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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소중히

혜광리 2016. 11. 28. 11:07





제21장   ‘한 사람을 소중히’


 

이 장을 읽기 전에



‘창가학회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발전했는가.


어느 날, 이케다(池田) SGI 회장은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눈앞의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보살과 같은 행동을 한결같이 성실하게 관철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그 사람의 좋은 점에 초점을 맞춰 불성을 끄집어냅니다.


어떠한 숙명에 맞닥뜨려도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기원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함께 시련을 이겨내고 함께 행복을 추구합니다.


광선유포는 한 사람의 생명을 격려하고 구제하는 일입니다. 한 사람의 행복이 사회의 번영과 세계평화로 이어집니다.


‘한 사람을 소중히’ ― 이 간결한 지침이 광선유포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입니다. 여기에는 ‘한 사람의 생명은 우주의 모든 재보보다 존귀하다.’는 생명존엄 사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부처’라는 평화 철학이 빛납니다. 또 ‘한 사람 한 사람이 더없이 소중한 인재’라는 이체동심의 핵심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자비와 용기가 맥동합니다.


SGI 회장은 2015 1, 모든 동지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세계광포 신시대’의 약진도 모든 것은 한 사람이 내딛는 첫걸음에서 시작 합니다. 스스로 홀로 일어서 한 사람과 대화하고, 한 사람을 격려하고, 한 사람의 마음에 희망의 등불을 비추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이번 장()에는 철저히 한 사람을 소중히 여겨 광선유포의 옥야(沃野)를 개간한 SGI 회장의 수많은 지도를 실었습니다.


 


(21-1)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이 광선유포의 목적



이 절()에서는 ‘창가학회의 원점은 무엇인가’, ‘불법의 근본정신은 무엇인가’에 관한 중요한 점을 명확히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본부간부회 스피치에서(2006 1 6, 도쿄)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에 창가학회의 원점이 있습니다. 불법의 근본 정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 사람’은 더없이 소중하고 존귀합니다. 전 세계 어느 누구에게도 존엄한 불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는 것이 불법입니다.


한 사람의 존귀함을 무시하고 경시하고 인간을 ‘집단’으로 보려는 것은 권력자의 발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권력자에게 인간은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인간을 총알과 같은 무기로 여깁니다. 돈처럼 씁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많은 사람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전체를 조종하려고 합니다.


학회의 삶은 이것을 정면에서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이 바로 광선유포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간직한 한없는 가능성을 믿고 그 힘을 자각하게 하고 발휘하게 하여 연대를 넓힌 것이 창가가 펼친 민중운동의 역사입니다. 전체가 있고 그 속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있고 거기서 강하게 단결하는 것입니다.


이 근본을 착각하면 큰일 납니다. 권력자처럼 생각하는 인간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학회를 이용하는 가장 나쁜 인간입니다.


모든 것은 ‘한 사람’에 귀착합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한 사람을 소중히’라는 원점을 서로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더한층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격려의 말을 건네면서 보배와 같은 인재를 소중히 육성하고자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강해지고 현명해져야 비로소 두 배, 세 배, 열 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21-2) ‘한 사람을 소중히’가 부처의 마음


법화경(法華經)은 어떠한 식물에도 똑같이 비가 내리고 그런 가운데 저마다 더없이 소중한 개성의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는 ‘삼초이목의 비유’를 설합니다. 이 법리(法理)를 바탕으로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데에 법화경의 인간주의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법화경의 지혜》에서(2)


‘삼초이목의 비유’는 법화경이라는 ‘대종교문학’ 속에서도 특유의 재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중생의 다양성’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법화경의 칠비(七譬) 중에서 유일합니다. 또 그로 인해 동시에 ‘부처의 자비는 평등하다.’는 점이 부각됩니다.


부처의 자비는 완전히 평등하고 차별이 없습니다. 모든 중생을 ‘자식’으로 보고 자신과 똑같은 부처의 경애로 높이려고 합니다.


