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은 승부

2021. 7. 22. 16:29佛法 .SGI

성훈에서 배우는 승리의 요체(完)

불법은 승부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달려라! 사제개가의 실증을

 

 

광포도 인생도 투쟁입니다. 승리해야만 부처의 경애가 열립니다. 승리해야만 정의로서 빛날 수 있습니다.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선생님은 “니치렌(日蓮) 대성인이 ‘불법은 승부를 우선으로 하고 왕법(王法)은 상벌(賞罰)을 근본으로 한다’고 말씀하셨듯, 이것(=현증)이야말로 종교의 생명이라고 해야 할 것”(‘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 제10권 수록 ‘가치창조’)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승리의 실증을 나타내야 힘 있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어본존이 있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벗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무적인 창가(創價)의 사제정신이 맥동합니다. 자, 생명의 저력을 발휘해 대승리를 노래하지 않겠습니까.

 

 

신심의 위대함을 만천하에

 

[어문]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이 일을 만나기 위해서였도다. 이야말로 우지강(宇治江)을 건너는 일이요. 이야말로 세타(勢多)를 건너는 일이요. 이름을 높이느냐 이름을 낮추느냐이다.

<야사부로전답서>, 어서 1451쪽

 

[통해]

지금까지 살아온 이유는 이 일(법화경으로 인한 난)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때가 바로 (전투의 요충지로 유명한) 우지강을 건너는 때이고, 세타강을 건너는 때라고 생각하세요. 이름을 높이느냐 떨어뜨리느냐를 결정짓는 승부처입니다.

 

불운하다고 한탄할 것인가.

절체절명이라고 초조해할 것인가.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기뻐할 것인가.

정의를 증명하는 무대라고 여기고 감연히 일어설 것인가.

자신이 놓인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마음에 비치는 모습은 일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문하가 일념을 전환하도록 격려하고 빛나는 희망과 무한한 용기를 주셨습니다.

이 어서는 1277년, 법론을 앞둔 제자 야사부로에게 투쟁하는 자세를 가르친 편지입니다. 어떤 사정 때문인지는 모르나 야사부로는 법론에 나서야만 했습니다. 그에 관한 보고에서 불안해하는 야사부로의 마음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대성인은 그러한 소극적인 일념을 타파하고자 이번 법론이야말로 승리와 행복의 인생을 여는 운명을 건 싸움이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이름을 높인다는 것은 단순히 명성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심의 위대함을 자신의 모습을 통해 만천하에 알리는 것입니다. 승리의 실증을 빛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제의 영관이자 스승의 위대함을 선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어째서’ ‘왜’라는 생각지도 못한 사태와 마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지용보살(地涌菩薩)로서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용약환희하며 투쟁해 사제개가의 역사를 승리로 장식하지 않겠습니까.

 

 

‘한 걸음 더’라는 노력과 도전을

 

[어문]

처음부터 끝까지 더욱더 신심을 해 나가시라.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되리라. 비유컨대 가마쿠라에서 교토까지는 십이일의 도정(道程)이니라. 그런데 십일일 남짓 걸어가서 이제 일일(一日)을 남겨두고 걸음을 멈춘다면 어떻게 수도의 달을 바라볼 수 있겠느뇨.

<니이케어서>, 어서 1440쪽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더욱더’ 신심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마쿠라에서 교토까지는 12일의 여정인데 11일 남짓 걸어서 앞으로 하루가 남았을 때 걸음을 멈춰버리면 어떻게 도읍의 달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고지가 바로 코앞이었다.

그때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신심을 불태워 일사천리로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승리의 비결’은 많을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에 승리를 거머쥐는 사람은 약한 자신의 마음을 이겨낸 사람입니다.

이 어서는 1280년, 니이케 사에몬노조에게 보낸 편지로, ‘더욱더’ 신심에 힘써 끝까지 관철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이나 승리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역시 무리다’ ‘불가능하다’고 약한 마음이 올라와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지어다”(어서 892쪽) 하고 말씀하신 대로 흔들리는 한때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걸음을 멈추면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포기하는 순간 패배의 인(因)이 생명에 새겨지는 법입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도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인에게 이야기해도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대화하면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열어 우리편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걸음 더’라는 노력과 도전이 승리를 가져옵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꿋꿋하게 기원을 관철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칼럼

[법화경의 병법]

세상에는 경영이나 영업을 비롯해 다이어트와 입시까지 현대판 ‘병법’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론이 넘쳐납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병법 검형(劍形)의 대사(大事)도 이 묘법(妙法)으로부터 나왔느니라”(어서 1193쪽) 하고 모든 전술은 묘법에 바탕을 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전문적인 방법이나 이른바 ‘필승전략’같은 것도 있겠지만 그것도 묘법이 설하는 장군학의 일부를 이야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법의 진수는 결국 인간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어떠한 병법보다도 법화경(法華經)의 병법을 쓰실지어다. (중략) 결코 겁이 많아서는 불가능하니라”(어서 1192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원으로 솟아난 용기야말로 진정한 병법입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필사적으로 도전하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느냐가 승패의 갈림길입니다.

승리를 향해 우선 자신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제천도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강성한 신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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