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빛나는 인간주의 세기로

2020. 4. 5. 09:35佛法 .SGI




 세계를 비추는 태양의 불법

 

누구나 빛나는 인간주의 세기!

자타 함께 행복해지는 대자비의 성업

 

강의

211일은 은사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의 탄생 120주년을 맞는 가절입니다.

지용보살 여러분, 하지 않겠습니까!”

절복의 대장군이신 선생님은 사랑하는 동지에게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에게서 말법 유포를 의탁받은 불의불칙(佛意佛勅)의 교단으로서 절복·홍교는 지용보살의 진열인 창가학회가 해야 할 긍지 드높은 사명입니다.

여기에 바로 자타 함께  행복을 실현하는 니치렌불법의 진수가 있고 종교의 생명선이 있습니다.

 

확대라는 사제공전의 역사를


1952년의 몹시 추운 어느 날, 청년인 나는 최고의 홍교로 니치렌 대성인 탄생의 달 그리고 도다 선생님이 태어나신 달인 2월을 축하해드리자.’고 가마타지부 멤버들에게 힘주어 말했습니다.

나는 광선유포의 위대한 스승의 제자로서 반드시 보은하는 차원에서 확대를 달성하겠다고 정했습니다. 그것이 훗날 ‘2월투쟁이라 일컫는 광포확대의 돌파구를 연 투쟁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광포의 전진이 바로 스승에게 바치는 최대 최상의 보은입니다.

 

묘법 홍통은 금생 인계의 추억


어서에 모름지기 마음을 하나로 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나도 부르고 타인에게도 권하는 일만이 금생(今生) 인계(人界)의 추억이 되느니라.”(어서 467) 하고 씌어 있습니다.

묘법(妙法)을 부르고 넓히는 실천은 상대방을 행복의 궤도로 이끄는 것은 물론 자신도 복덕에 감싸여 자타 함께 행복해지는 지름길입니다.

홍교를 위한 행동에는 불도수행의 일체를 포함한 신심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전 세계에서 밝고 명랑하게 행복의 불법대화를 펼치는 창가학회의 사명과 확신에 관해서 배워봅시다.

 

<어의구전>의 일절


제삼(第三) 여래소견행여래사지사(如來所遣行如來事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는 여래(如來)의 사자(使者)로서 왔느니라. 여래(如來)란 석가(釋迦)이고 여래사(如來事)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여래(如來)란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중생(衆生)을 말하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진실(眞實)한 사자(使者)이니라 운운(云云).(어서 73614~16)

 

현대어역


법화경 법사품 제10이 사람은 다시 말해 여래의 사자로서, 여래가 보내, 여래의 일을 행하였다.”에 관하여 어의구전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법에 법화경을 넓히는 자는 여래, 다시 말해 부처의 심부름꾼으로 출현한 것이다.

여래란 석존, ‘여래사란 남묘호렌게쿄다. 또 여래란 십계삼천의 중생 다시 말해 모든 중생을 의미한다.

지금 니치렌과 그 문하로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는 자는 진실한 부처의 심부름꾼이다.

 

부처의 심부름꾼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지금 이때에 각각의 국토에 부처의 심부름꾼으로 태어났습니다. 숙연 깊은 사제, 동지로서 존귀한 사명을 띠고 함께 태어났습니다.

이번에 배독할 <어의구전>은 말법에 묘법을 홍통하는 대성인과 문하야말로 법화경의 글월에 비춰 진실한 부처의 심부름꾼이라고 가르치신 구절입니다.

본디 여래란 십계삼천의 중생을 말하느니라.” 하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 중생이 바로 여래, 다시 말해 부처입니다.

따라서 여래의 심부름꾼이라 해도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어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 스스로 부르고 남에게도 넓히는 여래사를 행하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진실한 부처의 심부름꾼이 됩니다.

 

발심하종과 문법하종의 공덕은 같다


절복을 하는 사람, 학회활동을 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겨라. 그분들이야말로 니치렌불법의 진수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다 선생님은 홍교하는 동지를 최대로 칭찬하셨습니다.