그것은 ‘중생에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처가 중생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부처는 중생의 차이를 충분히 인정합니다.


중생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기다움을 마음껏 발휘하기를 바랍니다.


중생에게 차이가 있다고 해서 편애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개성을 사랑하고, 개성을 기뻐하고, 개성을 살리려고 하는 것이 부처의 자비이자 지혜입니다.


‘부처의 설법은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상황도 다르고, 개성도 다르고, 기근도 다른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떻게 하면 성불시킬 수 있을까.


개개인의 인간이 처한 ‘현실’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성불하는 길을 밝힌 것이 법화경입니다.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 바로 법화경의 ‘인간주의’이자 ‘휴머니즘’입니다. 그것이 ‘부처의 마음’입니다.


‘일체중생의 성불’이라는 법화경의 근본목적도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데에서 출발하고 그것을 철저히 관철하는 이외에 없습니다.


추상적인 ‘인간애’나 ‘인류애’를 외치는 일은 간단합니다. 현실에서 개개의 인간에게 자애를 베풀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류 전체를 사랑할수록 개개의 인간, 즉 독립한 인격으로서 개별의 인간을 사랑하는 일이 적어진다.” “추상적으로 인류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창가학회는 구체적인 ‘한 사람’을 떠나지 않고, 그 ‘한 사람’을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싸웠습니다.


이것은 인류사에 찬연히 남을 숭고한 역사입니다.


 


(21-3) 한 사람의 생명은 우주대의 보탑


법화경 견보탑품에서 설하는 거대한 보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나타낸다는 성훈을 배독하고 한 사람의 인간에게서 무상한 존엄을 발견하는 불법의 깊은 인간주의를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독일·오스트리아 합동 최고회의 스피치에서(19916 5, 독일)


‘자기’는 무엇인가. ‘자기 몸’의 본디 모습은 무엇인가.


니치렌 대성인은 문하인 아부쓰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아부쓰(阿佛) 상인의 일신(一身)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의 오대(五大)이며, 이 오대는 제목의 오자(五字)이니라. 그러므로 아부쓰보(阿佛房)가 바로 보탑이고 보탑이 바로 아부쓰보”(어서 1304) 즉 “지금 아부쓰 상인의 일신은 지, , , , 공의 오대이다. 이 오대는 제목의 다섯 글자다. 그러므로 아부쓰보는 그대로 보탑이고 보탑은 그대로 아부쓰보다.


아부쓰보가 법화경 견보탑품에서 보탑이 용현한 의의를 질문하자 대성인이 답하신 어서입니다.


대성인은 거대한 보탑이 출현한 의의에 관해 석존의 제자들이 “기심의 보탑을 본다.(어서 1304) 즉 자신의 생명 속에 불성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라고 단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법화경 견보탑품에서 설하는 보탑은 높이 오백유순(인도의 거리를 재는 단위.


일유순은 제왕이 하루에 행군하는 거리를 가리킴), 종광(縱廣) 이백오십유순입니다. 일설에 따르면 거의 지구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의 크기로 거대한 탑입니다.


대지에서 용출해 공중에 떠 있고 금, , 유리, 마노, 진주 등과 같은 칠보(七寶)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여러 깃발이나 장식으로 장엄하게 꾸며 좋은 향기를 풍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칠보의 탑’이라고도 ‘보탑’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장려한 보탑은 무엇을 나타낼까요.


그것은 불성 즉 불계(佛界)의 생명을 나타냅니다.


천태대사는 부처의 모든 인행(因行), 과덕(果德)을 갖추었기에 그렇게 거대하다고 말했습니다. 보물로 장식한 그 모습은 존엄하고 존귀하고 훌륭한 불계의 생명을 표현한 것입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생명존엄’을 표현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참된 ‘존엄’이란 다른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를 띠었다는 말입니다.


불계를 갖춘 우리 생명이 바로 절대적인 가치를 띠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보탑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서민의 대표라고도 할 수 있는 아부쓰보를 최대로 현창해 묘법(妙法)을 신수한 아부쓰보의 몸이 그대로 장엄한 보탑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묘법을 수지한 경애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일깨워주셨습니다.


