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苦難)을 이겨내는 용기(勇氣)있는 신심

2009. 10. 13. 11:08佛法 .SGI

 

                                                          -설악산 대청봉-

 

고난(苦難)을 이겨내는 용기(勇氣)있는 신심

1. 감사하는 일념으로

신심을 더욱 다지고 강하게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일은 먼저 본존님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존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새롭고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람은 복운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일은 “우리 집안은 절대로 불행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는 일이다.

이 두가지는 우리들 앞을 가로막는 갖가지 어려움을 모두 해결하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라고 하는것은 어리석은 범부이기 때문에 일단 지위나, 명예, 또는 재물을 얻게되면 아무래도 교만하기 쉬운 것이다.

우리 신심의 세계에 있어서는 이와같은 폐단은 엄격하게 경계되지 않으면 안된다.

구도와 감사의 마음이 약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신앙의 자세가 교만해져서 참된 화합승인 불교회를 비판한다든가 동지를 원질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일생성불이라는 거룩한 목적을 잊고, 자기자신의 숙명전환이라는 최고의 원리를 깨우쳐주고 성장시켜주는 원점인 불교회를 잊고, 특히 근본의 본존님을 무시하는 증상만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진실하고 가장 위대한 신앙을 하게 된 우리들은 이와같이 복운을 소멸시키고 자기 자신마져도 파괴해버리는 만심의 행동- 이것만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감사의 마음”이란 본존님을 수지하고 최고의 공덕을 받게된데 대한 감사이며, 많은 동지들이 지켜주고 지도와 격려를 받으며 어서를 배울 수 있게 된데 대한 감사라는 것이다.

이 강한 감사의 일념은 자신의 경애를 크게 열고 대공덕을 쌓는 본인(本因)으로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하루 하루의 불도수행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는 사람은, 역시 제법실상이라는 도리에 의하여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복스러운데가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신심의 자세를 반성하여 복운 넘치는 인생을 쌓아서 유유한 생애를 보내야만 되겠다.

남을 원망하고 책망하고 있는 동안은 조금도 경애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도리어 원질한 몫만큼 모두가 나쁜 방향으로 결과가 나온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이 경의 제목을 부르게 할 때에는 생각할지어다. 맹인이 처음으로 눈을 떠서 부모들을 보는것보다 기쁘고, 강한 적에게 사로 잡힌자가 풀려나서 처자를 보는것 보다 드문 일이라고 생각할지어다』(법화경제목초 942쪽)

정말 만나기 어려운 본존님을 만나게 된 기쁨을 근행 창제의 기본자세로 삼아야 하며,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올리는 제목이 “심회연모”의 창제로써 본존님에게 통하는 것이다.


2. 고난을 이겨내는 용기있는 신심

용기있는 신심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제천선신의 가호가 있다.

용맹의 창제, 정진의 창제를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치열한 고생의 나날이 닥친다고 하여도 제천은 한없이 날개를 펴서 지켜줄 것이다.

제불도 또한 대군과 같은 힘으로 지켜준다는 것은 절대적이다.

불법은 마와의 투쟁이다. 그것을 이겨내는것은 강성한 제목의 힘 밖에는 없다.

"오로지 대난이오면 강성한 신심으로 더욱 기쁘할지어다"(1488쪽)의 금언과 같이, 난이 있으면 그럴수록, “좋다, 숙명전환을 해보이겠다, 지금이 바로 변독위약 할 때이다” 라는 대신력(大信力)으로 분발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고난이라도 성장을 위한 시련이라고 받아들여서 꾹 참아나가는것이 참된 신심이다.

약간의 난이나 장애가 있다고 해서 약해질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신심이란 필사적인 마음으로 자기와 싸우는 것이다.

자신을 응시하고 자신의 약점과 사투(死鬪)하는 그것이 신심이다.

인생에 있어서 각오가 선 사람은 강하다. 거기에는 고뇌나 슬픔도 반감된다.

그리고 모든 고난을 이겨내려는 용기가 솟아나는 것이다.

어떠한때라도 창제 제일로 하는 신심에는 앞을 가로막는 장애는 없다.

신심이란 장애와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일이 있어도 본존님을 확신하고 의심없는 제목을 부르는 일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인생에는 벽에 부딪히거나 앞을 가로막는 장애는 따라 다니는 것이다.

