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8. 14:19ㆍ佛法 .SGI
○ 비록 지옥의 바닥에 있을지라도 제목(題目)의 힘으로 거기가 적광토로 바뀐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승리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최고의 '영광스런 인생'이 되는 것은 정해져 있다. 스스로를 낮추어서는 안 된다(비하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질투할 필요도 없다. '광선유포의 인생'을 보내는 여러분만큼 존귀한 인생은 없다. 가슴을 펴서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일어서 주기 바란다. '자신은 이렇게 살아간다!' '이런 나의 무대를 혁명하여 보이겠다!' 그렇게 정한 사람은 강하다. 누구도 당해낼 수 없다. '행복'은 나의 '흉중'에 있다. 따라서 남과 자기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우리들에게는 삼세시방의 제불 그리고 제천선신이라는 강한 자기편이 따르고 있다.
○ 근행(勤行).창제(唱題)는 거목으로 성장하기 위한 [뿌리]이다. 나날이 근행.창제를 쌓아올리면 나무는 강하고 크게 된다. 하루하루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날의 양분에 의해 어느새 대목이 된다. 그 착실한 지속 속에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행복 경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 양분을 묘법(妙法)의 대지로부터 빨아올리는 것이 [신(信)]이다. 어본존을 향한 믿음이 인생을 승리로 이끄는 최고의 지혜를 끌어내는 열쇠이다. 또 숙명의 쇠사슬을 끊는 용기의 근원도 근행.창제에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넘치는 생명력으로 엄한 현실에 도전해 간다. 그를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수행이다.
- 도다 선생님은 “어본존 앞에서 근행할 때는 니치렌 대성인님 앞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지도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긴장할 필요는 없지만 존다든지 하품을 하는 것과 같이 단정하지 못한 타성에 흐르는 근행이어서는 안 된다. 제법실상으로 근행의 모습에 신심이 나타난다. 단정한 자세로 어본존께 향해야 한다.
- 그와 동시에 기원의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과제에 신심의 실증을 나타내가는 곳에 생명의 약동이 있으며 성장이 있다. 기쁨과 희망도 솟아난다.
- 낭랑하게 또 백마가 하늘을 달리는 듯한 상쾌한 리듬감 넘치는 조석의 근행.창제를 활력원으로 신심 즉 생활의 충실한 나날을 보내기 바란다.
○ 대성인은 <어느 때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여러 국왕, 대신, 귀족이나 전상인등의 몸이 되어 '이만한 즐거움이 없다'고 생각하고 적은 것을 얻고서 '족하다'고 생각하여 기뻐했노라. 이를 부처는 '꿈속의 영화요, 환상의 낙(樂)이니라. 오직 법화경을 수지해 받들어 속히 부처가 되세요.'(어서 386쪽, 통해)
- 불법에서 보면, 어느 때는 '동물'로 태어나고 어느 때는 '나무'로 태어날지도 모릅니다. 애써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세간의 즐거움에 푹 빠지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그 즐거움은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 여하튼 광선유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그 일을 위한 괴로움을 세간의 즐거움에 비해 몇 천배나 되는 즐거움으로 바꿔갑니다. 영원한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 오직 법화경을 수지한다. 묘법을 믿고 제목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올바른 사회관, 생명관, 우주관을 가진 가장 존귀한 생명의 당체가 됩니다. 진정한 행복, 진정한 부처의 경애를 지닐 수 있습니다.
- 이케다 다이사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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