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숙업도 반드시 의미가 있다

2021. 7. 16. 22:08佛法 .SGI

강릉 정동진

 

어떠한 숙업도 반드시 의미가 있다

 

SGI 회장은 《개목초 강의》에서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는’ 불법자의 경애에 서면 어떠한 난도 인간혁명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개목초 강의》

 

(2006년, 상․하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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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자신이 받고 있는 대난이 실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소원을 위해 굳이 고뇌를 떠안는 보살의 원겸어업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보살이 중생의 고뇌를 대신 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듯, 대성인도 지금 대난이라는 고통을 받고 있지만 악도(惡道)에서 벗어날 미래를 생각하니 기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겸어업이 기쁨이라는 말씀은 이 어서 맨 마지막 부분에서 내린 결론과 일치합니다. “니치렌의 유죄(流罪)는 금생의 소고(小苦)이므로 한탄스럽지 않노라. 후생(後生)에는 대락(大樂)을 받게 될 것이니 크게 기쁘구나.”(어서 237쪽)

 

원겸어업은 불법에서 보면 숙명전환론의 결론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는 삶의 자세’입니다.

 

인생에서 일어난 일은 반드시 의미가 있습니다. 또 그 의미를 찾아내고 발견 하는 것이 불법자의 ‘삶의 자세’입니다. 의미가 없는 일은 없습니다. 어떤 숙명도 반드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마음의 자세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일념을 바꾸면 세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불법의 방정식입니다. 숙명도 사명으로 바꾸는 강한 일념은 현실세계를 크게 바꿉니다. 그 일념의 변혁에 따라 어떤 고난도 자신의 생명을 연마하고 향상시키는 기쁨의 원천으로 바뀝니다. 비애(悲哀)도 창조의 원천으로 바꾸는 것이 불법자의 ‘삶의 자세’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그런 삶의 진수를 ‘법화경 행자’의 행동으로 몸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투쟁하는 마음’이 즉‘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투쟁하는 가운데 비로소 생명이 연마되고, 참된 창조적인 생명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난이 닥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정법(正法)을 끝까지 믿어야 삼세(三世)영원히 행복의 궤도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일생성불은 그 궤도를 금세의 자기 인생에서 확립하는 일입니다.

 

‘부단히 투쟁하는 정법의 실천자’가 대성인이 법화경에서 가르치시는 궁극의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지에 서면 난(難)이 곧 인간을 형성하는 참된 기반이 됩니다. “마(魔)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이라고 알지 말지어다.”(어서 1087쪽)하는 각오로 난을 견디는 정법의 실천자는 반드시 묘법의 체현자(體現者)가 됩니다. 그리고 “난이 옴을 가지고 안락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어서 750쪽) “대난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어서 1448쪽)는 큰 경애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철을 달구는데 심(甚)히 불리지 않으면 흠이 숨어서 보이지 않으나 여러 번 달구면 흠이 나타나는 것이며, 삼씨로 기름을 짜는데 강하게 짜지 않으면 기름이 적은 것과 같다.”(어서 233쪽)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른 어서에서는 “숙업은 헤아리기 어렵다. 쇠는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 검으로 되고 현성(賢聖)은 매리(罵詈)함으로써 시험되느니라.”(어서 958쪽)

 

즉 “숙업은 헤아릴 수 없다. 쇠는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 검이 된다. 현인과 성인은 매리당하면서 시험받는다.”

 

“각자는 힘껏 법화경을 믿어 왔으므로 과거의 중죄(重罪)를 책하여 끄집어냈느니라. 비유컨대 철을 공들여 달구어 치면 흠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어서 1083쪽) 즉 “당신들은 법화경을 열심히 믿었기에 과거세(過去世)의 중죄를 책하여 끌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철을 충분히 달구어 치면 내부의 흠이 표면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호법(護法)을 실천하여 단련된 생명은 방법(謗法)이라는 악업의 불순물을 두들겨 내기에 삼세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시(無始) 이래 생사를 반복하는 가운데 이 일생에서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을 만나 방법을 책하고, 자신의 생명을 단련하여 숙명전환을 이루어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불계의 경애를 흉중에 확립하는 일이 ‘일생성불’입니다.

 

이 니치렌불법의 투철한 실천은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고난의 의미를 완전히 바꿉니다.

 

고난은 더는 피해야 할 마이너스 요인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자신의 성불을 돕는 적극적인 요소가 됩니다. 물론 고난에 처한 사람이 고난과 싸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을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없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비록 현실에서 고난에 처했다 해도 크게 바꾸는 비법을 알고 ‘악과 싸웠기에 지금 내가 고난에 처했다.’고 이해하여 ‘이 고난을 이겨내면 위대한 성불의 경애를 열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강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 궁극적인 불법의 진실을 생명 깊이 체득한 사람들이 우리 창가학회의 동지라고 믿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 동지는 고난에 부딪혔을 때 강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밝습니다. 왜냐하면 숙명전환이라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선(善)의 리듬을 이미 체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은 경험이 없더라도 이렇게 체험한 동지의 모습을 일상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숙명과 투쟁하고 광선유포의 신심이 확고한 사람은 그 모습에서 이미 원겸어업이라는 불법 궁극의 진실이 나타납니다.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도 한탄하지 않는다, 씩씩하게 맞선다, 이 사자왕의 마음을 발휘하여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고 위대한 인간혁명의 승리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이 우리 구원의 동지가 간직한 위대한 경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법자에게 패배는, 고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과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도망치면 고난은 정말 숙명이 되고 맙니다.

 

살아 있는 한 싸운다, 살고 끝까지 살아 꿋꿋이 싸운다, 이 인생의 진수를 가르치신 대성인의 숙명전환이라는 철학은 지금까지 종교가 답습한 고난에 대한 사고방식을 뒤집은 위대한 종교혁명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숙명전환할 수 있다.’ ‘괴로울 때일수록 인간혁명할 수 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반드시 마지막에는 바꿀 수 있다.’는 확신으로 사는 것이 니치렌불법의 신심입니다. 그리고 니치렌 대성인에게 직결하여 현실에서 숙명전환의 길을 걸으며 전 세계에 종교혁명의 대도를 여는 단체가 우리 창가학회입니다. 이러한 자부심으로 더욱더 환희 넘치게 전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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