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8. 14:18ㆍ佛法 .SGI
불교설화에서 배우는 공양정신
‘신심의 마음’이 담긴 정성어린 공양이 소중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많은 비유와 설화, 고사를 인용해 법문을 말씀하셨다. 특히 공양에 관해 많은 설화를 인용하시며, 문하의 공양을 칭찬하시고 그 공덕의 위대함을 가르치신다. 그 중 대표적인 불교설화 내용과 함께 이케다(池田) SGI회장 스피치로 다시 한 번 공양의 참의미를 되새겨 본다. <편집자>
빈녀의 일등
석가부처님이 영추산에 있을 때 어떤 임금님이 석가부처님께 등불을 공양하기로 해 ‘불을 켜는 기름’을 잔뜩 실은 수레가 산으로 올라갔다.
이를 본 가난한 할머니 한 분이 석가부처님을 존경했으나 매우 가난했으므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기름을 사 부처에게 공양했다.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양한 등불들로 가득했으나 가난한 할머니는 단 하나의 작은 등불을 공양했다.
한밤중이 되자 바람이 세게 불어 임금님의 불은 차차 꺼져 갔지만, 단 하나 할머니의 촛불만이 보물처럼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석가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저 할머니는 아름다운 진심을 가지고 있다. 다시 태어날 때에는 임금님보다도 훨씬 행복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관련 스피치
니치렌 대성인은 여성 문하(오니치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 득승동자(得勝童子)는 모래떡을 부처에게 공양 드려서 아육대왕(阿育大王)으로 태어나 일염부제(一閻浮提)의 주(主)가 되었었다. 빈녀(貧女)가 자기의 머리를 잘라서 기름과 바꿨는데 수미산을 불어 뽑아버린 바람도 이 불을 끄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 이삼(二三)의 엽전은 일본국을 다스리는 사람이 나라를 바치고, 칠보(七寶)의 탑을 도리천까지 쌓아올린 것 보다도 더하니라.”(어서 1263쪽)
옛날, 득승동자라는 아이는 모래떡을 부처에게 공양드려 (후세에) 아육대왕으로 태어나 일염부제의 주인(세계를 통치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어느 가난한 여성이 (부처에게 등불을 공양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그 머리카락을 팔아서) 기름으로 했습니다. 그러자 수미산을 불어 뽑아버릴 정도의 강한 바람도 그 불을 꺼뜨릴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권력도 어떠한 재보도, 한 서민 여성의 신심의 진심에는 절대로 당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대성인의 마음입니다.
<제12회 주부총회 1994.12.21>
수달장자
먼 옛날 천축의 사위국에 수달이라는 장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일곱 번 부귀하게 되고 일곱 번 빈궁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일곱 번째 가난은 3일이나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창고에는 쌀이 다섯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다섯되를 해공(解空)제일의 수보리에게, 또 신통(神通)제일의 목련에게, 다문(多聞)제일의 아난에게 마지막은 석존에게 모두 공양한 바, 그때 이전부터 있던 3백70개의 창고에 재보가 본래처럼 가득차서 오랫동안 장자로서 세상에 이름을 떨쳐 염부제(閻浮提) 안에서 견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관련 스피치
그 옛날 석존의 문하로 제일가는 대부호인 수달장자 부부의 인생행로도 결코 순풍에 돛을 단 것과 같은 인생만은 아니었다.
일곱 번이나 가난을 맛보고 일곱 번 큰 부자가 되는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특히 일곱 번째 가난에 처했을 때는 모두 다 도망치고 단지 부부 두 사람만이 남았다.
그런 구렁텅이 속에 있으면서도 스승으로 우러러보는 석존에게 성심성의를 다하고 대법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치려고 했다.
가장 괴로울 때, 가장 강하고 깊은 신심(信心)으로 공양을 한 덕분에 수달장자 부부는 상황이 바뀌어 인도에서 제일가는 큰 부자가 되었고, 머지않아 유명한 기원정사를 짓는 대경애가 되었다.
신심의 ‘마음’이야말로 소중하다.
니치렌 대성인은 “이 수달장자를 거울로 삼아 만사를 터득하세요”(어서 1574쪽, 통해)라고 가르치셨다.
<총현장회의 2002.7.26>
금주녀
옛날 비바시불(毘婆尸佛)이라는 부처가 입멸했을 때 모든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사중(四衆)은 그 사리(舍利)를 간직하기 위해 칠보(七寶)로 장식된 장엄한 탑을 세우고 그 가운데 불상을 모셨는데, 얼굴 부분 한군데의 금박이가 떨어져 있었다. 이때 가난한 한 여성이 구걸해 얻은 금주(금의 보주)를 내놓고 금공에게 보수를 의뢰했다.
그 공덕으로 그 여성은 91겁(일겁은 일설에는 약 1천6백만년이라는 계산도 있다)이나 되는 긴 기간 동안 금색의 몸으로 태어나 무상의 행복을 누렸고, 이때의 금공도 공덕을 받고 가섭으로 생을 받았다고 한다.
