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의 지혜 <상권> / 제2장 방편품 / 더 없이 소중한 하나하나의 생명

2017. 2. 17. 13:59佛法 .SGI





제2장 방편품(方便品)


더 없이 소중한 하나하나의 생명


[사이토] 제법실상이 일체중생의 성불의 '근원'이 되는 법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제법실상의 현대적인 의의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말하고자 합니다.

 '제법, 다시 말해 하나하나의 생명'이 즉(卽) '실사, 다시 말해 우주생명'과 일체이다. - 부분이 즉 전체라는, 이 불가사의한 관계를 밝힌 것이 제법실상의 법리인데, 현대과학의 각 분야에서도 '전체는 부분의 단순한 총화(總和)가 아닌, 개체 속에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SGI 회장]  그렇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인에게는 오히려 알기 쉬울지도 모릅니다.


'개체' 속에서 '전체'를 보다


[엔도] 개체에 전체가 포함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과학적인 지견은 많이 있습니다. 가장 알기 쉬운 것은, 세포 안에 있는 DNA(디옥시리보핵산)의 이야기 입니다.

DNA는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당하는 물질이고, 생명의 모든 세포 안에 있습니다.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는 대략 200종류인데, 다양하게 서로 다른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각각의 세포에 포함되어 있는 DNA는 당연히 다를 것이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세포에 똑같은 DNA가 있습니다. 요컨대, 머리카락을 만드는 세포든, 간장(肝臟)을 만드는 세포이든 모든 세포가 신체 전체의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다] 그러므로 '쥬라기공원'이라는 미국의 공룡영화에도 있듯이, 화석에서 꺼낸 세포 하나가 있으면, 절멸(絶滅)한 공룡도 이론적으로는 재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SGI 회장] 어느 세포의 DNA에도 모든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 세포가 신체의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위치에 적합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이면 머리카락, 간장이라면 간장으로서 기능을 합니다. 그리하여 신체 전체의 조화를 이룹니다. 생명의 묘(妙)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생명체의 각 부분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을 '중생법묘(衆生法妙)'의 비유로 드셨습니다. (<대백연화>1956년 3월호, 좌담회 '생명의 불가사의함을 둘러싸고'에서)


[사이토] 하나하나의 세포 속에 있는 유전자에 신체 전체의 정보가 들어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를 거대한 도서관에 비유한 사람도 있습니다. 웃는 법, 우는 법, 걷는 법 등 우리 신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대한 모든 정보가 이 세포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성에는, 세포 하나에 간직된 정보는 500쪽짜리 책 1000권에 상당한다고 합니다. 또, 살아 있는 동안에 습득한 정보를 보존하는 뇌를 도서관에 비유하면, 수록된 정보량은 2000만권이나 된다고 합니다.


[SGI 회장] '뇌의 세계'는 21세기 과학의 최대 프런티어(최전방)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하나의 소우주라고 해야 할 광대한 세계입니다. 이제까지의 연구를 통해, 뇌의 부위별 기능 등이 밝혀지는 모양입니다.

 

[스다] 예. 희로애락의 감정은 물론이고 ○이나 △, X라고 하는 기호를 식별하는 뇌의 부분까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SGI 회장] 그런데 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뇌는 단순히 그 부분부분의 기능을 모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최근에 나온 뇌신경외과의 보고서를 보면, 인간의 뇌에는 이론적*지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좌뇌(左腦)'와 창조적 감각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우뇌(右腦)'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쪽 대뇌가 완전히 텅빈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불편 없이 생활하던 어느 청년은, 우연히 받은 뇌 정밀검사에서 좌대뇌반구(左大腦半球)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적 능력을 담당하는 좌뇌가 없으므로, 종래의 상식으로 말하면 그 청년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반신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남아 있는 우뇌가 텅빈 좌뇌의 역할까지 대신한 셈입니다.


[엔도] 생명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그 보고서를 보면, 뇌에 결손부분이 생겨 기능장애가 있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뇌가 스스로 회복해, 성인이 되자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다는 예도 많이 나옵니다.

 그런 뇌결손장애가 있는 아이를 위해, 그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함께 키우면서 끊임없이 자극을 주려는 보육원도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예를 들면, 뇌간(腦幹)과 전두엽(前頭葉)이 일부 밖에 없던 아이들도 끈기 있게 접촉함으로써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게 된 사례도 있습니다.


