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7. 20:45ㆍ佛法 .SGI
제2부 인간혁명의 실천
제14장 난을 이겨내는 신심
이 장을 읽기 전
일찍이 이케다(池田) SGI 회장은 아이가 등교를 거부해 고민하는 부인부 벗에게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열심히 신심하는 사람에게 불행이라는 두 글자는 절대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인생을 상쾌하게 장식하기 위한 연극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하고 흔들리면 안 됩니다. 엄연히 이겨내야 합니다.
지금 가장 괴로운 사람은 아이입니다. 아이는 자신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부모에게 제목을 부르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고생시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비입니다. 그래야 부모가 진지하게 신심하여 숙명전환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아무런 고민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아무런 고민도 없는 인생은 결국 아무것도 없는 인생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면 인간혁명도 숙명전환도 할 수 없습니다.
고난을 견디고 난을 이겨내는 가운데 생명의 기쁨이 있고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반드시 삼장사마(三障四魔)라고 하는 장해(障害)가 나타나는데, 현자(賢者)는 기뻐하고 우자(愚者)는 물러남이 이것이니라.’(어서 1091쪽)
이것이 신심의 근본입니다. 난을 이겨낸 사람이 부처가 됩니다.
‘절대 지지 않겠다! 반드시 이겨내고 말겠다!’는 이런 강한 일념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인간혁명에 승부를 걸 때입니다.”
생활상에서 나오는 고난이든 불법상에서 나오는 난이든 신심을 하는데 난을 만나는 것은 인간혁명하고 숙명전환하기 위해 크게 전진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불법자에게는 난이 바로 영예입니다.
‘난을 극복하는 신심’으로 일어설 때 승리한 인간혁명의 하늘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운 행복의 무지개가 빛납니다.
(14-1) 폭풍우는 영예
인생에서 특히 청년시절에 맞닥뜨리는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절(節)에서는 그 고난의 의미에 관해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브라질 부인부, 도호쿠, 호쿠리쿠, 신에쓰 합동연수회 스피치에서
(2004년 8월 21일, 나가노)
은사 도다(戶田) 선생님은 늘 청년에게 “책을 읽어라, 명작을 읽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읽지 않으면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삼류 잡지 따위를 읽으면 열화와 같이 꾸짖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삼국지》 《미야모토 무사시》 등으로 유명한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의 작품을 탐독한 날들이 그립습니다.
요시카와 에이지는 어느 유복한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불행하구나. 일찍부터 아름다운 것을 너무 많이 보고 맛있는 것을 너무 많이 먹은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기쁨을 기쁨으로 느끼는 감수성이 약해지는 것은 청년으로서 딱한 일이다.”
지금도 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는 말입니다.
인생의 토대를 쌓는 중요한 때에 좋은 환경에 둘러싸여 응석이나 부리고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고생도 모르는, 이런 인생은 조금도 행복한 인생이 아닙니다. 가장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런 사람이 위대한 인간으로 성장할 리 없습니다.
고난이 없는 것이 행복은 아닙니다.
고난에 지지 않고, 비록 쓰러져도 단호히 일어나 이겨내고 승리를 쟁취하는 곳에 인생의 참된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인생은 투쟁입니다. 인생은 도전입니다. 인생은 단련입니다.
고난을 피할 수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어떠한 시련에 맞닥뜨려도 ‘자, 투쟁하자!’ ‘성장할 기회다!’ 하고 용감하게 맞서는 ‘강한 자신’을 만드는 것이 니치렌 대성인 불법입니다.
이 ‘투쟁하는 혼’으로 일어선 사람이 마지막에 승리합니다.
