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법화제목초(唱法華題目抄)
2009. 7. 9. 14:43ㆍ佛法 .SGI
- 남이섬가는 새벽길 두물머리 -
창법화제목초(唱法華題目抄)
- 唱法華題目抄 문응원년오월 39세 어작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어 가로되, 世間의 道俗이 특별히 法華經의 文義를 分別치 못해도 一部一券 四要品 自我偈一句等을 受持하여 或은 스스로도 읽고 쓰고, 或은 他人으로 하여금 읽고 쓰게 하고, 或은 自身은 읽고 쓰지 않더라도 經을 向해 받들어 合掌禮拜를 하고 香華를 供養하고, 或은 위와 같이 行하는 일이 없는 사람도 남이 行함을 보고 多少의 隨喜의 마음을 일으켜, 國中에 이 經이 넓혀짐을 기뻐하리라. - 이 程度의 若干의 일에 依해 世間의 罪에도 이끌리지 않고, 그 功德에 이끌리어 小乘의 初果의 聖人이 자주 人天에 生하고 게다가 惡道에 떨어지지 않음과 같이 언제나 人天의 生을 받아 마침내 法華經을 理解하는 者가 되어 十方淨土에도 往生하고, 또 이 땅에 있어서도 卽身成佛하는 일이 있느뇨, 자세히 이것을 들으리라. 答하여 가로되, 別달리 文義를 分別한 몸은, 아니더라도 法華經・涅槃經・ 및 天台 妙樂의 釋의 心을 가지고 推量하건대, 잠시동안이라도 法華經을 믿고 조금도 誹謗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은 다른 惡에 이끌리어 惡道에 떨어지리라고는 생각치 않노라.
- 但 惡知識이라 해서 약간 權敎를 아는 사람이 智者인척 하여 法華經을 우리들의 機根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부드럽게 말함을 眞實이라고 생각하여 法華經을 隨喜한 마음을 버리고 다른 敎로 옮겨가서 一生동안 法華經에 歸入하지 않는 사람은 惡道에 떨어지는 일도 있으리라.
- 말씀에 대해서 疑心스러운 일이 있는데 事實인지요. 法華經에 設해져 있다고 하여 智者가 말씀하신 바로는 옛날 三千塵點劫의 當初에 大通智勝佛이라는 부처가 계셨는데 그 부처가 凡夫로 계셨을 때 十六人의 王子가 계셨도다. 그의 父王이 부처가 되시어 一代聖敎를 設하시자 十六人의 王子도 역시 出家하여 그 부처의 弟子가 되셨느니라. 大通智勝佛이 法華經을 다 設하시고 나서 定에 들어가시니 十六人의 王子인 沙彌가 그 앞에서 교대로 法華經을 講說하셨느니라.
- 그 所說을 聽聞했던 사람은 幾千萬인지도 모르는데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不退의 位에 들어갔노라. 또 法華經을 疏忽(소홀)히 생각한 結緣의 大衆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當座와 中間에 不退의 位에 들어가지 못하고 三千塵點劫을 經過했노라. 그 사이에 또 두루 六道四生을 윤회하고 今日 釋迦如來가 法華經을 說하시자 不退의 位에 들어가니 所謂・舍利弗・目連・迦葉・阿難 等이 이것이니라. 더욱 더 信心이 얕은 者는 當時도 깨닫지 못하여 未來 無數劫을 지나게 될 것이라. 우리들도 大通智勝佛의 十六人의 結緣의 衆인지도 알 수 없도다.
- 이 結緣의 무리를 天台 妙樂은 名字觀行의 位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定하셨는데, 名字觀行의 位는 一念三千의 義理를 알고 十法成乘의 觀을 골똘히 하여 깊이 義理를 分別한 사람이니라. 一念隨喜・五十展轉이라 함도 天合妙樂의 釋 等은 모두 觀行五品의 初隨喜의 位라고 定하셨으며, 博地의 凡夫의 일이 아니로다. 그런데 우리들은 末代의 一字一句 等의 結緣의 衆으로 一分의 義理조차도 모르니 어찌 無量의 世界의 塵點劫을 거치지 않을손가. 이는 오로지 理深解徵인 故로 敎는 매우 깊고 機는 實로 얕음의 所致이니라. 오직 彌陀의 名號를 불러 順次生에 西方極樂世界에 往生하여 酉方極樂世界에서 오래도록 不退의 無生忍을 得하여 阿彌陀如來・觀音 勢至 等이 法華經을 說하실 때 듣고 깨닫느니만 못하니라.
- 그런데 彌陀의 本願은 有智・無智・善人・惡人・持戒・破戒 等을 가리지 않고 오직 一念으로 부르면 臨終에는 반드시 彌陀如來의 本願인 故로 來迎하시도다. 이것을 가지고 생각하건대 이 땅에서 法華經의 結緣을 버리고 淨土에 往生하려고 생각함은 億千世界의 塵點을 거치지 않고 빨리 法華經을 깨닫기 위함이로다.