불법은 철저한 ‘평등주의’와 ‘민주주의’를 설하는 가르침입니다. 더구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본디 더할 나위 없이 존귀한 존재라고 설합니다.


우리 범부가 이 몸 그대로 부처의 경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대성인 불법입니다. “아부쓰보가 바로 보탑”이라는 어서는 바로 그 점을 가르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가장 존귀하고 무상한 ‘보탑’이자 ‘묘법’의 당체입니다.


 

(21-4) 어떤 사람에게도 사명이 있다


이 절에서는 어떤 사람도 외면하지 않고 한 사람을 철저하게 소중히 이끈 석존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누구에게나 더없이 소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력이나 재능에 사로잡히지 말고 신심을 착실히 실천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SGI총회 스피치에서(1994 6 11, 영국)



석존과 아름다운 사제의 역사를 새긴 서민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말하겠습니다. ‘어떠한 사람에게도 사명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수리반특은 기억력이 나쁘기로 유명합니다.


자기 이름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어서에도 “염부제일(閻浮第一)의 잘 잊어버리는 자”(어서 976) 즉 “세계에서 가장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따라서 수리반특은 형과 함께 석존의 제자가 되었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수행은 지지부진하고 진척되지 않아 모든 사람에게 바보 취급을 당했습니다.


어느 날, 수리반특은 마침내 형에게서도 버림받고 ‘너는 가망이 없다. 더는 안 되겠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는 식으로 교단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훗날 수리반특은 이날 일을 곰곰이 되돌아보았습니다.


“쫓겨난 나는 낙담한 채 길가에 계속 서 있었다. ‘이런 나조차도 구제해 줄 가르침이 아직 있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하면서…….


그러자 그때 스승 석존이 나타났다. 스승은 따뜻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다시 교단으로 데리고 가주셨다.


실의에 빠진 제자에게 스승의 이러한 자애는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을까요.


사람들한테 버림받더라도 스승만은 자신을 알아주고 믿어주고 지켜주신다고 느낀 수리반특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 뒤, 석존은 수리반특에게 기쁜 마음으로 불자(佛子)에게 헌신하면서 경애를 깊이 다지라고 지도하셨습니다.


수리반특은 이 스승을 따라 오로지 스승 말씀대로 진심어린 행동을 관철했습니다. 그리고 승리했습니다.


법화경에서는 형과 함께 ‘보명여래’라는 성불의 기별을 받았습니다.


언뜻 보기에 어리석은 듯이 보이지만 실은 가장 가치 있는 총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대성인은 1275 6, 문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리반특은 삼개년(三箇年)에 십사자(十四字)를 암송하지 못했지만 부처가 되었으며, 제바(提婆)는 육만장(六萬藏)을 암송했어도 무간에 떨어졌는데 이것은 오로지 말대(末代)의 금세(今世)를 나타냄이니라. 결코 남의 신상이라고 생각하지 말지어다.(어서 1472)


즉 “수리반특은 3년이 지나도 14문자를 암송하지 못했지만 부처가 되었다.


제바달다는 육만장(이라는 방대한 경전)을 암기했지만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이 일은 오로지 말법인 지금 세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결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신앙자로서 위대함은 어디에 있는가. 결코 경력이나 지위, 재능 등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뒷받침하고 불자를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그 ‘신심’과 ‘인간성’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성불할 사람’으로 누구보다 존귀합니다. 부처가 될 분들입니다.


 

(21-5) 동고하는 마음이 바로 창가의 혼


이 절에서는 니치렌 대성인이 병든 아내를 돌보는 문하에게 대자대비의 격려를 보내신 성훈을 배독하고 한 사람을 철저히 소중히 여기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감싸는, 존귀한 동고의 마음을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전국부인부간부회 스피치에서(1989 11 29, 도쿄)


 

대성인은 몹시 추운 미노부에서 도키전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인(夫人)의 병환의 일이 내 일신상(一身上)의 일로 생각되어 주야로 천()에 말하노라.(어서 978) 즉 “이() 부인(도키 부인)이 병에 걸린 일은 내 몸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밤낮으로 제천에게 기원하고 있다.