[SGI 회장] 그렇군요. 생명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막대한 힘이 밝혀지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람에게도 '저 사람은 구제불능'이라는 식으로 단정지으면 안 됩니다. 특히 자기자신의 가능성을 단정지으면 안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막힘'은 자기자신이 그렇게 단정짓기 때문입니다.


[사이토] 뇌의 이러한 기능에 대해 홀로그램의 원리와 유사한 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홀로그램은 빛의 파동을 겹침으로써 만들어내는 삼차원적 입체상입니다. 하나의 홀로그램 필름을 몇 개로 잘라내도, 어느 한 단편에서도 원래의 전체상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의 뚜렷한 상은 아니지만, 어쨌든 전체적인 입체상이 보입니다.


[SGI 회장] "한알의 모래로 세계를 본다."고 하는 시인(블레이크)의 직관이 생각납니다.


[스다] '개체' 속에 '전체'가 포함된다는 의미에서 요즘 주목받는 이론이 '프렉텔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본래 기하학의 이론상에서 생겨났는데, 프렉텔은 '일부와 전체가 똑같은 형태로 갖고 있다.'는 자기상사성(自己相似性)의 구조를 말합니다. 실은 '프랙텔구조'는 자연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폐에서 기관지가 갈라져 나온 방식은 그 세부를 확대해도 전체와 똑같은 방식으로 가지가 갈라져 나온다는 점에서 '프랙텔'입니다.

 이 밖에도 뇌 속의 미세한 혈관이 갈라져 나오는 방식, 강의 지류(支流)가 그려내는 형태, 구름의 형태, 나뭇가지가 갈라지는 형태 등, 이제까지는 규칙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자연계의 여러 현상에서도 '개체'와 '전체'의 상사성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연현상에 그치지 않고 통신의 에러나 주가(株價)의 변동, 소득분포와 같은 사회현상에서도 '프랙텔구조'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엔도] 객체 속에 전체가 있음은 십계론에서 말하면, 십계 각각(개체)에 십계(전체)가 있다는 것이 됩니다. 요컨대, 십계 각각이 소우주라는 뜻입니다.


[스다] 십계호구이군요. 이것은 한 사람의 생명에 십계를 갖추고 있음을 뜻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주생명 자체도 십계를 갖추고 있음도 뜻합니다. 방금 전, 도다 선생님의 '중생법묘(衆生法妙)'에 대해 조금 언급했지만, 도다 선생님은 앞에서 말한 '생명의 불가사의함을 둘러싸고'라는 좌담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구와 상태가 같은 다른 별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을 느끼는 - 느낀다고 하면 좀 이상하겠지만 - 대우주 전부가 십계이므로 그곳(그 별)에서는 인간생명이 그에 응해 무엇인가의 형태로 출현합니다. 또한 그 별에 개라든지 고양이가 있다고 합시다. 이것은 가정(假定)이지만, 거기에 인간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면, 그 축생계에 그 인간계를 느끼는 것입니다.

십계호구이므로, 그렇게 되면 생겨나는 것은 인간과 비슷한 것이 생겨나는 법입니다."


[사이토] 감응(感應)의 묘(妙)이군요. 대우주 그 자체가 십계 전부를 구족한 당체이고, 우주에 갖추어진 십계가 각각의 별의 상태에서 각각의 연(緣)에 응하고 또 시(時)를 느껴 무엇인가 감응하여 나타난다…' 십계호구의 법리라는 진화론 등 생물철학의 분야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SGI 회장] 앞으로의 연구과제입니다. 부분즉전체라는 제법실상의 지혜에서 보면, 모든 만물은 각각의 전 우주의 보물을 지닌 가장 존귀한 존재입니다.

 방편품에는 제법실상을 바꾸어 말해 "이 법은 법위(法位)에 머물고 세간의 상(相)에도 항상 머무느니라."(법화경 138쪽)라고 씌어 있습니다. '세간의 상(제법)'은 '상주(常住)하는 묘법의 모습(실상)'이라고 말입니다.

