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3. 11:02ㆍ佛法 .SGI
사업부도로 빚더미! 달동네 월세방서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어
가족이 한마음으로 창제…음식점 입소문 타며 생활환경 좋아져
결혼 29주년 기념일에 기쁨의 눈물을 흘린 김정화 씨.
작년 11월 어느 날, 김 씨의 작은딸과 남편이 차례로 지부총회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당당하게 말하는 자리.
“묵묵히 제 옆을 지켜준 아내와 두 딸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끝맺는 남편. 험하고 거친 삶을 숨가쁘게 지나왔지만 끝내 화목한 가정을 만든 이야기는 울림이 컸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정화(왼쪽 둘째) 씨는 두 딸과 남편에게 태양이었다. 그 태양은 오늘도 변함없이 포근하게 가족을 감싸 안기 위해 스스로 불타오른다.
그 순간 큰딸 지혜 씨는 김 씨의 손을 꼭 쥐며 “고생했어 엄마. 아빠 진짜 많이 바뀌었지? 결혼기념일 축하해요”라고 속삭였다.
딸과 남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김 씨의 뇌리에 ‘그때 포기했다면 이런 날도 없었겠지-’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의 인생에서 악몽과도 같은 ‘그때’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맥없이 주저앉으려는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신심(信心)이었다.
위기는 남편의 사업부도와 함께 찾아왔다.
남편 신용우 씨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낯선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공사를 수주할 때마다 거액의 돈이 생기자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과 유흥에 빠졌다. 그러나 IMF라는 시대의 거센 파도를 비껴가지 못하고 많은 빚만 남긴 채 사업을 접었다. 이윽고 벌떼처럼 달라붙는 채권자들. 그들은 하루가 멀다고 남편이 없는 집에 쳐들어와 온갖 험한 말을 뱉고 사라졌다. ‘돈 내놔!’라고 고함치며 어린 딸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눈이 돌아갑니다”라며 아직도 그날의 분함을 잊지 못한 듯 김 씨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채권자를 피해 달아난 남편은 연락도 없었고 남편의 술값을 받으러 오는 사람과도 싸워야 했다.
가정을 내팽개치고 떠도는 남편 때문에 김 씨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집도 경매에 붙여져 언제 새로운 주인이 나타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 수도와 전기가 모두 끊겨 촛불에 의지해 어두운 밤을 밝혔다.
김 씨는 자신의 처지를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 창문을 암막으로 가렸다. 어렵게 구한 봉지 쌀과 라면으로 두 딸의 굶주린 배를 달랬다. 밤에 몰래 아파트 단지 재활용 수거함을 뒤적거리며 딸들에게 입힐 만한 옷가지를 찾아 헤맸다. 겨울이면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견디기 위해 목화솜 이불을 몇 겹으로 깔고 그 위에 아이들을 재웠다. 그 이불은 결혼할 때 친정 엄마가 김 씨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염원하며 마련해 준 것. 그러나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김 씨는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생각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죽지마! 같이 살자”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 품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초등학생 큰딸.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설 만큼 모질지 못했던 김 씨는 다시 어린 딸들을 끌어안을 수 밖에 없었다.
1998년 어느 날, 우연히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믿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라며 기억을 더듬던 김 씨는 깜짝 놀랐다. 중학교 때 이모 집에 가면 늘 들었던 바로 그 소리였다. 곧바로 이모에게 전화를 했고 학회원과 연결이 되어 입회했다.
김 씨는 순수하게 창제에 매달렸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남들처럼 화목한 가정을 꾸리길 원했다. 어린 두 딸도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모으고 엄마와 함께 창제를 했다. 그러자 채권자를 피해 집을 나가 연락도 닿지 않던 남편이 돌아왔다.
집안 대대로 기독교를 믿어온 남편은 아내와 딸들이 하는 창제 소리가 듣기 싫어 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반대만 하기에는 눈앞의 현실이 너무나 암담했고 가족의 끈질긴 신심 권유를 냉정하게 뿌리칠 수 없어 함께 창제를 시작했다.
가족이 한마음으로 행복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자 먹구름 사이로 한줄기 빛이 내려앉듯 희망이 보였다. 이사 비용조차 없는 상황에서 월세방을 얻어 이사할 수 있는 공덕을 받았다.
새롭게 터전을 옮긴 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거친 세파에 떠밀려 흘러드는, 소위 ‘달동네’의 다세대 주택. 밤낮으로 술에 취한 사람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고 서로 싸우는 소리, 비명소리, 119 응급출동 차량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 등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곳.
용기와 희망을 주고받는 부인부들.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입담이 걸쭉한 김정화(오른쪽 셋째) 씨 덕분에 웃음꽃이 만발한다.
“신심은 두려움을 날려버리고 용기와 희망을 저에게 안겨줬어요.”
김 씨는 예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가난한 환경이었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남의 눈을 의식하며 쪼그라들었던 몸과 마음은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비록 초라한 월세방이었지만 어본존(御本尊)을 모시고 소 단위 창제회와 학회 모임을 열었다. 그리고 막장 같은 인생의 언덕을 힘겹게 오르며 지칠 대로 지친 주변 사람들에게 신심을 알려갔다.
그러자 남편을 향한 서릿발 같은 증오심도 어느새 사라졌다. 자신이 따뜻하게 품고 가야 할 또 하나의 사랑스런 가족으로 보였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바꾸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요”라고 말하는 김 씨.
신심으로 일군 그의 마음 밭에 행복의 씨앗이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뿌리는 가난이라는 바위마저 뚫어버리고 세차게 뻗어 갔다.
김 씨의 가정에 따뜻한 햇살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김 씨의 두 딸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구김살 하나 없이 밝게 성장했다. 대학을 보낼 형편이 아니었지만 큰딸 지혜 씨는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단 한 명을 뽑는 공무원 채용에서 수십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합격해 지금까지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학회의 인재로 성장하고 있다.
대학교 4학년이 된 둘째 딸 지영 씨도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부모님에게 기쁨을 안겨줬다. 특히 지영 씨는 아빠를 각별히 챙기고 애교도 많아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로 자리를 잡았단다.
“월세집에 살면서도 ‘아빠 최고’라며 치켜세워주는 착하고 예쁜 딸들의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라고 말하는 신용우 씨. 그때부터 시작한 택시운전. 열악한 근무환경에 박봉이지만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몇 해 전 시작한 김정화 씨의 음식점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 자리가 없어 손님을 못 받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가난의 굴레를 순식간에 벗어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드디어 지난해 여름에 그토록 가족들이 원하던 깨끗하고 넓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도 했다.
“어떠한 어려움도 강한 신심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라는 이케다 SGI 회장의 가르침을 실천해 온 김 씨 가족. 각자 걸어온 길은 다를지라도 목적은 하나였기에 지금의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냈다.
“두 딸이 아빠만 챙길 때면 제가 가끔은 외롭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김 씨.
그의 말이 ‘난 참 행복합니다’라는 소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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