“이 이부인(尼夫人)은 법화경의 행자를 봉양함은, ()에 기름을 더하고 나무뿌리에 배토하는 것과 같으니라. 바라건대 일월천(日月天)이 그 명()을 대신하시라고 말씀드렸소.(어서 978) 즉 “() 부인은 법화경 행자에게 등불에 기름을 주고 나무뿌리에 흙을 덮듯이 공양한 사람이다. ‘바라건대 일천, 월천에게 이() 부인의 목숨과 바꾸어 구해주라’고 기원하고 있다.


“또 잊는 일이 있을까 하여 이요보(伊豫房)에게 일러두었노라. 믿음직하게 여기시라.(어서 978) 즉 “또 잊어버리는 일이 생기면 안 되기에 이요보(<> 부인의 자식으로 대성인 슬하에서 수행했다)에게 이() 부인 병의 완쾌를 말해두었다. 믿음직스럽게 생각하시오.


대성인이 음지의 공로자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셨는가, 한 여성 문하가 병으로 괴로워하면 ‘대성인 자신의 일’이라고까지 생각하고 하루빨리 쾌유하도록 기원하셨습니다. 참으로 고마우신 어본불의 대자대비입니다.


대성인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 이것이 불법자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권위도 겉모습도 아닙니다. 괴로워하는 사람, 광포를 위해 다부지게 뛰는 사람을 자신처럼 소중히 여겨 격려하고 자비를 베푸는 데에 인간성의 정수가 있다는 점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됩니다.


학회도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사람들을 위해 힘썼기에 오늘날과 같은 커다란 발전과 전진이 있습니다. 이것이 학회의 자랑이자 강함입니다.


 

(21-6) 니치렌 불법은 가장 존귀한 인간주의


니치렌 대성인은 사랑하는 어린 자식을 잃은 부인 문하에게 마음속 깊이 스며들 듯한 격려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 내용을 배독하며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불법의 인간주의에 관해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전국청년부간부회, 이바라키현총회 스피치에서(1992 4 12, 도쿄)


 


1280 9 5, 난조 도키미쓰의 동생 시치로 고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갑작스러운 죽음인 것 같습니다.


당시 시치로 고로는 열여섯 살로 너무나 젊은 나이에 찾아온 죽음이었습니다.


대성인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도키미쓰와 어머니를 진심으로 격려하셨습니다. 죽은 다음 날인 9 6일에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난조 시치로 고로전의 사거(死去)의 일,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것이 상례임은 지자(智者)도 우자(愚者)도 상하일동(上下一同)으로 알고 있으니 비로소 한탄하고 놀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알고 남에게도 가르치고 있었지만 때를 당하고 보니 꿈인가 환상인가 아직껏 분간하기 어렵도다.(어서 1567)


“난조 시치로 고로전이 죽은 일, 사람은 누구나 모두 태어나서 죽는 것이 정해져 있음은 지자도 우자도 (신분이)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모두 알고 있는 것이기에 이제 와서 한탄하거나 놀랄 일이 아니라고 나(대성인)도 생각하고 남에게도 가르쳤는데 막상 일을 당하고 보니 꿈인지 환상인지 아직도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다.


“더구나 어머니가 얼마나 슬퍼하시겠느뇨. 부모님도 형제들도 다 여의고 나서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도 사별을 하였으나 자식들이 많이 있으니 위안되기도 하셨으리라.(어서 1567)


즉 “더구나 어머니는 얼마나 슬퍼하실까. 부모도 형제도 먼저 보내고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도 사별하였지만 자식이 많으니 위안이 되었을 텐데.


