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 진리를 깨달은 사람’ - 석존의 생애

2014. 10. 21. 17:27佛法 .SGI

 

 

 

제3권 ‘불타’의 장
‘불타, 진리를 깨달은 사람’ - 석존의 생애

 

‘불타’의 장에서는 불교의 개조(開祖)인 석존의 생애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에서는 석존의 생애에서 석존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을 모았다.

 

처자식을 성에 남겨두고 출가

석존은 히말라야 산기슭의 타라이분지(지금의 네팔 남단)에 영토를 둔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났다. 봄, 여름, 겨울 각각의 계절을 지내기 좋은 그를 위한 궁전이 있었고, 많은 하인이 시중을 드는 등 주위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를 잃어 소년시절부터 항상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품고 있었다. 거기에서 철학적인 사색을 거듭해 인간을 생(生)·노(老)·병(病)·사(死)의 괴로움에서 구할 해결방도를 탐구하게 되었다.
석존은 16세(17세라는 설도 있다)에 왕후를 맞아들이고, 아들 나후라를 얻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생로병사를 둘러싼 고뇌는 풀리지 않아 19세(29세라는 설도 있다)에 마침내 출가한다.
왕자의 신분과 무엇 하나 불편함 없는 생활과 결별하고 깨달음을 찾는 길을 선택했다. 또 아들 나후라는 나중에 석존에게 귀의해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이 된다.

 

보리수 아래에서 오달

석존이 출가하고 나서 성도(成道, 깨달음을 얻어 불타가 되는 것)하기까지 여러 설이 있다. 19세 출가설을 들자면 성도는 30세 때의 일이 된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석존은 먼저 몇 년 동안 철저히 고행을 계속했다.
죽음도 각오한 극한의 단식을 하거나, 호흡을 멈추거나, 가시나무 위에 엎드리는 등……. 그 모습은 고행하는 사람들이 “그는 틀림없이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하고 확신할 정도로 엄격했다. 그러나 아무리 계속해도 깨달음은커녕 아무것도 얻는 게 없었다.
석존은 어느 날, 마침내 고행을 중단했다. 그리고 쇠약한 몸이 회복되자 보리수 아래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명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불타’가 되었다.
‘불타’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성도는 초월적인 ‘인간이 아닌 존재’로 변하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석존이 얻은 ‘깨달음’에 관한 내용은 ‘불타’의 장에 간단히 요점을 파악한 묘사가 있다.

 

평등했던 교단의 상황

오달한 석존은, 먼저 고행을 지속하던 벗 다섯명에게 최초로 법을 설했다. 그들은 당초 고행을 도중에 그만둔 석존을 ‘탈락자’라고 취급해 경시했다.
그러나 가르침을 듣는 사이에 그 내용에 감명하여 다섯 명 모두 석존에게 귀의했다.
그때부터 석존의 제자는 조금씩 늘어났다. 모두 합해 1000명이나 되는 제자를 이끌던 종교가와 벌인 법론에서 승리해 그 제자들이 한꺼번에 석존에게 귀의한 적도 있다.
석존 밑에서 수행한 제자는 최대 2000명 정도였다고 각종 사료에서 추정된다. 석존은 그 교단에 그 어떤 차별도 두지 않았다. 당시 신분이 극히 낮았던 여성에게도 남성과 대등하게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카스트제도에서 수드라(노예계급)나 불가촉천민이 제자가 되는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이러한 평등성은 고대 인도사회에서는 획기적이었다.

 

온갖 난을 이겨내고

석존의 제자나 왕, 부유한 상인 등도 귀의하는 일이 늘어 널리 민중의 존경을 받게 되자 그 명성이나 모여드는 공양을 질투하는 사람도 나타나, 온갖 공격과 방해도 일어났다. 그중 대표적인 아홉가지 사건을 ‘구횡(九橫)의 대난(大難)’이라고 부른다.
대난에는 한 여인이 배에 바리때를 넣고 “석존의 아이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퍼뜨렸다고 하는, 지금으로 말하면 ‘날조된 스캔들’도 있다. 또 석가족의 나라가 종주국인 코살라국의 침공으로 멸망한 일도 대난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리고 석존을 대신하려는 야망을 품고 교단의 분열을 꾀한 제바달다가 일으킨 대난도 있었다. 불도수행자의 모임(화합승)을 파괴하려고 한 제바의 소행은 불법에 설해진 ‘오역죄(五逆罪)’ 중 가장 죄가 무거운 ‘파화합승(破和合僧)’에 해당한다.
제바는 산꼭대기에서 석존을 겨냥해 큰 돌을 떨어뜨리거나, 마가다국의 아사세왕을 꾀어 미친 코끼리를 풀어놓아 석존을 밟혀 죽게 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석존은 그러한 대난을 전부 이겨냈다. 때로는 인내 강하게, 또 때로는 냉정하게 도리를 설하고, 실증을 보이는 등 박해를 이겨내 법을 넓혔다.

