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창제(唱題)로 이겨냅시다!!!

2020. 3. 4. 09:52佛法 .SGI


코로나19로 세상이 어지러운 시기입니다. 하루하루가 불안한 요즈음입니다. 우리는 하루 한시간 이상의 창제로 우리의 생명력을 강하게 하여, 각자 면역력을 증강시키고, 제천의 수호로 코로나19가 얼씬하지 못하도록 합시다. SGI회원님!  우리에게는 제목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곳에는 마스크 쓰고, 손을 흐르는 물에 30초이상 비누로 씻고, 손을 얼굴에 만지지 않도록 하시고요!


[제목]

 

제목을 부르면 3가지 변화가 생긴다. 첫째, 생명력이 강해진다. 둘째, 불지혜가 생긴다. 셋째, 복운이 쌓이고, 제천이 수호 한다. 그러므로 제목을 철저히 부르고 실천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복운 넘치는 인생으로 된다.

 

법화경에 이기는 병법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근저로부터 진지하게, 강성하게 기원하는 것이다. 얼굴이 변할 정도로 기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가 타파되지 않으며, 마가 타파되지 않으면 공전하기 쉽다. 어쨋던 하루 1시간, 생활전선에서 싸우는 속에서 제목을 올려라. 제목 제일로 하자. 회합 전에도 제목, 집에 돌아 와서도 제목을 올리는 것이다. 생명이 바뀌지 않을 리가 없다.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 제목을 올려 이긴 사람만이 확신과 환희와 공덕이 나타난다.

 

제목이다. 일체가 제목이다. 백만마디의 지도보다, 백 만권의 철학서보다도 제목이다. 제목을 올려라. 기원해라. 전부 그대로 되어 싸움은 열려져 간다. 자신이 얼마만큼 제목을 올렸는가이다. 제목을 올리면 자연히 교학은 필요하게 되어간다. 제목을 올리면 자연히 그 일이 충실해진다.

 

하루 1시간의 제목을 확고하게 올려나가라. 근행은 신심의 기본이다. 지금대충의 근행을 하고 있으면 10, 20년 후에는 반드시 실패한다. 그것이 아이들로부터 나오기도 하고 가정으로 나오기도 하고 개인의 입장에 따라 여러 곳으로 파급되어 간다. 자신의 신심을 제대로 해가지 않으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얄팍한 잎사귀처럼 되어 버린다. 그러한 사람은 신심의 갑옷을 입지 않고 증상만의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증상만의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근행 하나를 해도 긴장이 없다. 그런 사람은 요주의다.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지만 근본적인 일체의 원인은 근행창제에서 비롯된다. 매일 1시간의 제목을 올려가자. 그 하루 1시간의 제목이 지속되면 자기는 몰라도 생명의 회전이 서서히 시작되어 간다. 생명이 깨끗해지고 풍부해져서 그 자체가 행력으로 되어 간다. 제목을 올려 마를 타파해 가자. 불도수행에서 가장 쉬운 것도 제목이고, 가장 어려운 것도 제목이다. 그러나 일체의 승리의 원인, 복운의 원천은 제목에 있다.

 

근행창제는 범부의 생활 속에서 가장 장엄한 어본불과의 대면이다. 자기 자신의 불계흉중의 어본존을 열어가는 의식이다. 그러므로 상쾌하고 기쁨에 넘쳐야 한다. 목욕탕에서 나온 듯이 개운한 근행이어야 한다.

 

제목 한번이라도 그 만큼의 공덕이 있다. 활도 명인이 쏘면 하나의 화살로 딱 표적에 맞춘다. 일념이 정해진 강하고 깊은 기원은 일념삼천으로 우주의 일체를 움직여 가는 것이다.

 

근행창제에 의해 엔진을 걸고 행복의 방향으로 정의의 방향으로 매일 용감하게 계속 달려간다. 그 반복에 의해 차츰 우주의 법과 완전하게 일치된 생명이 된다. 그것이 부처의 생명이다. 일단 그렇게 되면 영원히 자재(自在)이며 유락(遊樂)의 생명이 된다. 삼세에 무너지지 않는 금강의 몸으로 된다. 따라서 일생성불을 위해 절대로 퇴전해서는 안된다. 가령 일시적으로 괴롭고 쓸쓸한 날들이 있어도 번뇌즉보리의 법리로 큰 고뇌는 반드시 큰 환희와 진보와 가치로 바뀌어간다. 어본존에게는 그 무한한 법력(法力)불력(佛力)이 계시기 때문에 아무 걱정도 없다.

 

산다는 것은 최후까지 버티어 가며, 힘의 한계를 초월해 절망과 체념을 극복하고 끝까지 견디어 내는 것이다. 인생은 짧지만 생명은 영원하다. 인생에 후회를 남긴다면 무엇을 위한 신앙인가. 괴로움이 없으면 즐거울지는 몰라도 향상은 없다. 10의 곤란이 있으면 20의 힘을 내야하고, 100의 장해가 있으면 200의 힘을 내야한다. 그 원동력이 제목이다.

 

슬프면 울어라! 맘껏 울고 한 번의 눈물로 모두 풀어 버리고 눈물의 강을 건너야 한다. 눈물의 강에 잠겨 있어서는 안 된다. 잘 만들어진 길을 거든 것은 쉬운 일이다. 자기 자신이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일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어본존께 아무리 하겠습니다! 라고 맹세해도 이루어야만 맹세이다.

 

평소에 제목을 저축해 두지 않으면 정말 어려울 때 제천의 가호를 받을 수 없다. 안일을 탐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지금은 편하고 자유롭게 보이지만 최후에는 가장 부자유한 패배자가 된다.

 

신앙하지 않아도 훌륭한 사람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인 우리는 그 이상으로 더 많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난은 극복해야지 피할 수는 없다.

 

인간은 마음가짐을 바꿈으로써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눈에 보이는 모습이 되어 나타난다. 그것이 인생이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대로의 인간이 된. 마음 하나로 지옥에도 즐거움이 있다. 죽어가면서 조차도 아! 즐거웠다. !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신심의 경애이다. 그러한 사람은 곧바로 태어난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모습 그대로 태어 날 수 있다.

 

매일 매일의 작은 노력이 위대한 힘이 된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기개가 없고 마음이 약한 사람은 관철할 수 없다. 괴로움이 많은 사람은 필사적으로 기원하라. 100만 편의 제목을 해 봐야만 신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용기의 두 글자로 살아라. 져서 울지 말고 울면서 승리하자!

 

어본존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근본으로 한 창제이며 기원이고 행동을 위한 원천인 제목이 아니면 안 된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다. 막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원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 ()는 제목의 검()으로만 자를 수 있다. 기원은 희망(希望)이고, 생명의 여명(黎明)이며, 행복의 종자를 심을 수 있는 것이다. 기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함은 자신의 생명의 궁전에 들어가는 것이니라(어서 787) -상황이 어떻든 제목을 봉창하면 생명은 궁전에 들어가 있다. 경애는 왕자이며, 최후에는 반드시 행복하게 된다.

 

초조해 하지 말고 끝까지 기원해 가면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 제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묘호렌게쿄는 대성인의 이름이고 생명이시다. 제목을 부르는 사람에게는 대성인의 생명이 솟아오른다. 반드시 부처로 되어 간다. 언제까지나 가난해서 괴로워하는 부처는 없다. 매정한 부처나 심술궂은 부처도 없다. 인생에 지는 약한 부처는 없다. 부처란 승리하는 사람의 이명이다.

 

                                  -이케다 다이사쿠 SGI회장 선생님 지도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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