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 강성한 신심으로 본인도 인간혁명하고, 아내의 백혈병도 완치

2026. 3. 8. 21:18佛法 .SGI

 

 

[백혈병 완치 체험담]

일본 -  규슈 야마구치 기고오(山口義剛)

 

 

○ 저는 작년 5월달 열아홉살의 젊은 나이로 결혼했으며 현재 한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결혼하기 이전에는 히가시쿠(東區)에서 부모님과 형제 3명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안의 입신은 제가 태어나고 나서 83일째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님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 당시 아버지는 엄청난 술꾼에다가 가난하고 매일 어려운 생활이었기때문에 단지 행복하게 되고싶다는 일념으로 입신했다고 합니다. 현재에는 그러한 우리집안도 지부의 거점으로서 매일 제목이 끊이지 않는 가정으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신심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학회원이라는 자각도 없이 지내왔었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저는 중학교 1학년 부터 비행을 저지르고 신이나, 무면허 운전 등으로 대단히 부모님을 걱정시켰으며 몇번이고 경찰에 신세를 졌습니다. 고등학교조차도 중퇴해버리고 폭주족의 리더가 되어 매일밤 도로를 질주하였습니다. 끝내는 폭력조직으로 들어가 공갈, 채무의 강제 징수대행 등으로 나날을 보내며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들을 속여 돈을 갈취하였습니다.

 

심지어는 호기심으로 환각제를 하기도 하고, 상습적으로도 하게 되어 이틀에 한번 정도는 환각제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친구들이나 여자들에게도 환각제를 팔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무렵의 저는 폭주족과 폭력조직의 연결상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고 먹는데는 걱정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열아홉살의 초기까지는 위와 같은 생활에 푹 빠져 있었으며 그동안 학회의 남자부들이 회합참석을 권유하러 왔었습니다만, 전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저에게도 전환기가 찾아왔습니다. 자동차를 갖고 싶었기 때문에 목돈이 필요하게 되어 채무 강제징수와 같은 일에 몰두하여 결국 차를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그 차를 운전하던중 사고가 발생하여 한달동안 입원하게 되었습니다그럴때에 매일 문병하러 왔었던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현재 저의 아내입니다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통해 대단히 감동을 받은 저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모님은 물론 그녀의 양친도 우리들의 결혼을 맹렬하게 반대하였습니다.

 

특히 그녀의 부모님의 반대는 굉장했었고 우리가 아직 너무 젊다는것과

"그러한 깡패에게 내 딸을 줄 수는 없다! " 라고 거절을 하여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그녀는 벌써 임신3개월이었기 때문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도 있어, 어떻게 해서든 결혼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늘 그늘에서 걱정해주시는 남자부 부장님에게 둘이서 의논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부장님은 제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가면 당신은 파멸입니다. 정말로 진지한 사람이 되고 실증을 보일 수 밝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침 저녁의 근행, 창제와 절복 외에는 없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고 먼저 아침 저녁의 근행과 창제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실천하는 가운데, 불가사의 하게도 무책임하고 일도 불안정했던 제가 근행의 지속을 통해 일도 안정되고 인생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우 기뻐서 이 신심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게 되어 친구들을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변한 제 모습을 본 친구인 K군이 어본존님을 모시고 싶다고 말하는것이었습니다. 그것뿐아니라, H군 형제, 그리고 M군 까지 어본존님을 모시고 입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혼에 반대했던 양쪽 양친께서도 저의 변한 모습을 보고 결혼을 허락해주셔서 떳떳이 514일에 부모님들은 물론, 많은 친구들, 학회 동지분들로부터 축복을 받아 생각지도 못했던 성대한 결혼식을 올릴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결혼하고서 우리들은 작년 8월에 니시쿠(西區)에 있는 시모야마몬(下山門)단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9월에 대망의 첫아이도 태어났으며 충실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숙업이었는지 밤을 새워 일을 하고 귀가하는 도중에 다시 큰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여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사망했을 상황이었지만, 어본존님 덕분으로 전신 타박과 가벼운 뇌진탕에 그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 사고로 입원하고서 거의 한달이 지난 127일의 일이었습니다.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와 이번에는 아내가 큐수대학병원에 구급차에 실려 입원하였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너무나 놀라 저는 병원을 빠져나와 아내가 있는 큐수대학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바로 의사선생님이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의사선생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의 병명은 급성 임파성 백혈병입니다! 혈액중에는 99% 나 암세포가 있으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엄청난 수의 균들이 혈관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미 암세포때문에 왼쪽눈도 실명상태입니다. 난병중의 난병입니다. 안타깝습니다만 현대의학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길어도 3개월 빠르면 3일에서 일주일 정도 일것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해두셔야 할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망연자실하였습니다.