또 좀처럼 홍교가 되지 않아 고민하는 다기진 동지에게는 아무것도 한탄할 필요가 없다. 곧바로 신심을 하는 발심하종(發心下種)과 법을 들려주는 문법하종(聞法下種)의 공덕은 같다. 반드시 결실을 볼 때가 온다. 그러니 계속 하종을 해야 한다.” 하고 따뜻하게 격려하셨습니다.

홍교가 결실을 맺든 맺지 못하든 상관없이 절복을 하려는 마음 자체가 부처의 마음입니다. 절복을 행하는 그 자체가 부처의 소원인 만인의 행복을 실현하는 성업(聖業)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틀림없이 무량한 공덕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가령 몰이해에서 비롯된 비판을 받아도 행동한 만큼 그대로 자기의 선근(善根)이 됩니다. ‘진심이 통하도록’ ‘여래의 심부름꾼으로서 금세의 사명을 완수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끝까지 기원하면서 대범하게 나아가면 됩니다. 모두 불연(佛緣)이 되기에 즐겁게 활기차게 하면 됩니다.

말한 사람도 이야기를 들은 사람도 모두 공덕이 나옵니다. 성불사(聲佛事)를 함(어서 708)입니다.

 

모두 절대적 행복경애


도다 선생님은 법난(法難)을 당한 감옥에서 몸은 비록 자유롭지 못해도 당신이 실로 허공회(虛空會)에 있던 지용보살이 틀림없다고 깨달으셨습니다.

나는 지용보살이라고 대확신을 얻은 도다 선생님의 옥중오달이 바로 오늘날 세계광선유포의 길이 열린 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모든 민중을 자신이 감옥에서 깨달은 것처럼 지용의 사명, 부처의 심부름꾼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절복하라고 부탁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모두 살아있는 자체가 즐겁다고 느끼는 절대적 행복경애로까지 고양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처의 심부름꾼으로서 살아갈 것을 강하게 촉구하셨습니다.

 

절복을 하려는 마음 자체가 부처의 마음

모두 불연이 되기에 즐겁게 활기차게

 

남묘호렌게쿄로 살고 있다

도다 선생님에게 절복을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자기자신의 절복에도 통하는 것입니까?” 하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럼 가르쳐주지.’ 하고 신심의 핵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남묘호렌게쿄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외에 절복은 없다. 달리 수단도 방법도 아무것도 없다.”

남묘호렌게쿄로 살고 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부처의 심부름꾼, 지용보살로서 사명을 완수하고자 살고 살고 끝까지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의 밑바탕에 절복정신이 깔려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인생관, 생사관에 자연히 불법(佛法)의 위대함이 나타납니다.

밑바탕에 이 신심의 확신과 긍지가 있다면 자연스레 불법의 위대함을 말하고 싶어집니다. 또 자신의 모습을 통해 불법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생명을 남묘호렌게쿄의 율동에 합치시키는 것입니다.

부처의 생명은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늘 우리와 함께있는 하나입니다.

불성(佛性)도 불신(佛身)도 중생의 당체(當體)의 색심(色心)”(어서 800)입니다. 그러므로 부처의 지혜도 힘도 용기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경애가 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부처의 대생명력이 맥동한다


도다 선생님은 나는 오직 남묘호호렌게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정하는 것이 말법의 절복이라고 한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고민에 휩싸여 사회의 거친 파도 속에서 악전고투하는 범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대성인의 유명(遺命)자절광선유포(慈折廣宣流布)’를 자신의 사명이라 정하고 나아감으로써 어떠한 숙명의 폭풍우도 이겨낼 수 있는 대생명력이 맥동합니다. 순간순간에 부처의 생명이 용현합니다.

마키구치(牧口) 선생님이 소중히 여기신 <어의구전>에는 번뇌의 어니(淤泥) 속에 진여(眞如)의 부처가 있으니 우리들 중생을 말하느니라.”(어서 740) 하고 씌어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모두 이겨내 미래 영원히 이 이상은 없다고 할 수 있는 행복경애를 구축해 대대손손 공덕이 전해집니다. 이것을 어본불(御本佛)은 약속하셨습니다. 이보다 더한 환희도 긍지도 없지 않겠습니까.