- 法華經의 根機에 맞지 않는 사람이 이 예토(穢土)에서 法華經을 위해 時間을 쓰고 오로지 念佛을 말하지 않음은 法華經의 證은 取하기 어렵고 極樂의 業도 定하여지지 않아 中間으로 되어 매우 法華經을 소홀(疏忽)히 하는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말씀하심은 어떠하뇨. 게다가 只今 배청(拜聽)하건대, 겨우 法華經의 結緣뿐이라면 三惡道에 떨어지지 않을 뿐이지 六道의 生死를 出離함은 아니로다.
- 念佛의 法門은 무엇인지 義理는 모르더라도 彌陀의 名號를 奉唱하면 淨土에 往生한다는 것을 말함은 훨씬 法華經보다도 彌陀의 名號가 매우 훌륭하다고 들리도다. 答하여 가로되. 참으로 말씀은 좋은데다가 智者의 말이기도 하니, 그러리라고도 생각되지만 그러나 萬若 이야기와 같다면 조금 未審한 일이 있느니라. 大通結緣의 者를 대략 該當시켜 말하기로는, 名字觀行의 者라고는 釋해져 있으나 正確하게 名字卽의 位의 者라고 定해져 있는데다가 退大取小의 者라 하여 法華經을 버리고 權敎에 옮겨서 後에는 惡道에 떨어졌다고 보이는데다가 틀림없이 法華經을 誹謗하고 이를 버린 者이
니라. 設使 義理를 아는듯한 者일지라도 謗法의 사람인 以上은 三天塵點 無量塵點을 經過할 것이로다. 五十展轉 一念隨喜의 사람들을 觀行初隨喜의 位의 者라고 釋하심은 末代의 우리들의 隨喜 等은 그의 隨喜중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심인가, 이것을 天合 妙樂이 初隨喜의 位라고 解釋하셨다고 말씀하신다면 또 名宇卽이라고 釋하셨던 解釋은 버려져야 하는가, 結局 말씀하신 義를 상세하게 생각하면 죄송한 일이지만 謗法의 一分이 아니겠느뇨, - 그 까닭은 法華經을 우리들 末代의 機에 맞지 않는다는 事由를 말씀하심은, 末代의 一切衆生은 穢土(예토)에서 法華經을 行하여 利益이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심이 아니뇨, 萬若 그렇다고 한다면 末代의 一切衆生 中에서 이 말씀을 듣고, 이미 法華經을 믿는 者도 버리고 아직 行하지 않는 者도 行하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隨喜의 마음도 멈추게 된다면 謗法의 상태가 아니겠느뇨, 萬若 謗法의 者로 一切衆生이 된다면 아무리 念佛을 부르신다 해도 往生하심은 不定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또 彌陀의 各號를 불러서 極樂世界에 往生을 이룬다는 것을 말씀하심은 어떠한 經論을 證據로 해서 이러한 마음이 생기셨는가, 틀림없이 强한 證文이 있느뇨. 萬若 없다면 그 義는 믿을 수 없느니라.
- 앞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法華經을 믿고 있음은 별다른 解得이 없다 해도 三惡道에는 떨어지지 않도다. 六道를 나오는 일은 一分의 깨달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있기 어려운 일이니라. 但 惡知識을 만나서 法華經 隨喜의 마음을 說破 당한 사람은 力不足이로다. 또 말씀에 대해서 놀라운 생각이 있나이다. 그 까닭은 法華經은 末代의 凡夫의 機根에 맞기 어렵다는 事由를 智者가 말하였으므로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바 只今의 말씀과 같다면 彌陀의 名號를 부른다 해도 法華經을 싫다고 하는 罪過에 의해서 往生도 이루지 못하는 데다 惡道에 떨어지리라는 것을 듣게 됨은 重大한 大事이로다.
- 무릇 大通結緣者는 謗法 때문에 六道를 돌고 있음도 또 名字卽의 淺位의 者이니라. 또 一念隨喜 五十展轉의 者도 또 名字觀行卽의 位라고 하는 解釋은 어느 곳에 있느뇨, 상세히 듣고자 하노라. 또 義理도 모르는 者가 조금 法華經을 믿고 었었는데, 惡智識의 敎에 依해 法華經을 버리고 權敎에 옮기는 것 以外의 世間의 惡業에 이끌려서는 惡道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함은 證據가 있느뇨. 또 無智한 者가 念佛을 불러서 往生한다고 어디에 쓰여 있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새삼스러운 일이로다. 雙觀經 等의 淨土의 三部經・ 善導和尙 等의 經釋에 分明하게 있는 이상은 무엇을 疑心하시느뇨.