 

백혈병이라는 것은 혈액중의 백혈구가 지나치게 많아지는 병으로 사망률이 대단히 높은 병입니다. 아내의 얼굴을 잠깐 보려고 하였으나 이미 병실의 문에는 면회불가표시가 되어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독을 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실내화로 갈아신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양친과 병실에 들어가니 아내는 침대위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날은 제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던 병원으로는 돌아가지 않고 히가시쿠(東區)에 있는 부모님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서는 학회 동지분들이 모여 아내를 위해 제목을 올려주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들을 보니 '이케다선생님께서 지도하고 계시는 창가학회는 얼마나 훌륭한 단체인가!' 라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창가학회 회원여러분의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낄수가 있었고 제 가슴은 오로지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그때 부장님으로부터 "야마구치씨, 제목을 올리지 않겠어요? 아내를 살리는것도 죽이는것도 지금 야마구치씨가 진지하게 어본존님께 기원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라고 격려를 받아 저는 전 일념을 모아 기원하였습니다. 제목을 올리기 시작한지 몇시간 지난 무렵 저는, "좋다! 지금이야말로 아내를 살려 실증을 보이고 말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내에게 솔직히 병명을 이야기하고 둘이서 어본존님께 기원하여 숙명전환해나갈 수 밖에 없다! " 라고 눈물을 흘리며 결의하였습니다.

 

그때는 저도 교통사고로 인한 입원중의 몸이었으므로 아직 퇴원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러한 여유를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의사가 만류하는것도 뿌리치고 저는 계속 기원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가서 병명에 대해 이야기하니, 아내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이제 어본존님께 제목을 올릴 수 밖에 없다! 무엇때문에 신심을 하는것인가!" 라고 말하며 의사선생님에게 부탁을 드려 병실에 어본존님을 안치하였습니다. 저는 그날 부터 병원에 머물러 있으면서, "퇴원할때에는 둘이서 퇴원할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매일 8시간에서 10시간 제목을 올리며 때로는 밤을 새워, 진심으로 매달리는 심정으로 다음날 아침까지 제목을 올려 나갔습니다.

 

아내는 백혈병이라는 병명을 듣고 이틀동안 계속 울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학회동지분들이 찾아와서 "모두함께 제목을 올리고 있습니다!" 라고 격려해주셨고, 아내도 서서히 제목을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어떤날은 학회동지분으로부터 아내는 "어본존님을 철저히 믿고 제목을 올리세요! 정말로 철저히 믿고 제목을 올리면 사명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숙명전환하여 살 수 있을것입니다! 라고 울면서 격려를 받았습니다.

 

어서 일절에 "南無妙法蓮華經 는 사자후(師子吼)와 같으니, 어떠한 병()인들 장해(障害)를 할 손가" 라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어본존님께 진지하게 기원해나가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것이다" 라고 호소하며 그 후로부터 둘이서 지금까지 올리지 못했던 정도의 제목을 올리고 또 올리고, 올려나갔습니다.

 

그러나 그간 몇번이고 수마(睡魔)에도 사로잡혔고, 또한 저는 병실의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기 때문에 다리가 저리다기보다 너무너무 아팠습니다. 게다가 교통사고때 머리를 받았던 후유증도 나와 몇번이고 쓰러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져버리면 아내의 목숨은 없다!" 라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제목을 올리고 또 올려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입원 후 이주일째인 1221일에 아내는 첫번째 검사를 받게되었습니다. 이 검사는 가슴으로부터 피를 뽑는 검사로 무척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때에도 아내는 제목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내의 혈액중의 백혈구 양이 처음의 99%에서 60%로 줄어든것이 아닙니까! 저는 "됐다!!"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어본존님의 덕분이라고 아내와 함께 뛸듯이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감사의 제목을 올렸습니다.

