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정안국(立正安國)­ - 민중이 행복한 평화로운 사회 실현

2009. 3. 5. 11:01佛法 .SGI

 

입정안국(立正安國)­ - 민중이 행복한 평화로운 사회 실현


니치렌 대성인은, 세상의 무질서는 인간 내면의 무질서가 반영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서에 “삼독(三毒: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이 그러한 정도까지 만연한 곳에서 어떻게 평화와 안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굶주림은 탐욕의 결과로서 일어나며, 어리석음의 결과로서 역병과 전염병이, 그리고 분노의 결과로서 전쟁이 일어난다”(어서 1064쪽, 통해)라고 나와 있습니다.

대성인은 오직 불법(佛法)만이 사람들의 생명속에 있는 이러한 정신적인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하셨습니다.


대성인의 불법은 입정안국론에서 시작하여 입정안국론으로 끝난다고 하듯이, 입정안국은 대성인 생애 전체를 관철하여 흐르는 사상이고 정신입니다. 광선유포의 목적도 이 입정안국의 이상을 현실 사회에서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대성인은 말법이라는 투쟁의 시대를 전환하여 만인의 불성을 나타내고 민중의 행복과 평화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해 법전을 전개하셨습니다.


대성인은 1253년 4월 28일에 입종선언을 하시고 7년 후인 1260년 7월 16일에 당시 실권을 잡은 막부에 입정안국론을 제출합니다. 이 국주간효(國主諫曉)를 경계로 드디어 시대와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이 입멸(入滅)하시기 약 2주 전인 1282년 9월 25일에도 입정안국론 강의를 하신 기록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니치렌 대성인의 일생은 입정안국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래 입정안국의 이념은 대성인만의 특수한 이념이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입정안국의 이념은 석존의 불교에도 내포되어 있으며 나아가 모든 종교가 지향해야 할 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을 계승하는 사람은 입정안국의 정도(正道)를 걸어야 합니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모두 정법(正法)의 문을 나와 사법(邪法)의 감옥에 깊이 들어가 있다. 어리석게도 한사람 한사람이 악교(惡敎)의 줄에 걸려 영구히 몸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 방법(謗法)의 가르침의 그물에 감겨 있다. 현세에는 사교(邪敎)의 깊은 안개 속을 헤매고 죽은 후에는 아비지옥(阿鼻地獄)의 화염 속에 잠기도다. 어찌 근심하지 않으리오. 어찌 괴롭지 않으리오. 그대는 빨리 잘못된 신앙의 촌심(寸心)을 고쳐서, 속히 실승(實乘)의 일선(一善)에 귀의하시오. 그렇게 하면 즉 삼계(三界)는 모두 불국(佛國)이다. 불국이라면 어찌 쇠미하겠는가. 시방(十方)의 국토는 모두 보토(寶土)다. 보토라면 어찌 파괴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국토가 쇠미하지 않고 파괴되는 일이 없다면 그대의 몸은 안전하고 마음은 평안하게 된다”(어서 32쪽, 통해)


- 여기서는 입정안국의 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차원을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신앙의 촌심’, 즉 인간 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차원입니다. 마음의 차원에서 변혁하지 않으면 입정안국도 없습니다.

방법(謗法)이라는 근본악을 타파하고 신앙의 촌심을 고치면, 지금 살고 있는 이 삼계가 그대로 청정한 불국토이며, 무너지지 않는 보토라는 말씀입니다. 또 믿어야 할 법은 실승의 일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승은 진실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법화경을 말합니다. 그리고 일선은 근본적인 선을 말합니다.


법화경은 만인이 불성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설하고, 만인이 성불하기 위해 행동할 것을 설합니다. 이 부처의 철학과 실천만이 근본선이다. 이 철학을 믿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 마음과 삶이 부처와 똑같으며, 그 사람이 사는 곳은 어느 곳이든지 불국토다.


- 법화경이라는 근본선을 믿고 한사람 한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확립하는 것이 ‘입정’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근본선에 적합한 사회 생활을 정착시켜 실제로 ‘사회의 평화’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사회 전체가 같은 법화경의 신앙으로 통합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사회라는 본래의 모습 속에서 ‘만인이 부처’라는, 법화경에 담긴 평화의 대철학을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인 차원의 입정은 ‘인간존엄’의 철학과 ‘생명존엄’의 이념이 사회를 지탱하고 움직이게 하는 원리로서 확립되는 것입니다.


불법이 사회를 지탱하는 원리로 작용해야 한다는 내용은 어서 속에서 여러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법이 점차로 전도(顚倒)해 버렸기 때문에 세간도 또한 탁란(濁亂)해졌다. 불법은 체(體)와 같고, 세간은 그림자와 같아서 체가 구부러지면 그림자도 비뚤어지느니라”(어서 992쪽)고 말씀하셨습니다.


- 위 어문은 의정불이(依正不二)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어문입니다. 불법은 체(體)이며 근본입니다. 근본인 불법이 혼란하여 방향을 잃으면 세간도 매우 혼란해집니다. 사회를 지탱하는 사상을 확립하지 않으면 세상은 규범을 잃어버립니다. 그 결과 약육 강식의 축생도가 되고, 다툼이 끊이지 않는 수라도가 되며, 불만이 소용돌이치는 아귀도가 됩니다. 결국은 고뇌가 끊이지 않는 무간지옥의 사회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먼저 입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안국이 되는 것이 도리입니다.


