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6. 10:24ㆍ佛法 .SGI
[난(難)을 극복하는 신심]
‘사자왕의 마음’으로 난을 극복하고 불계의 생명을 용현
◇ 난을 극복하여 자타 함께
행복을 쟁취한다,
그 힘을 무한히 해방시키기
위한 철리가 묘법입니다.
그러기 위한 신심입니다.
이 경애혁명, 인간혁명을
달성하려면 불석신명의 실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본문1>
어의구전에 가로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안락하게 행하는 일은 말법에 있어서 지금 니치렌(日蓮) 등의 동류의 수행은 묘호렌게쿄를 수행함에 난이 옴을 가지고 안락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어의구전, 어서 750쪽 1~2행)
<본문2>
법화종의 본의는 일념삼천(一念三千), 성악성선(性惡性善), 묘각(妙覺)의 위(位)에 역시 갖추어졌느니라. 원품(元品)의 법성(法性)은 범천(梵天), 제석(帝釋) 등으로 나타나고, 원품의 무명(無明)은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으로 나타났으니 (치병대소권실위목, 어서 997쪽 7~8행)
<본문3>
부처가 되는 길은 반드시 신명을 버릴 만큼의 일이 있어야만이 부처가 되는 것이라고 추측하였는데, 이미 경문과 같이 악구(惡口), 매리(罵리l), 도장(刀杖), 와력(瓦礫), 삭삭견빈출(數數見出)이라고 설해져서 이러한 일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법화경을 읽는 것이라고, 더욱더 신심도 일어나고 후생도 믿음직하니라. (사도어감죄초, 어서 891쪽 2~4행)
‘일가화락’을 인류 전체로 넓혀 생각해보면 ‘인류화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세계광포’는 나와 내 가정을 출발점으로 하여 존경과 격려로 가득한 ‘화락’의 세계를 지구적인 규모로 확대하는 운동이다.
반면 세계는 지금 ‘화락’과는 정반대인 ‘분단’과 ‘불신’이라는 어둠으로 뒤덮여 있다. SGI, 특히 부인부는 그 어둠을 밝히는 ‘인류의 희망인 태양’이다.
난을 극복하는 신심이 신앙의 목적
오늘 교학강의의 주제는 ‘창가학회의 영원한 5지침’ 중 ‘난을 극복하는 신심’이다. 먼저 5지침을 확인하겠다.
① 일가화락의 신심
② 행복을 획득하는 신심
③ 난을 극복하는 신심
④ 건강장수의 신심
⑤ 절대승리의 신심
‘일가화락의 신심’ ‘행복을 획득하는 신심’ ‘난을 극복하는 신심’인 이 세가지 지침은 1957년 75만세대 원업을 달성한 직후에 도다(戶田) 선생님이 발표하셨다.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이 지침에는 간결한 표현 속에 ‘신앙의 목적’은 무엇이고, ‘신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 본질이 빠짐없이 나타나 있다”(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형제초>) 하고 말씀하셨다.
21세기에 들어와 2003년 이케다 선생님은 ‘건강장수의 신심’과 ‘절대승리의 신심’을 새롭게 추가해 ‘영원한 5지침’을 발표하셨다. 그 의의를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도다 선생님과 나의 ‘사자후’라고 할 수 있는 ‘학회의 영원한 5지침’입니다. 이 지침은 전 세계 동지가 단연코 장마에 지지 말고, 광선유포의 삶을 관철해 절대적으로 행복한 경애를 열어 승리하기 바란다는 기원을 담아, 일생성불을 위한 핵심을 밝혔습니다.(중략)
마와 투쟁하지 않는 한, 진정한 ‘화락’도 ‘행복’도 ‘건강장수’도 ‘절대승리’도 있을 수 없습니다.”(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형제초>, 취의)
장마에 절대로 지지 않는다. 즉 ‘난을 극복하는 신심’이 바로 신앙의 목적인 ‘화락’과 ‘행복’ 그리고 ‘건강장수’ ‘절대승리’를 성취하기 위한 핵심이라는 점을 가르치셨다. 이것은 인생에 반드시 ‘난’이 있다는 점을 전제로 말씀하신 지도다.
‘난’이 없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난’과 투쟁하는 일념 속에 절대적 행복경애가 열린다. 이 니치렌불법의 행복관은 <본문1>에 씌어 있다.
