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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 강성하게 말하느니라

혜광리 2018. 8. 7. 11:09




제14회 간사이총회, 제54회 본부간부회

대성인은 사도에서 시조깅고를 비롯한 문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셨다.

「어떠한 세상의 혼란에도 여러분을 법화경·십나찰이여 도우십사고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 강성하게 말하느니라」(어서 1132쪽)

- 어떠한 세상의 혼란에도 당신에 대한 것을 법화경·십나찰이여 도우시라 하고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땅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이 강성하게 기원하고 있다.-

멀리 사도의 땅에 있어 자신의 내일의 목숨도 알 수 없는 대난의 한가운데에 계시면서도, 문하인 불자를 지키려고 불가능도 가능으로 하는 강한 기원을 보내시는 대성인, 이 깊은 자애에 문하는 분기했을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떠나서 결코 불법은 없다.

이 어문에 대해서 총본산 제59세 니치준 상인은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법화경의 명(命)을 이을 사람이다. 긴 밤의 어둠을 비추어야할, 법화경이라는 등불을 잘 타오르게 하는 기름으로 되어야 할 사람이다. 일천광포(一天廣布)를 위해서는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한 사람도 현재의 재난을 당해서는 안 된다”

백 명이나 천 명의 신자로서 광선유포의 본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라도 감소하면 퇴각의 형태이다. 그래서 천하(天下) 국가를 위해서, 신(神)을 위해서, 불(佛)을 위해서, 민중을 위해서, 군을 위해서 여러분의 안태(安泰)를 기원하는 것이다.

“나무와 나무를 서로 문질러 불을 내는 것조차 용이하지 않지만 이것은 형식뿐인 피상적인 기원의 마음이다. 나는 젖고 눅눅한 나무를 문질러 불을 내는 듯한 격렬한 기원을 모두를 위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땅을 쥐어짜서 물을 내는 것은 용이하지 않지만 이것이 보통 기원의 의(意)이다. 자신은 바싹 마른 구운듯한 대지를 쥐어짜서라도 물을 얻으려고 하는 그런 무리한 기원을, 모두를 위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즉 법화경의 일심욕견불(一心欲見佛), 부자석신명(不自惜身命)이다 라고 하는 것이 지금 인용한 어문의 대의(大意)이다”라고.

광포를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온을 강성하게 기원하시는 어본불의 마음에 우리들은 감동한다. 문하의 사람들은 이런 대성인의 격려를 통해 신심을 배워 나갔다. 직접 만나 뵙지 못할 때에도 대성인의 어서를 배독하고 대성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대성인의 지도대로 싸웠던 것이다.

세이쿄신문 2001년 6월 23일 6면 (신세기의 아침에)



어서에서 배우는 승리의 지침(17)

「어떠한 세상의 혼란에도 여러분을 법화경·십나찰이여 도우십사고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 강성하게 말하느니라」(가책방법멸죄초 어서 1132쪽)

**묘법의 힘을 끄집어 내는 신심을**

어본존에 대한 기원은 중요한 때일 수록 강성한 기원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설하고 있는 어문이다. 문영 10년(1273년)니치렌대성인이 52세때, 유죄지ㆍ사도에서 시조깅고에게 주신 편지의 일절이다.

당시 가마쿠라의 문하들은 대탄압을 받고 있었다. 영지몰수, 추방, 투옥,의절이란 박해가 마구 일어나고 있었다. 대성인은 멀리 사도에 있었다. 격려하신다고 해도 직접 만나는 것은 드물고 자신이 유배의 몸으로서는 제자들을 수호할 수 없었다.

그때, 대성인은 엄연히, “제천선신이여, 어떻게든 나의 제자를 수호해주십시오.”라고 강하게 강하게 기원한 것이다.

“젖은 나무에 불을 내어 보이겠다.” “바싹 마른 대지에서 물을 짜내어 보이겠다.”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일념으로 “내가 강성하게 기원하고 있으니까 안심하시오.”라고 제자들에게 최대의 격려를 보내준 것이다. 이 만큼의 엄애(嚴愛)의 말은 없다.

본래대로라면 문하들이야말로 강성한 기원으로 사도에 계시는 대성인의 안전을 기원해야 하는 것이다. 또, 사실, 기원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성인은 자신의 목숨조차 위험한 상황가운데 그 이상으로 문하의 안전을 기원하셨다. 편지를 받은 깅고 등 제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원]의 자세를 대성인의 행동으로서 가르친 것이 아닌가.

요컨데 자신의[일념]이다. 일체를 자신이 [돌파구]를 연다. 그를 위한 묘법이다.라고. 신세기의 제전. 제자의 기원으로 단호히 돌파구를 열어, 영광의 역사를 새겨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