- 答하여 가로되, 大通結緣의 者를 退大取小의 謗法・名字卽의 者라고 함은 나의 뜻이 아니로다. 天台大師의 文句 第三의 卷에 가로되 「法을 듣고 아직 度脫치 못하고 그리하여 世世에 서로 만나서 이제 聲聞地에 住하는 者가 있으니 즉 그 때의 結緣의 衆이로다」라고 解釋하시고 있음을 妙樂大師의 疏記第三에 거듭 이 解釋의 心을 말씀하여 가로되 「但 전혀 아직 品에 들지 않는다. 함께 結緣이라 이를하는 故로」 文・文의 心은 犬通結緣의 者는 名字卽의 者이니라. 또 天台大師의 玄義의 第六에 大通結緣의 者를 解釋하여 가로되 「혹은 信 或은 謗에 依해서 넘어지고 依해서 일어난다. 喜根을 誹謗한다 해도 後에 반드시 得度함과 갈다」 文・文의 心은 大通結緣의 者가 三天塵點을 經過함은 謗法者로다. 例컨대 勝意比丘가 喜根菩薩을 誹謗함과 같다고 解釋하였도다.
- 五十展轉의 사람은 五品의 初의 初隨喜의 位라고 하는 釋도 있느니라. 또 初隨喜의 位의 앞의 名字卽이라고 하는 解釋도 있으니 疏記第十에 가로되 「처음에 法會에서 들으면 이는 初品이 됨이라. 第五十人은 반드시 隨喜의 位의 初에 있는 사람이라」 文・文의 心은 初會聞法의 사람은 반드시 初隨喜의 位의 內・第五十入은 初隨喜의 位의 앞의 名字卽이라고 하는 釋이니라.
게다가 五種法師에도 受持・讀・誦・書寫의 四人은 自行의 사람이고 大經의 九入의 앞의 四人은 解가 없는 者이니라. 解說은 化他 後의 五人은 解가 있는 사람이라고 證明하셨도다. 疏記第十에 五種法師를 解釋함에 「或은 全혀 아직 品에 들지 않음」 또 가로되 「오로지 아직 凡位에 들지 않음」 文・文의 心은 五種法師는 觀行五品이라고 解釋하지만 또 五品 已前의 名字卽의 位라고 도 解釋하느니라. 이들의 釋과 같다면 義理를 모르는 名宇卽의 凡夫의 隨喜 等의 功德도 經文의 一偈 ・一句・ 一念隨喜의 者 ・ 五十展轉 等의 內에 들어가리라고 생각 되도다. - 하울며 이 經을 믿지 않는 謗法者의 罪業은 譬喩品에 상세히 說해져 있고 持經者를 誹謗하는 罪는 法師品에 說해져 있느니라. 이 經을 믿는 者의 功德은 分別功德品 ・ 隱喜功德品에 說했느니라. 謗法이라고 함은 違背의 義이며 隨喜라 함은 隨順의 義이로다. 特別한 義理를 모르더라도 一念이라도 尊貴한 까닭을 말함은 違背, 隨喜의 속에서는 어느 쪽으로 取해야 하느뇨. 또 末代 無智의 者의 약간의 供養隨喜의 功德은 經文에는 記載되지 않았느뇨 어떠하뇨 . 게다가 天台 妙樂의 解釋의 心은 다른人師가 있어 法華經의 乃至童子戱・ 一偈・一句・五十展轉의 者를 爾前의 諸經과 같이 上聖의 行儀라고 釋하신 것을 謗法의 者라고 정하셨도다.
- 그런데 自己 釋을 만들 때 機根을 높이 取하여 末代의 造惡의 凡夫를 迷惑하심은 自語相違가 아닐소냐. 그러므로 妙樂大師가 五十展轉의 사람을 釋하여 가로되 「아마도 사람이 잘못 解釋하는 者가 初心의 功德이 크다는 것을 헤아리지 않고 功을 상위에 넘겨주고 이 初心을 輕蔑(경멸)하는 故로 이제 그의 行은얕고 功이 깊은 것을 가리킴으로써 經力을 나타냄」文・文의 心은 法華經을 잘못 設한 사람이, 이 經은 利智精進・上根上智의 사람을 爲함이라고 말할 것을 부처는 두려워하여, 下根下智 末代의 無智한 者의 若干의 얕은 隨喜의 功德을, 四十餘年의 諸經의 大人 上聖의 功德보다 뛰어난 것을 나타내려고 해서, 五十展轉의 隨喜는 設하여 졌느니라,
- 그러므로 天台의 釋에는 外道 小乘 權大乘까지 쭉 比較해서 法華經의 最下의 功德이 뛰어난 까닭을 釋하셨느니라. 그러므로 阿竭多仙人은 十二年間 恒河의 물을 귀에 담아 두고, 耆兎仙人은 一日 中에 大海의 물을 마셔 말리도다. 이와 같은 得通의 仙人은 小乘・阿含經의 三賢의 淺位인 一通도 없는 凡夫보다는 百千萬倍 劣等함이라. 三明六通을 得한 小乘의 舍利弗・目連 等은 華嚴・方等・般若 等의 諸大承經의 未斷三或인 一通도 없는 一偈・一句의 凡夫보다는 百千萬倍 劣等함이니라.