천태도 "일색일향(一色一香)도 중도(中道)가 아님이 없다."(<마하지관>)고 말했습니다. 일색일향이란 미세한 물질을 가리킵니다. 어떠한 미세한 물질도 중도실상(中道實相)의 당체, 다시 말해 우주생명의 당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도 인간의 일방적으로 소비하고 지배하는 대상이 절대로 아닙니다. 자연도, 인간도 똑같이 우주생명의 부분이고 전체입니다. 자연과 인간은 일체입니다. 함께 생태계의 연쇄고리 안에서 훌륭하게 공존해왔기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면 인간의 공존기반을 파괴하게 됩니다.


[엔도] 제법실상의 법리는 '환경윤리'의 문제와도 직결하는군요.


[SGI 회장] 그렇습니다. 대성인은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삼라삼천(森羅三千)의 당체 모두가 신통력의 체(體)이니라."(어서 753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멸(生滅)하고 변화해마지 않는 모든 현상은 그 자체가 '여래의 신통력'이라는 말씀입니다. 변화에 변화를 계속하는 만물도 실은 그대로 상주(常住)이고, 중도(中道)이고, 실상(實相)이고, 여래(如來)입니다.

 도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추구하면 만물의 일순(一瞬)을 여래라고 읽어야 한다.(중략) 나의 생명뿐 아니라, 우주의 만물을 일순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시시각각 변화, 변화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므로 어떠한 것이라도 여여(如如)히 변하기 때문에, 집 같은 것, 또는 집 그 자체, 그 자체로서 변화하여 시시각각으로 흙덩어리가 되고, 먼지가 된다. 흙덩이는 흙덩이 같은 것, 흙 자체, 먼지 자체로서 다시 분해작용을 시작한다.

 만물을 '같은 것'으로서 깨달으면 이것은 가(假)의 뜻이고, 가(假)의 모습이기 때문에 실체가 아니라면 공(空)의 뜻이다. 

만약 순간순간이 그대로의 존재라고 본다면, 그것은 중도(中道)이다. 그러므로 순간순간의 만물도 상(相)*성(性) 그대로가 실상인 것이다. 우리도 이 순간순간의 생명*생활이 실상으로서, 이 일순의 실상 속에 과거 구원(久遠)의 생명으로 포함하고 또 미래 영원의 생명을 내포하고 있다. 이 일순의 생명 속에 과거의 생활의 과(果)를 포함하고, 이래 영겁의 생명의 인(因)을 포함한다. 이것이 연화(蓮華)의 법이다. 

 이 일순의 생명이야말로 우주 자체의 활동이고, 자기 생명이고, 실재이다. 우주가 펼치는 순간순간의 활동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한 여러 현상으로서 표현되고, 만상(萬象)이 전부 활동 중에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이것을 '신통력(神通力)'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가 어떠한 힘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 우주의 만상 자체가 온갖 다른 활동을 연으로 하여 주유자재로 변모하는 것이 우주의 실상이다."

 도다 선생님의 제법실상관(諸法實相觀)입니다.

 앞서 언급한 법화경, 천태대사, 그리고 대성인의 말씀과 조금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잘 음미하여 회득(會得)해야 할 말씀입니다.


'물질'의 차원과 '상태'의 차원


[엔도] 도다 선생님의 이 말씀을 들으니 물질도 생명도 똑같이 취급하는 것처럼 생각되는데,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좀 곤란합니다.

불법이 말하는 '제법'에는 물질도 생명도 포함된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보통의 생각으로는 두가지가 완전히 다르니 말입니다.

 

[SGI 회장] 중요한 지적입니다. '제법'은 '현상'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불법은 물질도 '고정된 물질'이 아닌 '생멸하고 변화하는 현상'으로 봅니다. 다시 말해 '상태'의 차원에서 보고 있습니다. 생명도 똑같이 생멸하고 변화하는 '상태'입니다. 

 '상태'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물질을 볼 때와 같이 '있다'고 말하여 고정화시켜서 보면 틀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닙니다.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닙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있다.'고 해서 좋을 때도 있고, '없다.'고 해서 좋을 때로 있습니다. 이렇게 보는 것을 중도(中道)라고 합니다. '유' '무'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므로 '중도'입니다.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인식한 '실상'과 똑같습니다.