■관련 스피치
옛날에 금주녀는 부처의 목상을 장식하는 금박을 금전 일문으로 공양해 91겁 동안 금색의 몸이 되었다. ‘금색의 몸’이란 밝게 빛나는 최고 대복덕의 몸을 말하는 것이다. 돈이 ‘필요없다’ ‘필요없다’고 해도 들어온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라고 해도 ‘돈이 나가기만 하는’ 사람이 많은데, 과거에 금박을 공양하기는커녕 벗겨내어 훔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쨌든 퍼내어도 끝없는 복운, 몸에서 넘쳐 스며 나오는 환희의 빛. 이러한 ‘금색의 몸’이 세세생생으로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불과 ‘금전 일문’이라도 때에 적합한 진심의 공양이라면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얻는다. 불가사의한 ‘마음’의 작용이다.
또한 대성인은 “‘부처’를 공양한 금주녀의 공덕 이상으로 ‘부처의 스승’인 ‘경(법화경)’에 공양하는 오타조묘 부부의 공덕은 크다. 반드시 일생동안에 성불하십니다”라고 단언하신다. 지금 우리들은 최고의 공양인 ‘묘법 유포’를 하고 있다. ‘광선유포’라는 성업(聖業)을 하고 있다.
그 사람은 ‘금주녀’ 즉 ‘황금의 보주를 가진 여성’ 이상의 대복덕을 얻는다.
반드시 ‘금색의 몸’으로 된다. 이것이 본불님의 약속이다.
<제65회 본부간부회 1993.4.20>
<니치렌 대성인 제자들의 공양에서 배운다>
난조 도키미쓰
닛코(日興) 상인의 진두지휘 하에 후지 방면에서 크게 홍교가 진척돼 많은 승려와 농민들이 잇달아 법화경에 귀의하자 이에 놀라 격분한 류센사의 원주대(院主代), 교치가 권력자와 결탁해 대성인 문하를 붙잡아 참수형에 처하는 대폭거의 탄압이 일어났다.
이 법난에서 20세의 청년 지두 도키미쓰의 활약은 실로 눈부셨다.
도키미쓰는 동지가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저택 일부를 ‘대책본부’로 해 투쟁을 전개한다.
동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저택에 신도를 숨기고, 닛코 상인의 생명에 위험이 닥칠 때는 자신의 저택 어디에 계시게 할까 고심하며 만반의 준비에 분주했다. 그리고 막부(幕府)에게는 불법(不法)처분의 철회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류센사의 교치를 면직시키려는 운동을 일으켰다.
또한 체포된 동지의 부당한 처분을 각하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그 가족을 격려하는 등, 막부의 박해를 각오하고 악과의 싸움에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목숨을 건 투쟁을 전개했다.
그 사실을 안 막부는 도키미쓰에게 부당한 중세(重稅)를 부과하고 경제적인 압박을 가했다.
이는 수년동안 계속됐으며 도키미쓰는 타고 다닐 말까지 잃고 어쩔 수 없이 궁핍한 생활을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도키미쓰는 대성인께 진심어린 공양을 계속했다.
대성인은 그런 도키미쓰의 신심을 존중하시며 진심으로 신뢰하셨다.
도키미쓰가 직접 대성인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은 16세부터 24세 때까지다.
10여 년동안 사제의 향기는 만대에 걸쳐 니치렌 문하에게 광포 계승의 모범이 되고 있다.
대성인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맹세한 도키미쓰에게는 수많은 어려움과 폭풍우가 계속해서 불어 닥쳤다.
그러나 도키미쓰는 대성인과 닛코 상인의 슬하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극복했다.
아부쓰보와 센니치니
아부쓰보는 대성인이 사도에 도착하신 직후 대성인의 모습과 인격을 접하고 입신(入信)했다.
그 후 대성인이 사도유죄에서 사면돼 가마쿠라로 돌아가실 때까지 아내인 센니치니와 함께 대성인을 지켰고, 또 대성인이 미노부에 입산한 후에도 공양물을 갖고 몇 번이나 미노부를 방문했다.
센니치니는 유배지인 사도의 음식물이 충분치 못한 상황 속에서 항상 생명의 위험에 처해 있던 대성인의 안위를 걱정해 감시의 눈을 피해 대성인 곁으로 가서 진심 어린 공양을 계속했다.
그로 인해 센니치니 자신도 거주지에서 쫓겨나고 벌금을 물고, 가옥을 몰수당하는 등의 난을 당했다. 그러나 엄한 탄압과 비열한 모략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대성인을 끝까지 외호했다.
대성인의 유죄가 사면돼 가마쿠라에서 미노부로 입산하신 뒤에도 구도의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남편인 아부쓰보를 몇 번이나 미노부로 보냈다.
대성인은 “이 경문은 일체경보다 뛰어났으니, 땅위를 달리는 자의 왕인 사자왕과 같고, 하늘을 날으는 자의 왕인 독수리와 같다”(어서 1310쪽), “이 경은 여인성불을 본보기로 하여 설해졌다고 말하느니라”(어서 1311쪽)라며 이 불법(佛法)이야말로 최고의 법이라는 확신을 주시고 성불은 틀림없다고 단언하신다.
또 “더욱더 신심을 면려하시라. 불법의 도리를 남에게 말하는 자를 남녀승니(男女僧尼)가 반드시 미워하리라”(어서 1308쪽)라고,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욱더 강성한 신심으로 불법을 전할 것을 지도하신다.
“미워할테면 미워하라”라는 각오로 임하라는 지도 한 구절에 센니치니의 강성한 신심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느낄 수 있다.
그런 대성인의 마음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광포에 매진한 여성이 바로 센니치니 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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