- 華嚴・方等・般若經을 배워 究明한 等覺의 大菩薩은 法華經에 약간 結緣을 한 未斷 三惑・無惡不造의 末代의 凡夫보다는 百千萬倍 劣等하다는 것이 釋의 文에 顯然하니라. 그런데 當世의 念佛宗 等의 사람으로서 自身은 權敎의 機根이므로 實景을 믿지 않는 者는 方等 般若 때의 二乘과 같이 自身을 羞恥(수치)스럽게 알아야 하거늘 조금도 그 義가 없노라. 더구나 世間의 道俗 中에 약간 觀音品・自我偈 等을 읽고 간혹 父母孝養 등을 위해 一日經 等을 쓰는 일이 있으면 말로 妨害하여 가로되, 善道和尙은 念佛에 法華經을 섞는 것은 雜行이라 하여 百의 때는 드물게 一二를 得하고 天의 때는 드물게 三五를 得하며 乃至 天中無一이라 말씀 하셨느니라.
- 어찌 하물며 智慧第一인 法然上人(호넨상인)은 法華經등을 行하는 者를 祖父의 신발 或은 群賊 等에 譬喩하였다는 等 말하며 타박함은, 이와 같이 말하는 스승도 弟子도 阿鼻(아비)의 火焰을 招來할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물어 가로되, 어떠한 모습과 말을 가지고서 法華經을 世間에 타박하여 말하는 者라 하느뇨,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 생각 되도다.
答하여 가로되「 처음에 智者가 말씀하셨다고 하여 이야기하신 것이야말로 法華經을 타박해서 말하는 惡知識외 말이니라. 末代에 法華經을 버리게 되는 者는 마음에는 一代聖敎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에는 權實二經을 分別치 못하고, 몸에는 三衣一鉢을 지니고 혹은 阿練若에 몸을 숨기고 或은 世間의 사람에게 훌륭한 智者라고 생각되며 더우기 法華經을 깊이 잘 안다는 것을 남에게 알리려고 하여, 世間의 道俗에게는 三明六通의 阿羅漢과 같이 尊重받고 法華經을 滅失하리라고 쓰여 있느니라.
물어 가로되, - 그 證據는 어떠하오, 答하여 가로되, 法華經 勸持品에 曰 「모든 無智의 사람이 惡口罵詈 等하고, 및 刀杖을 加하는 者가 있으리라. 우리들은 모두 應當 참으리다」 文. 妙樂大師가 이 文의 뜻을 釋하여 가로되 「처음의 一行은 대체로 邪人을 밝히니, 卽 俗衆이라」 文, 文의 心은 이 一行은 在家의 俗男俗女가 權敎의 比丘 等에게 꾀임을 當하여 敵對한다고 함이니라. 經에 가로되 「惡世中의 比丘는 사지로서 마음이 諂曲하여 아직 得하지 않음을 이를 得하였다고, 생각하여 我慢心이 充滿하리라」 文・妙樂大師가 이 文의 心을 釋하여 가로되,
- 다음의 一行은 道門增上慢의 者를 밝힘이라」文・文의 心은 惡世末法의 權敎의 諸比丘가 나는 法을 得하였다고 自慢하여 法華經을 行하는 者의 敵이 되리라고 하는 것이니라. 經에 가로되 「或은 阿練若에서 納衣하 고 空閑에 있어서 스스로 眞實의 道를 行함이라고 생각하여 人間을 輕賤하는 者가 있으리라. 利養에 貪着(탐착)하는 故로 白衣를 爲해 法을 說하여 世上에서 恭敬받음이 六通의 羅漢과 같으리라. 이 사람은 惡心을 품고 恒常 世俗의 일을 생각하고 이름을 阿練若에 빌어서 즐겨 我 等의 罪過를 내어놓으리라. 더우기 이와 같은 말을 하리라.
- 이 모든 比丘들은 利養을 貪하는 故로 外道의 論義를 說하고, 스스로 이 經典을 만들어 世間의 사람을 誑惑하도다. 名聞을 求하기 爲하는 故로 分別하여 이 經을 說한다고, 恒常 大衆속에 있어서 我等을 毁諦하기를 바라는 故로, 國王・大臣・婆羅門・居士 및 餘他의 比丘衆을 向해 誹諦하고 나의 惡을 說하되, 이는 邪見의 사람・外道의 論議를 說한다고 말하리라」
- 이상 妙樂大師가 이 文을 釋하여 가로되 「三에 七行은 僣聖增上慢의 者를 밝힘」 文. 經과 釋의 心은 惡世中에 많은 比丘가 있어 몸에는 三衣一鉢을 지니고 阿練若에 居住하며, 行儀는 大迦葉 等의 三明六通의 羅漢과 같이 在家의 諸人에게 恭敬받고 一言을 吐하면 如來의 金言과 같다고 생각되어, 法華經을 行하는 사람을 論破하기 위해 國王 大臣들을 뵈옵고는 이 사람은 邪見 게다가 易行中에서도. 더욱 觀經의 念佛往生은 易行이라고 이것을 세운다면, 權實雜亂의 罪過는 大諦法인데다 一適의 물이 漸漸 흘러 大海가 되고.