[엔도] '물질'과 '상태'라는 두가지 차원을 구분해서 생각하면 알기 쉽군요. 도다 선생님의 말씀에 나온 공(空)*가(假)*중(中)의 삼제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질로 말하면, '상태'이지 '물질'이 아니라는 진리(제<諦>)를 공제(空諦)라고 합니다. 하지만 임시로 '물질'로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가제(假諦)라고 하며,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을 '중제(中諦: 중도)'라고 합니다.

 천태대사는 이 세가지 면에서 종합적으로 제법실상을 파악하여 빠짐이 없는 것을 '원융(圓融)의 삼제(三諦)'라고 부르고, 이것을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SGI 회장] 모든 것은 '상태'이고, 생주이멸(生住異滅)합니다. 요컨대 생성하고, 안정하고, 변화하고, 소멸합니다. 그 일시적인 안정기의 모습을 물질에 대해서는 임시로 '물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스다] 뉴턴의 역학을 중심으로 하는 고전물리학은 '물질'을 중심으로 하는 견해에서 성립했습니다. 예를 들면, 물체라는 실재가 있어 두 물체 사이에 중력이 작용한다는 것이 뉴턴역학입니다. 이 뉴턴역학으로 많은 물리현상을 훌륭히 설명했으므로, 생명에 대해서는 '물질에 지나지 않는가.' '기계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으로 되었습니다.


[SGI 회장] 다만 그런 견해는 본래 과학 자체에는 없습니다.


[엔도] 과학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닌, 과학신앙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물의 한 측면을 파악한 다음, 모든 것이 '그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태도를 '환원주의'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체를 부분으로 환원하고, 부분관을 전체관으로 무리하게 넓히려는 그릇된 태도입니다.


[사이토' '…에 불과하다.'는 환원주의의 이러한 견해가 현대인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희망을 빼앗고, 무력감을 증장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SGI 회장] 과학신앙에 빠지지 않으려면, 생명의 전체관을 밝힌 참된 철학이 필요합니다. 과학에는 본래 부분관을 부분관으로서 나타내는 절도(節度)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과학의 근저에는 진실에 육박하려는 요구가 있으므로 그때까지의 부분관이 막혀버리면, 그것을 부수고 더욱 깊이 실재에 육박하는 창조적이고 새로운 이론이 발견됩니다. 다시 말해 '과학혁명'이 행해집니다.


[스다] 과학혁명은 개인의 창조적인 힘으로 수단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SGI 회장] 당연히 그런 면이 크겠지요. 인간생명이야말로 창조성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 등이 그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도다 선생님은 일본을 방문한 아인슈타인의 강연을 마키구치 선생님과 함께 들으신 일을 생애의 기쁨으로 여기셨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진리탐구를 향한 자신의 정열을 '우주적 종교성'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이 우주를 '단지 하나의 물질' '의의 있는 물질'로서 그 '전체를 체험하고 싶은' 기분이고, 자연의 세계나 사고(思考)의 세계에서 숭고함을 느끼고 놀랄 만한 질서를 느끼는 감각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우주적 종교성'은 불교에 특히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썼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관점에서, 과학과 종교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과학탐구의 '동기'가 종교성에 있을 뿐 아니라, 과학의 '결과'도 만물의 묘한 법칙에 대해 인간을 겸허한 태도로 만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 말이 지닌 최고의 의미에서 종교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과학은, 종교적 충동을 그 의인주의(擬人主義)라는 협잡물(挾雜物)에서 순환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종교적 정신을 통해 이해하는 일에도 역시 공헌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은 '과학과 종교'가 대립한다고 하면, 그 주된 원인은 인격신의 개념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의인주의라는 협작물'은 '인격신'이라는 개념을 말합니다.

불교와 같은 '생명의 법에 대한 겸허한 탐구'는, 그의 견해에서 보면 과학적인 동시에 종교적이기도 합니다.

