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수량품 제16 서론

2009. 3. 19. 10:20佛法 .SGI

 

 

 

 

여래수량품 제16 서론

 

법화경은 혼미에 빠진 세계를 진실로 구할 수 있는 유일 무이한 21세기의 철학이고 사상이며 종교입니다.

누가 어떻다가 아닙니다. 사회가 어떻다가 아닙니다. 세계가 어떻다가 아닙니다. 자기자신입니다.

자기자신이 먼저 마음의 진화 즉 인간혁명해야 됩니다. 여기서 인간혁명이란

바로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자각하고 人事와 世事를 위해서 身命을 받쳐 나가는 일입니다.

산다고 하는 것, 그것은 최대의 신비입니다. 최대의 불가사의이고 수수께기이며 낭만입니다.

이 인생을 사는 의미란 무엇인가. 자신의 생명의 본래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우리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려 하는가.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부한 생활을 하고 있어도 아무리 즐겁게 놀며 지내도

이 근원의 의문을 외면하고서는 진실한 행복도 충실감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근원적인 문제에 답한 것이 21세기의 철학인 법화경입니다.

법화경 중에서 如來壽量品(여래수량품)제16입니다.

수량품에 대해서 니치렌 대성인은 "一切經(일체경) 중에 이 壽量品(수량품)이 계시지 않는다면

하늘에 日月(일월)이 없고 나라에 大王(대왕)이 없고 山海(산해)에 玉이 없으며

사람에게 혼이 없는 것과 같도다 (어서1211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량품은 모든 경전의 별들 중에서 가장 빛나는 日月(일월)이고

모든 철학 중의 왕이며 모든 思想(사상)중에서 가장 큰 가치를 지닌 보석이며 불법의 혼입니다.

또 수량품이 없으면 "뿌리 없는 풀" "水源(수원)이 없는 江河(강하)"(어서1211쪽)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경전을 넓게 말한다면 일체의 사상, 철학, 종교의 '뿌리'가 되는

생명의 문제에 완벽한 해답을 제시한 것이 수량품입니다.

이제 이 생명의 드라마, 수량품을 저의 은사로부터 강의 받은 것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수량품에는 무엇이 설해져 있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영원한 생명'이 설해져 있습니다.

壽量(수량)이란 '수명을 헤아린다'란 뜻입니다. 부처의 수명이 무량하다고 밝힌 것이 수량품입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석존이 자기 자신의 생명에 입각하여 영원한 생명을 설했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추상론이 아닙니다. 또 가공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른바 석존 자신의 체험담입니다.

이 체험담의 요지는 이러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내가(석존) 젊은 나이에 出家(출가)해서 수행하여

가야성 근처의 보리수 밑에서 成佛(성불)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나는 사실은 오백진진겁이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오랜 옛날(久遠=구원)에 성불해 있었다.

그 이래 이 사바세계나 다른 무량한 국토에서 무수한 衆生을 교화해 왔다.

이처럼 나의 수명은 무량하고 常主(상주)이며 不滅(불멸)이다'라고.

여기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석존이 입멸하지 않았는가.

부처의수명이 유한하지 않은 가라고. 당연한 의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수량품에서 그 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금세에 비로소 성불하여 입멸해 가는 시성 정각의 석존은 방편의 부처이며

상주 불멸의 久遠失聲(구원실성)의 석존이야말로 진실한 부처라고 수량품에는 설해져 있습니다.

方便(방편)이란 중생을 인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부처의 생명은 진실하게 말하면 영원하지만 중생의 求道心 (구도심)을 높이기 위해

일시 방편으로서 유한한 모습을 나타내어 방편으로서 입멸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량품의 답입니다.

 

◎ 영원한 생명의 대 敍事詩(서사시)

"영원한 생명이라고 해도 부처만의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들 범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지 않은가" 라고. 그러나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가 있을 뿐만이 아니라 구원 실성의 석존이란 궁극적으로 말하면 사실은 우리들 자신. 중생들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여래수량품의 如來(여래)란 一切衆生 (일체줄생)이요"(어서752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부처만의 생명이 아니라 일체 중생의 진실한 생명의 모습입니다.

