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14. 21:42ㆍ佛法 .SGI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文永十年五月 五十二歲御作
與最蓮房日淨
물어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의 제일(第一) 방편품(方便品)에 가로데
「제법실상(諸法實相) 내지(乃至)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운운(云云).
이 경문(經文)의 의(意)는 어떠하오. 답(答)하여 가로되
하지옥(下地獄)으로부터 상불계(上佛界)까지의 십계(十界)의 의정(依正)의 당체(當體)가
모두 일법(一法)도 남김없이 妙法蓮華經의 상(相)이라고 하는 경문(經文)이니라.
의보(依報)가 있으면 반드시 정보(正報)가 주(住)하느니라.
석(釋)에 가로되「의보(依報)와 정보(正報)가 항상 묘경(妙經)을 말함이라」등(等) 운운(云云).
또 가로되「실상(實相)은 반드시 제법(諸法)이요, 제법(諸法)은 반드시 십여(十如)요,
십여(十如)는 반드시 십계(十界)요, 십계(十界)는 반드시 신토(身土)라」.
또 가로되「아비(阿鼻)의 의정(依正)은 전부(全部) 극성(極聖)의 자심(自心)에 처(處)하고
비로(毘盧)의 신토(身土)는 범하(凡下)의 일념(一念)을 넘지 않느니라」운운(云云).
이들의 석의(釋義)는 분명(分明)하니 어느 누가 의심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법계(法界)의 상(相)이 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와 다름이 없느니라.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라 함은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로 부터
용(用)의 이익(利益)을 베푸실 때·사상(事相)으로
이불(二佛)로 나타나 보탑(寶塔) 속에서 서로 수긍(首肯)하시었다.
이와 같은 법문(法門)은 니치렌(日蓮)을 제외(除外)하고는 말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느니라.
천태(天台)·묘락(妙樂)·전교(傳敎) 등(等)은 마음에는 알고 계셨으나
말로써 나타내시지는 않고 가슴속에 간직해 두셨느니라.
그것도 도리(道理)였으니 부촉(付屬)이 없는 고(故)로·때가 아직 이르지 않은 고(故)로
·부처의 구원(久遠)의 제자(弟子)가 아닌 고(故)로. 지용(地涌)의 보살(菩薩) 중(中)의 상수창도
(上首唱導)인 상행(上行)·무변행(無邊行) 등(等)의 보살(菩薩) 이외(以外)는
말법(末法)의 초(初)의 오백년(五百年)에 출현(出現)해서 법체(法體)인 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실 뿐만 아니라, 보탑(寶塔) 중(中)의 이불병좌(二佛?座)의 의식(儀式)을 만들어
나타낼 사람이 없느니라. 이는 즉(卽) 본문(本門) 수량품(壽量品)의 사(事)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문(法門)인 까닭이니라. 그러니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라 해도
용(用)의 부처이며 妙法蓮華經야말로 본불(本佛)이시니라. 경(經)에 가로되
「여래비밀신통지력(如來秘密神通之力)」이 이것이로다.
여래비밀(如來秘密)은 체(體)의 삼신(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이고
신통지력(神通之力)은 용(用)의 삼신(三身)으로서 적불(迹佛)인 것이니라.
범부(凡夫)는 체(體)의 삼신(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인 것이며
부처는 용(用)의 삼신(三身)으로서 적불(迹佛)이니라.
그러므로 석가불(釋迦佛)은 우리들 중생(衆生)을 위해서는
주사친(主師親)의 삼덕(三德)을 갖추셨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런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처에게 삼덕(三德)을 갖게 해 드린 것은 범부(凡夫)이니라,
그 까닭은 여래(如來)라 함은 천태(天台)의 석(釋)에
「여래(如來)라 함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제불(諸佛)·이불(二佛)·삼불(三佛)
·본불(本佛)·적불(迹佛)의 통호(通號)이니라」고 판정(判定)하시었다.