- 一塵이 쌓여서 須彌山이 되듯이 점차로 權經의 사람도 實經으로 나아가지 않고, 實經의 사람도 權經에 떨어져 權經의 사람이 漸次로 國中에 充滿하면, 法華經 隨喜의 마음도 멈추어 國中에 王이 없는 것과 같고, 사람이 혼을 잃은 것과 같이 法華, 眞言의 모든 山寺는 荒廢하여 諦天善神・龍神 等 一切의 聖人은 나라를 버리고 떠나면, 惡鬼가 기회를 얻어 亂人하니 惡風이 불고 五穀(오곡)도 여물지 않고 疫病이 流行하여 人民을 滅亡케 하리라. 이 七八年前까지는 諸行은 오래도록 往生치 못한다고, 善導和尙이 千中無一이라 定하신 데다 選擇에는 諸行을 내던져라. 行하는 者는 群賊이라고 쓰였다는 등 放語를 말하였지만,
- 또 이 四五年後에는 選擇集과 같이 사람에게 勸하는 者는, 謗法의 罪에 의해 師壇함께 無間地獄에 떨어진다고, 經에 쓰였다고 말하는 法門이 出來한 듯 하였는데, 처음에는 念佛者 모두가 不可思議하다고 생각한데다 念佛을 말하는 者는 無間地獄에 떨어진다고 말하는 惡人 外道가 있다는 등의 욕설을 하였으나, 念佛者・無間地獄에 떨어진다 고 하는 말에 智慧가 생겨서 各己 選擇集을 자세히 披見하건대 참으로 謗法의 書라고 認定하였는지. 天中無一의 惡義를 멈추고 諸行往生의 뜻을 念佛者마다 이를 세우도다. 그렇기는 하나 다만 입으로만 許容하고 心中에는 역시 본래의 千中無一을 생각했도다,
- 在家의 愚人은 內心의 謗法임을 모르고서 諸行往生의 말에 속아 念佛者는 法華經을 誹謗하지 않았는데, 法華經을 誹謗한다는 것을 聖道門의 사람이 말함은 僻事라고 생각했을 것이로다. 오로지 諸行은 千中無一 이라 말하는 사람보다도 謗法의 마음은 더한 것이니라. 罪過가 없다는 것을 남에게 알리고 게다가 念佛만을 또 弘法하려고 궁리하니, 이는 오로지 天魔의 計策이로다.
물어 가로되, 天台宗中의 사람이 세우는 일이 있는데 天台大師는 爾前과 法華를 相對해서 爾前을 타박함에 二義가 있느니라. 一에는 約部 四十餘年의 部와 法華經의 部와 相對해서 爾前은 麤이며 法華는 妙이니라고 이를 세우고, 二에는 約敎・敎에 麤妙를 세워 華嚴・方等・般若 等의 圓頓速疾의 法門을 妙라고 讚歎(찬탄)하고 華巖・方等・般芳 等의 三乘歷別의 修行의 法門을 前三敎라 이름하여 麤라고 타박했노라. 圓頓速疾의 쪽을 타박하지 않고 法華經과 同一視하여 一味의 法門으로 했다고 함은 어떠하오. 答하여 가로되. 이 일은 未審적다고 하는 일도 있으리라. 생각됨은 天台 妙樂 以後부터 지금까지 論이 있었느니라. - 天台의 三大部 六十卷 통틀어 五大部의 章疏中에도 約敎의 時는 爾前의 圖를 타박하는 文이 없고, 오직 約部의 時만이 爾前의 圖를 하나로 묶어서 타박했느니라. 日本에 二義가 있으니 園城寺(온죠사)에는 智證大師(치쇼대사)의 釋에서 생겨 爾前의 圖를 타박한다고 말하고, 山門에서는 타박하지 않는다 고 말하는 서로의 文釋이 있어서 모두 所見이 있도다. 그렇지만 아직껏 決定치 못했노라. 但 나의 流의 義에는 不審이 풀렸다고 생각하도다. 그 까닭은 天台大師가 四敎를 세우심에 四의 道理가 있는데,
- 一에는 爾前의 經에 四敎를 세우고 二에는 法華經과 爾前을 相對하여 爾前의 圓을 法華의 圖와 同一視하여 前三敎를 타박하는 일이 있도다. 三에는 爾前의 圓을 別敎에 攝하여 前三敎라 타박하고 法華의 圓을 純圓이라 세움이라. 四에는 爾前의 圓을 法華와 同一視 할지라도 但 法華經의 二妙중의 相待妙와 同一視하되 絶待妙와는 同一視하지 않느니라. 이 四의 道理를 相對해서 六十卷을 생각하면 狐擬(호의)의 얼음은 풀렸도다. 일일의 證文은 또한 숨기고 또는 繁多한 故로 이것을 記載하지 않도다.
