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에 대하여

2008. 12. 19. 16:16佛法 .SGI

 

 

 

제목(題目)을 올릴 때의 마음가짐에 대하여(신.인간혁명 개간(開墾)15)

1.부처와 대면하는 것이므로 엄숙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만 순수한 마음으로 본존님께 부딪쳐 가면 됩니다.

2.본존님은 대자비의 부처님이십니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 고민하는 것, 희망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기원해 가는 것입니다.

3.힘들 때, 슬플 때 괴로울 때에는 아이들이 어머니의 팔에 몸을 던져 매달리듯이 "본존님!"이라고 부르며 사심 없이 부딪쳐 가면 됩니다.

본존님은 무엇이든지 들어주십니다. 마음속을 다 털어 놓듯이, 대화하듯이 제목을 거듭해 가는 것입니다.
이윽고 지옥 같은 괴로움도 거짓말처럼, 이슬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4.만약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면 진심으로 사죄하고 고치는 것입니다. 똑 같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5.또 승부를 낼 때에는 반드시 이긴다고 마음을 정하고 사자가 으르렁 거리듯이, 아수라가 사납게 날뛰듯이, 대우주를 흔들기라도 할 듯이 끝까지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의 밤에는 "정말로 감사합니다!" 라고 깊은 감사의 제목을 드리는 것입니다.

6.어서에도 "朝朝(조조) 부처와 함께 일어나며 夕夕(석석) 부처와 함께 눕고.."(737쪽)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만, 제목을 끝까지 부른 사람은 언제나 본존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것도 현세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본존님이 제천제불이 지켜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오저로부터 안도할 수 있고 그 무엇에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유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끝까지 살아가면 됩니다.

7.제목은 고뇌를 환희로 바꿉니다. 더욱이 환희를 대환희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무슨 일이 있어도 오로지 제목을 끝까지 불러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승리]

"한 사람의 승리"가 만인의 승리를 연다.
따라서 "한 사람"이 중요하다.
그 "한 사람"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지금"의 승리가 중요하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자신이 이긴다"는 것이다.
"눈 앞의 벽"을 혼신의 힘으로 부수어 가는 것이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힘껏) 싸우고 이긴다.

일점 타파·전면전개! 하나의 "벽"을 뚫었을 때---

'기쁨'이 끓어오른다.
'자신감'이 끓어오른다.
'확신'이 깊어진다.
'희망'이 부풀어진다.
'기세'가 나온다.
'미래'가 열린다.

그 제1의 "벽"을 뚫는 힘이 '신심'이다.
신심이란 '용기'의 이명이다.
"완승"을 향한 열쇠는 나의 몸에 구족되어 있는 부처의 생명을 열어가는 신심에 있다! 벽에 도전하는 용기에 있다!


[창제 ]

창제로 하루를 시작한다.
창제로 하루를 마감한다.
창제 속에 희망이 있고
창제 속에 소생이 있다.

그리고 행복의 성으로 인도한다.

깊은 늪에서도 거센 폭풍 속에서도
굳굳하게 지켜주는 창제가 있다.


날 미워하는 생명에게도
날 경시하는 생명에게도
자비로 감싸주는 너그러움이 있다.

미진이 쌓이고 쌓여 수미산이 되듯이
거듭되는 창제에 늘어난 복운
어찌 수미산보다 못할 손가


삼천 대천세계 온갖 보화를 남김없이 담고 있는 창제
내 어이 무슨 복운으로 본존님을 만나
이 존귀한 창제를 하고 있는가.

과거세 십만억의 부처를 공양하고
말법에 어본존을 만난 것일까

인류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쳐본다.
숙업의 그늘에서 우는 중생들이여

우주 삼라만상의 교향곡
아름다운 대자연의 노래
창제소리를 들어봐요.

그 소리는 승리의 소리
환희의 소리
행복의 소리라오.

이 존귀한 창제로 화택과 같은 사바세계에서
저 피안의 언덕을 향해 상락아정의 여생을
함께 떠나지 않으시렵니까!!!

-1996년 11월 16일 泄田大作 -


[기원]

리더는 기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에게나 일가 모두에게도 기원이 중요하다.
기원만이 일체를 타개하고 승리의 원천이 된다.
또한 마와 싸우고 마를 타파한다는 강한 기원의 일념이 있는가에 신심의 정수가 있다.

의사는 신체의 이상이 있는지를 본다.
그렇지만 마음의 세계가 어떤지 오저의 일념이 어떠한지를 보는 것은 불법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오저의 일념이 변혁하는 데서 출발한다.

불행한 일이 일어나거나 간부가 퇴전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신심하고 있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본존에 대한 기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다.
기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 때는 '왜 그런가'하고 생각했던 일도 결과적으로 보면 묘법에 비추어 일어난 일은 모두 가장 좋은 방향으로 향해 간다.