- 민중의 안위보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 때문에 주민들이 굶주림에 고통받는 북한의 모습은 축생도, 아귀도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게다가 자연재해 등이 겹치면 무간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북한뿐 아니라 르완다나 소말리아 등, 독재자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는 곳은 예외 없이 민중들이 어려운 생활을 합니다. 과거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봐도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여 그 비참한 생을 마감했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 그것은 결국 만인이 모두 부처라는 인간존엄의 사상이 결여된 데 기인한 것입니다. 반면 인간존엄의 사상이 널리 민중들에게 퍼졌던 때는 문화의 꽃이 피고 민중의 권리도 많이 신장됐습니다. 그리스의 민주주의 발달,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성 부활, 루소 등에서 시작한 근대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발달 등이 그 예입니다.


- 유네스코 헌장은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평화의 시작은 결국 인간의 마음속에서 출발한다는 진리를 꿰뚫은 명문(名文)이라고 생각합니다.


- 학회는 개인적인 차원의 입정을 위해 올바른 신앙을 확립하고, 사회적인 차원의 입정을 위해 인간존엄과 민중을 근본으로 하는 정신을 넓히고 있습니다.


안국(安國)은 민중이 행복하고 안온하게 생활하며 자신의 인간성을 최대로 열어가는 평화로운 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컨대 민중의 안온과 민중의 평화야말로 대성인이 말씀하신 안국의 본질이다.


- 대성인 재세시 다른 불교 종파의 승려들의 주요 역할은 국가 통치자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성인의 초점은 평범한 민중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입정안국론에서 ‘나라 국(國)’자를 쓸 때, 당시에는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왕(王)이 중앙에 쓰인 국()자나 영토를 무장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은 국(國)자를 흔히 사용했는데, 대성인은 이를 사용하지 않고 그 중심에 백성 ‘민(民)’자를 넣은 국()자를 주로 사용하셨습니다.


- 또 대성인은 “인구의 반 이상이 이미 죽임을 당하였다. 그리고 슬퍼하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할 수 없다. 나는 한 순간도 민중의 아픔을 잊을 수가 없다”라고 말씀하시며, 당시 민중들의 비참함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공감하며 입정안국론을 집필하셨습니다.



- 이케다 선생님은 입정안국론에 관한 해설에서 “과거에 ‘안전’은 오직 국가의 안보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국가를 보호하는 동안에 각각의 시민이 생명과 존엄성을 위협당하면, 그것을 어떻게 안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널리 쓰이는 안전의 개념은 국가에 초점을 맞췄던 안전의 개념에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개념으로 지속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대성인은 당시 권력자를 우주대인 묘법의 차원에서 내려다보며, 동시에 고뇌에 허덕이는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 싸우셨습니다.

초대 마키구치 선생님도 일본의 그릇된 국가주의를 내려다보며 당당하게 비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단지 비판만 한 것이 아니라 민중 속으로 들어가 고락을 함께하며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삼엄한 특고경찰의 탄압도 있었지만 전시(戰時) 중에 무려 240회 이상 좌담회를 열었다는 내용이 마키구치 선생님에 대한 기소장에 남아 있습니다.


- 도다 선생님도 1957년 9월 8일, 유명한 ‘원수폭 금지선언’에서 “우리 세계 민중에게는 생존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위협하는 것은 마물(魔物)이고 악마이며 괴물입니다”라고 사자후하며, 국가와 민족 차원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생존의 권리라는 근원적 차원에서 핵무기 보유와 사용을 단죄하셨습니다.

이 선언은 극단적 이데올로기로 치닫는 세계 사상과 이념의 조류에 비치는 한 줄기 서광이었으며, 인류가 나아가야 할 이상을 명확히 제시한 것입니다.

50년 전에 미래를 전망하며 발표한 이 ‘원수폭 금지선언’은 현재 세계 192나라·지역에서 평화 네트워크를 형성한 국제창가학회(SGI)가 펼치는 평화 운동의 원점이 되었고, 이를 계승한 이케다 SGI회장은 전광석화와 같은 행동으로 세계 평화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 이케다 SGI회장은 올해 초 발표한 제언에서도 ‘6자 회담’ 재개와 더불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유엔 대표들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제안했습니다.

군사력 등 ‘하드파워’가 아니라 대화 등의 ‘소프트파워’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하면 아시아의 안정뿐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대량 파괴 무기가 확산되는 것까지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문화’에서 ‘평화의 문화’로 향하려는 각자 ‘마음의 변혁’이 주위 사람들 마음의 변혁을 촉구하고, 그것이 사회로 확대되는 가운데 평화의 파도를 일으키고 국제여론을 강력히 리드한다고 제언하셨습니다.


지금 인류는 폭력과 공포의 세계로 전락할 것인지, 평화와 안온의 세계를 구축할 것인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인류의 오래된 병폐를 극복하고, 지구 규모의 입정안국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 그 자체의 변혁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 “한 사람의 위대한 인간혁명은 전 인류의 숙명을 전환한다”라는 소설 《인간혁명》의 테마처럼, 그 장대한 혁명의 최전선에 우리 학회원이 서 있다. “평화만큼 존귀한 것은 없다. 평화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평화야말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근본의 첫걸음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외치신 이케다 SGI 회장의 사상을 이어 받은 전 세계 SGI 회원들은 각 나라에서 풀뿌리 평화 운동을 펼치며 항구 평화를 향한 징검다리를 놓고 있습니다.


결국 어떠한 평화든 한사람 한사람의 행복 토대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불신(不信)의 벽을 허물고 마음의 경계를 넘은 진실한 대화는 나라와 인종, 종교와 문화,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고 인간과 인간을 맺는 연대를 만들고, 어떠한 압력에도 무너지지 않는 평화를 창출합니다.

우리 모두 대성인의 유지(遺志)를 이어 받은 학회원이라는 긍지를 품고 입정안국의 정신으로, 내가 서 있는 가까운 지역부터 평화를 구축합시다. (끝)



                                                                 - 월간법련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