“사랑하는 어린 아기 게다가 사내아이, 용모도 남보다 뛰어나고 마음도 믿음직하게 보여서 다른 사람들도 상쾌하게 보았는데 허무하게도 망울진 꽃이 바람에 시들고, 보름달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생각하셨으리라. 진실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으므로 어쩐지 더 쓸 생각도 없습니다.(어서 1567)


즉 “사랑스러운 막내 게다가 사내아이에 용모도 남보다 뛰어나고 마음도 다기져 보여 이웃 사람들도 서글서글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일은 꽃봉오리가 바람에 시들고 보름달이 갑자기 숨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이 믿기지 않아 격려의 말조차 쓸 수가 없다.


“추신, 이 유월(六月) 십오일(十五日)에 상면하였을 때에 참으로 대담한 자로구나 과연 남자 중의 남자라고 보았는데 다시 볼 수 없게 된 것이 슬프도다.


그렇기는 하나 석가불(釋迦佛), 법화경에 몸담고 있었으니 임종도 훌륭하셨으리라. 마음은 부친과 같이 영산정토(靈山淨土)에 가서 손을 잡고 머리를 마주하여 기뻐하고 있으리라.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어서 1567)


즉 “추신, 지난 6 15일에 (시치로 고로전을) 만났을 때 참으로 대담한 자다, (멋진) 남자 중의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만날 수 없다니 슬픈 일이다. 그러나 (시치로 고로전은) 석가불, 법화경에 몸을 담고 신앙을 깊이 하였으니 임종도 훌륭했을 것이다. 마음은 (먼저 가신) 아버님과 함께 영산정토에 가 손을 잡고 머리를 마주하며 기뻐하시고 있겠지. 감동적인 일이다. 감동적인 일이다.


추신에서 말씀하신 대로 시치로 고로전은 죽기 불과 3개월 전에 형 도키미쓰와 함께 대성인을 찾아갔습니다.


대성인은 늠름한 형제의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장래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런 만큼 대성인은 시치로 고로의 비보를 듣고 ‘꿈인지 환상인지 아직도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가 놀라고 슬퍼했습니다.


시치로 고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 뱃속에 있던 아이입니다.


살아가는 버팀목인 사랑하는 아이를 갑자기 잃은 어머니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지금으로 말하면 자식을 후계의 인재로 열심히 키운 부인부 어머니입니다.


대성인은 그 마음에 깊이깊이 스며들도록 ‘동고(同苦)’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한 어머니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참으로 자신의 슬픔으로 삼아 포용하고 함께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동정’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그 사람과 하나가 되어 ‘동고’하는 모습입니다. 고뇌하는 사람과 같은 마음, 같은 괴로움, 같은 슬픔을 함께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의 행동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가장 존귀한 모습을 눈물로 배견했습니다.


우리 학회도 어디까지나 어본불의 깊은 ‘인간주의’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진심 어린 ‘격려’가 바로 불법자임을 증명합니다.


고민하는 사람,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곧바로 ‘격려의 말’을 건네 슬픔을 용기로 괴로움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이 대성인의 정신입니다.



(21-7) 마키구치 초대 회장의 투쟁


한 사람을 소중히 여겨 한 사람에게 묘법을 가르쳐주려고 고령의 나이에도 먼 지방까지 기꺼이 가신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초대 회장의 행동을 예로 들어 창가학회의 원점이 되는 정신을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어머니의 춤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구제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일 말고 종교가 사회적으로 존립해야 할 의의가 또 있을까.


‘사람을 위한’, ‘민중을 위한’, ‘사회를 위한’ 종교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신앙이 아닙니다.


전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법이 니치렌불법입니다.


학회는 마키구치 선생님의 투쟁으로 1940년 무렵부터 입회하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그 이면에는 마키구치 선생님의 포교혁명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집 한집 돈다’, ‘한 사람 한 사람과 말한다’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것밖에 없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결론지으셨습니다.


