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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도 포기한 위암 창제로 극복

혜광리 2019. 11. 14. 21:20


현대의학도 포기한 위암 창제로 극복
“생애 끝까지 보은의 인생을 살아야지요” 광포 열정 불태운다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 ‘암’. 그 중에서도 특히 위암은 암 사망자 4명 중 1명이 위암일 정도로 흔한 질환.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암환자가 병원을 찾을 때에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생존율이 낮다. 더부룩함, 소화불량 이외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기 때문.

암세포가 임파선까지 전이

김형진(75)씨도 마찬가지였다. 1992년 9월 어느날, 암세포가 이미 임파선까지 모두 전이되어 수술도 불가능한 위암 3기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지금도 김씨는 건강한 모습으로 광포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병원에서조차 방도가 없다고 포기한 숙명의 병을 불법(佛法)의 힘으로 승리해 보인 것이다.

김씨는 1973년 아내의 권유로 입회했다.

한 해 먼저 입회한 아내는 당시 결핵 말기의 중환자였는데, 매일 한 바가지씩 피고름을 토해냈다. 하지만 친척의 강한 권유로 좌담회에 참석하면서 불법과 연을 맺었다.

아내는 3백미터도 안 되는 좌담회 장소를 양쪽으로 부축받으며 기어가다시피 갔다가 돌아올 때는 혼자 가뿐히 걸어 왔다. 김씨와 가족 모두 입이 딱 벌어지게 놀랐다.

아내는 그날 좌담회에서 숙명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도 살 수 있다, 살고 싶다는 희망과 힘이 솟는 걸 느꼈다고 한다. 이후 필사적인 창제와 포교활동으로 약 한 알 먹지 않고 1년 만에 깨끗하게 완쾌.

김씨도 입회 1년 만에 반장 사명을 받고 열심히 활동했다. 때로는 그야말로 눈보라치는 엄동설한에 차도 다니지 않는 몇 시간 거리의 좌담회를 다니며 지역광포에 매진했다.

이러한 학회 활동의 노고는 절대 노고로만 그치지 않았다.

한 해에 직장에서 두 번씩이나 특진을 하고, 예전에 돈을 빌려가고 잠적했던 사람이 스스로 김씨의 집으로 찾아와 돈을 갚는 등 생각지도 못한 공덕으로 이어졌다.

또 좌담회를 제공할 수 있는 넓은 집도 마련, 불법의 위대함을 거듭 확신하며 매달 1명 이상 포교를 달성하는 등 신바람나는 광포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지도부에 올라오면서 조기근행회와 좌담회 참석만으로 사명을 다한 양 신심이 나태해졌다.

바로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1992년 9월, 13년째 한국SGI 사무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김씨는 매년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위 사진에 정체불명의 물체가 잡히니 빨리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진을 받아보라는 소견이었다.

서둘러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가 재진단, 의사는 김씨의 눈치를 살피며 “위궤양이니 노력하면 나을 것”이라고만했다. 

 

 

 

 

 

 

 


 

강성한 신심으로 위암을 극복한 김형진(왼쪽)씨는 아내와 함께 생애 광선유포의 삶을 살아 갈 것을 결의하고 있다.


  

타성을 부수고 새롭게 소생

 

하지만 직감적으로 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어서부터 자주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 되어 사과, 커피 같은 음식은 입에도 못 댔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년까지 받아 오던 건강검진은 간단한 신체검사와 혈액검사가 전부여서 깊은 병은 전혀 알아 챌 수 없었는데, 바로 그 해부터 X-ray 촬영 등 정밀검진이 추가 실시되었던 것이다.


김씨의 예감은 적중했다.


가족들은 병원측으로부터 김씨가 위암 3기이며 말기로 진행 중이라는 사실과 이미 암세포가 임파선까지 전이되어 수술할 수도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가족들은 밤낮 없이 창제를 올렸고, 아들은 몇번이나 병원에 찾아가 결과야 어떻든 수술이라도 하게 해 달라고 통사정했다.


드디어 수술날짜가 잡혔다. 수술을 맡은 이경식 박사는 위암 분야에서 권위 있는 명의였다.


“수술 성공률도 희박하고 수술이 성공해도 3년을 살기 힘들다”라고 했다.
하지만 가족에겐 확신이 있었다.


김씨 본인도 조급해 하기보다는 “이 병은 부처의 계책이신가. 그 까닭은 정명경·열반경에는 병이 있는 사람은 부처가 된다는 뜻이 설해져 있소이다. 병에 의해서 도심은 일어납니다”(어서 1480쪽)라는 성훈을 떠올리며 숙명전환의 찬스로 받아들였다.


드디어 10월2일, 위암이라는 사실을 안 지 한달도 안 되서 약 6시간의 대수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진짜의 도전은 이때부터였다.


고통스럽고 지루한 항암치료가 1년 동안 시작된 것이었다.


재발방지를 위해 일주일에 한번 항암주사를 맞는데, 주사를 맞고 나면 메슥거림과 구토로 3일 동안 밥도 못 먹는 지옥의 날이었다.


주사를 맞으러 가는 날이 죽도록 싫어 관두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가족과 회원들을 생각하며 창제로 이겨냈다.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머리카락도 현저하게 빠졌지만 ‘본존님,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리면 회원님들을 만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조금만 빠지게 해주세요’라고 기원했다.


정말 병에 의해 도심은 일어났다. 김씨는 이 때, 입회 후 처음으로 백만 번 창제를 달성. 그리고 줄곧 창제근본으로 포교활동에 매진했다.



인간미 넘치는 경애로


그러한 속에서 남의 잘못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과 남존여비 사상이 강해 여성을 은근히 멸시하던 나쁜 마음이 어떠한 사람이라도 깊이 존경하고 배려하는 인간미 넘치는 경애로 바뀌었다.

2001년 10월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동경연수에 참석해 꿈에도 그리던 이케다(池田) SGI회장과의 원점을 만들었고, 2000년 한국SGI 평화·문화상, 2003년 아키야 SGI회장 대행 내한 시 금포상 수상 등 잊을 수 없는 사제의 추억·광포의 영예를 새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지난 10여년간 어떠한 재발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이제는 사과와 커피도 잘 소화할 정도로 예전보다 더욱 건강해진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찾은 병원에서 “말끔 합니다. 어떠한 암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라는 낭보를 전해 들었다.

“본존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생애 끝까지 보은의 인생을 살아야지요. 전국 어디라도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며 광포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김형진 (서울제3방면 壯부지도장)



길근혜 (ghgil@hknews.co.kr) | 화광신문 : 03/10/10 5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