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성불,지용보살

2018. 10. 25. 11:09佛法 .SGI




○ 생명은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실감할 수 있는 구체성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도다 선생님의 오달은 불법을 모든 사람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생명'에는 다양성이 있습니다. 풍요로움과 활달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법칙적이고, 일정한 리듬이 있습니다. 이 '다양성의 조화'를 가르친 것이 일념삼천(一念三千)입니다. 그 일념삼천을 체득한 존재가 부처입니다.

더욱이 '생명'에는 개방성이 있습니다. 외계(外界)와 교류하고, 물질이나 에너지 그리고 정보를 끊임없이 교환하는 열린 존재입니다. 그러면서 자율성을 갖는 것이 생명입니다. 우주 전체로 열린 개방성과 자유 속의 조화, 이것이 생명의 특징입니다.

부처의 광대무변한 경애란, 생명의 이 자유* 개방*조화를 최대한으로 실현한 경애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묘(妙)의 삼의(三義)에는 '열다'의 의(義), '원만(圓滿)'의 의, '소생(蘇生)'의 의가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생명'의 특질입니다. 그리고 바로 '부처'의 특질입니다.


- 법화경의 지혜 <상권> 서론-

 

도다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성불의 경애는 언제나 언제나 태어나서 강한 생명력이 넘치고, 태어난 사명 위에서 마음껏 활동하여 그 기대한 목적을 달성하고, 누구도 부술 수 없는 복운을 쌓는다. 이와 같은 생활을 몇십 번, 몇백 번, 몇천 번, 몇억만 번 즐겁게 반복한다면 더욱더 행복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행복한 생활을 원하지 않고 작은 행복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불쌍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회원은 부처의 근본적인 삶의 방식에 직결하므로 근원의 생명력이 넘칩니다. 회원은 구원(久遠)의 자비행을 실천하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근본적으로 밝고 즐겁습니다. 창가 사제의 생명은 '불계의 생사'에 이르고 있어서 강인하며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생사관에 사는, 진실한 철학을 지닌 현명한 사람이고 진실한 신념에 사는 용감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자비로운 실천 속에 인류 생사관의 모범이 있고 경애변혁의 선구가 있습니다

 

-생사일대사혈맥초강의 (제5회 묘호렌게쿄의 수지)-


 '생사일대사의 법'을 전하는 혈맥에 대해 논하신 이 어서에서, 대성인과 사이렌보의 깊은 사제관계를 언급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법은 인간을 떠나서 초월적인 존재나 신비적인 존재로서 '스승'을 세우지 않습니다.
"성불하는 이외에 신통(神通)과 비밀(秘密)이란 없느니라." (어서 753쪽)고 말씀하셨듯이 굳이 말하자면 한 인간이 즉신성불할 수 있는 것이 불법에서 가장 훌륭하고 유일한 신비입니다. 더구나 이 성불이라는 '신통'과 '비밀'은 누구나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스승인 부처가 입멸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몸소 가르치는 사람이 없는 시대에는 참으로 불법을 전할 수 없는가 하는 문제에 정면으로 답한 경전이 법화경입니다. 법화경은 석존이라는 부처의 인격의 핵심이 바로 '부처의 서원(誓願)'이라고 가르친 경전입니다.
부처의 서원은 "내가 본래 세운 서원은, 일체중생을 나와 같게 하여 다름이 없게 하고자 함이니라" (법화경 130쪽)고 설합니다. 이른바 '여아등무이(如我等無異)'입니다.
적문(迹門)에서 성문들은 본래 가지들도 부처와 똑같은 대원에 살았음을 깨닫습니다. 이 깨달음은 석존과 성문들이 불이(不二)의 본원(本願)을 근본으로 하고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본문(本門)에서 이 서원 아래 구원(久遠)에 성도(成道)한 후 지금까지 사바세계에서 일체중생을 계속 설법 교화하는 진정한 부처의 모습을 설해 밝힙니다. 다시 말하면 수량품에서 설한 '구원실성의 부처'입니다.
그리고 이 서원을 이어받아 부처 멸후에 부처와 똑같이 민중구제를 실천하는 데 헌신하는 '사제불이의 보살'이 지용보살입니다.

 

-생사일대사혈맥초강의 (제9회 사제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