 

 

삼대비법품승사(三大秘法稟承事)의 일절


제목(題目)이란 이의(二意)가 있으니 소위(所謂) 정상(正像)과 말법(末法)이니라 . 정법(正法)에는 천친보살(天親菩薩용수보살(龍樹菩薩)이 제목(題目)을 부르셨지만 자행(自行)만으로 그쳤고, 상법(像法)에는 남악(南岳) 천태(天台) ()이 또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셨는데 자행(自行)을 위함이었지, 널리 타()를 위하여 설()하지 않으셨으니 이는 이행(理行)의 제목(題目)이니라.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이제 니치렌(日蓮)이 부르는 바의 제목(題目)은 전대(前代)와는 달리 자행화타(自行化他)에 걸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며, 명체종용교(名體宗用敎)의 오중현(五重玄)의 오자(五字)이니라.

(어서 102212~15)

 

현대어역


제목이란 두가지 의의가 있다. 이른바 정법, 상법시대의 제목과 말법시대의 제목이다.

정법시대는 천친보살, 용수보살이 부르셨지만 자행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상법시대에는 남악, 천태 등이 또한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렀지만 자행을 위해서이지 널리 타인을 위해서 설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행의 제목이다.

말법에 들어와 지금 니치렌이 부르는 제목은 앞선 시대와 달리 자행화타의 양면에 걸친 남묘호렌게쿄다. 이 제목은 명(), (), (), (), ()의 오중현을 갖춘 묘호렌게쿄의 다섯 글자이다.

 

말법은 자행화타에 걸친 창제행


<삼대비법품승사>의 일절은 말법시대에 맞는 제목의 수행을 가르치신 부분입니다.

정법, 상법시대의 정사(正師, 불법을 올바르게 가르쳐 이끄는 사람)는 자행을 위해 제목을 불렀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 대성인이 부르기 시작하신 제목은 말법의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자행뿐 아니라 화타에 걸친 남묘호렌게쿄의 창제행입니다.

말법의 중생은 남묘호렌게쿄를 말하고 들려줘서 불종(佛種)을 생명에 곧바로 심음으로써 생명에 내재한 불성을 발동시켜 구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넓혀야 할 법은 남묘호렌게쿄의 대법(大法)이고, 그 수행은 자행화타에 걸친 창제행입니다.

이 제목의 오중현을 갖추고 있다고 하신 말씀은 일체중생을 구하고 싶다고 바라는 부처의 지혜와 자비의 결정(結晶)이고, 모든 공덕과 복덕이 남김없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바라느냐에 경애가 나타난다


대성인은 대난 속에서도 민중구제를 기원하셨습니다. 불심(佛心)이란 대자비심(大慈悲心) 이것이라고(어서 769)입니다.

밑바탕에 민중구제의 대자비심이 있어야만 말법의 창제행이 됩니다.

우리는 고민이나 어려움에 맞닥뜨리면 자칫 자기 기원에만 급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기원하느냐에 그 사람의 경애가 나타나는 법입니다.

광선유포라는 커다란 기원에 서면, 자신의 괴로움은 어딘가 숨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묘법의 공력으로 자신의 경애를 크게 열어서 숙명을 전환하고 괴로움도 하나하나 더할 나위 없는 보배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원은 고뇌에 사로잡힌 소아(小我)의 껍질을 부수고 대아(大我)에 살아가기 위한 서원의 기원입니다.

타인의 행복과 세계평화에 힘쓰는 자신이 되는 자비의 기원입니다.

사자왕의 마음을 끄집어내는 용기의 기원입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인간혁명을 위해 전진할 수 있는 환희의 기원입니다.

 

절복은 자타 함께 무명을 부수고

함께 법성을 여는 경애변혁을 위한 도전

 

원품의 무명을 물리치는 실천

그와 동시에 우리가 절복에 도전하면서 하는 기원은 불행의 근원인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을 부수고 원품의 법성(法性)’을 여는 생명변혁의 기원이 됩니다.