범부의 눈으로 당시에는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신심을 관철하면 때와 함께 모두 깊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신심은 '일체가 의미 있는 것이며 최선이다'고 확신 할 때 밝은 경애가 열린다.
어성훈에 비추어 난과 싸우고 묘법 광선으로 열심히 나가는 용자에게 부처의 가호는 엄연하다.

광포에 힘쓰는 불자를 반드시 지킨다.
이것이 석존의 마음이며, 대성인의 대자대비이시다.

그 강성한 기원은 전 우주에 있는 불계의 역용(力用)을 움직이고, 또한 일체의 보살, 이승, 제천의 움직임과도 공명하면서 소원 만족하는 대승리의 인생을 열어 갈 것임을 확신하기 바란다. 

나를 만드는 것은 결국 나이다.
그 나라는 것을 요약한다면 일념이다.
일념이란 구체적으로는 기원으로 집약된다.

지용의 용사로서 '서원(誓願)한 기원'만이 나를 한없이 향상시키고 활약하게 하고 완성시키는 원동력이다. 서원- 존귀한 사명이 있는 나의 인생, 무엇을 맹세하고 무엇을 원하며 살아가는가.
그 오저에 있는 일념대로 일생은 전개된다.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누구의 책임이라 할 필요도 없다.

대성인은 자체현조(自體顯照)(어서1055쪽) 라고 말씀하신다.

묘법의 빛은 나의 본연의 모습을 비추어 나타낸다. 빛낸다.

이 '나의 생명에 살아가는' 인생만큼 행복한 인생은 없다.

어떠한 분야의 차원의 활동이든, 광선유포에 대한 진지한 기원에서 출발하여 움직이면 움직인 만큼, 만나면 만난 만큼, 그리고 말하면 말한 만큼 신뢰와 우정이 넓혀진다.

모든 것을 자기편으로 하여 제천선신의 역용으로 연결되는 것이 이 불법이다. 

"기원은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오늘 하루 무사고로 자기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또한 출장이나 여행 등의 출발 때도 무사히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그 밖에 정확하게 일념을 정하여 구체적으로 기념한다. 그래야만 기원은 어본존에게 감응하여 '사(事)의 일념삼천'의 법리에 따라 우주에 있는 모든 차원의 움직임이 기원을 실현하는 쪽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묘법을 믿고 행하는 자의 기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것도 기원하는 측의 '강한 일념'이 있고 난 다음이다.

강한 일념은 목적이 명확하고 구체적인 때 생겨난다.

묘법의 기원은 자신의 '생명의 변혁'을 가져오고, 그 변혁은 반드시 '주위 사람들이나 생활환경의 변혁으로 이어진다.

지역의 발전도 경제의 호전도 "나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그런 소원이라도 나의 일념에서 말하는 신심의 역용이 어떠한가에 따라 이윽고 엄연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하게 확신하는 것이다.

기원은 말하자면 '생명의 에너지'로서 전 우주에 전해지고 온갖 변화의 원동력이 되어 간다.

방사능도 자외선도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엄연하게 존재한다.

영향을 미친다.

묘법의 기원의 '에너지'도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 힘은 무한하다.

불법은 실천이다.

행체즉신심이다.

진정한 기원과 행동이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리 없다.

광선유포를 위한 불도수행을 거듭하고 신심이 투철해지면 기원은 반드시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활도 명인이 쏘면 하나의 화살로도 과녁을 맞춘다.

모든 기원이 소원 만족되는 신심의 달인, 인생의 달인이 되기를 바란다.

자기 바로 앞에 놓은 과제를 기원하고 전력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시에 '광포를 위해' 라는 기원에 섰을 때 그 커다란 일념에 작은 고민은 전부 포함되고 전부 호전된다.

 

대우주에도 (혹성의) 공전과 자전이 있다.

광선유포라는 대원을 기원하는 것은 공전이다.

자기의 고민을 기원하는 것은 자전이다.

자전과 공전이 있어야 비로소 자기라는 소우주가 대우주의 궤도와 조화할 수 있다.

아무리 기원해도 사신(邪信:그릇된 믿음)의 기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원이 이루어지기는커녕, 정의를 적대하는 만큼 도리어 자신을 망친다.

이 원리는 광포의 역사에도 엄연하게 보아 왔다.

 

신심의 근본은 기원이다.

자기의 일, 벗의 일을 구체적으로 기원하는 것이다.

자비의 근본도 기원이다.

지도의 근본도 기원이다.

지도를 받는 근본도 기원이다.

그 근본을 잊으면 이미 어본존에게서 벗어난 '책략'이 되고 만다.

책략은 결국 공전하고 모든 사람에게 폐만 끼칠 뿐이다.

기원하고 노력하고 '어본존께 맡기는' 대확신이 중요하다.

진심으로 묘법에 나무(南無)했을 때, 무량한 지혜와 힘이 나온다.

불가능도 가능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기원이 근본이다.

기원하는 것을 잊고 방법론으로 달려갔을 경우는 공전하고 막힌다.

                        - 글/이케다 다이사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