(14-2) 난이 옴을 가지고 안락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이 절(節)에서는 무너지지 않는 행복경애를 열려면 고생이나 고난에 맞서는 생명의 단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본부간부회, 전국부인부간부회, 간사이대표자간부회 스피치에서
(1991년 3월 4일, 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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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한 불도수행은 ‘명익(冥益, 분명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지만 착실하게 커지는 이익)’으로, 더할 나위 없이 큰 ‘행복의 꽃송이’를 피웁니다. 이것이 도리입니다. 불법은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신심은 한평생 관철하라, 도중에 퇴전하면 안 된다, ‘길’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되풀이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악전고투(惡戰苦鬪)’가 없고 어떤 난이나 고생도 없는 인생이 분명 편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치 바깥 공기를 쐬지 않아 피부가 약한 아기가 병약한 어린이로 자라듯이 ‘단련’이 없는 인생, ‘단련’이 없는 마음에 안주하면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어떤 일도 당당히 이겨낼 수 있는 확고한 ‘자신’의 가슴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무언가로 계속 고생하며 자신을 단련할 수 있는 자체가 행복입니다. 하물며 광포를 위해 나아가는 불도수행은 자신을 ‘다이아몬드처럼 무너지지 않는 행복’의 당체로 만들어줍니다.
인간은 몸도 두뇌도 정신도 철저히 단련할수록 능력이 향상되고 가능성도 더욱 끌어낼 수 있습니다. 단련하지 않으면 곧바로 쇠약해져 병에 걸리고 맙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보아도 당연한 일입니다.
신심의 세계도 고생과 어려움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비로소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행복경애를 열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난이 옴을 가지고 안락(安樂)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어서 750쪽) 즉 “난이 일어나면 안락이라고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난이 바로 안락’ ‘난이 바로 영예’입니다. 온갖 난을 이겨내고 전진하는 ‘광선유포의 세계’가 바로 참으로 위대한 ‘인간’을 육성하는 대지입니다. 무너지지 않는 ‘행복’을 구축하는 대도(大道)입니다. 어본불이 말씀하신 대로 ‘정법유포’의 왕도입니다.
(14-3) 팔풍에 침해당하지 마라
불법에서는 신심을 방해하는 여덟 가지 작용을 ‘팔풍(八風)’이라고 설합니다. 이 팔풍을 장마(障魔)라고 받아들여 흔들리지 않는 불퇴전의 신심을 관철하는 것을 보살의 경애라고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도다 선생님 탄생 96주년 기념 본부간부회 스피치에서
(1996년 1월 27일,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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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높을수록 바람은 강하게 붑니다.
산 중의 산, 히말라야 산꼭대기에는 늘 바람이 심하게 붑니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히말라야는 겨울에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 때때로 초속 100미터가 넘는 몹시 매서운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산 중의 왕인 히말라야는 어떤 바람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히 우뚝 솟아 있습니다.
‘히말라야처럼 팔풍에 꿈쩍도 하지 말고 유유히 끝까지 살아가라!’ 이것이 불법의 가르침입니다.
‘팔풍’은 불도수행의 불을 끄려고 합니다.
어서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현인(賢人)은 팔풍이라 해서 팔종(八種)의 바람에 침해당하지 않음을 현인이라 하느니라. 이(利), 쇠(衰), 훼(毁), 예(譽), 칭(稱), 기(譏), 고(苦), 낙(樂)이니라. 대강의 뜻은 이(利)가 있어도 기뻐하지 않고, 쇠퇴함을 한탄하지 않는 것 등의 일이니라. 이 팔풍에 침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반드시 천(天)은 수호하실 것이로다.”(어서 1151쪽)
즉 “현인이란 팔풍이라는 여덟 가지 바람에 침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팔풍은) 이, 쇠, 훼, 예, 칭, 기, 고, 낙이다. 대략 그 의미를 말하자면 이익이 있어도 기뻐하지 않고 손해를 보아도 한탄하지 않는 것 등이다. 이 팔풍에 침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제천선신이 반드시 지키신다.”
사람들이 바라고 구하는 ‘사순(四順)’ 즉 ①이(利): 여러 가지 이익을 얻어 윤택해지는 것 ②예(譽): 세간에서 칭찬받는 것, 명예로운 것 ③칭(稱): 사람들에게서 상찬 받는 것 ④낙(樂): 심신(心身)이 즐거운 것.
또한 사람들이 싫어하고 피하는 ‘사위(四違)’ 즉 ⑤쇠(衰): 여러 가지 손해를 보는 것 ⑥훼(毁): 세간에서 받는 명예롭지 못한 평가, 비난 ⑦기(譏): 사람들에게서 비난을 받는 것 ⑧고(苦):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 마음이 흔들려 불도수행을 그만두면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팔풍을 설한 어느 불전(佛典)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그 마음이 굳고 부동(不動)함이 예를 들면 수미산(須彌山)과 같다.”(사익경)
즉 “팔풍에 침해당하지 않는 보살의 마음은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수미산(고대 인도의 세계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는 큰 산)과 같다.
