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1. 11:00ㆍ佛法 .SGI
○ 명문명리는 금생의 장식이고, 아만편집은 후생의 족가이니라(어서463)
○ 법화경 행자는 신심에 퇴전이 없고, 몸에 사친(詐親)없이 일체 법화경에 몸을 맡기고, 금언(金言)과 같이 수행한다면, 틀림없이 후생(後生)은 말할 것도 없고, 금생도 식재연명(息災延命:재앙을 없애고 수명을 연장)하여 승묘(勝妙)의 대과보(大果報)를 얻어 광선유포의 대원마저도 성취 할 것이로다.(어서1357)
○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은 어서(御書)의 핵심입니다. 또 대성인의 생애를 관철하는 골격입니다. 대원이란 부처의 깨달음의 생명에서 발하는 광대한 바람입니다. 만법(萬法)을 감싸는 일법인 묘법(妙法)을 자신의 당체(當體)로 깨닫는 부처의 마음에서 발현하는 생명(生命)본래(本來)의 바람입니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생명본래의 바람을 생각해 내는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쨌든 불계(佛界)의 생명과 광선유포의 대원은 일체입니다. 때문에 광선유포의 대원에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불계의 생명이 용현하는 것입니다.
○ 불계라 하여도 불성이라고 해도 대원을 일으켜 광포에 끝까지 살아가는 일념(一念)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하는 투쟁에서 떨어져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순간의 생명이야말로 부처이며 여래인 것입니다. 사실로써 부처의 생명을 가르치는 것이 대성인의 사(事)의 불법(佛法)입니다. 그를 위해 부처와 같은 대원에 살아가시오 라고 대성인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부처의 대원을 나의 바람으로 하여 불퇴의 실천으로 대원성취를 향해가는 사람은 어느새 부처의 마음과 명합하여 불계의 생명을 용현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목숨은 한이 있나니 아끼지 말지어다. 끝내 원해야 할 것은 불국(佛國)이니라(어서955)-이 한계가 있는 인생을 부처와 같은 대원(광선유포)에 살아가시오.
○“다만 어떤 병이라도 그것을 얼마나 빨리 고치는지 어떤지는 생명력에 달려있습니다. 그 생명력의 원천이야말로 신심입니다. 또 같은 병이라도 그 근본원인이‘마와 업인 경우는 아무리 의학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어본존에 대한 강한 신심으로‘마’를 타파하고 ‘업’을 전환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업’에 따른 병 속에도 가장 무거운 병이 과거세부터 법화비방(法華誹謗)에 따른 병입니다.
○“아무리 깊은 숙업일지라도 반드시 단절해 갈 수 있는 것이 니치렌 대성인의 위대한 불법입니다. 우리들은 금세(今世)의 방법(謗法)은 알아도 과거세의 죄는 모릅니다. 과거세에 대방법을 저질러 깊은 숙업을 갖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본래 그 숙업은 조금씩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몇 세대에 걸쳐 긴 세월 고생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심에 힘씀으로써 지금까지의 숙업이 한꺼번에 나온다. 그리고 더욱 무겁게 받을 괴로움을 가볍게 받아 그것으로 숙업을 전환할 수 있다. ‘전중경수’입니다.
○“대성인은 ‘제죄(諸罪)는 상로(霜露)와 같이 법화경이라는 일륜(日輪)을 만나서 소멸되느니라’(어서1439쪽)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면‘이런 나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라는 어본존께 감사의 마음이 솟구칠 것입니다. 어본존께 깊은 감사의 일념이 대 환희의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당신이 중병(암)의 선고를 받은 것도 불법의 눈에서 보면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대성인은 병에 의해서 도심은 일어납니다’(어서1480쪽)- 병에 걸린 것도 당신이 강한 신심을 분발하기 위한 어본불의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을 신심을 향상하는 도약대로 해가는 것이 불법자의 삶입니다.
○“강성하게 신심에 힘쓰면 지병(持病)도 반드시 희망에 넘친 최고로 행복하고 충실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어서에는 남묘호렌게쿄는 사자후와 같으니 어떠한 병인들 장해를 할손가”(어서1124쪽)- 남묘호렌게쿄는 사자후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사나운 동물도 도망치듯이 어떤 병도 행복으로 또 광선유포를 장해할 수 없습니다.
○“광선유포에 끝까지 사는 사람을 대성인이 지켜주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대성인은 난조 도키미쓰가 병에 걸렸을 때 편지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귀신 놈들이 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검을 꺼꾸로 삼키는 것인가. 또한 대화(大火)를 껴안는 것인가. 삼세시방의 부처의 대원적이 되려는 것인가”(어서1587쪽) -‘귀신 놈들아! 절대로 네놈들에게 지지 않는다!는 대신념과 불굴의 마을을 갖는 것입니다. 용기를 떨치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 『이 경의 제목을 부르게 할 때에는 생각할지어다. 맹인이 처음으로 눈을 떠서 부모들을 보는것보다 기쁘고, 강한 적에게 사로 잡힌자가 풀려나서 처자를 보는것 보다 드문 일이라고 생각할지어다』(법화경제목초 942쪽)
○ 불법은 마와의 투쟁이다.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강성한 제목의 힘 밖에는 없다. "오로지 대난이오면 강성한 신심으로 더욱 기쁘할지어다"(1488쪽)의 금언과 같이, 난이 있으면 그럴수록, “좋다, 숙명전환을 해보이겠다, 지금이 바로 변독위약 할 때이다” 라는 대신력(大信力)으로 분발해야 할 것이다.
○ 고난을 당할때마다 신심의 진수가 어떤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금생에 정법을 행하는 공덕이 강성하므로 미래의 대고(大苦)를 닥쳐오게 하여 소고(小苦)를 만나느니라』(어서1083쪽)의 어서 말씀과 같이, 인생에는 고난이 따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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