위대한 학자인 선생님은 처음에 ‘책’으로 그 효과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별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강연회나 회합에서 대중에게 외치셨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별 효력이 없었습니다. 책도 큰 회합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먼저 만나러 가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하는 가운데 ‘소수의 동지를 찾아내는 것 말고 방법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비약적으로 홍교가 진척되었습니다. 점점 인재가 나왔습니다. 그 때까지 ‘수천명에게 말해도 한 사람도 남지 않던’ 상황이 일변하여 총회에 5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습니다.


좌담회 등에서 적은 인원이 모여 대화하는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불법을 이해하고 행동해 체험을 만들었습니다. 그랬기에 다음 일파로 이어졌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렇게 무엇이든 ‘실험’을 하셨습니다.


반드시 실제로 해본 다음 가장 올바른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참으로 불세출의 인물이었습니다. 도다(戶田) 선생님이 심취하신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어디든 가셨습니다.


어느 때는 도쿄에서 입회한 청년의 부모를 만나러 흔들리는 삼등석 열차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먼 가고시마까지 가셨습니다. 고령의 몸으로 떠나는 긴 여정은 틀림없이 상당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생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사람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체포당한 시모다의 스자키(시즈오카현)에도 한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가신 것이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의 청년과 같은 상쾌한 목소리, 절대적 확신, 성실하고 자애로운 모습에 감동하여 입회한 사람도 많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이 일본 각지에 심은 뿌리는 당국의 혹독한 사상통제에도 없어지지 않고 전쟁까지 극복하며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일이 있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거목으로 성장했습니다. ‘세계적인 학회’가 되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21-8) 민중 속으로 민중과 함께


괴로워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을 위해 힘쓰고 행동하는 데에 신앙의 생명이 있고, 거기에 광선유포의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수필 신·인간혁명’(민중 속으로 민중과 함께)(2002 9 13)


어느 선교사가 마하트마 간디를 찾아가 “당신이 신앙하는 종교는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간디는 자신의 방에서 쉬고 있는 병든 두 사람을 가리키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 종교는 (저분들에게) 봉사하는 일입니다.


간디의 비폭력 정신을 계승한 미국 공민권운동의 지도자 킹 박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뇌에 찬 민중의 현실을 외면하는 종교는 죽은 종교다!” 우리는 간디와 킹의 굳은 신념에 강하게 공감합니다.


왜냐하면 ‘괴로워하는 사람 힘들어하는 벗이 있으면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행동한다.’는 근본의 일점을 빼면 아무리 훌륭한 이상을 내걸어도 종교의 생명은 없기 때문입니다. 창가학회는 늘 불행한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어 투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과 병자들이 모인 종교’라고 비웃음을 사고 경멸당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승 도다 조세이 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몰이해로 인한 중상을 오히려 자랑으로 삼으셨습니다.


불행한 민중을 구제해야 정말 ‘힘 있는 종교’가 아니겠습니까.


비판을 받는 것은 학회가 ‘살아 있는 종교’라는 증거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크나큰 확신으로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이 도다의 목숨을 주겠다!


상대가 아무리 절망의 벼랑 끝에 있다 해도 눈앞의 ‘한 사람’을 구제하지 못하면 불법은 거짓이 되고 맙니다.


선생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사람들의 생명을 뒤흔들고 어려움과 맞서 싸우는 위대한 불멸의 용기를 계속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전 혼을 다한 스승의 격려에 한 사람 또 한 사람 일어섰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숙명을 물리치고 더 나아가 크나큰 목적인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용약환희하며 싸웠습니다. 다시 말해 광선유포를 위해 일어섰습니다.



(21-9) 서민의 고뇌에 다가가다


여기서는 갖가지 괴로움에 허덕이는 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진검승부로 소생시킨 도다 제2대 회장의 ‘개인지도’ 광경을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여기에 SGI의 ‘격려’ 운동의 핵심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수필 신·인간혁명’(잊을 수 없는 이치가야 분실)에서(2003 5 24)


1951 5월 말, 도다 선생님이 제2대 회장에 취임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고문을 맡고, 스물세 살인 내가 젊은 영업부장으로서 분투하던 회사 사무실이 이치가야역 근처로 이전했습니다.