보살은 현실 사회의 한가운데에 일부러 뛰어들어 사람들을 구하는 용자(勇者)입니다. 그 보살의 인격은 어떠해야 하는가. 석존은 이렇게 설했습니다.
“마음이 ‘팔풍’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야말로 학회원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좌담회와 여러 학회활동은 이해(利害)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칭찬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욕설을 듣고 고생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 법을 위해, 사회를 위해 엄연히 행동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를 사는 존귀한 보살’의 모습입니다.
대성인은 ‘팔풍에 침해당하면 안 된다’ ‘팔풍에 침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현인이고 그 사람을 제천선신이 반드시 지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창가학회가 이토록 끊임없이 대난을 받으면서 어떻게 일본제일, 세계제일로 크게 발전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여러분이 성훈대로 팔풍에 침해당하지 않고 올바른 신심을 관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천이 엄연히 수호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칭찬받았다고 기뻐할 일도 아니고, 욕설을 들었다고 놀랄 일도 아니다. 우리 신앙은 오로지 한결같은 신앙이어야 한다.”
앞으로도 우리는 어떤 ‘팔풍’에도 흔들리지 말고 영원히 멸하지 않을 ‘창가의 산’을 더욱더 당당히 구축합시다! 산 중의 산, 세계제일의 히말라야처럼!
(14-4)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다
강성한 신심이 있으면 어떠한 고난도 부처의 경애를 열기 위한 시련으로 바꾸어 크게 이겨낼 수 있다고 명쾌하게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대표간부연수회 스피치에서
(2005년 8월 16일, 나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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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렌 대성인은 어서에서 ‘사람의 마음이 견고하면 제천선신(諸天善神)의 가호도 반드시 강하다.’는 법리(法理)를 가르치며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을 위해 말합니다. 이전부터 당신의 깊은 신심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층 강성한 신심을 하세요. 그때는 더욱더 (제천선신인) 십나찰녀(十羅刹女)의 수호(守護)도 강해지리라고 생각하세요.”(어서 1220쪽, 통해)
‘이제까지’ 어떠했느냐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이상으로 강성한 신심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 사람을 모든 제천선신이 반드시 지킵니다. ‘삼류강적(三流强敵)’이 나타나는 것도 ‘삼장사마(三障四魔)’가 다투어 일어나는 것도 모든 고난은 자신의 신심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모두 불계(佛界)의 생명을 열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한층 더 신심을 강하게 하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강성한 신심이 있는 한 이기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 대성인은 “오로지 묘법(妙法)을 일심(一心)으로 믿는 사람은 반드시 이 어본존의 보탑(寶塔) 안에 들어갈 수 있다.”(어서 I244쪽, 취의)고 말씀하셨습니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어본존을 수지하고 광포를 위해 나아가는 우리는 어디에 있어도 어떤 환경에 처해도 ‘부처의 세계’ 즉 ‘행복의 궁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성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리 강적이 겹치고 더해도 결단코 퇴(退)하는 마음 없을지어다. 두려워하는 마음 없을지어다.”(어서 505쪽)
‘퇴전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이러한 종조 니치렌 대성인의 엄명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14-5) 생애 불퇴전의 신심을
SGI 회장은 세계이케다회양회대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세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 ‘태양의 스크럼으로 난세(亂世)를 비춰라’ 좋은 우정을 맺어 넓히는 일입니다. 둘째, ‘자기답게 평화로운 문화의 꽃길을 열어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빛내 사명의 길을 나아가는 일입니다. 셋째, ‘생애 불퇴전의 신심’입니다. 이 불퇴전의 일념에 ‘난을 극복하는 신심’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세계이케다화양회대회 메시지에서
(2013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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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웃는 얼굴로 지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생애 불퇴전을 관철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979년, 창가학회가 매서운 법난(法難)의 폭풍에 휩싸였을 때도 아내는 조금도 변함없이 웃는 얼굴로 학회활동에 힘썼습니다.