 

그동안 아내는 식욕이 없어 음식을 제대로 못먹었지만 그 이후에는 식욕이 왕성해져 많이 먹게 되어 처음의 48Kg 이었던 몸무게도 60Kg가 되며 순식간에 건강을 회복해갔습니다. 그리고 19일에 두번째 검사가 있었습니다. 이때에는 큐슈 대학병원의 의사선생님들도 놀라울 정도로 백혈구의 양이 줄어가고 있었습니다. 불가사의하게에도 그때에는 20%까지 줄어 들어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들도 믿기지 않아 다시한번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습니다만, 몇번을 검사해도 20%였습니다. "60%부터 30%까지 줄이겠다" 라는 저의 기원이었습니다만, 결과는 30%보다 10%나 더 적은 20%였던 것이었습니다.

 

다시금 "이 신심은 굉장하다!!" 라는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찼습니다!!  이때의 기쁨이라는것은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을정도의 감격이었으며 저와 아내는 너무너무 기뻐서 둘이서 부둥켜 안고 기뻐하였습니다. 의사선생님들도 우리들의 신앙의 정열에 탄복하고 있었습니다. "젊은데도 굉장하군요다음검사가 기대됩니다!" 라고 미소를 가득 지었습니다.

 

다음 검사는 일주일 후였습니다. 우리들은 그날부터 일주일동안 제목을 진지하게 올렸습니다. 일주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 가버리고 드디어 검사일이 다가왔습니다. 의사선생님들도 "오늘은 얼마나 줄고 있는지 기대가 됩니다!!" 라고 우리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대단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의사선생님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주사기로 아내의 가슴을 꽂았더니 피가 자연스럽게 주사기안에 들어온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깨끗한 피가 솟아나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굉장한 일이다!! 여태까지 백혈병 환자로 이런일은 없었다!!" 라고 선생님들 모두가 놀라워하고 있었습니다.

 

검사결과도 백혈구는 10%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저는 "이겼다!! 병마에 이긴것이다!!" 라고 큰소리로 외치고싶어 견딜수 없었습니다!! "어본존님! 정말 감사합니다!" ....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절복이다절복을 하여 보은의 지성(至誠)을 다해야 한다!" 라고 굳게 맹세하고, 더욱 제목에 힘을 더했습니다.

 

그리하여 친구인 하마다(浜田)군에게 이 불법의 굉장함을 이야기하려고 바로 나갔습니다. 아내의 체험을 이야기하자 저의 변한 모습에 하마다군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너를 따라가겠다" 라고 말하며 25일에 어본존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절복의 결과 26일의 검사에서는 10%였던 백혈구가 2%까지 줄어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처음에는 일주일부터 3개월의 목숨이라고 선고 받았던 아내가 약 2개월여만에 백혈구가 99%로부터 겨우 2%까지 줄었다는것에 대해 큐슈 대학병원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기적이다!" 라고 놀라워 했습니다! 또한 처음에는 병원에서 신심하는것을 반대하고 있었던 담당의사도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세이쿄(聖敎) 신문을 구독하게 되어 불법에 이해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기쁘게도 병실도 개인 중환자실로부터 일반병실로 옮기고 212일에는 드디어 퇴원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도 아내도 이 체험으로 "어본존님은 절대로 틀림없다!" 라고 하는 대 확신을 가질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신심하기 이전의 저는 제멋대로 였으며 사람을 상처받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또 괴롭히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케다 선생님과 창가학회와 많은 학회동지분들을 만나 이렇게 위대한 신심을 하게 됨으로써 그러했던 자신이 남을 생각할 수 있게 변하며 또한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선고받은 아내까지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이로 인해 이 불법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정말로 감사의 마음 뿐입니다.

 

저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앞으로는 생애 아내와 함께 니치렌(日蓮)대성인의 불법을 근본으로 하여 이케다 선생님의 지도대로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벗을 한명이라도 더 구하고, 사회속에 실증을 보이고 공헌할 수 있는 청년을, 또한 세계의 평화를 이루어나가는 청년을 한명이라도 더 많이 육성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시대인 21세기를 향해 크게 성장하여 분발해나갈것을 결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