물길이 흐르는 곳에 있는 3층 건물 이치가야빌딩의 한 방입니다. 이치가야빌딩에는 ‘세이쿄신문’ 편집실도 생겼습니다. 게다가 당시 학회본부는 니시간다에 있었는데 본부 ‘분실(分室)’도 이 빌딩 안으로 이전했습니다.


방은 둘 다 이층이었습니다. 분실은 고작 4, 5평 크기였습니다. 방 끝쪽 창가에 도다 선생님이 앉는 책상과 의자가 있고, 그 앞에 팔각의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여기서 날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찾아오는 회원을 지도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이치가야빌딩 전체 안내를 담당하던 여성은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정말 놀랐다고 합니다.


창가학회가 어디입니까…….’ 하고 물으며 안내원 앞에 나타난 사람들의 모습은 그냥 보기에도 애처로울 정도로 괴로움을 떠안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안내원이 더 놀란 사실은 그 똑같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갈 때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웃음을 띠고 생기발랄하게 돌아가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작은 병원 대기실보다도 검소한 방이었지만 이 분실은 그야말로 서민에게 ‘희망의 항구’가 되고 ‘소생’의 오아시스가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우인의 멋진 격려만큼 / 괴로움을 덜어주는 약은 없다.”는 고대 그리스 시인 에우리피데스의 명언입니다.


우리 스승은 찾아온 벗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습니다.


‘어쩐 일인가?


그 따뜻한 목소리와 안경 속에서 빛나는 자애로운 눈동자에 동지는 늘 진심으로 안도하고 솔직하게 괴로움을 토로했습니다.


괴로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경제고, 어려움에 처한 일, , 가정불화, 자식 문제, 인간관계 문제, 자신의 진로나 숙명…… 죽느냐 사느냐 하는 궁지에 몰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제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필사적인 그 소리를 듣고 자신의 일처럼 동고하며 벗의 생명을 뒤흔들어 위대한 신력, 행력을 불러일으키도록 격려하셨습니다.


“괜찮다. 이 신심을 해서 행복해지지 않을 리가 없다. 사자왕의 마음으로 나아가라. 영예로운 창가학회의 일원으로서 자랑스럽게 꿋꿋이 살아라.


한번 한번의 지도가 눈앞의 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진검승부였습니다.


거기에는 “일체중생이 이()의 고()를 받음은 모두가 이는 니치렌 일인(一人)의 고()가 되느니라.(어서 758)는 대자대비의 말씀이 울려 퍼졌습니다. 분실로 찾아오는 사람 중에는 ‘간부이면서 이런 일로 괴로워해서’ 하고 자신을 책망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진지하게 살고자 하는 한 괴로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크게 포용하셨습니다.


반대로 허세를 부리고 힘들어하는 동지를 깔보는 듯한 사람에게는 열화와 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괴로워해 봐야 남의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괴로워해 봐야 강해집니다. 선생님 자신도 자식을 잃었습니다. 사업의 어려움도 몇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법화경을 믿는다는 이유로 2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온갖 고초를 다 겪고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냈기에 비로소 학회의 회장이 되었다고 술회하셨습니다.


유명한 문호 위고가 ‘큰 괴로움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혼을 크게 만든다.’고 갈파한 대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와 희망을 보내는 철저한 격려가 중요합니다. 이 지도력은 제멋대로 해서는 붙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어서근본’입니다. 그리고 광선유포의 조직 속에서 행학에 힘쓰고 연마하는 이외에 없습니다.



(21-10)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일이 참된 불도수행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철저히 대화하고 격려해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에게 착실한 파동을 일으키는 데에 영원히 확대되는 광선유포의 방정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2도쿄지부장회 스피치에서(1987 10 11, 도쿄)


어서에는 “세간의 속담에도 일()은 만()의 어머니라고 했는데”(어서 498) 하고 씌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너무나 약하고 작은 존재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1만 사람’을 낳는 ‘어머니’입니다.


