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본질과 행복의 패러다임 /박필규

2011. 2. 15. 09:20좋은글,건강,기타(공)

전역을 하고, 길에서, 우연히,  군에서 알게 된 신부님을 만났다. 내가 전역한 사연을 아는 신부님은 나의 표정과 행색을 읽더니 조언을 해주었다.


기분 나쁜 과거 일을 버리세요. 불행의식에 잡혀 있으면 행복을 느끼지 못해요. 한번 불행하다고 계속 불행했다면 오늘의 인류가 없었겠죠. 인간은 행복할 책임도 있고, 때로는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의무도 있습니다. 행복은 즐겁고, 자랑스럽고, 보람을 느끼는 최고의 상태인데, 행복하려면 버릴 것은 버리고, 현재에 살며, 행복한 미래의 꿈까지 현재에 투입시켜야 해요. 실존하지도 않는 불행을 털고 큰 세상을 보세요. 인간이 왜 불행한지 아세요?”


필자가 멋대가리도 없이 ‘모른다.’ 고 하자,

나도 책에서 본 내용인데…, 태초에 신은 인간이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행복을 주었는데, 인간이 오만해져 신의 경지를 엿보는 지라, 신은 인간에게 준 행복을 영혼으로 감싸서 인간 가슴에 숨겨버렸다고 해요. 그 뒤로 인간은 행복을 잃고 고통을 느꼈고,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 산을 오르고, 바다 속까지 사냥했지만, 행복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지라, 신이 인간을 가엾게 여겨서 행복은 가슴 속에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여전히 행복을 찾지 못하고 있대요. 너무 오래 행복을 방치하여 행복이 퇴화된 거래요. 자네도, 더 늦기 전에 가슴에 잠자는 행복을 흔들어 깨우세요.”   ..............



행복이란 무엇인가?


가슴에 잠자는 행복을 깨우라.’ 는 화두는 오랜 기간 나의 가슴 주위를 멤 돌았다. 고된 밥벌이 속에서 행복 화두를 풀어보려고 노력했다. 무수한 성자(聖子)들이 남긴 행복의 말씀과 행복관련 무수한 책들을 읽으면서 행복의 정의와 방법론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행복은 물 위의 수증기처럼 있으면서 없고, 영혼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가슴을 진동시키는 내면의 에너지다. 마음의 만족 상태인 행복은 기준도 없기에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수긍하면서도, 행복의 본체, 행복의 중심철학, 행복의 본질에 대해서 궁금했습니다. 사물을 보는 각도와 생각의 틀, 여건과 문화 환경에 따라 행복의 정의는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 될 수 있지만, 행복의 본질은 북극성처럼 어디서 보아도 같은 빛으로 보일 것입니다.  행복의 본질을 찾기 위해 행복관련 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행복은 개인의 책임이면서 의무다. 행복은 자기 존재가 자랑스러운 상태이면서, 일이 즐겁고, 자기 사명감과 보람을 느끼는 환희다. 행복은 새의 날개처럼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이면서, 펄떡거리는 심장처럼 3초도 쉴 수 없는 노동이다. 행복은 손 짓 하나 발걸음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이면서, 불행을 극복하는 기술이다. 행복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만드는 생존의 우유이면서, 물질과 정신의 조화로 얻는 자아실현이다. 행복은 고통을 승화시키는 내적 에너지에서, 함께 만들고 나누면서 성장하는 외적 희열이다.


행복은 누구나 갖고 싶은 보물이다. 행복은 성공의 결과물이 아니다. 마음이 행복해야 성공도 따른다. 행복은 어떻게 해야만 행복을 얻는다는 귀납법이 아니라, 이미 행복하기에 행복할 수 있다는 연역법을 따른다. 행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즐길 때 초월도 하지만, 심성이 굽고 일을 즐기지 못하면 행복을 찾지 못한다. 행복은 불행을 기쁨으로 바꾸는 기술이지만, 순리와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다. 행복은 인생의 생필품이지만, 행복을 파는 곳은 없다.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 행복은 행복을 창조하고, 불행은 불행을 창조한다. 행복은 행동으로 만들지만, 어떤 행복은 홀로 만들지 못한다. 행복은 함께 만들고 함께 먹는 생존의 빵이다.



