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해설

2009. 4. 14. 10:41佛法 .SGI

 

생명의 변혁 - 사람은 모두 ‘승리의 드라마’의 주인공

 

[어문]

묘(妙)란 소생의 의(義)이고 소생이라 함은 되살아난다는 의이니라.  (어서 947쪽)


 

[통해]

묘란 소생의 의미다. 소생이란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포인트]

 

묘법에는 자기 자신에게 갖춰진 ‘불계의 생명’을 용현시키는 힘이 있다. 이 실천을 관철해온 것이 창가학회의 역사다.

 

[지표]

이 어서에는 문영 3년(1266년) 1월 6일, 니치렌 대성인이 45세 때 고향인 아와(현재 지바현 남부)의 세이초사에서 쓰셨다. 우리들이 매일 부르는 제목에 포함되어 있는‘묘’의 일자. 이 ‘묘’의 의의를 명쾌하게 말씀하신 일절이다.

‘묘’란 ‘묘법’을 말하며 창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묘법의 실천에 얼마나 절대적인 공덕이 있는가를 거듭해서 말씀하시고 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이 아닌, 전 민중을 동등하게 구제하는 본존님의 광대한 힘을 밝히시고 있다.

그 증거로서 들고 있는 것이 일천제(정법을 비방하고 방법을 고치지 않는 자)와 이승(십계론에 설해진 성문, 연각), 여인의 성불이다.

대성인이 쓰신 ‘소생’이라는 한마디는 결코 공상이나 우화가 아니다. 엄연한 생명의 진실이다.

대성인은 ‘묘’의 의미에 대해  “묘(妙)라고 하는 것은 개(開)라고 하는 것이며”(어서 943쪽)라고도 말씀하시고 있다.

인생에 괴로움은 으레 따르기 마련이다. 좌절도 있다. 숙명의 폭풍우에 농락당하여 생기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행복의 궤도에 올리는 ‘원인’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 속에 있다. 그리고 묘법의 오자(五子)야말로 자신의 존귀한 불계의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열어가는 열쇠인  것이다.

이 열쇠를 꼭 쥐고 삼대 회장과 함께 걸어온 것이 학회의 역사다. 그야말로 ‘인생의 승리의 드라마’ ‘재생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무수한 체험담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긍지 높은 ‘민중서사시’의 후계자이다. 어떤 과제도 극복할 수 있다! 대성장의 청춘을 살아갈 수 있다! 이런 확신으로 전진하지 않겠는가!

 

 

행학의 이도 -용기의 한 걸음이 신심을 깊게 한다

[어문]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 행학은 신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 )라도설할지니라.  (어서 1361쪽)


[통해]

행학의 이도에 힘쓰세요. 행학이 끊어지고 말면 불법은 없다. 자신도 행하고 남에게도 가르치고 권하세요. 행학은 신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힘이 있다면 일문일구라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세요.


[포인트]

모든 ‘행동’‘교학’은 ‘신심’이 출발점이다. 그리고 ‘신심’은 ‘행학’‘교학’을 통해서 깊어진다.


[지표]

 

‘제법실상초’는 문영 10년(1273년) 5월 17일, 니치렌 대성인이 52세 때 사도의 이치노사와에서 쓰셨다.

사이렌보가 법화경 방편품의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의문에 대해 질문한 것에 대한 답서다.

‘제법실상’이란 ‘제법’ 즉 ‘삼라만상’이 모두 ‘실상’ 즉 ‘묘호렌게쿄’의 당체라고 설하는 법화경의 가장 중요한 법리의 하나다.

그리고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이 묘법을 홍통하는 요체로서 ‘행학의 이도’에 힘쓰는 자세를 가르치시고 있다.

대성인 불법을 실천해가는 기본은 ‘신⦁행⦁학’이다.

이 가운데 ‘행’은 자신이 ‘근행⦁창제’에 힘쓸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이 불법을 권하는, ‘홍교’에 도전하는 자타 함께 행복을 지향하는 실천이다.

‘학’이란 대성인이 써서 남기신 어서를 배독하며 불법사상을 공부하는 것이다.

이 ‘행’과 ‘학’은 ‘신’ 즉 ‘어본존을 믿는’다는 일점이 없으면 심화될 수 없다.

한편 그 ‘신’도 ‘행’과‘학’이 없으면 관념이나 맹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행동’으로서의 ‘행학의 이도’가 중요하다.

대성인은 비록 한 마디, 한 구절이라도 불법의 위대함을 말해나가라고 말씀하신다.