어느 좌담회에 참석했을 때, 동지가 한마디 써 달라고 부탁하자 아내는 ‘불퇴전’이라고 썼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평생 학회와 함께 ‘불퇴전’의 신심을 관철한다, 이것이 창가 사제의 서원(誓願)입니다.
여러분은 불가사의한 숙연이 있기에 지금 저마다 사명의 무대로 뛰어나온 지용보살입니다.
사명이 큰 만큼 틀림없이 고생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충실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복운이 쌓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지지 않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환희 중의 대환희의 청춘을 강하고 명랑하게 끝까지 달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물과 같이 라고 함은 항상 퇴하지 않고 믿는 것이니라.”(어서 1544쪽)는 성훈처럼 후회 없는 불퇴전의 일생을 상쾌하게 승리로 장식하기 바랍니다.
(14-6) 난과 싸울 때 인간혁명이 있다
난을 만나는 이유는 신심을 올바르게 관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절에서는 난에 지지 않고 그 난을 이겨낼 때 참으로 안락하고 위대한 경애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효고대표간부회 스피치에서
(1987년 4월 18일, 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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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의구전>에는 법화경(法華經) 안락행품에 관해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묘호렌게쿄를 안락하게 행(行)하는 일은 말법(末法)에 있어서 지금 니치렌 등의 동류(同類)의 수행(修行)은 묘호렌게쿄를 수행함에 난이 옴을 가지고 안락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어서 750쪽)
보통 ‘안락’이라고 하면 난이나 고난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온한 안온, 안심한 상태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참된 안락은 거기서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말법에 자행화타의 신심을 실천하고 힘쓰면 반드시 장마(障魔)가 다투어 일어납니다. 그 장마에 맞서 고난과 정면으로 부딪쳐 싸우는 곳에 참된 ‘안락’이 있습니다. 난을 받는 것은 신심을 아주 열심히 관철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배도 먼 바다로 나가면 세찬 비바람이나 풍랑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고 나아가지 않으면 목적지인 ‘항구’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성불’이라는 ‘항구’를 목표로 하는 우리도 고난이라는 비바람을 두려워하고 어려움이라는 파도에 져버리면 결코 ‘성불’이라는 ‘피안(彼岸)’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요컨대 신심은 부처와 마가 벌이는 싸움입니다. 참된 ‘안락’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싸우면서 ‘난’에 지지 않는 강인한 생명경애를 구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어떠한 고난에도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인 ‘안락’의 경애는 어떠한 ‘난’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신심을 확립하는 데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긴 인생에서 패배를 맛볼 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좌절할 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코 기죽지 말고 사자왕과 같은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신심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용감하게 또 지혜롭게 광포대원을 향해 나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14-7) 생명은 장애를 만날수록 빛난다
이 절에서는 고생과 장애가 생명을 닦아 빛낸다고 강조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환경이 자신을 부처로 만들어준다고 가르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부인부대표협의회 스피치에서
(1998년 1월 25일,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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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기 때문에 생명이 연마됩니다.
어서에 “멧돼지가 금산(金山)을 비비고”(어서 916쪽)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 ‘금산’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멧돼지는 ‘금산’이 빛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뭐야, 이놈은’이라고 생각하고 금빛을 없애려고 몸을 산에 비볐습니다.
멧돼지라서 털은 뻣뻣하고 기세도 굉장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멧돼지가 비빌수록 그 덕에 금산은 더욱더 찬연히 빛을 발했습니다.
이것은 용수(龍樹)의 <대지도론(大智度論)>과 천태대사의 <마하지관(摩訶止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대성인은 이 이야기를 어서에 인용하여 ‘법화경 행자는 장애를 만날수록 더욱 빛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장애는 삼장사마를 말합니다. 삼장사마와 싸우지 않으면 성불은 없습니다.
난을 받고 난을 이겨내지 않으면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시험을 치러서 합격하지 못하면 대학을 졸업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대성인은 “이 세계는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의 소령(所領)이며”(어서 1081쪽) 즉 “이 세상은 제육천의 마왕이 지배하는 세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인(善人)’이 박해를 당하고 ‘악인’이 위세를 부리는, 이렇게 뒤바뀐 세계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바꾸는 일이 광선유포입니다.
‘장애가 있을수록 자신이 빛난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가르침이 아닐까요.
