 구절이 대성인 자신의 법화경 신독(身讀), 특히 권지품 제13의 신독(身讀)을 설한 부분의 첫머리에 있음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즉 어문은, 법화경 권지품에 삼류(三類)의 강적(强敵)이 아무리 무시무시하게 박해한다고 설해져 있어도 혼백인 니치렌에게는 전혀 무섭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구원원초 자수용신이 가진 위대한 경애의 일단을 나타내십니다.
삼류의 강적이 법화경 행자를 권력으로 탄압하는 무서운 박해의 모습이 권지품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 생명을 위협하는 대난을 받았을 때, 팔십만억나유타의 보살들은 '불석신명(不惜身命)'의 혼으로 싸우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웁니다.
권지품에는 "나는 신명(身命)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무상도(無上道)를 아끼느니라"라고 있습니다.
만인을 부처로 만드는 무상도를 아끼며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석신명'의 정신을, 보살의 근본적인 요건으로 설했습니다.
대성인은 <개목초>와 거의 같은 시기에 쓰신 <사도어서>에서 "명문명리의 악승과 우치의 악신(惡臣)이 결탁하여 비도(非道)의 권력으로 법화경 행자를 습격했을 때, 불석신명의 '사자왕(師子王)'의 마음'을 지닌 자가 부처가 된다"(어서 957쪽, 통해)라고 밝히셨습니다.
따라서 '개목'에는 '대성인의 불석신명 정신에 눈을 열라'는 뜻을 포함한다고 배견할 수 있습니다.
 
장마(障魔)와 끝까지 투쟁하는 사람이 말법의 스승
다음에 대성인이 대난을 겪으시는 모습이 권지품에 나와 있는 '삼류의 강적이 박해하는 모습'과 일치한다고 자세히 검토하고, 결론을 내리신 어문을 배독하겠습니다.
여기서도 '대성인에게 눈을 열라'는 뜻을 삼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부처와 제바(提婆)와는 몸과 그림자와 같으니, 생생(生生) 떨어지지 않으며 쇼토쿠 태자와 모리야와는 연화(蓮華)의 화과(花菓)가 동시(同時)임과 같으니라.
법화경의 행자(行者)가 있으면 반드시 삼류의 원적(怨敵)이 있으리라. 삼류는 이미 있으니 법화경의 행자는 누구일것이뇨. 찾아서 스승으로 삼으리니 이는 일안(一眼)의 거북이가 부목(浮木)을 만남과 같으니라" (어서 230쪽)
"찾아서 스승으로 삼으리니"는, 삼류의 강적과 끝까지 싸우는 법화경의 행자만이 말법의 사람들을 구제하는 진정한 '스승'이라는 결론입니다.
장마와 싸우는 사람만이 '말법의 스승'입니다.
"마(魔)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正法)이라고 알지 말지어다" (어서 1087쪽)라는 말씀처럼, 말법에서 정법을 바르게 수지하고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장마가 다투어 일어납니다.
만인이 갖추고 있는 불성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에 그리고 사회에 나타내는 방도를 확립하는 실천이 말법의 사람들을 구제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 대도(大道)는, 만인이 갖추고 있는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을 타파하는 깊고 강한 '신(信)'을 확립할 수 있는 사람만이 열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장마의 정체는 원품의 무명이기 때문입니다. 원품의 무명과 싸워야 한다고 밝히지 않는 가르침은 결코 '말법의 정법'이 아닐 뿐아니라 '말법의 스승'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원품의 무명은 본래 수행의 최종 단계에 이른 보살이 만나는, 묘법에 대한 근본적 미혹입니다. 그런데 등각(等覺)의 보살 조차 이 미혹때문에 길을 잃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말법은 '백법은몰(白法隱沒)'이라고 하듯이, 정법이 은몰하고 사지(邪智)가 깊어지는 시대입니다. 이 말법에 정법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원품의 무명과 대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두 가지를 강조하셨습니다.
첫째는 '오중(五重)의 상대(相對)'를 통해 무엇이 말법의 정법인지를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문저(文底)의 일념삼천'이며, 법화경 본문수량품에 있는 구원의 '본인본과(本因本果)'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순수하고 강한 신심으로 원품의 무명을 타파함으로써 현재 구계(九界)인 자신과 영원한 불계의 생명의 호구(互具)를 실현하는 "참된 십계호구"(어서 197쪽)입니다.
 이것이 구계인 자신이 불계를 용현하여 즉신성불 일생성불을 실현하는 법이고, 이것만이 '말법의 정법'입니다.