자칫 “확신이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학회활동은 본존님을 믿고 도전하는 용기 있는 ‘행동’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감명받은 불법의 일단을 솔직하게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용기의 한 걸음이 바로 ‘신’을 깊이 하는 비결이라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목의 힘   ‘창제’의 사람, ‘지속’의 사람이 강하다

[어문]

깊이 신심을 일으켜 일야조모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 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어서 384쪽)


[통해]

깊이 신심을 일으켜 아침저녁으로 게으름 없이 닦아나가세요. 그러면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오로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것, 이것이 닦는다는 것이다.


[포인트]

‘창제’의 실천이 바로 자신의 생명을 닦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리고 신심의 ‘지속’이 인생의 승리를 정한다.


[지표]

 

이 어서는 건장 7년(1255년) 무렵에 집필하신 것으로 도키조닌에게 주셨다고 전해오고 있다.

묘법을 봉창하는 것이 일생성불의 지름길이며 법화경 이외의 경전은 법화경에 비유하면 ‘추법(불완전한 법)’이다. 오로지 제목을 부르는 것이 일생성불을 결정한다고 가르치시고 있다.

이 어서에서 니치렌 대성인은 갈피를 못 잡는 마음의 상태를‘암경(흐려진 거울)’에 비유하시고 있다. 흐려진 거울을 닦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닦아서 빛내는 것이 불도 수행이다. 문제는 그 ‘닦는 방법’이다.

이 어문에서는 그 방법이 명쾌하게 설해져 있다. 즉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부르는 ‘창제행’이야말로 일생성불을 위한 생명을 연마하는 지름길이라고 단언하시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깊이 신심을 일으켜’라고 있듯이, 강성한 신심을 ‘일으키는’것이다. 약한 자신의 마음과 싸우는 ‘용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본존님을 향해 근행, 창제를 실천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우인에게 홍교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또 한 가지는 ‘일야조모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으지어다’라는 지남대로 ‘지속’이 중요하다.

괴로울 때도 있다. 즐거울 때도 있다. ‘삼장사마’와의 투쟁에 승리하여 조석 근행과 창제를 게으름 없이 관철한다. 그 착실한 작업이 자신의 생명을 금강불괴로 단련해간다.

인생승리의 토대는 이 청춘 시절의 신심으로 정해진다. ‘용기의 신심’, 그리고 ‘지속의 신심’으로 사제승리의 대도를 끝까지 걸어갈 것을 맹세했으면 한다.

 

 

사자왕의 마음 부처란 마와 싸우는 사람의 이명

[어문]

악왕이 정법(正法)을 파하는데 사법(邪法)의 승들이 한편이 되어 지자를 살해하려 할 때는 사자왕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 반드시 부처가 되느니라. 예컨대 니치렌과 같다.  (어서 957쪽)


[통해]

악왕이 정법을 파하려고 할 때, 사법의 승 등이 악왕과 한편이 되어 지자를 멸망시키려 할 때는 사자왕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는 반드시 부처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니치렌과 같다.


[포인트]

묘법을 넓히는 사람은 반드시 박해를 받는다. 그 박해를 ‘난’이라고 받아들이고 신심으로 극복하는 사람이야말로 부처의 존재로서 빛난다.


[지표]

 

정치권력자는 정법을 실천하는 지자를 죽이려고 한다. 그때 그들은 종종 종교권력자와 결탁한다.

이것은 동서고금에 공통된 ‘박해의 구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니치렌 대성인은 자신의 몸에 엄습해온 박해의 구도를 실로 박해가 가장 심했던 엄동의 땅, 사도에서 밝히셨다. 그것이 이 <사도어서>(1272년)의 일절이다.

여기서 ‘악왕’은 헤이노사에몬노조 요리쓰나 등 권력자이고 ‘사법의 승’이란 고쿠라쿠사 료칸을 말한다.

‘다쓰노구치 법난’과 ‘사도유죄’가 대성인에게 최대의 법난이었지만 그 이외에도 대성인은 때때로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문하에게도 박해의 손은 뻗쳐졌다. 그러나 대성인은 “모두 정의이기에 박해하는 것이다. 타고 넘어라!” “나처럼 사자왕의 마음으로 맞서는 자가 부처다.”라고 호소하셨다.

니치렌 불법은 이 광란의 현실 속에서 단연코 승리하기 위한 법이다.

권력자와 사악한 승에게 박해 받는 세계에 진정한 행복은 없다. 거대한 마의 존재에 도전하는 속에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의 이명인 ‘부처’의 생명이 빛난다.

창가의 삼대 회장은 이런 대성인의 불굴의 혼을 내 마음으로 하여 실로 ‘니치렌과 같은’ 대투쟁을 관철하셨다.

그러므로 대성인이 밝히신 박해의 구도도 또한 우리는 깊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사제직결의 남자부다. 마를 마라고 간파한 사람이 승리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자왕이 되어 자신의 사면의 땅에서 단연코 승리하기 바란다.

 

* '어서는 벽을 부수는 보검' 지금이야말로 전력으로 배우고 또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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