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12. 15:03ㆍ佛法 .SGI
○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신심(信心)에 퇴전(退轉)없고 몸에 사친(詐親)없이 일체를 법화경(法華經)에 그 몸을 맡기고 금언(金言)과 같이 수행한다면 틀림없이 후생(後生)은 말할 것도 없고, 금생(今生)도 식재연명(息災延命)하여 승묘(勝妙)의 대과보(大果報)를 얻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마저도 성취(成就)할 것이니라.
○ 종교는 사용방식에 따라 '악마'기 됩니다. 사람들을 화합시켜야 할 종교가 이용되고 오히려 선동한다. 이보다 더한 불행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근본은 '인간을 위한 종교'여야만 합니다. 종교를 위한 인간이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것이 21세기의 종교의 기본 원칙입니다.
○ 세계의 많은 종교・철학은 생명의 일부분만을 설하고 있다. 인간의 몸을 예로 든다면, 혹은 팔만, 다리나 귀나 눈, 동체만 이라고 하듯이 부분적으로 설하고 있다. 이에 비해 총합적, 전체적으로 생명의 실상을 설해 밝히신 것이 대성인의 불법이다. 그러므로 가장 뛰어나며, 묘법을 근본으로 하면 다른 일체의 선론(善論)을 살릴 수 있다. 또 어떤 인간이라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를 피할 수는 없다. 이것을 유일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묘법이다.
○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애 혁명이다. 지표에서 보고 있을 때에는 한없이 높게 느껴지는 돌 벽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땅에 달라붙어 있는 낮은 경계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애가 바뀌면 사물을 느끼는 방식이나 파악하는 방식도 달라지는 법이다. 역경도 고난도 인생의 드라마를 즐기듯이 유유하게 극복해 갈 수 있다.
- 그러한 경애 혁명의 원동력은 강한 일념을 담은 진지한 창제다. 제목을 끝까지 불러 가며 용기를 내어 행동하고 자신의 벽을 타파했을 때, 비로소 경애를 열어 갈 수 있다. 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는 대우주에 통한다. 어서에도 ‘一身一念(일신일념)이 法界(법계)에 널리 미침이라.(어서 247쪽)’라고 있지 않은가. 우주까지도 포용하는 대경애로 자신을 바꾸어 갈수 있는 것이 불법이다.
○ 굶주려서 먹을 것을 구하고, 목말라서 물을 바라듯이, 그리운 사람을 보고 싶어 하듯이, 병에 걸려 약을 의지 하듯이, 용모가 예쁘게 연지분을 바르듯이 법화경에 신심을 다하시라. 그렇지 않으면 후회가 있으리라.
○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 당신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복운은 쌓이지 않습니다. 숙명전환의 지름길은 절복입니다. 한번 반대 당하면 자신의 하나의 죄업이 소멸되었다고 기뻐하면서 절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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