“대해의 한방울의 물에 일체의 하천의 물을 갖추고”(어서 944)라는 금언도 있습니다. 자각한 ‘한 사람’이 참된 대법을 만나 용감하게 이타(利他)의 실천에 뛰어들고 ‘한 사람’과 만나 대화한다, 이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잇는 파동이야말로 광포를 전진시키는 한없는 원천입니다. 광포의 역사는 이러한 착실한 실천으로 영원히 이어진다는 점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을 소중히’ 이것이 바로 맥맥이 계승된 학회의 전통 정신입니다.


괴로워하는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전 혼을 다해 대화하고 계속해서 격려해야 합니다. 특히 젊은 여러분은 이 전통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됩니다.


그저 많은 사람 앞에서 근사하게 말만할 뿐 착실한 지도나 격려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리더는 결코 진짜가 아닙니다. 진짜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러한 간부가 많아진다면 그것은 학회정신이 쇠퇴한 것이겠지요.


조직에서 권위주의나 요령주의가 판치도록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한 사람’을 위한 전 혼을 다한 지도와 행동 없이 참된 불도수행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여러분은 마음속 깊이 새기기 바랍니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잇는 무한한 ‘이타’와 ‘대화’의 실천, 이 부단한 축적과 연동에 영원히 확대되는 광선유포의 방정식이 있습니다.


 

(21-11) 창가학회의 영원한 정신


이 절에서는 미국의 미래학자 헤이젤 핸더슨 박사와의 대담을 들어 창가학회가 세계적인 발전을 이루어낸 근본정신을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나가노대표협의회 스피치에서(2001 8 24, 나가노)



현재 나는 대담집을 발간하기 위해 세계적인 미래학자 헨더슨 박사와 계속 대화하고 있습니다. 박사는 창가학회와 SGI가 추진하는 운동을 깊이 이해하고 거기에서 진지하게 배우려고 하는 분입니다.


나는 창가학회가 괴로워하는 사람, 고뇌하는 사람을 위해 행동했기에 세상에서 ‘가난뱅이와 병자들의 모임’이라고 야유받은 사실과 무엇보다 그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박사는 “SGI의 원점은 거기에 있군요. 감명했습니다.” 하고 말한 다음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라도 어떤 직업이나 계층에 있는 사람이라도 제가 보기에는 성스럽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누구나 ‘생명의 빛’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존귀한 존재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모두 평등하고 존귀합니다. 하물며 평등대혜(平等大慧)의 불법은 집안이나 재산, 학력, 지위 따위로 결코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행동을 봅니다. 그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봅니다.


“마음만이 중요하니라.”입니다. 따라서 참된 불법자는 권위나 권력을 휘두르는 오만한 인간 따위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유연하게 내려다보고 싸웁니다. 바로잡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깨끗하고 선량한 서민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지킵니다.


헨더슨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SGI의 활동은 어떻게 이렇게 세계적으로 확대될 수 있었습니까? 또 어떻게 이런 불요불굴의 단체를 만들 수 있었습니까. 저는 이케다 회장의 ‘학생’이라는 마음으로 이 점을 질문하고 싶습니다.


일류의 사람은 참으로 겸허합니다.


나는 그 이유 중 하나를 간략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먼저 일심불란하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혁명에 초점을 맞춰 작은 자신을 이겨내고 인생에 커다란 목적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 위에 SGI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세계적인 발전을 이루어 불요불굴의 단체가 되었는지를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한 사람을 소중히’라는 행동을 철저히 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은 그러기 위해 있고, 리더에게도 그렇게 계속 말했습니다. 그 외에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모두 서로 격려하며 함께 자신의 ‘인간혁명’을 위해 도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자신에게 승리하는’ 일이 사회의 커다란 발전으로 이어져 마침내 인류의 역사도 움직인다는 것이 우리가 추진하는 ‘인간혁명’ 운동의 핵심입니다.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에 창가학회의 혼이 있습니다. 이 전통을 빛내는 한 학회는 영원히 발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