조직은 다양한 사람이 모인 곳입니다. 자신이 대하기 편한 상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저리가 나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서 자신이라는 ‘황금산’이 빛납니다.
주위에 좋은 사람만 있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대하기 어려운 사람들 속에 있어야 비로소 자신을 ‘황금’으로 연마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자기 일조차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거기에 일일이 화를 낸다고 뭔가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다고 상대가 바뀌지도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자비로운 마음으로 포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하지관 제오(第五)에 가로되 (중략) 중류(衆流)가 바다로 들어가며, 장작이 불을 더욱 돋구고”(어서 916쪽)
천태대사는 <마하지관>에서 대해(大海)가 저토록 넓은 이유는, 바다가 흘러 들어오는 강물을 모두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강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되돌려 보내면 대해는 더 이상 대해가 아닙니다. 자신이 싫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으면 대해와 같은 자신을 만들 수 없습니다.
또 ‘장작’을 더할수록 ‘불길’은 커지지 않는가 하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불행이라는 ‘장작’이 있어야 행복이라는 ‘불길’이 생깁니다. 고생이 있기에 기쁨도 있습니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입니다. 괴로움이 있기에 성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만 있는 행복’은 없습니다.
대성인은 자신을 박해한 헤이노 사에몬노조 무리야말로 ‘제일의 선지식(善知識)’이자 ‘제일의 아군’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어서 917쪽,취의)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을 부처로 만들어주는 존재입니다.
(14-8) 막혔을 때가 승부
SGI 회장은 자신의 사제공전(師弟共戰)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어려움과 끝까지 싸워야 비로소 위대한 생명의 저력을 꽃피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수필 신·인간혁명’(위대한 사이타마 벗에게 드린다)에서
(2003년 12월 6일 ‘세이쿄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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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스승 도다 선생님의 사업이 궁지에 빠져 선생님이 학회 이사장을 사임하는 고난이 닥쳤을 때의 일입니다. 급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원들도 계속 그만두었습니다. 나는 오로지 홀로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광선유포의 위대한 스승이다, 그런 선생님을 지키는 일이 바로 학회를 지키는 일이자 나아가 위대한 불법의 명맥(命脈)을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죽을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그날 선생님과 나는 해결책을 찾으러 사이타마의 오미야방면에 갔는데 간 보람도 없이 별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귀가하던 도중에 선생님과 아라카와 강변의 둑길을 걸었습니다. 밤바람이 쌀쌀했습니다. 하늘의 별들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싸움에 진 사제의 모습을 지켜보며 빛나고 있었습니다.
닳고 낡아 구멍 난 내 신발 끈이 갑자기 풀리고 말았습니다. 신발 끈을 묶으며 스승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고 당시 유행가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 가사의 “별의 흐름에……이 여자에게 누가 비극을 주었나”(시미즈 미노루 작사 ‘별의 흐름에’) 부분을 “이 남자에게 누가 비극을 주었나”로 바꾸어 유쾌하게 불렀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웃으며 한마디로 “나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고난의 와중이었습니다.
나는 안심했습니다. 아니 행복했습니다. 선생님만 건재하시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제자인 내가 반드시 끝까지 싸워야 한다! 다음에는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
그때 그 광경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별이 빛나는 사이타마 하늘 아래 아로새긴 사제의 드라마이자 역사입니다.
선생님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은 막혔을 때가 승부다! 그때 이미 끝났다고 절망에 빠져 포기하고 마느냐, 드디어 지금부터라고 정하고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일어서느냐, 그 일념의 갈림길이 승부다!”
그렇게 말하며 내 가슴속 깊이 새겨주셨습니다.
“알겠는가, 다이사쿠. 도중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마지막에 이겨라! 반드시 이겨라! 마지막에 이기면 모두 이긴 것이다.”
내게는 하루하루가 끊임없는 격전의 나날이었습니다.
잠시도 감상에 젖을 틈 따위는 없었습니다.
스승을 위해 억겁의 신로를 다해 고투하는 마음속에 영원한 상승불패(常勝不敗)의 성이 구축된다는 것을, 나는 깊이 실감했습니다.