- 또 法華經의 本門에 있어 爾前의 圓과 迹門의 圓과를 타박함은 不審없는 것이니라. 爾前의 圓을 別敎에 攝하여 約敎의 時는 前三爲麤後一爲妙라 하느니라. 이 때는 爾前의 圓은 無量義經의 歷劫修行 內에 들어가느니라. 또 傳敎大師의 註釋 속에 爾前의 八敎를 들어 四十餘年 未顯眞實 속에 넣고 或은 前三敎를 迂回(우회)라고 세워 爾前의 圓을 直道라 말하고 無量義經을 大直道라고 말하니 자세히 볼지어다.
물어 가로되, 法華經을 믿는 사랑은 本尊과 行儀 그리고 日常의 所行은 어떻게 해야 하느뇨. 答하여 가로되, 第一 에 本尊은 法華經 八卷 一 卷 一品 或은 題目을 써서 本尊으로 定할지어다 라고 法師品 및 神力品에 쓰였느니라. 또 堪當할 수 있는 사람은 釋迦如來・多寶佛을 쓰거나 만들어서 法華經의 左右에 이것을 세워 모실지어다. 또 堪當할 수 있다면 十方의 諸佛・普賢菩薩 等도 만들고 써서 받들지어다. - 行儀는 本尊의 御前에서 반드시 坐立行 할지어다. 道場을 나와서는 行住坐臥를 가리지 말지어다. 日常의 所行은 제목을 南無妙法蓮華經라고 奉唱할지어다. 堪當할 수 있는 사람은 一偈・一句라도 奉讀할지어다. 助緣에는 南無釋迦牟尼佛・多寶佛・十方諸佛・一切의 諸菩薩・二乘・天人 ・龍神・八部 等은 心에 따를지어다. 愚者가 많은 世上이 되면 一念三千의 觀을 우선으로 하지 않으며 그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習學하여 이를 觀할지어다.
물어 가로되, 오직 題目만을 부르는 功德은 어떠하오. 答하여 가로되, 釋迦如來는 法華經을 說하려고 생각하시어 出世하셨지만, 四十餘年 동안은 法華經의 名號를 숨겨두려고 생각하시어, 聖壽 三十때부터 七十餘에 이르기까지 法華經의 方便을 만들어 七十二가 되어 비로소 題目을 불러 내어놓으셨으니, 諸經의 題目에다 이를 比較하지 말지어다. 게다가 法華經의 肝心인 方便・壽量의 一念三千・久遠實成의 法門은 妙法의 二宇에 包含되었느니라. 天台大師는 玄義 十卷을 만드시고 第一 의 卷에는 略해서 妙法蓮華經의 五子의 意를 말씀하셨도다. - 第二의 卷부터 七의 卷에 이르기까지는 또 널리 妙의 一字를 說하셨으며 八의 卷부터 九의 卷에 이르기까지는 法蓮華의 三字를 釋하고 第十의 卷에는 經의 一字를 說하셨느니라. 經의 一字에 華嚴・阿含・ 方等・般若・涅槃經을 包含하셨느니라. 妙法의 二字는 玄義의 心은 百界千如・心佛衆生의 法門이로다. 止觀 十卷의 心은 一念三千・百界千如・三千世間・心佛衆生・三無差別이라고 세우셨노라. 一切의 諸佛菩薩, 十界의 因果・十方의 草木.瓦礫(와력) 等은 妙法의 二宇가 아니라고 하는 일은 없도다. 華嚴・阿含 等의 四十餘年의 經들은 小乘經의 題目에는 大乘經의 功德을 包含하지 않으며 또 大乘經에도 往生을 說하는 經의 題目에는 成佛의 功德을 包含하지 않노라.
- 또 王이기는 하지만 王中의 王이 아닌 經도 있으며, 부처도 또 經에 따라 他佛의 功德을 包含하지 않도다. 平等意趣를 가지고 他佛과 自佛과를 같다고 말하고 혹은 法身平等을 가지고 自佛・他佛이 같다고 말함이라. 實은 一불에 一切佛의 功德을 갖추지 않으며, 이제 法華經은 四十餘年의 諸經을 一經에 담고 十方世界의 三身圓滿의 諸佛을 모아서 釋迎一佛의 分身의 諸佛이라 말하는 고로, 一佛은 一切佛로서 妙法의 二字에 諸佛이 모두 들어 있느니라. 그러므로 妙法蓮華經의 五字를 부르는 功德은 莫大하며, 諸佛・諸經의 題目은 法華經의 所開이며 妙法은 能開라고 알고 법화경의 題目을 부를지어다.