()을 멸()함을 공()이라 하고 선()을 생()함을 덕()이라고 하느니라.”(어서 762)입니다.

절복은 자타 함께 무명을 부수고, 함께 법성을 여는 경애변혁을 위한 도전입니다. 절복이라는 글자에 담긴 강함의 본질은 다름아닌 불행을 낳는 근원인 무명을 끊는 정신투쟁입니다.

절복은 달리 말하면 자비와 우호의 대화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자신이 고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그래도 민중 속으로 뛰어 들어가 모든 사람을 격려하고 구제한다. 그래서 부처가 된다. 그래서 가족도, 권속도 대공덕에 감싸이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구제하려 고민하는 일은 부처의 고민이자 가장 숭고한 고민입니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이고, 그것이 자신을 단련하고 성불의 인()을 쌓아 무량한 복운이 됩니다.

도다 선생님은 또 절복을 하면 신용이 남는다고도 격려하셨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기원하고 행동하고 말하다보면 무명을 부수고 법성 그대로 살아가는 절대적 행복경애를 열며서 모든 사람의 마음밭에 행복과 희망의 씨앗을 뿌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체중생에게 은혜가 있다


보살이 불도수행을 하면서 가장 먼저 세운 사홍서원(四弘誓願)의 첫 번째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입니다.

모든 사람을 고뇌에서 구제하고 싶다, 모든 민중의 행복을 위해 힘쓰고 싶다는 이 자비의 마음을 확립하는 것이 성불의 길을 가는 첫걸음입니다.

타인의 행복을 기원할 수 있는 자신이 되는 것은 영원히 성장하고, 영겁에 걸쳐 인생을 승리하는 확고한 성불의 궤도에 들어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대성인은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없으면 중생무변서원도의 원()을 일으키기 어렵다.”(어서 937)고 하시며, 고뇌하는 민중이 바로 서원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은인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국제사회가 협력하여 추진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이념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와 대승보살의 중생무변서원도는 자비의 정신에서 공명하지 않을까요.

우리 창가학회가 펼치는 세계적인 운동이 확실한 희망의 빛으로 인류사에 빛날 때는 드디어 이제부터입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가질 것


일찍이 역사학자 토인비 박사가 일본 독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신문사가 기획한 것이 있었습니다.(1970, 마이니치신문사). 내가 박사와 대담하기 몇 년 전입니다.

거기에서 어쩔 수 없이 박복한 운명을 짊어진 이 세상의 아이들은 대체 무엇을 믿고 무엇에 의지해 살아가면 좋을까요?”라는 어느 독자의 절실한 질문에 박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람인 이상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똑같이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고통, 언젠가는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앞서 보내는 일 등입니다.

이와 같은 고뇌는 인생의 본질 중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여기에서 구제받기 위해서는 무언가 종교를 가지는 것 이외에 방법은 없다고 믿습니다. 내가 말하는 종교란 교의나 의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타인의 행복에 대한 배려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자기자신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의 종교를 위해 살고 또 그것을 믿지 않는 한, 자기자신에게나 다른 누군가에게도 견디기 힘든 존재가 됩니다.”

박사는 나와 나눈 대담에서도 인간의 존엄성 확립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그것은 얼마만큼의 자비와 사랑을 기조로 하고 있느냐에 따라결정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만인의 존극성을 드높이 구가하는 인간주의 종교를 실천하고 광선유포의 대원, 사제의 서원에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는 나날의 도전은 벗을 구제하고, 사회의 안온과 평화를 구축하는 확실한 자애의 원천이 됩니다.

 

우리의 도전이 벗을 구제하고

사회 안온과 평화를 구축하는 확실한 원천

 

세계광포도 눈앞의 한 사람에서

도다 선생님은 대혁명을 해야 한다. 무력이나 권력으로 하는 혁명이 아니다. 인간혁명이라는 무혈혁명이다. 이것이 진정한 혁명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대한 세계 광선유포라 해도 그 근본은 눈앞의 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이 세상에서 다하여야 할 사명이 있다

홍교의 발자취는 생명의 법칙에 따른 가장 존극한 사제의 공전보(共戰譜)로서 틀림없이 삼세 영원히 빛납니다.

