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여행

2022. 7. 22. 21:23佛法 .SGI

 

법화경 여행

【법화경 여행 [입문편] - 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우주와 생명의 ‘근원법’ 설한 ‘제경의 왕’

 

지금, 시대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호소하고 인류에 희망의 빛을 보내는 법화경이 주목받고 있다.

새롭게 연재하는 <법화경 여행>에서는 법화경의 성립부터 각 품의 내용 그리고 법리 등을 해설하겠다. 이번 입문편에서는 법화경의 본질을 소개한다. 제1회는 ‘본디 법화경이란 무엇인가?’이다.

 

 

본디 법화경이란 무엇인가?

 

만인성불을 위해

법화경이란 본디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까요.

간결하게 대답하면 법화경은 ‘제경의 왕’입니다. 이렇게 설명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요.

먼저 법화경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존은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근원적인 고뇌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을까?’ 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 나셨습니다. 그리고 기심(己心)에 우주와 생명을 관통하는 근원법이 갖춰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깨달은 사람’을 의미하는 붓다(각자, 覺者)라고 불렸습니다.

석존은 만인을 구제하고자 자신이 깨달은 법을 상대에 맞게 자유자재로 설했습니다.

그리고 입멸이 가까워졌을 때 유언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을 섬으로 여기고 자신에게 의지하라. 타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을 섬으로 여기고 법을 의처로 삼아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마라.”

어디까지나 ‘자신’과 ‘법’을 의처로 삼으라는 말을 제자에게 남겼습니다. 제자들은 석존의 가르침을 전승하면서 자신과 법을 탐구하는 가운데 여러 설법을 정리하고 편집해 경전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불전결집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불전 편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깨달음 만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자타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보살의 삶을 탐구한 것이 대승불교입니다.

그 중에서 석존의 지혜와 자비를 근간으로 한 가르침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모든 사람에게 가장 존귀한 불성이 갖추어져 있다는 점을 밝히고 부처의 생명을 개현하는 길을 설한 경전이 대승불교의 정수인 법화경입니다.

 

 

근본의 가르침

 

많은 불교경전이 있지만 차별하지 않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불할 수 있다고 설한 경전이 바로 법화경입니다.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성불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일체중생이 성불하는 길을 연 법화경이야말로 부처가 가장 설하고 싶은 근본의 가르침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법화경 이외 경전도 물론 부처가 설한 가르침입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외전(外典)의 외도(外道), 내전(內典)의 소승(小乘), 권대승(權大乘) 등은 모두 기심의 법을 일부분 일부분 설하였느니라. 그렇지만 법화경과 같이 설하지는 않았다.”(어서 1473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경전은 만인성불을 실현하기 위한 근원법인 묘법(妙法)을 가르치기 위해서 상대의 기근이나 때 등에 맞추어 부분적으로 설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열이나 높고 낮음이라는 견해와 더불어 법화경과의 관계를 부분과 전체의 관계로 봐야 합니다.

다른 경전이라도 법화경을 바탕으로 받아들이면 각각의 가르침을 통일하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법화경을 ‘제경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대성인은 “법화경만이 성불하는 종(宗)이라고 부처가 정하셨느니라.”(어서 544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부처가 모든 경전 중에서 법화경이야말로 제일이라고 분명히 말했다는 점을 밝힌 것입니다.

 

부처의 빛나는 지혜

 

법화경에는 석존이 설한 법화경 외에도 ‘과거의 부처인 일월등명불(日月燈明佛)이나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 등이 설한 법화경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도다(戶田) 선생님은 “같은 법화경이라도 부처와 때 그리고 중생의 기근에 따라 표현이 다르다. 그 극리(極理)는 하나지만 그 시대의 중생에게 내재하는 불연(佛緣)의 천심후박(淺深厚薄)에 따라 여러 차별이 있다. 세간의 일반 사람들 중에 불교를 조금 연구한 사람들은 법화경을 설한 사람은 석존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화경에는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도 대통지승불도 법화경을 설했다고 나와 있고 천태대사도 법화경을 설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각 시대에 부처가 스스로 깨달은 성불의 법을 설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표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모두 법화경입니다.