행복은 매일 먹고 소화시키는 생활의 밥이다. 행복은 기준도 없는 자기만족이지만, 욕심이 높고 행동은 낮으면 잡지를 못한다. 행복은 발걸음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할 때 생기지만, 일에 쫓기면 행복을 보지 못한다. 행복할 수 있다는 신념은 고통을 이겨가게 하는 안정제지만, 행복을 흡수하고 소화하는 마음의 오장육부가 비어있으면 안정제를 소화하지 못한다. 행복은 자기사명과 장점으로 만드는 환희지만, 고통을 지불하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는 신기루다. 행복은 철이 든 순간부터 잡은 화두지만, 삶 자체가 행복임을 깨닫지 못하면 죽는 순간까지 행복을 모른다.  행복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희망의 보약이면서 내가 매일 먹고 소화시키는 생활의 밥이다. 



행복의 본질은 무엇인가?


행복의 본질을 찾기 위해 오랜 기간 고민했다. 다양한 행복 상태를 나열하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에너지원을 분석해 본 결과, 행복의 본질은 자 ․ 즐 ․ 보였다. 필자가 보는 행복은 내가 자랑스럽고, 일이 즐겁고, 행동으로 보람을 느끼는 상태다. 독선적 본질이라는 비난을 조금은 감수하기 위해 설명을 곁들여 보겠습니다. 남에게 인정을 받았을 때의 행복감, 고통을 이기고 뿌듯해 하는 행복은 자랑스러움에서 오는 행복이며, 밥을 먹고 포만감 상태에서 느끼는 행복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느끼는 행복은 즐거움에서 오는 행복이며,  어려운 일을 완성하고 느끼는 행복과 마음을 조였던 일이 순탄하게 마무리 되었을 때의 행복감은 보람에서 오는 행복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선(善)은 같아도 물결변화에 따라 행동 양상과 문화가 변하듯, 행복의 본질은 같아도 행복의 패러다임은 꾸준히 변할 것이다. 


과거의 행복은 성공의 부산물


19세기 이전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삶이 즐거운 상태가 복(福)이었다. 배우고 익혀서 세상 사물을 아는 것, 친한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는  것도 복이었고, 무병장수(無病長壽), 자손이 많고, 자손들이 출세하고, 재산이 많아서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복이었다. 배움, 친구, 건강, 자손번창, 부를 갖춘 상태가 복이었다. 제도권에 밀린 야인들은 나물 먹고 물을 마시면서도 마음이 편하면 복이라고 했고, 백성들은 등 따시고 배부르고, 치아가 튼튼해도 복이라고 했다. 복이라는 단어가 개화기를 거치면서 행복으로 발전했다.


행복의 제1장은 성공이다. 성공 시대의 행복은 성공을 해서 자기가 자랑스러운 상태였다. 성공 시대의 행복은 성취에서 오는 뿌듯한 즐거움이었고, 결핍의 고통을 뛰어넘어 목적을 이룬 보람,  자수성가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자기실현, 물질적 풍요함으로 신체를 호사(好事)시키는 상태였다. 성공을 통한 행복감을 누리기 위해서, 항상 앞서기 위해 쫓겼고, 주머니를 가득 채우기 위해 실적의 페달을 계속 밟아야 했고, 때로는 아픔과 슬픔도 묻어두고 가야했다. 성공은 곧 행복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무한 고통, 배부른 허탈감과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의미했다. 과거의 성공은 군림할 수 있었지만, 인터넷 세상은 성공자의 군림을 허용하지 않는다.  성공을 통한 행복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과거의 행복은 마음의 경제학이었다. 과거의 행복은 동사(動詞)가 아니라, 마음이 안정감과 성취감으로 느끼는 추상적 감정(感情)이었다. 행복은 변덕스런 마음을 다스리고, 좋은 마음을 선택하여 좋은 행동을 생산하고, 좋은 일로 연결시키는 게임이었다. 산업시대의 행복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믿었고, 고통도 받아들여 만족시키는 기술이었다. 정보화 시대의 행복은 남보다 우수하고 뭔가 다르다는 우월감이었고, 화려한 통장과 등기문서, 높은 자리가 주는 성취감이었고, 남들이 뭐라고 하던 나만 만족하면 느끼는 잉여(剩餘) 감성이었다. 행복은 과거의 고난을 이긴 보상이었고, 현재의 불안감을 이겨가게 하는 안정제였다.