물어 가로되, 이 法門을 拜聽하고 또 智者에게 물어 말씀드려 보니 法華經의 훌륭함은 이러니 저러니 할 것이 없느니라. 但 器量 있는 사람은 오직 自身만은 그래야 할지니라. 末代의 凡夫를 向해 곧바로 機도 모르고 爾前의 敎를 타박하여 말하며, 法華經을 行하라고 말함은 年來의 念佛 等을 버리고, 또 法華經에는 아직 功도 들이지 않으니 有에도 無에도 붙지 않는 것 같이 되리라. 또 機도 모르고 法華經을 설하신다면 믿는 者는 이러니 저러니 할 것 없고 萬若 誹謗하는 者가 있다면 반드시 地獄에 떨어지리라. 게다가 부처도 四十餘年間・法華經을 說하지 않으신 것은 若但讚佛乘・衆生沒在苦이기 때문이라고, 在世의 機조차 역시 그러하니 어찌 하물며 말대의 凡夫에 있어서랴, - 그러므로 譬喩品에는 「부처가 舍利弗에게 告하여 가로되, 無智의 사람 중에서 이 經을 說하지 말지어다」云云 이러한 道理를 말함은 어떠하뇨. 答하여 가로되, 智者의 이야기라고 말씀하심을 들으니 結局 末代의 凡夫에게는 機를 감안하여 說할 것이되 分別없이 說하여 사람이 誹謗케 하는 일이 없을 지어다 라고 함이로다. 그 사람이 그와 같이 말하신다면 答辨하는 方法은 대저 若但讚佛乘・乃至 無智人中 等의 文을 내신다면 또 一經 內에 凡有所見・我深敬汝等 等이라 說하여 不輕菩薩이 杖木瓦石으로써 맞고 추방당하심을 돌이켜보지 않으심은 어떠한가 라고 말씀하시라.
물어 가로되, 一經 내에 相違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理解하기 어려우므로 詳細히 듣고자 하나이다. - 答하여 가로되. 方便品 等에는 機를 감안하여 이 經을 說할지어다 라고 쓰였고, 不輕品에는 비방하더라도 오직 强하게 이를 說할 지어다 라고 쓰여 있도다. 一經의 前後가 水火와 같으므로 天台大師가 會釋하여 가로되 「本已有善에게는 釋迦가 小를 가지고 이를 將護하고 本未有善에게는 不輕이 大를 가지고 이를 强毒함이라」文. 文의 心은 본래 善根이 있어 今生內에 得解할 者를 위해서는 즉시 法華經을 說할지어다. 그런데 그 中에 역시 듣고 誹謗할 機가 있으면 잠시 權經을 가지고 引導하여 後에 法華經을 說할지어다.
- 本是 大의 善根도 없고 至今도 法華經을 믿지 않으니 별일이 없더라도 惡道에 떨어질 것이므로 오직 强하게 法華經을 說해서 이것을 誹謗케 하여 逆緣이라도 되게 하라고 會釋하는 文이니라. 이 釋과 같음은 末代에는 善이 없는 者는 많고 善이 있는 者는 적은 故로 惡道에 떨어지는 것은 疑心이 없도다. 이왕이면 法華經을 굳이 說해 들려주어 毒鼓의 緣으로 할지어다. 그러니 法華經을 說하여 謗緣을 맺을 時節이란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로다.
- 또 法華經의 方便品에 五天의 上慢이 있어 略關三顯一 을 듣고 廣開三顯一의 때 부처의 御力으로써 자리를 뜨게 하신 後에 涅槃經과 四依의 邊에서 今生에 깨달음을 得하게 하신 것과, 諸法無行經에 喜根菩薩이 勝意比丘를 向하여 大乘의 法門을 굳이 說해 들려주어 誹謗케 하신 것과, 이 두 가지의 相違를 天台大師가 會釋하여 가로되 「如來는 悲를 가지는 故로 發遣하고 喜根은 慈를 가지는 故로 强說함」文・文의 心은 부처는 悲인故로 後의 즐거움을 제쳐놓고 當時 法華經을 비방하여 地獄에 떨어져 苦를 당하게 될 것을 슬퍼하시어 座를 뜨게 하셨노라.
- 譬喩컨대 母가 子息에게 病이 있음을 알더라도 當時의 苦를 슬퍼하여 무조건 뜸을 뜨지 않는 것과 같다. 喜根菩薩은 慈인 故로 當時의 苦를 돌보지 않고 後의 樂을 생각하여 굳이 이것을 說해 들려주심이라. 譬喩컨대 父는 慈인 故로 子息에게 病이 있음을 보고 當時의 苦를 돌보지, 않고 後를 생각하는 故로 뜸을 뜨는 것과 같노라.
