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에 가면 삼재벌의 탄생을 예견한 정암바위가 있다. 유유하게 흐르는 남강의 아름다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머리만 내민 채 서 있는 정암바위는 그 생김새가 솥뚜껑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솥은 밥을 하는 그릇이므로 내가 먹고사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남도 먹여살리는 도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부터 솥은 부를 상징하는 의미로 나타내어진다. 그래서 그런가 조선 말기에 어떤 도인이 의령의 정암바위를 보고는 ‘사방 20리(약 8km) 안에 나라도 감당치 못할 큰 부자가 셋이나 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는데 지금에 이르러 그 예언은 과연 현실로 발복되었다.
바로 세계적 일등기업인 삼성그룹을 비롯하여 LG그룹, 그리고 효성그룹의 창업총수가 이 정암바위 20리안에서 출생한 것이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정암바위로부터 8km 떨어진 의령군 정곡면 증교리에서 태어났고, LG그룹의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7km 떨어진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또한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회장은 이곳에서 5km 떨어진 함안군 군북면 신창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이들 세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인데 진주시 지수면에 있는 지수초등학교(당시 지수보통학교)가 그 곳이다. 조그마한 시골 학교에서 나라의 경제를 움직이는 재벌총수를 3명씩이나 그것도 동시대에 배출한 것이다. 구인회 회장은 학교에서 가까운 자택에서 다녔지만 25리나 떨어진 의령 중교리가 자택인 이병철 회장은 지수초등학교에 당시 대지주들의 자제가 많이 몰리자 지수의 작은 누이 집에서 유학하였다고 한다. 또한 효성 조홍제 회장은 자택인 함안 군북에서 20리나 떨어진 학교를 방어산을 넘어 통학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세 사람은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 같은 학교에 다녔다. 또 한가지의 공통점은 기업의 이름에 모두 ‘별 성(星)’자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삼성(三星), 효성(曉星), 그리고 LG의 창업당시 이름은 금성(金星)이었다. 이는 풍수적으로 솥바위를 별로 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삼성 이병철회장의 호는 호암(湖巖)이고 LG 구인회 회장의 호는 연암(軟巖)으로서 모두 바위 암자가 들어가 있는 것도 정암바위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물 속에 잠긴 정암바위의 아래부분에는 다리가 셋이 달려 있다고 하는데 그 다리의 방향이 모두 세 사람이 태어난 곳을 향하고 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가마솥은 다리가 없는 것을 부(釜)라 하고 다리가 세 개 달린 것을 정(鼎) 이라하는데 ‘정암(鼎巖)’ 이란 말은 ‘다리가 세 개 달린 솥바위’란 뜻으로 우리나라 굴지의 세 재벌의 탄생이 정암바위의 발복과 필연의 관계가 아닌가 여겨져 신비함마저 들게 한다.
정암교가 생기기 이전에 이곳은 남강을 건너는 나루터였다. 나루터의 이름은 정암바위를 따서 정암진이라 불렀는데, 임진왜란때 홍의장군 곽재우가 강을 건너는 왜놈들을 모조리 수장시킨 전승지이기도 하다. 이 때 곽재우 장군이 전투를 지휘한 곳이 바로 ‘정암루(鼎巖樓)’이다.
의령군에서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기념관을 세우고 정암루 또한 잘 정비하여 보존하고 있는데 이 곳 정암루에 올라서 역사를 간직한채 말없이 흐르고 있는 남강의 물줄기와 강건너 정암벌판을 바라보고 있자니 강물과 기름진 벌판이 만나 사람에게 풍요를 만들어주는 자연의 넉넉함을 느끼게 된다.
정암나루터 길목에 수백년은 자란듯한 고목의 뿌리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던 시골 아낙과 농부들의 농어린 함박웃음이 들려오는 듯 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고목의 가지가 그 때 사람들에게 들었던 정겨운 이야기를 전해주려 손짓하고 있다.
정암에서 만나는 나무들과 바위들, 그리고 비에 떨어진 단풍잎들이 추석날 고향에서 만나는 반가운 가족 친지처럼 다정함이 느껴지는 것은 유독 나의 어릴적 고향이었기 때문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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