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는 다양성이 .. 그 일념삼천을 체득한 존재가 부처
생명에는 다양성이
생명은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실감할 수 있는 구체성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도다 선생님의 오달은 불법을 모든 사람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생명'에는 다양성이 있습니다. 풍요로움과 활달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법칙적이고, 일정한 리듬이 있습니다. 이 '다양성의 조화'를 가르친 것이 일념삼천(一念三千)입니다. 그 일념삼천을 체득한 존재가 부처입니다.
더욱이 '생명'에는 개방성이 있습니다. 외계(外界)와 교류하고, 물질이나 에너지 그리고 정보를 끊임없이 교환하는 열린 존재입니다. 그러면서 자율성을 갖는 것이 생명입니다. 우주 전체로 열린 개방성과 자유 속의 조화, 이것이 생명의 특징입니다.
부처의 광대무변한 경애란, 생명의 이 자유* 개방*조화를 최대한으로 실현한 경애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묘(妙)의 삼의(三義)에는 '열다'의 의(義), '원만(圓滿)'의 의, '소생(蘇生)'의 의가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생명'의 특질입니다. 그리고 바로 '부처'의 특질입니다.
- 법화경의 지혜 <상권> 서론-
'즉신성불'은 인간 이외의 특별한 모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즉신성불'은 인간 이외의 특별한 모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한 '상락아정'의 대경애를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묘법에는 무량한 공덕이 갖춰져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현실적으로 십계의 어느 경애에 있든 본디 묘법의 당체입니다.
그러므로 이를테면 지금 지옥의 경애에 있더라도 일념을 전환하면 즉시 묘법의 당체로서 청정하고 가장 존귀한 생명을 그몸 그대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즉신성불'입니다. 다만 '그 몸 그대로'라고 해도 당연히 '괴로운 그대로' '나태한 그대로'라면 성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철두철미한 일념 전환이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합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누구나 그렇게 투쟁할 수 있도록 어본존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대성인이 직접 성취한 가장 존귀한 생명을 어본존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 어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뒤덮는 무명을 타파하고, 묘법과 일체인 불계 생명을 자신의 몸에 용현할 수 있습니다.
어본존을 믿는다는 말은 대성인의 가장 존귀한 생명이 자신에게도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대성인가 마찬가지로 '법화경의 행자'로서 신심과 실천을 관철하는 일입니다.
사제불이 신심을 해야 비로소 자신의 생명을 흐리게 하는 무명을 타파할 수 있습니다.
제4회 우에노전미망인답서 강의 (生도 부처 死 도 부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