 불법의 관점에서 단적으로 말하면, 불법은 생명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총합지(總合智)이도, 과학은 생명의 '가유(暇有)의 면을 대상은 하는 '불법의 일부'라고까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므로 양자는 대립하는 관계가 절대로 아닙니다. 일체세간(一切世間)의 선론(善論)은 모두 '불법(佛法)'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과학이 발달할수록 불법의 올바름이 증명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증명이라고 해도 양자는 차원도 다르고 접근방식도 다릅니다. '과학이 말하는 것은 틀림없으므로, 과학이 지지하는 불법도 틀림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과학의 지견은 일진월보(日進月步: 나날이 다달이 계속하여 진보*발전함)로 변화하고 있고, 그러한 상대적인 과학의 지견에 의해 불법의 절대적 진리의 진실성이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과학은 진보할수록 불법과 훌륭히 조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상사성(相似性: 서로 닮음<anaiogy>)이 현대에는 불법의 탁월성을 유추하게 하는 강한 동기가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상태' 중심의 세계관에 지극히 근접한 이론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사이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성이론은 공간이라는 삼차원에 시간의 차원이 융합한 '시공(時空)'이라는 사차원의 '장(場)'에서 모든 물리현상을 인식하려는 이론입니다.

 그때까지 뉴턴이 수립한 고전역학에서는 '절대시간' '절대공간'이라고 해서 '시간과 공간은 서로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자동차를 탄 사람과 걷는 사람의 시계가 빨라지거나 늦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듯, 우리가 평소 갖고 있는 감각에서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상대성이론이 등장함으로써 '고속으로 운동하는 공간일수록 관측자에 비해 시간이 늦게 경과한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시공불이(時空不二)'입니다. 양자는 서로 뗄 수 없습니다. 양쪽의 '관계(상태)'에 따라 양쪽이 나타나는 방식이 정해진다고 했습니다.


[스다] 또 양자(量子)라는 마이크로(micro)의 범위에서 말하자면 '물체의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하려고 하면, 그 물체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게 된다.'고 하듯이 계측하는 사람의 존재가 물체의 운동에 크게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라는 이론으로, 또다시 근대과학의 중심축이던 '주관과 객관의 분리'라는 원칙도 타파되었습니다. '주객불이(主客不二)'입니다. 관측이란 "관측하는 쪽과 관측되는 쪽의 '관계(상태)'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SGI 회장] '물질' 중심의 과학이 '분자에서 원자' '원자에서 소립자'로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 요소'를 탐구한 끝에 발견한 사실은, '소립자가 입자(粒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페러독스(역설)이었습니다.

 이로써 과학은 그때까지 고정적으로 파악했던 '물질'의 세계를, 실은 '물질 자체가 변화하는 양상' 또는 '물질과 물질의 관계성'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상태'의 세계입니다. 또 관측자와 대상의 상호관계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현대물리학이 묘사하는 세계상(世界像)은, 그때까지 알고 있던 '무수한 물질의 집합'에서 '무수한 관계의 직물(織物)'로 극적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계관은 그야말로 대승불교의 통찰과 서로 공명합니다.


[사이토] 아인슈타인에 의해 '물질은 에너지가 일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질*에너지 불이(不二)'라는 이론입니다. '불이'이면서 반드시 어느쪽의 형태를 취합니다. 둘이 아니면서 둘입니다.

 또 에너지는 '질량X광속도X광속도'(E=mc2)와 같다는 점도 알았습니다. 광속도(c)는 초속 30만키로미터이므로 아주 작은 질량(m)의 물체에서 방대한 에너지(E)가 나오게 됩니다.


[엔도] 그 발견이 훗날 원자폭탄의 개발에 응용되었습니다.

 

[SGI 회장] 그것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시사하는 '상태'중심의 세계관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이론이 폭주하여 발생한 비극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세계는 끝이 없는 '관계의 직물'이다." - 이 견해가 물질에도, 생명에도, 인간에게도 철저하다면, 도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일체는 하나의 커다란 생명이고, 여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자신의 실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원자폭탄처럼 파괴와 분단만을 위해 존재하는 그런 무기는 실상을 가려버리는 무명(無名)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원품의 무명은 제육천마왕으로 나타납니다. 도다 선생님은 "원자폭탄을 사용하는 자는 누구든 악마이고, 사탄"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존귀한 생명을 파괴하는 존재에 대한 '오체를 뒤흔들 만큼의 무서운 분노'가 도다 선생님의 선언에 담겨 있습니다.