현재의 행복은 즐거운 일로 마음의 평화 찾기


산업시대와 정보시대를 거치면서 인류는 경쟁으로 피로가 누적되었고, 갈등과 부딪힘으로 인간 존엄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었다. 웰빙 운동이 전개되면서, 성공보다 마음의 평화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기초로 인식을 했다. 행복의 패러다임이 마음의 평화를 중심으로 변하고 진화했다. 행복의 본질인 자기자랑, 즐거움, 보람의 3위 요소는 변함이 없지만, 행복을 찾고, 누리는 방법들은 시대 환경을 따라간다. 일과 직업이 다양해지면서 행복의 영역이 다양해졌고, 감성으로 느끼는 추상적 행복이 구체적인 모습을 갖게 되었다. 현재의 행복은 고통과 불행을 의지로 이기고 마음을 편하게 만든 상태이며, 일이 즐겁고, 물질과 정신이 조화된 상태에서 행동으로 행복을 구하는 과정이다.  


행복의 제2장은 즐거운 일을 통한 자기만족이다.  과거의 인간은 마음이 편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믿었다. 현생 인류는 일이 편해야 마음도 편하고 행복하다고 믿는다. ‘평양 감사도 내가 싫으면 그만이다.’ 영광의 자리라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행복은 성취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나의 일이 즐겁고, 나의 일에 만족감을 느낄 때 생기는 삶의 광채다. 가치 10 라는 일을 하고도 100 이라는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과 가치 100 라는 일을 하고도 10 이라는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더 행복할까? 당연히 전자다. 성취에서 오는 행복은 가득 차야 느끼는 자기 존재감이라면, 현재의 행복은 나의 일로 만족감으로 채우는 자기 희열이다. 만족은 절대 기준이 없다. 내가 만족하면 행복이 되고, 영광의 자리에 도달했더라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행복은 없다. 만족감으로 채우는 행복은 피상적이지만, 만족은 또 다른 만족으로 진보하면서 또 다른 행복을 만든다.


행복은 행동 경제학이다. 행복은 마음과 감성만으로 유지할 수가 없다. 마음을 선택하고, 만들고, 유통하여 자신의 마음부터 편하게 하고, 행동으로 기쁨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결과와 산물을 요구하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행동하지 못하면 행복은 없다. 애틋한 대상에게 나의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상대도 행복을 느낀다. 현재의 행복은 선한 마음의 기초 위에, 행동으로 기쁨을 제공하는 인간 경제활동이다. 생각과 목표를 정해놓고도 주저하고 망설이면 행복은 생각의 동굴에 갇히고 만다. 우연히 로또가 생각이 나서 숫자를 적어두고 잊어버렸는데, 로또 1등 번호와 일치한다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우리들의 생활 속에는 행동하지 않아서 잃어버리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때로는 ‘이 행복을 위해! 이것도 참자.’라고 영혼을 달래면서 행동의 광장으로 나가야 행복의 열매를 얻는다.


행복은 현재에서 스스로 찾는 일이다. 행복은 의지의 영역이면서 행동의 영역이다. 인간이 사는 일상사가 행복이 되어야 한다. 행복은 내가 찾고 누리지 못하면 누구도 나의 행복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행복은 강한 자, 있는 자, 잘난 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행복은 마음이 밝고, 즐겁고, 겸손하고, 감사할 줄 알고, 있는 그대로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의 몫이다. 행복도 소유의 영역이 아니라 깨우침의 산물이며, 행복은 대인 부딪힘을 관리하여 서로 승리하는 길이며, 큰마음으로 행동하여 나를 자랑스럽게 하는 일이다. 인간 세상은 내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때로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행복은 어두운 현실에도 마음만은 즐겁게 유지하여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가치와 의미, 보람을 생각하면서 행동하고 기다리는 절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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