석존은 스스로 깨달은 영원한 생명을 밝히기 위해 구원 실성의 부처로서의 本地(진실한 경지)를 나타냈습니다.

구원 실성의 부처란 '영원히 계속 중생을 인도해 가는 부처'입니다.

성불한 결과인 부처의 모습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설하는 것이 文上의 법문입니다.

그러나 이 부처는 구극적으로는 우주 근원의 묘법의 작용입니다.

三世(삼세)영원한 묘법이 한 사람의 생명에 연화처럼 꽃 피어, 고뇌의 현실 속에서 청정하고 기품 있으며

자비롭게 향기 만발하고 지혜롭게 빛나는 것이 부처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이 묘법의 작용이 영원합니다.

즉 妙法蓮華經(묘호렌게쿄)이야말로 구원 실성의 부처의 실체이며

석존을 비롯한 모든 부처는 묘법의 작용인 것입니다. 이렇게 인식해 가는 것이 수량품 文低(문저)의 법문입니다.

따라서 니치렌대성인은 "妙法蓮華經(묘호렌게쿄)이야말로 本佛(본불)"(어서1358쪽)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문저의 입장에서 여래수량품의 如來(여래)란 南無妙法蓮華經 如來, 즉 대성인 자신이라고 선언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대성인은 "지금 니치렌(日蓮)등의 同類(동류) 南無妙法蓮華經이라고 奉唱(봉창)하는 자는

수량품의 本主(본주)이니라"(어서753쪽)고 말씀 하셨습니다.

즉 수량품의 주체자는 南無妙法蓮華經을 수지하는 우리들 이기도 하다고 어본불께서 확실히 단언해 주신 것입니다.

 

◎ 妙法(묘법)에 살아가는 사람은 生死(생사)함께 유락

이 영원한 묘법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은 영원한 안온, 영원한 환희, 영원한 유락의 인생입니다.

무한한 대우주를 여행하는 듯한 자유자재의 경애로 행복의 대도를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실로 生도 환희, 死도 환희하는 비법을 설하는 것이 수량품입니다.

법화경은 전 민중을 행복하게 하는 경전입니다.

그 중에서도 수량품에는 석존이 입멸한 후에도 전 인류를 구제할 수 있는 大法(대법)이 설해져 있습니다.

그것이 수량품 문저에 비침되어 있는 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입니다.

수량품에서는 모든 사람의 생명의 본원인 영원한 생명이 설해져 있습니다.

이 수량품을 듣고 얻을 수 있는 功德 (공덕) 이란 무엇인가.

법화경 분별공덕품에는 "佛壽(불수)가 무량하다는 것을 듣고 일체 환희 하느니라" 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알고 모든 사람이 생명 깊숙한 곳에서 '환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환희야말로 어떠한 깊은 고뇌도 날려보내는 묘법의 힘입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 공덕이란 문저의 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 공덕 바로 그것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南無妙法蓮華經는 歡喜中(환희중)의 대환희 이느니라"(어서788쪽)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처럼 남묘호렌게쿄는 만인의 생명을 빛내는 대법입니다.

生死의 고뇌에 잠기는 末法(말법)의 중생을 근저로부터 구제하는 대양약입니다.

남묘호렌게쿄는 '생명의 법'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말법시대의 양상을

"執心(집심)이 더욱 강성해져서 小로서 大를 치고 權(권)으로서 實(실)을 破(파)하여

國土(국토)에는 대체로 謗法(방법)의 자가 充滿(충만)하느니라(어서507쪽)고 말씀하셨습니다.

현대 사회의 정신적 풍조는 낮은 가치관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卑小(비소)한 것을 좋아하며 위대한 것을 싫어합니다.

일시적인 것, 가짜를 좋아하고 진짜를 싫어합니다.

얕은 思想, 얕은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고 깊은 생활 방식을 경멸하는 시대입니다.

그런 본말 전도의 사회 속에서 목적지를 잃고 방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생활 방식이 법화경에 설해져 있습니다.

이제부터 저의 스승이 제자들에게 강의 하셨던 여래 수량품을 설해 나가겠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은 난해해서 이해가 잘 안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