 어쨌든 '물질에서 상태로'라는 과학혁명은, 인류의 사상을 근저에서 바꾸는 충격적인 힘을 발휘했습니다. 이것을 일차원적으로 말하면 '분석지(分析知: 분석으로 알게된 지식)가 한계에 부딪힐 때까지 발전한 결과, 분석지로는 파악할 수 없는 광대한 세계를 살짝 엿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거기서 아인슈타인이나 헤이젠베르크 등은 '물리학적 진리가 그 일부인 듯한, 더욱 큰 전체, 구극의 실상'에 대해 사색하게 되었을 터입니다.


[스다] 분석지는 근대과학의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현상을 관측하기 쉽도록 물질을 세세히 분할하고, 실제의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함으로써 자연계의 법칙을 발견해왔습니다.

 그때 현상을 단순화하고, 요소마다 분할하면서 다른 면을 잘라버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서로 관계하면서 변화하는 제법(현상)에 즉해서 실상을 보려 하는 것'이 아닌, '제법을 굳이 고정화하거나 제법의 일부를 떼어낸 다음, 거기에서 추출한 법칙을 진리하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학문을


[엔도] 최근에는 그러한 과학의 모습에 대해 과학 내부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듯합니다. 그 하나가 '분석으로 얻은 지식은 자연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인식입니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분석을 거듭해도 장래의 현상을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종종있습니다. 관계자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일기예보 등이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장기예보 등을 할 때는 참으로 노고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인 기상은 너무나도 많은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변화하므로, 종래의 분석적인 방식으로는 추적할 수 없습니다.


[사이토] 최근 말하는 '복잡성의 과학'이라는 사고방식도 새로운 조류(潮流)의 발로입니다. 이제까지의 과학이 여러현상의 복잡성을 배제하고 단순화함으로써 명석한 인식을 얻으려 한 것에 비해, '복잡성의 과학'은 현상의 복잡성을 굳이 잘라버리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현재 이 '복잡성의 과학'으로 유명한 미국 뉴멕시코주의 산타페연구소는, '종래의 생물학*수학*물리학 등 학문영역의 틀을 없애고, 현상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려는 연구시스템'을 취하고 있습니다. 


[스다] 기상 외에도 생태계, 뇌 등은 수학적 해석이나 시뮬레이션(모의실험)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복잡한 시스템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왜 이러한 자연현상에서는 단순성의 과학이 통용되지 않는가. 그 이유 중 하나는, '작은 변화가 극적으로 큰 변화를 낳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나비효과'입니다. 다시 말해, 아마존의 열대우림에서 나비 한마리가 날개를 팔랑거리면, 그것이 차례로 연쇄반응을 일으켜 결국 지구규모의 기상변화가 일어난다는 이론입니다.


[엔도]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웃음)


[SGI 회장] 그렇습니다. 서민의 지혜는 꾸밈이 없고, '모든 것이 관계된다.'는 실상을 간파하고 있습니다.


[스다] 예. 게다가 나비가 다음 날 날개짓 해도 날씨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 불확실성이 '복잡성의 과학'이 갖는 특징 중 하나일 것입니다.

 또 '단순성의 과학'과 '복잡성의 과학'의 차이는, 컴퓨터와 인간의 뇌의 능력차이에도 잘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는 단순한 계산처리나 기억 등은 잘하지만 사소한 에러가 데이터에 섞여 들어가는 순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한편, 인간의 뇌는 단순한 계산을 반복하거나 단순한 정보를 다량으로 기억하는 일 등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사소한 에러가 생겨도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다양한 정보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잠깐 사이에 뽑아내는 능력도 갖고 있습니다.


[SGI 회장] 그렇군요. 대충 살펴봐도 현대의 과학이 법화경의 제법실상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지향성을 '한 사람의 한없는 존귀함'을 인식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일입니다.


[사이토]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과학이 아닌, 인간에게 용기를 주는 과학이 되기를 바랍니다.


[SGI 회장] 그렇습니다. 학문은 인간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위한 지성인가. 이렇게 말하니, 중국 아모이대학교 '평민학교'에서 했던 루쉰(魯迅)의 강연(1926년 12월)이 생각납니다.

