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의 지혜49-관세음보살보문품(하)

2011. 12. 21. 16:27佛法 .SGI

 

 

법화경의 지혜49-관세음보살보문품(하)

광선유포야말로, 구극의 인생

 

 

  어머니와 같은 대지-관음보살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구제하는 불법의 자애의 상징

현실의 생활과 사회에 맥동쳐가는 가치창조의 종교야말로 법화경이며, 거기에 21세기의 종교의 조건도 있다.

 

  저항정신이 결여된 종교는 권력의 노예라는 것이다.

악과 싸워 사람들을 구제하는 광선유포를 향한 서원의 기원에 대해

 

 

  인생은 현실이다. 그러므로 법의 초점도 현실이다. 신심은 현실에서 승리하기 위해 있다.

사바즉적광이다.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법화경이 아니다.

현실을 이상적인 것으로 변혁하는 것이 법화경이다. 불법은 승부이다.

현세이익이라고 하면 저차원적인 것처럼 들리겠지만 현실생활을 변혁할 수 없는 종교는 힘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現世安穩 後生善處라 해서 금세도 미래세도 즐겁게 인생을 즐기기 위한 묘법이다.

현실생활에 있어서의 가치창조가 법화경의 혼인 것이다.

 

 

  브라트교수의 세계종교의 조건

① 인간사회에 봉사하는 종교

② 사회적인 힘이 있는 종교로서 세계평화에 공헌할 수 있는 일대세력으로 될 수 있는것

③ 인간주의에 관철된 종교

④ 민중의 현세이익적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종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그 사람을 어떻게 격려하고 어떻게 구제의 손을 내밀것인가. 그 무거운 과제를 피하고서는 종교의 존재 의의는 논할 가치도차 없다.

 

 

  기원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기원은 인간의 인간다운 증거이다.

 

  관음품의 7난과 같이 위급한 때에는 필사적으로 부디 지켜주십시오 라고 기원했다

7난:火難(화난),水難(수난),나찰난,왕난,귀난,枷鎖難(가쇄난),怨賊難 (원적난)

 

 

  기원이 있어서 종교가 탄생한 것이지 종교가 있어서 기원이 생긴 것이 아니다

 

 

  기원을 현실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것을 생명의 법칙상으로 명쾌하게 밝힌 것이 불법이다.

소우주와 대우주를 교류시켜 톱니바퀴를 맞물리게 하는 비술을 묘법으로 설했다.

 

 

  자식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도 그것으로 인해 신심이 강성해 진다.

그렇게 되려고 자식이 괴롭히고 있다고 해도 좋다.

부모가 성불하면 자식도 반드시 행복해진다.

 

 

  관음품에서는 관음을 예배하고 공양하는 공덕을 설하는데 물론 이것은 어본존을 배례하고 공양한다는 뜻이다.

그 증거로 관음 자신이 자신에 대한 공양을 석가 다보의 二佛에게 공양하고 있다.

무진의보살이 몸에 지니고 있었던 보물인 목걸이를 관음보살에게 공양한다.

그러나 관음은 받지 않는다.

그래서 석존이 중재해서 관음에게 공양을 받도록 권한다.

관음은 목걸이를 받아 둘로 나누어 ‘석존’과 ‘다보’의 보탑에 공양하였다.

 

‘석존과 보탑’의 그 元意(원의)는 문저인 묘법이며 어본존이다.

법화경 그 자체가 ‘관음이 아닌 묘법을 근본으로 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면 나무아미타불의 용도 관세음보살의 용도 일체의 제불.제경.제보살의 용도 모두 전부 妙法蓮華經의 용에 의해 힘을 잃느니라. 그 경들은 妙法蓮華經의 용을 빌지 않으면 모두 헛된 것이 될것이며(보은초326)

관음의 공력이라 해도 근원은 제목의 공력이라는 것이다.

 

 

  어본존을 수지했다는 것은 전우주를 수지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주 근원의 힘을 얻은 것은 것이다.

최고로 존귀한 사람이다.

 

 

 

 

  누가 기원을 이루어주는가.

자신이다.

자신의 신심과 노력이다.

어느 누구도 아니다.

자신의 물건을 사는 데 자신의 돈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돈이 없으면 안된다.

자신의 신심의 실천이 ‘돈’이다.

 

 

  기원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기원으로써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는 신심이다. 먼저 그렇게 정한다.

어느 시점만을 보면 기원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원을 지속하면 최후에는 반드시 가장 좋은 방향으로 향해 간다.

훗날 되돌아보았을 때 그것을 알게 되는 법이다.

 

불법은 도리이며 신심즉생활의 올바른 궤도를 가르치고 있다.

 

  현실을 무시한 신앙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상의 노력도 없이 안이하게 기원만 한다고 이루어질 리는 없다.

 

 

  마키구치선생님은 “인간생활의 가치창조에 관여하지 못하는 종교는 무익한 종교다”

생활을 무시한다는 것은 인간을 무시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의 ‘세’란 사회이다. 사회의 번영을 위한 도전이다.

‘음’이란 각각의 생명의 외침이며 개인의 행복을 향한 希求(희구)이다.

사회의 번영과 개인의 행복을 일치시켜 가자는 것이 관세음이며 법화경이다.

 

 

  ‘법’이라는 올바른 궤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中道(중도)’이다

道에 맞다(中)라고 읽는다. 명중이라든가 적중한다는 中이다.

올바른 人道에 입각해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중도이고 인간주의이다.

 

자유와 평등,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그 양쪽을 조화시키는 것이 정의이다.

법이다. 중도이다. 제3문명이다.

 

생활즉신심,신심즉노력이라는 정도를 철저하게 나아가는 것이 중도이다.

 

  기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원을 계속한다. 계속해서 노력한다.

그 결과 최후에는 소원만족으로 되어간다.

 

 

  관음보살은 33身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어떻한 입장의 사람이라도 존경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사람이 불보살의 표출인지도 모른다. 불보살의 작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입장이나 직업,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經世濟民-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