벽에 부딪히면 발심하고, 앞이 막히면 창제하고- 이렇게해서 오늘날까지 걸어왔다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신심을 하자.

고난을 당할때마다 신심의 진수가 어떤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금생에 정법을 행하는 공덕이 강성하므로 미래의 대고(大苦)를 닥쳐오게 하여 소고(小苦)를 만나느니라』(어서1083쪽)의 어서 말씀과 같이,

인생에는 고난이 따르기 마련이다.

고난이 없기를 원해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 그보다도 어떠한 고난을 만나더라도, 왕성한 생명력, 풍부한 지혜, 불굴의 용기를 분발하여 고난을 극복하기를 원하는것이 중요하다.

그렇게함으로써 더 큰 행복의 경애를 열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난을 만났을때, 그것을 선지식으로 삼을것인가, 악지식으로 받아들일것이가는 나의 일념에 달려있는 것이다.

일념의 여하에 따라 악지식이나 역경도 모두 자신의 성장의 발판으로 되는것이며, 또한 죄장소멸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절망에 빠질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고나서, 훗날에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였다는것을 알수가 있다.

하물며, 묘법의 제목을 부르는 사람은 긴 인생의 눈으로 보면 모든것이 변독위약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도 걱정하지말고 강성한 신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소중한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떠한 불리한 조건에 직면하더라도, 닥쳐오는 어려움과 맞부딪쳐 도전해 나갈수 있는 점이 아니겠는가?

어떠한 일을 당해도 안이한 방법론이나 술책에 홀려서는 아니된다.

먼저 본존님께 기원하고 또 기원하는일이 중요하다.

창제 제일로 모든일에 몸으로 부딪쳐 맞싸워 나가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

『대사(大事)에는 소서(小瑞)가 없다. 대악이 일어나면 대선이 온다』(어서1300쪽) 의 금언과 같이 인간은 어느면에서 보면 약하고 겁이 많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번뇌는 있고 고통도 있다.

그러나 자칫하면 그 번뇌나 고통에 패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인생이란 그러한 괴로움과의 대결이며,그것을 이겨내는데에 인간변혁도 있는것이다.

결국 인생은 자기자신과의 싸움이며 승부인 것이다.

3. 확신의 신심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 어떠한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느니라』(어서234쪽)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가령 1%의 희망도 보이지 않을지라도, “반드시”를 확신하고 본존님에게 기념해가는 그 일념속에, 승리의 인(因)이 있는 것이다.

『젖은나무에서 불을내고 마른땅에서 물을 얻듯이 강성하게』 라고 말씀 하셨으니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기원도 이 길밖에 없는 것이다.

그 진지한 기원과 실천이 있을때, 대악은 대선으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결코 단념해서는 아니된다.

“어찌 이렇게 어려움만 겹치는가?” 하고 뒷걸음 치는것과 “좋다, 꼭 이겨내고야 말겠다”고 생각하는것은 종이 한장의 차이이다.

이럴때 필사적인 기원과 실천이 있으면, 차례대로 자기에게 없었던 힘이 나오게 된다.

아니, 갖고 있으면서 내지 않았던 힘이 솟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성공의 연속으로 마칠수는 없는 것이다. 실패도 있고 쓰러질때도 있다.

그러나 확고한 신심만 있다면 훌륭하게 변독위약이 된다.

실패로 소모된 생명의 에너지는 다음의 성공을 위한 생명의 에너지로 반드시 살아 나는 것이다.

『묘(妙)란 소생의 의(義)』 라고 가르치셨듯이,

자기가 서있는 불행한 곳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에서 행복을 구하겠는가?

고투(苦鬪)여! 고투(苦鬪)여!

너는 그속에서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너는 그속에서 철(鐵)과 같은 의지가 키워지는 것이다.

너는 그속에서 진실한 눈물을 알게 되는 것이다.

너는 그 가운데에서 인간변혁이 있다는것을 알게될 것이다.

진심으로 부딪치면 벽은 무너진다.

신심에 장벽이란 있을수 없다. 하면 무엇이라도 되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진심으로 할 마음이 생기는가 아닌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제목을 불러서 결심을 하고 나면, 고통스러워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제목을 부르면 “반드시” 길이 열리는 것이다.

나에게 신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언제, 어떠한 때라도 제목을 부르는 일』 이라고 하겠다.

        - SGI회장 池田 大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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