나는 사제의 혼이 공명하는 것을 느끼고, 엄연한 불법의 인과이법(因果理法)에 비추어 미래에 영광스러운 대과보(果報)를 받을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했습니다.
도다 선생님과 나는 악전고투의 거친 폭풍우를 뚫고 이듬해 5월 3일 맑게 갠 하늘 아래 제2대 회장 취임이라는 상쾌한 승리의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어려움과 끝까지 싸워야 비로소 위대한 생명에서 나오는 저력이 꽃을 피웁니다.
가장 큰 시련이 닥쳤을 때 가장 큰 힘을 불러일으킨 사람이 이깁니다. 여기에 준엄한 역사의 법칙이 있습니다.
(14-9)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
불도수행의 도상에서 나오는 고난은 모두 자신이 인간혁명하고 숙명전환하는 양식이 됩니다. 그러므로 난을 기뻐하는 강성한 신심을 하라고 외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이즈 광포 40주년 기념 대표간부회 스피치에서
(1987년 11월 23일, 시즈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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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시절부터 내가 암송할 정도로 마음에 깊이 새긴 <시지시로전어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말법에는 법화경의 행자가 반드시 출래하리라. 그러나 대난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 불에 장작을 더하면 성(盛)해지지 않는 일이 있겠느뇨.”(어서 1448쪽)
즉 “말법에는 법화경 행자가 반드시 출현한다. 지금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이 이렇게 출현하셨다. 단, 법화경 행자에게는 반드시 대난이 나온다. 그때야말로 강성한 신심을 일으켜 기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왔는가. 기다렸다. 자, 싸우자.’ 하고 환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조금 욕설을 들었다고 슬퍼하고 한탄하고 의심하고 푸념하면 진정한 지용의 용자가 아닙니다.
대성인은 난이 나올수록 강성한 신심을 불태우는 모습을, ‘불’에 ‘장작’을 넣으면 더욱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이 약하면 장작을 다 태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꺼지고 맙니다.
그리고 “대해에 중류가 들어가나 그래도 대해는 강물을 되돌려 보내는 일이 있느뇨. 법화대해(法華大海)의 행자에게 제하(諸河)의 물이 대난과 같이 들어가도 되돌려 보내거나 나무라는 일이 없다.”(어서 1448쪽)
즉 “대해에는 많은 강물이 흘러 들어간다. 그러나 결코 그 물을 되돌려 보내는 일이 없다. ‘법화대해의 행자’에게 여러 강물이 대난처럼 흘러 들어오지만 되돌려 보내거나 나무라는 일은 없다.”는 광대한 경애를 나타냅니다.
대난을 만났을 때 더욱더 기뻐하는 사람이 바로 참된 법화대해의 행자입니다. 그 사람 가슴속에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것도 받아들여 꿈쩍하지 않는 한없이 드넓은 ‘생명의 대해’라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하의 물이 들어가는 일이 없으면 대해는 있을 수 없으며 대난이 없으면 법화경의 행자가 아니로다.” 하고 씌어 있습니다. 즉 제하(모든 강)라는 대난이 있어야 ‘법화대해의 행자’가 존재합니다. 그 외에는 절대로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난을 만난다 해도 대성인이 받은 만큼의 대난이 아닙니다. 게다가 불도수행의 도상에서 나오는 고난은 모두 자신의 숙명전환으로 이어지고,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이 환하게 빛나는 ‘영광스러운 인생’을 완성하기 위한 자양이 되고 우뚝 솟은 ‘인생 승리’의 궤도로 나아가기 위한 추진력이 됩니다.
이 점이 묘법을 수지한 여러분의 가장 큰 특권이자 평생 동안 증명해야 할 과제입니다.
(14-10)“제난이 있을지라도 의심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리라”
이 절에서는 <개목초>의 중요한 구절을 배독하고 난을 극복하는 신심에 불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본부간부회, 부인부간부회 스피치에서
(1994년 9월 29일,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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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목초>의 구절을 배독하겠습니다.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는 제난(諸難)이 있을 지라도 의심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리라. 천(天)의 가호(加護)가 없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현세가 안온하지 않음을 한탄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에게 조석(朝夕)으로 가르쳐 왔건만 의심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의 버릇이란 약속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어서 234쪽)
즉 “나와 우리 제자는 온갖 난이 있어도 의심하는 마음이 없으면 반드시 자연히 불계에 이른다. 제천의 가호가 없다고 의심하면 안 된다. 현세가 안온하지 않다고 한탄하면 안 된다. 우리 제자에게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가르쳤지만 의심을 일으켜 모두 (신심을) 버리고 말았다. 어리석은 사람은 반드시 약속한 일을 중요한 때에는 잊는 법이다.
