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20. 15:44ㆍ佛法 .SGI
남이섬
인생의 스승을 말한다
승리의 춤 위대한 남자부에게 보낸다
스승은 엄했다. 너무나도 엄했다. 스승은 자상했다. 너무나도 자상했다.
나는 스승이 남긴 한마디 한마디를 전부 유언이라 생각하여 나날이 가슴 깊이 새겼다.
어느 날, 도다(戶田)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다이사쿠, 들개가 짖는 것 같은 어떤 매도나 비난이 있어도 결코 동요하지 마라! 그런 하찮은 일에 결코 분동하지 마라! 영웅의 길을 걸어야 한다. 위인의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가 신봉하는 대성인의 난에서 보면 전부 구우(九牛)의 일모(一毛)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선생님은 <개목초> 한구절을 배독하셨다.
“산에 산이 겹치고 파도에 파도가 덮치며, 난에 난이 더하고 비(非)에 비를 더함이라.”(어서 202쪽)
나는 청춘을 바쳐 스승의 생애를 지켜드렸다.
계속되는 박해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지켜드렸다. 스승은 엄하지만, 전 생명에 울려 퍼지는 듯한 애정으로 항상 나를 격려하셨다.
그것은 ‘오사카사건’ 때의 일이다.
“자네가 감옥에 가서 쓰러지면 나는 그 위에 엎드려 함께 죽겠다”라고 눈물로 말씀하셨다
스승이란 이렇게도 깊고 위대한 것인가 하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사업이 크게 실패했을 때에는, 선생님은 죽음을 각오하고 재건에 임하셨다.
나는 스승을 지키기 위해 청춘의 전 생명을 털어 모든 것을 바쳤다. 모든 것을 희생하여 지켰다. 급여도 받지 못했다. 진학의 길도 스승을 위해 버렸다. 가족도 희생시켰다.
그러나 스승과 함께 고민하고 스승을 지키는 기쁨에 영원한 긍지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반년 전부터 “나는 가르칠 것은 전부 다이사쿠에게 가르쳤다. 많은 제자가 망각할지라도 다이사쿠는 절대 잊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
그것은 내 처부모와 학회의 수뇌 몇사람이 선생님을 둘러싸고 엄숙한 대화를 나눌 때였다.
“다이사쿠는 몸이 약한데도 이렇게까지 학회를 위해, 스승인 나를 위해 수명을 줄일 정도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사자분신의 노력을 해 주었다”라고 눈물을 떨구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가슴을 앓으며 덮쳐 드는 병마와 투쟁하는 나를 생각하고 통곡하셨다.
그리고 “30살까지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라고 쓸쓸하게 말씀하셨다.
사실 나 자신도 장렬한 투쟁을 전개하고 적을 되받아치며 스승 앞에서 죽는 것이 무상(無上)의 기쁨이라고 결의하고 있었다.
젊은 아내는 스승의 마음도 제자인 내 마음도 전부 깨끗하고 깊게 읽어 내렸다. 아내의 기원하는 근행은 계속되었다. 조용히 밤중에 일어나 며칠이고 축인근행을 해 준 아내.
내가 알지 못하고, 잠에 푹 빠졌다고 생각한 아내는 살며시 일어나 기원을 거듭한 그 갸륵함이여. 사제의 길도 엄연했다.
부부의 결의와 애정의 깊이도 엄연했다. 선생님 생활까지 내 급여로 유지했다. 스승은 그 마음을 알고 계셨다. 언제나 “작은 집에 사는 것이 가엾다” “나를 위해 참으로 기특하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좋은 제자를 두었을 때는 사제(師弟)·불과(佛果)에 이르고, 나쁜 제자를 두면 사제·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사제가 상위(相違)하면 무슨 일도 이루지 못함이라.”(어서 900쪽)
심심(甚深)한 저 <화과성취어서>의 한구절이다.
◇
인류의 두뇌라고 하는 아인슈타인 박사는 말했다.
“예로부터 위대한 정신은 항상 평범한 자들의 격렬한 반대를 받아왔다.”
전적으로 그렇다.
“저 더러운 모함은 어리석은 자들의 말이다”라고 경멸하고 단언한 벗이 있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정신세계의 우리 나라에 질투와 패배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처사는 백귀야행(百鬼夜行)과 같으니라”라고 개탄한 문학가가 있었다.
저마다 시대에 따라 어두운 역사도 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지금처럼 황량하고 살벌하며 서글픈 시대는 없다.
어쨌든 승리를 긍지로 삼아 나아가야 한다.
대성인은 단언하셨다.
“결국은 승부를 결정해 버리는 이외는 이 재난이 그치기 어려우리라”(어서 998쪽)라고.
◇
스승은 말씀하셨다.
“광선유포란 만인의 행복을 쟁취하는 인권투쟁이다. 정의의 투쟁이다. 그것이 학회 청년의 사명이다!”
11월5일은 ‘남자부의 날’이었다.
1961년 이날, 10만명의 젊은이가 모여 저 국립경기장에서 영광과 승리 속에 제10회 남자부총회가 열렸다.
이것이 영원히 이어질 창가승리의 근원이다.
도다 선생님은 1954년 불멸의 사자후로 유언하셨다.
“청년이여, 홀로 일어서라! 두사람은 반드시 일어서리라. 세사람은 또 뒤를 이을 것이다.”
그리고 10만의 젊은 지도자가 일어서면 “고뇌하는 민중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불을 보는 것보다 명확하다”라고 선언하셨다.
당시 남자부원은 불과 1만명 정도에 불과했다. 10만명이 한곳에 모이는 대결집은 누구나 꿈 같은 이야기로밖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그 달성을 서원했다.
그리고 7년 후, 나는 스승의 구상을 현실로 옮겨 놓았다.
국립경기장 스탠드에 걸린 필적도 선명한 ‘승리’의 두글자는 생명에 새겨져 떠나지 않는다.
광선유포란 제자가 스승에게 맹세하고 그것을 완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생명을 쏟아 길러낸 남자부는 사상 최강을 자랑하는 청년의 대연대가 되었다. 그 진열이 있는 한 창가의 연전연승의 대행진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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