둘째는 '서원'을 강조하셨습니다.
법화경 본문수량품의 문저에 비침되어 있는 말법의 정법은 난신난해(難信難解)입니다. 그러나 만인을 성불케 한다는 부처의 대원(大願)을 자신의 염원으로 함으로 하여 광선유포를 위한 불퇴전의 투쟁을 완수하겠다고 서원함으로써 '신(信)'을 연마하고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전현본을 이루고 말법 구제의 대법을 확립하신 대성인이야말로 '말법의 스승'이자 '말법의 본불님'이십니다.
대성인이 서원을 나타낸 어문은 첫머리에서 인용했으나 다시 한 번 인용하겠습니다.
"결국(結局)은 천(天)도 버리시고 제난(諸難)도 당(當)하여라 신명(身命)을 바칠 뿐이로다. 신자(身子) 육십겁의 보살의 행을 퇴전한 것은 걸안의 바라문의 졸름을 참지 못한 때문이고, 구원대통의 자가 삼오(三五)의 진(塵)을 경과함은 악지식을 만났기 때문이니라. 선(善)에서든 악(惡)에서든 법화경을 버림은 지옥(地獄)의 업(業)이 되느니라. 대원(大願)을 세우리라. 일본국(日本國)의 위(位)를 물려 주리라. 법화경을 버리고 관경(觀經) 등에 붙어서 후생(後生)을 기약(期約)하라, 염불(念佛)을 부르지 않으면 부모의 목을 베겠노라는 등의 종종(種種)의 대난(大難)이 출래한다 할지라도 지자(智者)에게 아의(我義)가 타파(打破)되지 않는 한(限) 채용(採用)하지 않으리라. 기외(其外)의 대난은 바람 앞에 먼지와 같으니라. 나는 일본국의 기둥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이 안목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의 대선이 되겠노라. 이렇게 맹서(盟誓)한 원(願)은 깨뜨리지 않겠노라" (어서 232쪽)
이상의 두 가지는 <개목초>의 골격을 이루는 법리이므로 후에 본문 강의에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난(忍難)과 자비에 눈을 열라
이와 관련하여 어서를 또 하나 배독하겠습니다.
"그런데 니치렌(日蓮)의 법화경의 지해(智解)는 천태 전교에는 천만(千萬)의 일분(一分)도 미치지 못하지만, 난을 견디고 자비가 뛰어났음은 공구(恐懼)함마저 가질 것이로다"(어서 202쪽)
많은 동지들의 마음에 새겨진 이 어문 또한 '대성인에게 눈을 열라'고 호소하는 어문으로 배독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대성인은 법화경의 지해(智解)에 대해 천태 전교보다 열등하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앞에 말했듯이 이 말법에 일체중생의 성불을 실현하는 요법(要法)을 파악한다는 최고의 지혜를 이 어서에서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이 요법은 중생 각자의 일념에서 십계호구와 불계용현을 실현하려는 궁극적인 법이고, 본래 설명하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중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넓혀 실현하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그것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투쟁이고, 시대는 악세, 법은 난신(難信)의 요법, 그리고 넓히는 사람은 모습이 범부이기 때문에 대난(大難)을 필정(必定)입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계속되는 대난을 견디며 불계의 생명을 범부인 자신의 몸에 열어 나타내셨습니다.
대성인 스스로 삶의 자세와 실천을 본보기로 보이시고, 만인에게 넓힐 수 있는 방도를 확립하셨습니다.
그 투쟁을 관철하고 완수하신 원동력은 '서원(誓願)'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근저에 일체중생에 대한 대자대비가 있습니다.
이 대자대비가 바로 우리가 대성인을 '말법의 본불님'으로 우러러보는 이유입니다. 대성인 자신도 말법의 한 사람 한 사람을 근본적으로 구제하는 절복 투쟁의 본질을 자비라고 하시며, "니치렌은 일본국의 제인(諸人)에게 주(主) 사(師) 부모(父母)이니라"(어서 237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개목초>의 결론이고 '대성인의 자비에 눈을 열라'고 호소하신 것으로 배견됩니다.
도다 선생님은 <개목초>를 인용하면서, 만인의 성불과 전 인류의 경애변혁만이 '여래사(如來事:여래의 일)'라고 하며 그 실천을 동지들에게 호소하셨습니다.