이 어서만 기억하면 됩니다. 이 구절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
온갖 난이 일어나도 ‘의심하지 않고’ 계속 싸우는 사람은 반드시 ‘부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전에는 모두 이 글월을 암기했습니다. 지금도 불단 옆에 이 어서가 놓여 있는 집도 많은 듯합니다. 가장 근본이 되는 중요한 지도입니다.
‘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현인, 성인(聖人)도 이 일은 피할 수가 없다.”(어서 1143쪽) 즉 “현인이나 성인도 난을 받는 일은 피할 수 없다.”고 니치렌 대성인이 말씀하셨습니다.
피할 수 없기에 이겨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겨내어 부처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어서>의 구절을 배견하겠습니다.
“쇠는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 검(劍)으로 되고 현성(賢聖)은 매리 함으로써 시험되느니라.”(어서 958쪽) 즉 “철은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 검이 된다. (마찬가지로) 현인, 성인은 매리 당해야 시험되는 것이다.”
불에 달구어 연마하지 않는 검은 없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간에서 욕설을 듣고 박해를 받아 견뎌 내었을 때 비로소 진짜 현인, 성인입니다.
(14-11) 끊임없이 난과 싸우는 사람이 바로 부처
부처는 결코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민이 없는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SGI 회장은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끊임없이 싸우는 사람이 바로 부처라는 중요한 점을 강조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도호쿠영광총회, 미야기현총회 스피치에서
(1994년 3월 21일,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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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난을 이겨내어 계속 싸우는 사람이 ‘부처’가 됩니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부처’는 무엇인가? 또 석존은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었는가?
최고로 저명한 불교학의 거봉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붓다(부처)가 된 뒤에도 석존은 여전히 인간이었다.”(《고다마 붓다 1》 나카무라 하지메 선집 제11권)
부처가 되고 난 다음에도 고뇌와 괴로움은 있습니다. 병을 앓기도 합니다. 변함없이 마의 유혹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붓다다움은 유혹을 물리치는 행위에서 얻고자 해야 한다. 부단한 정진이 그냥 그대로 불도수행이다. 깨달음을 열어 ‘부처’라는 별개의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고다마 붓다 1》 나카무라 하지메 선집 제11권)
유혹은 ‘마’와 ‘악지식’을 말합니다. 불도수행을 방해하는 힘, 불행으로 이끄는 힘, 화합승을 파괴하는 힘, 퇴전하게 유혹하는 힘입니다.
이 마와 끊임없이 계속 싸운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행동한다, 그 ‘사람’이 ‘부처’입니다.
부처라 해도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계속 싸우는 마음이 ‘부처’, 계속 행동하는 모습이 ‘부처’입니다. 마와 끝까지 싸우는 사람이 ‘부처’입니다.
석존이 보리수 밑에서 얻은 깨달음, 말법에 니치렌 대성인이 다쓰노구치에서 나타내신 발적현본(發迹顯本)도 ‘인간’으로서 구극의 모습입니다. 결코 ‘인간’이 아닌 뭔가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범부의 모습 그대로 불계(극과<極果>)에 도달하는 범부즉극(凡夫卽極)이 불법의 진수입니다. 불도수행에 힘쓰고 광선유포를 향해 정면에서 싸우는 사람의 신심에 ‘부처’는 나타납니다.
지금 여러분은 많은 사람의 고뇌를 자신의 고뇌로 여기고 싸우고 있습니다.
정말로 존귀한 부처의 행동입니다.
대성인은 “시중종(始中終) 버리지 않고 대난을 이겨 나가는 사람은 여래의 사자(使者)이니라.”(어서 1181쪽) 즉 “처음에도 도중에도 마지막에도 일관하여 묘법을 버리지 않고 대난이 와도 신앙을 관철하는 사람은 여래의 심부름꾼이다.