이케다 선생님은 “신심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때부터 난에 맞서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신심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때부터 난에 맞선다’는 자세는 비근한 예지만, 야구로 치면 타자가 야구방망이를 계속 휘두르기만 하고 언제까지나 타석에 들어서지 않는 것과 같다.
선생님은 “난에 맞서는 가운데 생명이 연마되고, 다이아몬드와 같은 신심이 단련된다”고 말씀하셨다.
현실을 떠나서 신심은 없다. 마음을 정하고 가정도, 조직도, 일도 눈앞에 놓인 모든 과제에 도전해 승리하자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원동력이 ‘난을 극복하는 신심’ 구체적으로는 ‘난을 극복하는 기원’이자 ‘난을 극복하는 창제’라고 가르치셨다.
이론이나 말로 타파할 정도로 마의 힘은 어중간하지 않다. 더구나 광선유포라는 만인성불의 길을 여는 미문의 대투쟁에서 다투는 장마는 막강하다.
제육천마왕은 원품의 무명의 작용
이케다 선생님은 난에는 개인의 숙명과 싸운다는 차원과 ‘삼류강적’에게 박해를 받는다는 법난의 차원이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느 쪽이든 ‘난’은 결코 별개가 아닌 신앙을 파괴하려는 ‘삼장사마’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공통되며 그 뿌리는 이어져 있다.
그리고 이케다 선생님은 ‘삼장사마’ 중에서 가장 강력한 천자마 즉 ‘제육천마왕’의 본질을 언급하셨다.
그 포인트를 요약하면,
① “‘신심을 교란하고, 단결을 무너뜨린다.’ 이것이 바로 제육천마왕이 노리는 바”라는 점이다.
② “제육천마왕이라 해도 그 본질은 ‘생명에 잠재하는 원품의 무명이 마의 작용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점이다.
③ “자신의 경애를 넓히려 하기 때문에 그것을 막으려는 힘이 작용한다” “인간혁명의 길을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신심에 대한 불신과 의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마의 본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대성인은 이 ‘제육천마왕’이 나타나는 여러 모습을 어서 여러 곳에서 언급하셨다. 예를 들어 <형제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① 아내와 자식, 부모와 주군 등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을 움직여 신심을 버리게 하려고 한다. 아내뿐 아니라 남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② 탐진치의 술을 마시게 한다.─번뇌를 유발하여 신심을 버리게 하려고 한다. 더욱이 <형제초>에는 ‘제육천마왕’은 가장 악질로 간파하기 어려운 ‘참성증상만’으로 나타난다고 씌어 있다. 닛켄종에 강하게 나타나는 마성이 바로 이것이다.
다시 말해 ③ 세간에서 성인 또는 지자라고 우러러보는 사람의 몸에 들어가 법화경과 ‘비슷한’ 그럴싸한 가르침을 설해 사람들을 법화경에서 멀어지게 한다.
④ 사람들은 그들이 세간에서 존경을 받기 때문에 그 가르침도 존귀하다고 믿어 법화경 행자를 비방하고 박해하기 시작한다.
난을 대하는 자세를 크게 전환한다는 점에서 이케다 선생님은 ‘난을 극복하는 신심’에 관한 강의에서 이렇게 가르쳐주셨다.
“도다 선생님은 ‘대성인 불법은 역경에 처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종교다. 고난에 처한 사람일수록 그것을 극복했을 때 굉장한 힘이 나온다.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불행한 사람들의 편이 될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용의 사명을 자각하면 위대한 힘이 나옵니다. 난은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 원해서 받은 난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면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난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왜 하필 내가’라는 한탄에서 ‘그렇기 때문에 내가’라는 긍지로 난을 대하는 자세를 크게 전환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법련’ 2016년 5월호 <창가학회의 영원한 5지침>)
‘마를 타파한다’는 점에 관해 다시 한번 한결 깊이 배워보겠다. ‘제육천마왕’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제육천마왕’이란 실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저마다의 생명속에 잠재하는 ‘원품의 무명’에서 기인하는, 근원적인 악의 ‘작용’을 말한다.
