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9. 17:02ㆍ佛法 .SGI
如來壽量品第16 -(2)
-(사후(死後)의생명) -이케다다이사쿠
임종(臨終)은 인생의 총결산이다.
불법(佛法)에서 본다면 일생(一生)의 업(業)(신구의,의 행위)이 일거에 떠오른다.
미국 요시마치 부이사장의 임사체험을 생각하자. 미국 SGI본부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그후 의식이 없어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의사들이 자기를 살피고 있었으며 약20초 동안 심장이 정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사이 요시마치 씨는 불가사의한 체험을 했다. "의식이 없어진후 자신은 깜깜한 어둠속에 소리도 전혀 없는 침묵의 세계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작은 빛이 보였다 먼 곳에서 오는 빛이었다. 빛을 향해 걸었다. 그 빛의 터널을 빠져 나가자. LA미국 SGI강당이 나왔다 회합이 열리고 있었다. 거기에 자신이 있었으며 단상을 보니 선생님이 스피치하고 계셨습니다. 어! 이건 전미총회 인데 하고 생각 했을 때 눈이 떠지며 침대위에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장면으로 바뀌었다고"
죽었다 살아온 체험 -임사체험
융(심리학자)도 자서전에 "44년 우주에서 지구를 본적이 없던 시대에 심근경색으로 의식을 상실 했을 때 우주 꼭대기에서 푸른 지구를 내가 본 광경중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고" (61년 최초 유인우주비행) 앞서 요시마치 씨도 목숨이란 얼마나 덧없는가. 이대로 죽어도 후회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나날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다고
대성인은 "日蓮은 어릴 때부터 불법을 배워 왔으나 사람의 수명은 무상하다 현명한 자도 젊은 자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사다. 그러므로 우선 임종의 일을 배우고 후에 타사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여"(어서1404)라고
임종이란 산꼭대기에 비유될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등산을 끝낸 그 지점에서 되돌아보아야 비로소 자기 일생이 전부 보인다.
자신은 이 일생에서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남겼는가. 얼마나 많은 선을 행했는가. 악을 행했는가. 남에게 친절하게 했는가. 상처를 입혔는가. 어느 쪽이 많았는가.
자기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했던가. ---그것이 가슴에 저며 온다. 임종의 한측면이다.
분명 사후는 실험으로 실증 할 수 없다. 죽어보면 알겠지만!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이론상결정 내리기에는 부족하다.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파스칼은 칸트도 사후의 생명은 없다 는 쪽으로 내기를 걸고 살다가 죽어서 실재하고 있다면 살아 있을 때 선을 쌓고 준비했으면 해도 늦다. 이렇게 냉정하게 생각하면 종교를 받아 들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절대 확실하지 않으면 안한다면 결혼도 할 수 없다! 잘된다는 보증은 없다. 생사라는 인생 일대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현대는 불법에서 말하는 단견(斷見)의 사람이 많다.
단견이란 생명이 죽음에 의해 무로 돌아간다는 생명관이지요. 향락주의 불안 비관주의도 이 단견에 있다. 죽으면 끝이다 라고
사람이 죽어갈 때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도움 되지 않는다. 벌거벗은 자기로 맞는다.
불전에서는 탈의파(奪衣婆)라는 존재를 설합니다. 자기이외의 장식은 없다는 상징이다 그러기에 살아있는 동안에 신앙으로 생명을 연마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에서 설하는 삼세의 생명관은 자기에게 희망을 줄 뿐 아니라 남도 격려하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생명관입니다.
생기발랄하게 영원한 희망을 갖고 살아가기 위하여 지금 불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윽고 다가올 죽음을 당당한 인생의 완성의 때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비참한 인생의 붕괴의 때로 만들 것인가.
그것은 오로지 이 일생을 지금 어떻게 살았는가로 결정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임종은 바로 지금에 있는 것입니다
대우주 자체가 하나의 대생명입니다.
생명의 영원성을 생각할수록 알 수 없는 것이 사후의 생명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우리들 생명은 사후 색심불이의 생명 자체가 대우주로 돌아간다.
생(生)과 사(死)의 리듬을 연주 하고 있다 라고
대성인은 도끼미쓰의 부친에게 "살아 계셨을 때는 생(生)의 부처 지금은 사(死)의 부처 생사(生死) 다같이 부처이니라(1540)고 말씀 하셨듯이 즉신성불의 불과도 전우주 모든 것이 생사의 이법입니다.
후지종학요집 제3권에는 임종 할 때의 일념을 일심으로 묘법으로 향하게 하는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숨이 끊어져도 잠시 동안은 사망한 사람의 귀에 제목을 들려주시오 라고
죽을 때 괴로워 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신앙의 위대한 공덕입니다. 학회 속에는 그러한 체험이 많다.
학회의 장례식을 보더라도 임종의 모습을 보고 죽은 사람은 죽고 나서도 절복을 한다.
불계를 기저부로한 생명은 대우주의 불계와 일체되고 대환희로 된다.
‘아차토안온 천인상충만 중생소유락 제천격천고’의 경애를 즐기면서 구원의 부처와 생사불이 해간다.
그 근원의 대생명을 신통지력을 나의 몸에 열어 가는 것이 수량품의 간요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광선유포로 전심전력으로 행동하는 가운데 감득할 수 있습니다.
일심욕견불 부자석신명입니다. 삼세 끝까지 광선유포로 -------
그 신심이 바로 생사의 대해를 영원하고 유유하게 건너가는 여도득선의 대선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죽음이 없다면 김빠지고 지루하지 않을까.
인구문제가 대단할 것이다. 300살이 되어도 움직일 수 없다. 죽는 약을 구해야? 될지도 모른다.
죽음이 있기에 지금을 소중히 살아가려는 것이다.
죽음을 사후를 잊으면 타락한 생활 사회가 병든다. 인간자신의 변혁 인간혁명의 대법을 배우지 않는다.
영원한 불계에 눈을 뜬다. 그 열쇠는 부처를 구하는 일심에 있다
신심의 마음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몇억년이 흘러도 한번 밖에 만날 수 없는 어본존이라고 생각한다면 근행하는 감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수량품의 자아게의 자아득불래의 自 의 글자에서 시작하여 속성취불신의 身 의 글자로 끝난다.
自身의 자유로운 경애를 설한 것이 자아게입니다.
그러기에 현세에 이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금세의 승리가 사후의 승리이며 내세의 승리이고 영원한 승리입니다.
신심을 관철하다가 죽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대성인은 "아- 유쾌하도다 법계는 적광토로서 유리로 땅을 금의 밧줄로 길에 경계를 했으며 하늘에는 사종의 꽃이 내리고 허공에는 음악이 들리며 우리들도 그 수에 들어가서 유희하고 즐기게 될 것이다(1386)
일승이 날개를 의지하고 적광의 하늘에도 날아가리라(1430)
삼세에 걸쳐 전 우주를 무대로 행복의 대공을 유유하게 비상 한다고
그러므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준엄한 인과(因果)의 이법을 두려워해야 한다.
수량품이란 부처의 대생명력을 나의 몸에 용솟음치게 하여 살고 또 살고 끝까지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광선유포라는 대원에 살아가며 힘껏 애쓰는 것이 그대로 불사의 경지입니다.
그것이 수량품을 신독하는 것으로 된다.
대성인불법의 대생명철학을 사람들이 배우고 행할 때 참된 인간의세기의 태양이 떠오른다.
경제도 교육도 정치도 과학도 가정도 인생도 생명의 법칙에 따르는 사회----
그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이 장대한 광선유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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