 

대지에서 솟아나온 우리이라면 우리이라면

이 세상에서 다하여야 할 사명이 있다

 

, ‘인간혁명의 노래를 소리 드높이 부르면서 지용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다같이 춤을 추듯 환희에 불타 종횡무진으로 전진하지 않겠습니까! -***-

- 법련 20203월호 -

 

 

 

[어구해설]

지용보살(地涌菩薩) 법화경 종지용출품 제15에서 석존이 멸후에 묘법 홍통을 의탁할 사람들로 불러낸 보살들을 말한다. 땅속에서 용출해서 지용보살이라 부른다.

어의구전(御義口傳)니치렌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강의하신 법화경의 요문을 닛코 상인이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상하 2권으로 되어 있다. 이번에 배독하는 일절은 법사품십육개(法師品十六箇)의 대사(大事)’ 제삼의 강의다.

발심하종(發心下種) 발심하종은 법을 설하여 들려줘서 발심시키는 것을 말한다. 중생이 법을 듣고 불법의 실천을 결의하는 경우를 말한다. ‘문법하종은 법을 들려줘서 성불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상대방이 믿고 믿지 않고에 상관없이 성불의 인이 되는 법을 설하여 들려주는 경우를 말한다.

허공회(虛空會) 법화경 견보탑품 제11부터 촉루품 제22까지 설법의 회좌는 부처와 모든 민중이 허공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을 허공회 의식이라고 한다. 견보탑품 제11에서 보탑이 출현한 뒤 종지용출품 제15에서 지용보살이 대지에서 부름을 받고나와 여래신력품 제21에서 상수(上首상행보살(上行菩薩)을 비롯한 지용보살에게 홍교를 부촉했다.

절대적 행복경애 어디에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있는 자체가 행복하고 즐겁다고 느끼는 경애다. 2대 회장 도다 조세이 선생님이 성불의 경애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말로 외적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행복한 경애다.

이에 반대되는 말이 상대적 행복경애다.

<삼대비법품승사>(三大秘法品承事)오타 조묘(大田乘明)엑 주신 어서. 니치렌 대성인이 불법의 간요인 삼대비법(三大秘法)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다.

오중현(五重玄)중국의 천태대사(天台大師)법화현의에서 석명(釋名), 변체(辨體), 명종(明宗), 논용(論用), 판교(判敎),(<>, <>, <>, <>, <>의 다섯가지 면에서 묘호렌게쿄(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탁월성을 해석한 것.

원품(元品)의 무명(無明), 원품의 법성(法性) 원품의 무명은 생명의 근원적인 무지(無智)를 말한다. 궁극적인 진실을 밝힌 묘법을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또 그 무지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충동이다. ‘원품의 법성은 사물의 본성, 실상을 말한다. 부처의 깨달음인 궁극적인 진리, 생명에 본디 갖춰진 불성에 해당한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번뇌에 지배당하지 않는 중생의 생명에 성불하기 위한 깨달음의 지혜(보리)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사홍서원(四弘誓願)모든 보살이 처음으로 발심했을 때에 일으키는 네가지의 서원이다. 중생무변서원도(일체중생을 모두 깨달음의 피안으로 건너게 하겠다는 서원), 번뇌무량서원단(煩惱無量誓願斷: 일체의 번뇌를 끊겠다는 서원), 법문무진서원지(法門無盡誓願知: 부처의 가르침을 모두 배우고 깨우치겠다는 서원),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에서 무상의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서원).

토인비 박사 아널드 J. 토인비. 1889~1975,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문명비평가다. 런던대학교,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요직을 역임했다. 대표작 역사의 연구는 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케다 선생님과 함께 발간한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 《이케다 다이사쿠 전집3권에 수록)는 인류에 귀중한 지표를 전하는 책으로 지금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본문 내용은 토인비와 당신의 대화 미래를 살아간다(마이니치신문사 외신부 번역, 마이니치신문사)에서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