광선유포를 하는 한 대난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대난이 있어야 자신의 신심을 견고히 하고 불계를 확고히 할 수 있습니다.
(14-12) 마키구치 선생님의 영예로운 투쟁
창가학회의 원점인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초대 회장의 옥중투쟁을 통해 ‘난을 극복하는 신심’의 요체를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전국청년부간부회, 신주쿠, 미나토 합동총회 스피치에서
(1992년 1월 15일,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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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마키구치 초대 회장은 생애 마지막 설날을 도쿄구치소의 아주 작은 독방에서 맞이하셨습니다.
마룻바닥에는 딱딱한 다다미 한 장이 깔려 있을 뿐이었습니다. 난방도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어본존도 안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감옥에서 설날 마키구치 선생님은 편지 몇 통을 가족에게 보내셨습니다.
그 중 1월 7일자 편지 내용입니다.(이하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 제10권 인용)
“사다코, 나도 무사하게 여기서 일흔네 살의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여기서 설날 3일 동안 떡도 주고 진수성찬도 차려주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집을 잘 부탁합니다.”(‘사다코’는 마키구치 선생님의 셋째 며느리다. 셋째 아들 요조 씨는 마키구치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전사했다.)
1944년, 새해에 마키구치 선생님은 세는 나이로 일흔네 살이 되셨습니다.
생각하면 니치모쿠(日目) 상인이 국주간효를 하러 가는 도중에 천화(遷化)하신 나이도 일흔네 살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옥중의 변변치 않은 식사를 ‘진수성찬’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반찬 가짓수도 적고 영양가도 없는 형편 없는 식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푸념 한마디 하지 않으셨습니다. 유유자적한 모습이셨습니다.
또 선생님은 “대성인이 사도에서 하신 고생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쓰셨습니다. 옥중에서 선생님의 기준은 대성인이 받으신 법난이었습니다. 유배지인 사도에 계신 대성인의 모습을 배견하면 자신의 옥중생활 따위는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선생님의 후계자입니다. 여러분도 부디 ‘같은 마음’이기 바랍니다.
조금 난을 받았다고, 조금 고생했다고 어찌 일희일우(一喜一憂)할 수 있겠습니까. 그 난들은 말하자면 인류의 업(業)이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뇌를 떠나서는 인간도 인생도 없습니다.
아무런 고생도 괴로움도 슬픔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인생은 너무나도 덧없고 어리석습니다. 삶의 보람도 없습니다.
대성인 불법의 극의(極意)는 번뇌즉보리입니다. 괴로움이 큰 만큼, 고뇌가 깊은 만큼 깨달음도 기쁨도 큽니다.
그리고 또 편지에는 “어본존을 열심히 믿으면 잇따라 여러 장애가 나오지만 다 좋아집니다.” 하고 씌어 있습니다.
신심을 열심히 실천하면 그것을 방해하는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납니다.
그러나 꿈쩍하지 않고 신심을 관철하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변독위약(變毒爲藥)할 수 있습니다. 그 대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1월 7일자 편지의 내용입니다.
또 마키구치 선생님은 열흘 뒤인 17일자 편지에서 이렇게도 쓰셨습니다.
“신앙을 일심(一心)으로 하는 것이 요즘 내 일입니다. 이것만 하고 있으면 아무런 불안도 없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에 있어도 안전합니다.”(여기 나오는 ‘지옥’이란 글자는 검열을 받는 과정에서 삭제되었다.)
26일자 편지에서는 “마음 하나로 지옥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고 쓰셨습니다.(이 문장도 검열하는 과정에서 원문에서 모두 삭제되었다.)
냉혹하고 암담한 감옥이라는 ‘지옥’도 ‘마음 하나’에 따라 ‘아무런 불안도 없다’ ‘안전’하고 ‘즐겁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지옥즉적광(地獄卽寂光)’ ‘번뇌즉보리’라고 어서에서 설하는 대로 태연자약하신 마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창가학회 창립자의 위대한 ‘신심’입니다. ‘경애’입니다. 대성인불법을 깊이 몸으로 읽으신 분이 우리 스승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의 이런 고생을 생각하면 어떤 고생도 대단한 난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뒤를 잇는 것은 굉장한 영예라는 점을 깊이 확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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