 

입멸 - 최후까지 법을 설하다

많은 제자를 육성하며 계속 홍교여행을 한 석존은 80세 때 고향마을을 향해 마지막 설법여행을 떠났다.
세 나라를 지나는 긴 여행 도중에 석존은 대장장이 순타라는 청년이 공양한 음식을 먹고 극심한 설사에 시달렸다. 그리고 회복하지 못하고 사라쌍수 나무 사이에 마련한 침상에 누워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식중독으로 인한 죽음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석존이 초인적 존재가 아니라 한 인간이었음을 여기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석존은 죽기 직전 음식을 공양한 순타에게 보내는 전갈을 부탁했다. “그는 음식이 나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후회하고 있을 테니 내가 ‘당신은 최고의 공양을 했다’고 말했다고 전해 주게.”라는 전언이었다. 진심 어린 공양의 자세를 칭찬했던 것이다.
석존이 최후까지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는 모습을 전해 주는 감동적인 일화라 할 수 있다. 또 석존은 입멸하는 순간까지 주위를 에워싼 제자들에게 훗날의 지침이 될 가르침을 계속 설했다.
당시로서는 고령에 육체적으로도 쇠약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최후까지 민중을 생각하고 법을 계속 넓혔다. “교주석존의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라는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의 어서에 있는 대로, 한 인간으로서 석존의 행동은 참으로 위대했다.

 

고행의 세계

깨달음을 찾아 석존이 몸을 던진 고행의 세계란 어떤 것이었을까.

고행이 만든 갠지스강?

하루 종일 물구나무서서 보내기, 한쪽 다리로 서서 방석 사용하지 않기, 머리만 내놓고 몸을 땅속에 묻기, 몇개월에 걸친 단식.
석존이 했던 고행 중에서 가장 힘들다고 했던 것은 숨을 멈추는 고행이다. 전혀 의미가 없는 듯이 보이는 고행. 그러나 그 힘을 강하게 믿고 있었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이 목욕으로 몸을 정갈하게 하는 성스러운 갠지스강도 본디 천상계에 흐르던 것을 어떤 선인(仙人)이 정신이 아찔해지는 고행으로 모은 힘으로 물길을 지상으로 인도했다고 믿고 있었다.

고행이 수행이 된 것은?

어떻게 고행을 수행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신체와 정신이 표리일체라고 여기는 인도의 정신풍토가 관계한다. 신체를 조절하는 것이 정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것을 규명한 것이 신체를 극한까지 몰아넣는 고행이었다. 요즘 건강체조처럼 행해지는 요가도 근원을 살펴보면 석존보다도 오랜 시대부터 이어진 인도의 수행법이었다.

 

소설 <신·인간혁명> 명언집(제3권)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떤 말을 건네는가.
그 자애 속에 포교의 원점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불타〉의 장)
사람과 사람을 맺고 인간을 강력하게 소생시키는
대화나 언론의 중요성을 여러 곳에서 이야기한다.

 

◈ 예의있게 확신을 담아 법을 설하는 석존의 모습을 통해 ◈

포교는 단순한 이론 투쟁이 아니다.
인격을 통한 생명과 생명의 촉발이다.
(제3권 〈불타〉)

 

◈ 석존이 제자를 혼자서 포교 여행을 보낸 것을 통해 ◈

불법은 단순한 철학이나 명상의 세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법을 구하여 그 이(理)를 득했다면 법의 유포를 자신의 사명으로 하여 중생을 교화, 구제하는 실천 속에 진실한 불법이 있다.
또 석존은 제자들이 혼자서 법을 설함으로써 수동적인 자세를 없애고 자립된 신앙을 몸에 익히게 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포교의 책임을 가져야만이 신앙도 연마하고 심화시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제3권 〈불타〉)

 

◈ 끝까지 말하는 자세가 중상이나 편견을 깨뜨린다 ◈

목소리가 미치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체험과 실감이 뒷받침된 목소리의 울림을 능가할 것은 없다.
(제3권 〈월지〉)

 

◈ 사람과 사람을 맺는 대화 ◈

사람들과 만나 함께 대화해 간다면 민족, 문화, 습관의 차이를 넘어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인간과 인간의 공통점을 찾아내어 어떻게 인류를 연결할까, 평화를 실현해 갈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3권 〈월지〉)

 

◈ 상대방의 양심을 일깨우는 대화의 힘 ◈

불법자의 투쟁이란 어디까지나 비폭력에 의한 언론전이다.
언론, 대화라는 것은 상대방을 사람으로서 대우한다는 증명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양심을 일깨우는 생명의 촉발작업이며 무엇보다도 인내와 강한 끈기가 필요하다.
(제3권 〈월지〉)



월간법련 : 14/10/01 2014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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