 

[엔도] 아모이대학교는 지난해 (1994년)에 이케다 선생님에게 명예교수칭호를 증정했습니다. 소카대학교와 교류도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케다 선생님의 초상(肖像)이 새겨진 부조(浮彫)도 보내왔습니다.


[스다] 루쉰은 단기간이었지만, 확실히 아모이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SGI 회장] 그렇습니다. '평민학교'는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아모이대학교 학생이 개설한 학교입니다. 자신들이 교사가 되어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루쉰은 평민학교 개교식에 초청받아 강연했습니다.

 먼저 대학의 권위적인 교수가 등단했습니다. 박수는 없었습니다. 교수는 평민학교의 의의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이 학교가 평민에게 이익을 주는 것, 예를 들면  … 예를 들면, 하인이 문자를 안다면 편지를 잘못 배달하는 일이 없어져 주인은 기뻐한다…"

 민중을 멸시하는 당치도 않은 발언이었습니다. 평민은 지배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소리였습니다. 루쉰의 쏘는 듯한 시선을 받은 그 교수는 횡설수설했습니다.

" …음, 주인이 기뻐하고…" "그를 고용하면 그는 밥을 먹게 되고…"

 장내에서는 조소가 일었습니다. 그 교수는 완전히 당황해서 도망치듯 연단에서 내려갔다고 합니다. 이때 루쉰이 일어섰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노동자*농민의 자녀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공부할 기회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가난한 것은 돈뿐이지, 총명함과 지혜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의 자녀인 여러분은 똑같이 총명하고 지혜롭습니다."

 루쉰은 맨 앞줄에서 식은 땀을 흘리는 교수와 총장을 힐끗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을 영구히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그런 커다란 권력을 가진 자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 여러분을 일생 동안 가난하게 할 운명 따위도 없습니다."

 루쉰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습니다.

 "여러분이 결심하고 분투하는 한,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가 열릴 것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장내를 뒤흔들었습니다.


[엔도]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이군요.

  

[SGI 회장] 루쉰은 '어떠한 처지에 있는 모든 이간은 똑같으며, 광대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막는 '어떠한 권력이나 운명에도 절대로 굴복하면 안 된다. 그런 권력과 운명에 반격해야 하지 않는가. 분투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호소했습니다.


민중구제를 위해 '투쟁하는 마음'


[사이토] 석존이 '제법실상'의 법을 설한 본뜻도, 그러한 분투를 호소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석존 자신이 그 선두에 서서 투쟁했습니다.

 방편품에는 "나는 불안(佛眼)으로 육도(六道: 지옥계에서 천계까지)의 중생을 보았다. 그들은 가난하고, 복운도 지혜도 없고, 생사의 고뇌라는 험한 길에 들어가 끊임없이 괴로움을 겪고 있다.(중략) 여러 그릇된 사상에 깊이 물들어, 고(苦)를 버리려고 하면서도 그 일로 또 괴로워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중생을 위해 대비(大悲)의 마음을 일으켰다."(법화경 139쪽, 취의)고 씌어 있습니다.

 

[SGI 회장] '대비(大悲)'의 '비(悲)'는 '동고(同苦)하다.'는 뜻입니다. 함께 괴로워하는 '신음소리'가 그 본뜻이라고 합니다. 모든 중생을 어떻게든 고뇌의 '쇠사슬에서 해방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석존은 괴로워하고 투쟁했습니다.

 방편품에는 "이 탁악세(濁惡世)에 나왔으니"(법화경 142쪽)라고 있습니다. 투쟁의 발걸음을 내디딘 석존이 마음속에 외친 제일성(第一聲)입니다. 위인은 폭풍우 속에서 일어섭니다. 난세에 도전해야만 위대한 사람이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폭풍우와 맞서 싸우는 위인의 흉중에는 다음 세대에 대한 자애가 드넓은 바다처럼 펼쳐집니다.

 평민학교의 개교식장으로 향하는 루쉰에게 아모이대학교의 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옆에 있으면 정말 대해(大海) 옆에 있는 것처럼 기분이 상쾌합니다."

 그러자 루쉰은, 기운차게 강당으로 들어가는 노동자들의 자녀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보십시오. 저기에 진정한 대해가 있습니다."