"전 인류를 부처로 만드는 최고로 가치 있는 것으로, 전 인류의 인격을 이끈다. 이것이 '여래의 사'를 행하는 것이 된다. 대성인이 <개목초>에 "니치렌의 법화경의 지해(智解)는 천태 전교에는 천만의 일분도 미치지 못하지만, 난을 견디고 자비가 뛰어났음은 공구함마저 가질 것이로다"(어서 202쪽)라고 말씀하신 깊은 뜻은,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경애를 득(得)하게 하려고 일생을 다 바치신 대성인의 심중이시다.
이것이야말로 눈앞에서 본 '여래의 사(事)'다. 이렇듯 우리도 '여래의 사'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전 인류에게 부처의 경애를 열게 할 수 있을까"(<도다 조세이 전집> 제1권)
대성인은 만인의 성불과 전 인류의 경애 변혁을 목표로 법체(法體)를 확립하여 유포하고자 인난(忍難) 자비의 힘을 나타내셨습니다.
학회는 이 대성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마키구치 초대 회장 때부터 대성인 불법(佛法)을 현실 변혁의 법으로 받아들여 민중을 구제하는 투쟁에 매진해 왔습니다.
 
근저는 민중에 대한 자비와 신뢰
어서 제목을 '개목'이라 이름 지은 의의는 이상과 같이 여러 가지로 배견할 수 있는데 '대성인에게 눈을 열라'는 것을 기조로 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이 그 근저에는 민주에 대한 자비와 신뢰가 있으며, 그것은 '민중에게 눈을 열라'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 불법은 '사제불이의 불법'입니다. 대성인은 자신의 몸으로 확립한 '말대 범부가 즉신성불하는 길'을 제자들에게 권하십니다.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弟子)는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疑心)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연(自然)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천(天)의 가호(加護)가 없음을 의심(疑心)하지 말 것이며 현세(現世)가 안온(安穩)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에게 조석(朝夕)으로 가르쳐 왔건만 의심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의 버릇이란 약속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어서 234쪽)
여기서는 무의왈신(無疑曰信) 불석신명(不惜身命)의 '신(信)'을 동등하게 함으로써 대성인과 제자 간 사제불이의 도(道)로 삼으셨습니다.
'의심'을 물리친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 '신(信)'에는 생명에 깃들어 있는 마성과 외부의 악연인 장마와 투쟁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의 투쟁을 이어받으면 '성불의 과(果)'도 틀림없다고 보증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 인행(因行) 과덕(果德)은 대성인과 불이(不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 어서에서 일관해서 배독할 수 있는 '대성인에게 눈을 열라'고 하는 호소가, 실은 인간과 민중을 깊이 신뢰하기 때문에 나왔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는 본초의 '개목'의 의의로서 '대성인에게 눈을 열라'고 호소하며, 동시에 '인간에게 눈을 열라' '민중에게 눈을 열라'고 뜨겁게 호소하는 바입니다.
 
만인의 불성을 여는 '개목(開目)의 연대'
결론적으로 <개목초>를 배독한다는 뜻은, 니치렌 대성인을 말법 성불의 '본보기'로 삼고, 성불의 길을 확립한 '말법의 교주(敎主)'로 배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저(文底)의 민중불법이라는 관점에서 배견하면, <개목초>를 배독한다는 뜻은 '인간을 신뢰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삼가 받아들인다면 <개목초>를 올바르게 배독한 사람은 누구인가.
여기서 도다 선생님의 혜안이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의 첫 회를 마무리하며 은사 도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다음 한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내가 어서를 배독할 때는, 대성인이 말씀하신 어구를 알려고 하기 보다 부처의 위대한 자비, 위대한 확신, 열렬한 대중구호의 정신, 한결같은 광선유포에 대한 존엄한 기상을 느끼려고 한다. 어서를 배독할 때마다 한여름의 태양처럼 빛나는 마음이 내 가슴을 찌르는 듯하다. 뜨겁고 거대한 철덩어리가 가슴속 가득히 밀려오는 느낌이고, 어떤 때는 뜨거운 물이 내뿜는 듯하고, 큰 폭포가 땅을 뒤흔들며 내 몸 위에 쏟아져 내리는 듯한 느낌도 든다."(도다 조세이 전집 3권)
이 도다 선생님의 배독 정신이 바로 창가학회의 어서 배독의 영원한 지침이라고 확신합니다. 어서 배독은 민중 구제라는 대자비와 철리를 접하는 것이고, 니치렌 대성인의 광선유포 정신을 이어받는 것에 통합니다. 우리도 지용의 용자로서 전 인류에게 무명의 눈을 열게 해주고, 만인에게 불성을 열어 주는 '개목의 연대'를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니치렌 대성인의 인간주의 불법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개하는 평화 문화 교육의 대운동을 주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