- 또 佛在世에는 부처가 法華經을 숨기셨으므로 四十餘年間은 等覺 不退의 菩薩도 이름을 몰랐노라. 게다가 壽重品은 法華經 八箇年內에도 이름을 숨기시고 最後에 들려주셨도다. 末代의 凡夫에게는 區別없이 어떻게 들려 줄 것인 가하고 생각하는 바를 妙樂大師가 釋하여 가로되 「佛世는 當機인 故로 簡擇하고 末代는 結緣인 故로 들려주도다」라고 解釋하시었느니라. 文의 心은 佛在世에는 부처의 一期동안에 많은 사람을 不退의 位에 올려야 하므로 法華經의 名義를 내어 誹謗캐 하지 않고,
- 機를 調熟하여 이것을 說하고, 佛滅後에는 當機의 衆은 적고 결연의 衆이 많으므로 多數에 따라 區別없이 法華經을 설할지어다 라고 하는 釋이니라. 이와 같은 많은 品이 있느니라. 또 末代의 師匠은 대개 機를 모르도다. 기를 모른다면 다만 强하게 實敎를 說할지어다. 그러므로 天台大師의 解釋에 가로되「同等하게 이를 보지 않으면 오직 大를 說함에 허물이 없음」文・文의 心은 機도 모른다면 大를 說함에 罪過가 없다고 하는 文이니라. 또 當時의 機를 보고 說法하는 방법도 있으며 모두 國中의 諸人이 權經을 믿고 實經을 誹謗하여 굳이 쓰지 않으면 彈呵의 마음으로서 說할지어다. 時에 依해 用否가 있을지니라.
물어 가로되, 唐土의 人師中에 一部分은 오로지 權大乘에 머물고 實經에 들어오지 않는 者는 어떠한 緣故이뇨. 答하여 가로되, 부처는 出世하시어 우선 四十餘年의 權大乘과 小乘의 經을 說하고 後에는 法華經을 說하여 말씀하시되 「若以小乘化・乃至於一人・ 我則墮慳貪・此事爲不可」文. 文의 心은 부처가 오직 爾前의 經만을 說하고 法華經을 說하시지 않는다면 부처는 慳貪의 罪過가 있다고 說하셨느니라. - 後에 屬累品에 이르러 부처는 오른쪽 손을 내밀어 세번이나 訓戒하시고 三千大千世界의 外에 八方・四百萬億那由佗의 國土의 모든 菩薩의 頂上을 쓰다듬고 未來에는 반드시 法華經을 說할지어다. 萬若 機가 감당치 못한다면 餘他의 深法인 四十餘年의 經을 說하여 機를 調熟해서 法華經을 說할지어다 라고 쓰였느니라.
- 後에 涅槃經에 거듭 이것을 說하여 佛滅後에 四依의 菩薩이 있어 法을 說함에 또 法의 四依가 있으니, 實經을 끝끝내 弘通하지 않으면 天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을 說하셨느니라. 故로 如來의 滅後 後의 五百年・九百年間에 나오신 龍樹菩薩・天親菩薩 等은 널리 如來의 聖敎를 弘通하심에, 天親菩薩은 먼저 小乘의 說一切有部의 사람으로서 俱舍論을 만들어, 阿含十二年의 經의 心을 말씀하되 전혀 大乘의 義理를 밝히지 않았고, 다음에 十地論・攝大乘論・釋論 等을 만들어 四十餘年의權大乘의 뜻을 說하고, 後에 佛性論・法華論 等을 만들어 대강 實大乘의 義를 說했느니라. 龍樹菩薩 또한 이와 같도다.
- 天台大師는 唐土의 人師로서 一代를 區分함에 大小・權實 顯然하니라. 나머지의 人師는 조금 義理를 說했지만 分明하지 않고, 또 證文이 확실치 않도다. 但 末의 論師 및 譯者・唐土의 人師中에 大小는 區分하였으나 大에 있어서 權實을 區分치 않고, 或은 말로는 區分 한다고 해도 마음은 權大乘의 趣旨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것들은 不退諸菩薩・其數如恒沙・赤復不能知라 생각되느니라. 疑心하여 가로되, 唐土의 人師 中에 慈恩大師는 十一面 觀音의 化身이라 齒牙에서 빛을 發하고, 善導和尙은 彌陀의 化身으로 입에서 부처를 내도다. 이 外의 人師는 通力을 나타내 고 德을 베풀어 三昧를 發得하는 사람이 世上에 많은데, 어찌 權實二經을 分別하여 法華經을 根本으로 하지 않았느뇨.
- 答하여 가로되, 阿竭多仙人 外道는 十二年間 귀속에 恒河의 물을 담고, 婆籔仙人은 自在天으로 되어 三目을 나타냈느니라. 唐土의 道士 中에도 張階(장계)는 안개를 내고 鸞巴(난파)는 구름을 吐하고, 第六天의 魔王은 佛滅後에 比丘・比丘尼・優姿塞 ・ 優姿夷・阿羅漢・辟支佛의 모습을 나타내어 四十餘年의 經을 說하리라고 쓰였도다. 通力으로써는 智者와 愚者를 알지 못하느니라. 오직 부처의 遺言과 같이 오로지 權經을 弘通하고 實經을 끝내 弘通하지 않는 人師와 權經에 宿習이 있어서 實經에 들어가지 않는 者는 或은 魔에 속아서 通力을 나타냄이로다. 다만 法門을 가지고 邪正을 밝혀야 하느니라, 利根과 通力에는 의하지 말지어다.
문응원년 오월이십팔일 가마쿠라 나고에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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