이 석(釋)에 본불(本佛)이라 함은 범부(凡夫)이고 적불(迹佛)이라 함은 부처이니라.
그러나 미오(迷悟)의 부동(不同)으로서 생불(生佛)이 다름에 의(依)하여
구체(俱體)·구용(俱用)의 삼신(三身)이라고 함을 중생(衆生)은 알지 못하느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제법(諸法)과 십계(十界)를 들어서 실상(實相)이라고 설(說)하시었소.
실상(實相)이라고 함은 妙法蓮華經의 이명(異名)이요,
제법(諸法)이라 함은 妙法蓮華經를 말하는 것이니라.
지옥(地獄)은 지옥(地獄)의 상(相)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실(實)의 상(相)이요,
아귀(餓鬼)로 변(變)하면 지옥(地獄)의 실(實)의 상(相)은 아니로다.
부처는 부처의 상(相) 범부(凡夫)는 범부(凡夫)의 상(相), 만법(萬法)의 당체(當體)의 상(相)이
妙法蓮華經의 당체(當體)라고 하는 것을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하느니라.
천태(天台) 가로되「실상(實相)의 심리(深理) 본유(本有)의 妙法蓮華經」라고 운운(云云).
이 석(釋)의 의(意)는 실상(實相)의 명언(名言)은 적문(迹門)이 주체(主體)가 되고
본유(本有)의 妙法蓮華經라 함은 본문상(本門上)의 법문(法門)이니라.
이 석(釋)을 깊이 깊이 심중(心中)에 생각하도록 하시라.
니치렌(日蓮)이 말법(末法)에 태어나서 상행보살(上行菩薩)이 홍통(弘通)하시게 될
묘법(妙法)을 앞서서 대략(大略) 홍통(弘通)하고 만들어 나타내시게 될
본문(本門) 수량품(壽量品)의 고불(古佛)인 석가불(釋迦佛)과 적문(迹門) 보탑품시(寶塔品時)에
용출(涌出)하신 다보불(多寶佛)과, 용출품시(涌出品時)에 출현(出現)하신 지용(地涌)의 보살(菩薩) 등(等)을 먼저 만들어 나타내 드린다는 것은 나의 분수로는 중대(重大)한 일이로다.
니치렌(日蓮)을 미워하지만 내증(內證)에는 어찌 하여 미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니치렌(日蓮)을 이 섬까지 원류(遠流)한 죄(罪)는
무량겁(無量劫)을 지나도 소멸(消滅)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노라.
비유품(譬喩品)에 가로되「만약 그 죄(罪)를 설(說)한다면 겁(劫)을 다해도 진(盡)하지 못함이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또한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되심은 그 공덕(功德)을 부처의 지혜(智慧)로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경(經)에 가로되「부처의 지혜로써 주량(籌量)할지라도 다소(多少)의 그의 변(邊)을 알지 못함이라」고 하였느니라.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선구(先驅)는 니치렌(日蓮) 일인(一人)이로다.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도 들어가리라. 만약 니치렌(日蓮)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 든다면 어찌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지용(地涌)의 유류(流類)가 아니리오. 경(經)에 가로되「능(能)히 은밀하게 한 사람을 위하여 법화경(法華經)의 내지 일구(一句)를
설(說)한다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如來)의 사자(使者)요, 여래(如來)가 보낸 바로서 여래(如來)의 사(事)를 행(行)함이니라」고, 어찌 다른 사람의 일을 설(說)하셨겠느뇨.
그러므로 너무나 남이 나를 칭찬할 때는 어떻게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느니라.
이는 칭찬하는 바의 말에서 일어나느니라. 말법(末法)에 태어나서 법화경(法華經)을 홍통(弘通)
하는 행자(行者)는 삼류(三類)의 적인(敵人)이 있어 유죄(流罪)와 사죄(死罪)에 이르리라.
그러할지라도 참고 견디어 홍통(弘通)하는 자(者)를 옷을 가지고 석가불(釋迦佛)이 덮어 주실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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