[엔도] '대해'라고 하면, 예로부터 법화경도 '대해'로 비유되었습니다.


[SGI 회장] 그렇습니다. 대성인은 '대해의 물은 일적(一滴)이지만 무량의 강하(江河)의 물을 포함하고, 여의보주(如意寶珠)을 일주(一珠)이지만 만보(萬寶)를 내림이라."(어서 1200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분이 전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사람의 존재에 모든 보물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행동에서 무한한 가치창조의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사이토] '자연은 물질의 집합이 아닌, 사건의 연쇄'라고 했던 화이트헤드(영국의 철학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이란, '그 환경의 여러 조건이 허용하는 완성을 지향한다.'는 관점으로서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목표하는 바는 이미 달성된 사실을 언제나 초월하고 있다."

 요컨대 '생명은 가능한 한, 어디까지나 완성을 지향한다. 이미 달성된 현재를 언제나 초월해가려는 것이 생명이다.'라는 말입니다.

 

[SGI 회장] 그렇지도 모릅니다. 생명은 물리학적인 인과율에 지배받는 단순한 기계가 아닙니다. 물론 물질로 이루어진 이상, 생명체에 '기계의 측면이 있다.'는 점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생명은 본래적으로 '가치를 창조하자.'는 요구를 갖고 있습니다. 가치도 '관계성'의 개념입니다. 하지만 '관계의 직물'인 이 세계에서 언제나 '더 나은 관계', 요컨대 '더 큰 가치'를 창조하려고 합니다. 더 아름다운 직물(미<美>). 좀 더 도움되는 직물(이<利>), 더 선한 직물(선<善>)을 짜려고 합니다. 이 '창가(가치창조)의 작용'에 생명의 커다란 특색이 있음은 확실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투쟁'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미 달성되어 있는 현재를 언제나 초월해간다.' – 십계호구라는 실상에서 보면, '생명은 연재 어떠한 모습을 취하고 있어도, 지금의 자신을 초월해 최대의 완성을 지향'하려고 합니다.

 생명의 본연의 모습은 불계라는 완성을 향하고 있습니다. '합장향불(合掌向佛: 일체중생은 근제에서 부처를 향해 합장하고 있다.)'입니다. 이런 실상을 나타내는 것이 제법실상입니다. 여기에 '어떠한 생명도 더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법화경의 마음'을 끝까지 외치며 투쟁하신 분이 니치렌 대성인입니다. 근대에는 대성인에게 직결하신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입니다.

 올해(1995년)는 학회창립 65주년, 한사람 한사람의 민중에게 '당신의 더없는 소중함'을 계속 가르쳐온 65년이었습니다. 그때문에 민중멸시의 세력과 계속 맞서 싸워온 65년이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이 옥사하신 뒤, 도다 선생님은 옥중에서 시 한수를 읊으셨습니다.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나는 가졌노라

 이것으로 모두를 구하자고

 내 마음이 외쳤더니

 은사는 빙그레 웃으셨네

[스다] 이케다 선생님이 소설 <인간혁명> ('홀로 서다'의 장)에서 소개해주셨습니다.

 

[SGI 회장] 그렇습니다. '여의보주'는 일념삼천이고, 어본존입니다. "보주 즉 일념삼천이니라."(어서 741쪽)라고 어서에 있습니다.

 일념삼천의 신앙이란, '자기 한 사람만 있으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대확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홀로 서는' 신심입니다.

 마침내, 한사람 한사람이 묘법의 무한한 힘을 온몸에 가득 채워 일어설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그 한 사람 속에 학회라는 전체가 잇습니다. 그 한 사람 속에 21세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나는 이것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더없는 소중한 사명을 실제로 완수해주기 바랍니다.

 그 '투쟁의 마음' '계속 투쟁하는 마음' 자체가 이미 '승리한 마음'이고, 광선유포의 전진을 찬란하게 장식할 원동력입니다.


<어구해설>

*소구(所具): 능구(能具)와 대치되는 말. 갖추어진 것을 말함. '인계 소구의 불계'라고 하는 경우. 인계에 불계가 갖추어지는 것으로서, 인계가 '능구'. 불계가 '소구'로 된다.

*일자(一字):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비롯하며 궁극적으로 돌아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