모든 부처에게 법화경만이 궁극의 보편적인 가르침입니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민중을 구하고자 설한 불법입니다. 여성과 남성에 차별은 없습니다. 출가와 재가의 차이, 인종, 학력 또는 권력, 경제력 등 어떤 사회적 처지도 관계없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불법은 누구를 위해 설했는가’ - 오히려 차별받고 학대받고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가장 행복하게 빛나게 합니다. 그것이 불법의 힘이고, 법화경의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만인성불의 근원법을 설한 경전이 바로 제경의 왕인 법화경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사람을 행복과 승리로 이끄는 부처의 지혜가 찬연히 빛나고 있습니다.

 

 

〖 과연 그렇구나]

 

법화경은 석존이 설한 법을 그대로 전한 경전인지 아닌지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핵심이 되는 석존 직설의 사상이 편찬 당시의 시대적 상황, 사상적 상황에 응해 하나의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석존의 사상을 희구하고, 석존의 사상이 시대에 응하여 출현했습니다. 감응도교(感應道交: 부처와 중생이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사상이란 그런 것입니다. 진실한 사상의 생명력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형태는 새로워졌다고 해도, 시대 상황 속에서는 그 새로운 형태가 더욱 그 사상의 진실을 나타내는 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직설인가? 창작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직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석존의 진의에 가장 적합한 경전이 바로 법화경입니다.

 

 

구마라습

 

부처의 깨달음을 그대로 전한 명번역가

구마라습(344~413년, 350~409년이라는 설도 있다)은 인도 귀족인 아버지 구마라염과 구자국 왕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각지에서 수학해 불교를 배웠다. 그 뒤로 포로가 되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지만 후진(後秦)의 국왕인 요흥(姚興)이 국사로 맞아 장안에서 경전 한역에 힘썼다. 그렇게 한역한 수는 74부 384권이라고 한다.

법화경 한역 중에서도 구마라습의 ‘묘법연화경’이 법리나 문학적으로도 가장 뛰어나 널리 전해졌다.

구마라습은 죽음이 가까워지자 ‘내 번역에 오류가 없다면 내 몸을 태워도 혀는 타지 않고 남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말대로 혀는 타지 않았다고 한다.

대성인은 “나습(羅什) 일인만이 교주석존(敎主釋尊)의 경문에 사견(私見)의 말을 넣지 않은 사람입니다.”(어서 1007쪽) 하고 구마라습의 번역이야말로 부처가 깨달은 진의를 그대로 전했다고 말씀하셨다.

 

 

‘법화경의 지혜’에서

 

무력감을 타파하는 ‘마음의 비보(秘寶)’

 

법화경 이외의 철학은 생명의 법을 ‘일부분 일부분’ 다시 말해 부분관을 설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들은 ‘부분적 진리’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중심으로 하면 생명 전체를 소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왜곡을 낳고 맙니다. 이에 대해 법화경은 그것들을 통일하고, 정확히 자리매김하여 살려가는 근원의 일법(一法)’을 설합니다.

 

법화경은 무력감을 타파하는 우주대의 ‘마음의 비보(秘寶)’를 가르칩니다. 우주의 대생명을 호흡하면서 발랄하게 사는 인생을 가르칩니다. 자기변혁이라는 참된 대모험을 가르칩니다.

법화경에는 모든 사람을 평화로 감싸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찬란한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있습니다. 언제라도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살고, 어디서나 ‘아차토안온(我此土安穩: 나의 이 땅은 안온하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대경애를 열게 합니다.

법화경에는 사악과 맞서 싸우는 정의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지친 사람을 격려하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두려움을 제거하는 용기의 고동이 있습니다. 삼세(三世)를 자유자재로 유희(遊戱)하는 환희의 합창이 있습니다. 자유의 비상(飛翔)이 있습니다.

‘법화경의 지혜’ <상> 서론

 

세이쿄신문 제공(2018.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