<본문2>에는 모든 사람의 생명에 본디 갖춘 ‘성선’ 즉 ‘원품의 법성’과 ‘성악’ 즉 ‘원품의 무명’에 관해 씌어 있다. 선의 생명을 발동시키는 연인 어본존을 믿고 제목을 부르면 ‘원품의 법성’이 작용을 일으켜 제천선신의 가호의 작용이 나타난다, 반대로 악연으로 ‘원품의 무명’이 발동되면 신심을 방해하는 제육천마왕의 작용이 나타난다, 이렇게 배견할 수 있는 어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일념대로 우리의 생명에 ‘무명’도 나타날 수 있고 ‘법성’도 나타날 수 있으며 어느 작용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밝히셨다.
대난 속에서 부처의 생명을 나타낸다
불법에서는 선과 악을 고정적인 실체로서 또 단순한 대립관계로서 이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불법에서는 ‘생명은 본디 선과 악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마를 타파하는 것은 ‘이 사람은 악인’이고 ‘저 사람은 선인’이라고 사람을 분별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권선징악’의 투쟁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 본질적으로는 ‘마를 타파한다’는 것은 자기자신의 ‘기심(己心)의 마’를 타파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케다 선생님은 ‘난을 극복하는 신심’ 강의에서 대성인이 ‘다쓰노구치법난’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난 뒤 사도유배 직전에 쓰신 <사도어감죄초>의 <본문3>을 인용하셨다. 생각해보면 대성인 자신은 이 모든 것을 겪으셨다. 그래서 이 어문에서 대성인은 자신의 체험과 실천 그 자체를 말하고 온갖 대난을 이겨내신 사자왕의 크나큰 생명경애를 밝히셨다.
또 “법화경을 읽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현실에서 법화경을 신독하고 민중구제를 위해 싸우는 사람은 대성인 자신이 유일하다, 진정한 ‘법화경 행자’ ‘정사’라는 대선언으로 배견할 수 있다.
그리고 “더욱더 신심도 일어나고 후생도 믿음직하니라” 하고 말씀하셨다. 불퇴의 신심을 관철하면 반드시 대성인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행복경애를 쟁취할 수 있다고 대확신을 담아 문하에게 하신 말씀으로 배견된다.
인생과 광선유포의 도상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난이 덮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반대로 상상도 하지 못한 행복경애가 열릴 가장 큰 기회라고 이 <본문3>에서 가르쳐주셨다. 여기서 이케다 선생님의 강의를 보겠다.
“대난 속에서 비로소 부처의 생명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작은 껍질을 부수고 내면의 묘법과 일체인 대아의 생명이 됩니다. 따라서 제목을 끝까지 부르고 ‘사자왕의 마음’을 끄집어내어 난과 격투를 벌여야 합니다.
인간은 운명을 한탄하고 숙명에 농락당하며 괴로워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난을 극복하여 자타 함께 행복을 쟁취한다, 그 힘을 무한히 해방시키기 위한 철리가 묘법입니다. 그러기 위한 신심입니다. 이 경애혁명, 인간혁명을 달성하려면 불석신명의 실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개목초>에도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는 제난이 있을지라도 의심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리라’(어서 234쪽) 하고 씌어 있습니다. 어떠한 난이 닥쳐와도 의심하지 않고 신심을 감연히 관철하면 반드시 불계의 생명을 용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때’에 스승의 말씀을 잊지 않고, 한번 정한 사제의 길을 동지와 함께 단호히 끝까지 나아가는 신심이 중요합니다.”(‘법련’ 2016년 5월호 <창가학회의 영원한 5지침>)
이케다 선생님은 “‘중요한 때’에 스승의 말씀을 잊지 않고, 한번 정한 사제의 길을 동지와 함께 단호히 끝까지 나아가는 신심이 중요합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한사람 한사람이 모든 난을 당당하게 이겨내고 대불법을 말하고 넓혀서 행복승리의 인생을 걸어가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린다.
-화광신문 제1261호, (2018.6.8)
'佛法 .SGI'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성(惰性)이란? (0) | 2019.01.20 |
---|---|
본인묘(本因妙) (0) | 2019.01.13 |
선배를 원질하고 있습니다. (0) | 2018.12.24 |
신심을 열심히 했는데도 공덕이 없는건 왜 그런가요? (0) | 2018.12.24 |
절복(折伏)에 대하여 (0) | 2018.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