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生死)의 거친 파도를 타고 넘는 대선(大船)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2014. 7. 17. 19:45佛法 .SGI

 

 

 

 

아쓰하라 법난에서 삼열사가 처형된 시기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먼저 이 어서를 집필하시기 직전인 10월 15일이라는 설입니다. 그리고 이듬해 4월이라는 설입니다 만약 전자라면 "이왕이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법화경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라."는 말씀은 삼열사의 죽음이 불법상 깊은 의미가 있음을 밝히고, 삼열사의 정의와 용기 넘친 투쟁을 찬탄하신 말씀이라고 미루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죽음 그 자체를 찬미한 말이 아닙니다. 죽음 앞두고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신심을 찬탄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법화경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에 후회가 없는가…. 대성인은 그 까닭을 "이슬을 대해에 넣고, 먼지를 대지에 묻는 것과 같다."(취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성에서 보면 지금 살고 있는 우리 목숨은 '이슬'처럼 덧없는 존재입니다. 또 대우주에서 보면 '먼지'처럼 자그마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가 '대해'처럼 광대하고 '대지'처럼 확고한 묘법을 수지하고 끝까지 살면, 묘법과 일체인 광대하고 확고한 경애를 확립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대성인은 다른 어서에서도 "이슬을 대해에 넣고, 흙을 대지에 보탬과 같아서 생생에 없어지지 않고 세세에 썩지 않으리라." (어서 968쪽)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슬'이 법화경이라는 '대해'와, '먼지'가 묘법이라는 '대지'와 일체가 될 때 영원히 꺼지지도 썩지도 않는 존재가 됩니다. 광선유포를 위한 삶을 관철한 우리 생명은 대우주의 불계에 융화해 영원불멸의 '불계 생사'를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또 항상 원하는 장소. 원하는 환경에서 광선유포라는 최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태어날 수 있습니다. "대원을 세우라."는 말씀은 '영원하며 무상(無上)의 생명 궤도에 들어가라.'는 말씀이라고 불 수 있습니다.

- 우에노전답서 (용문어서) 강의

 

 

 

 

 

[묘법의 동지의 인연은 삼세]


 지난 8월 내가 도다 선생님을 만나서 신심을 시작한 지 만 66년이 되었습니다.
그리운 공전(共戰)의 동지 중에는 이미 금세의 사명을 다하고 편안하게 영산(靈山)으로 떠난 분들도 있습니다.
시치로고로처럼 젊어서 떠난 청년도 있었습니다. 병환이나 뜻밖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도 있습니다. 또 지난 날의 비참했던 전쟁이나 대지진 등의 거대한 재난으로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나는 날마다 돌아가신 분들의 추선회양의 제목을 보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과학이나 기술이 진보해도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이나 외로움이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어서를 배독하여 배운 바와 같이 묘법은 삼세 영원하며 생명도 또한 삼세 영원합니다.
불법의 눈으로 보면 금세의 생(生)의 마지막(사<死>)은 다음 생으로 향한 출발이며, '생명'의 위대한 역사는 새로운 생사 드라마를 거듭하면서 이어집니다.
그리고 금세의 맺어진 생명의 유대는 죽음으로 단절되어 무(無)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설령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마치 무선(無線)처럼 연결된 인연은 한 순간도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확신한다면 외롭더라도 결코 고독하지는 않습니다. 슬픔의 눈물도 이내 맹세의 눈물로 변합니다.
남겨진 가족이나 벗들도 다시 전진할 수 있다. 유족이라는 이상으로, 같은 뜻으로 맺어진 후계자로서 고인(故人)의 몫까지 꿋꿋하게 살아가는 용기와 생명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생사관(生死觀)을 갖는가'가 그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영원하다'는 생사관을 많은 사람이 공유한다면 인간의 문명은 크게 바뀔 것입니다.

-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제55회 우에노전모친답서, 2013년 10월)

 

 

 

[ 생사의 거친 파도를 타고 넘는 대선(大船)]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입신한 초창기의 어느 벗은 어린 자식을 잃은 비탄 속에서 "신이고 부처고 있기는 뭐가 있어"하고 절망의 늪에 빠졌습니다.
그때 신심하게 된 원점은 마키구치(牧口) 선생님의 "인생에서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단 하나 있다."라는 확신에 찬 격려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심'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는 무상(無常)의 세계입니다. 자타 함께 '생로병사'의 고뇌가 노도처럼 밀려오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인생의 폭풍을 만나도 생사의 거친 파도를 타고 넘어 승리할 수 있는 확실한 '상락아정(常樂我淨)'<주>의 배가 있습니다.
대성인은 "생사(生死)의 대해(大海)를 건너는 일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배가 아니면 불가능하니라."(어서 1448쪽) 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묘법과 함께 꿋꿋하게 살아가는 생명은 결코 절망의 늪에 가라앉는 일은 없습니다.
대성인이 우에노니에게 가르치는 것도 이 절대적인 확신과 용기 있는 신심이라고 배독됩니다.
"생사(生死)의 이법(理法)은 일심(一心)의 묘용(妙用)"(어서 1543쪽, 전교대사의 글)입니다.
그리고 <어의구전>에는 "자신법성(自身法性)의 대지를 생사(生死) 생사(生死)로 유전해 가느니라."(어서 724쪽), "이 법화경은 생사 생사로 유전하느니라."(어서 802쪽)라고도 씌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눈뜨고 활동하며, 밤에는 잠들어 내일을 위한 활력을 얻는 것처럼 생(生)도 사(死)도 똑같이 일심(一心), 내 생명의
묘한 작용이라고 보는 것이 니치렌불법의 생사관입니다.


<주> 상락아정(常樂我淨) : 부처의 생명에 갖춰진 덕목으로 사덕바라밀(四德波羅蜜)이라고도 한다. 상(常)은 부처가 완전한 영원성을 실현하는 것. 락(樂)은 완전한 안락. 아(我)는 완전한 주체성. 그리고 정(淨)은 완전한 청정함을 말함.

-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제55회 우에노전모친답서, 2013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