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法 .SGI

지도선집(9월호)

혜광리 2016. 8. 30. 10:18




제20장 ‘좋은 시민이 되어라’


이 장을 읽기 전에
‘좋은 시민이 되어라’ 이 말은 이케다(池田) SGI 회장이 한결같이 제시한 SGI의 영원한 지침입니다.
“광선유포를 하려면 사회 지도층에 인재를 더 많이 배출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하고 솔직하게 묻는 청년에게 SGI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광선유포는 사회적 지위나 직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신심으로 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광선유포의 도상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더없이 소중한 주인공입니다. 모든 사람이 창가학회의 대표입니다.
학회원은 가장 존귀한 지용보살의 생명을 빛내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격려하면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지역과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공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자애와 용기라는 인격을 빛내주고 주위에 태양이 되면서 참으로 인간답게, 활기차게 꿋꿋이 삽니다. 광선유포는 이러한 좋은 시민의 연대를 널리 넓히는 일입니다.”
SGI 회장이 외치는 ‘좋은 시민’이란 ‘세계 시민’을 달리 부르는 말입니다.
1975년 1월 26일, 괌에서 SGI가 발족할 때 SGI 회장은 서명부 국적란에 ‘세계’라고 썼습니다. 나라나 민족의 차이를 뛰어넘어 같은 인간으로서 인간 속에서 인간을 위해 공헌한다, 이 자랑스러운 세계시민이 모인 단체가 바로 SGI입니다.
이 장(章)에서는 이러한 ‘좋은 시민’ ‘세계시민’의 기본이념을 말한 SGI 회장의 지도를 소개합니다.


(20-1) 불법은 인간의 삶을 설했다
이 절(節)에서는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라는 유명한 어서를 배독하며 불법은 인간의 삶을 설한 종교를 현실의 인간 사회를 떠나서 불법은 없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오키나와최고회의 스피치에서(1991년 2월 8일, 오키나와)

<스슌천황어서(삼종재보어서)>에 “일대(一代)의 간심(肝心)은 법화경(法華經), 법화경 수행의 간심은 불경품(不輕品)이니라. 불경보살이 사람을 존경한 것은 어떠한 일이뇨. 교주석존의 출세의 본회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어서 1174쪽) 즉 “석존이 일생 동안 설한 가르침의 핵심은 법화경이고, 법화경을 수행해야 하는 핵심을 설한 것은 불경품이다. 불경보살이 사람을 존경한 것은 어떠한 까닭인가, 교주석존(부처)이 이 세상에 출현한 근본목적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데에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 어서는 1277년 9월, 시조 깅고에게 주신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당시 깅고는 주군 에마 씨를 절복한 이유로 주군의 노여움을 사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에마 씨가 중병에 걸려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의술이 뛰어난 깅고는 다시 주군에게 기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또 주위 사람들에게 질투를 받아 신변이 위태로워 졌습니다.
대성인은 이 편지에서 성미가 급하고 과격한 깅고의 신변을 걱정하여 더욱더 긴장하고 행동을 조심하라고 훈계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포용하고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고 말겠다는 어본불의 광대하고 따듯한 경애입니다. 권의로 짓누르는 듯한 느낌은 조금도 없습니다.
깅고의 성격을 결점까지 잘 헤아린 다음 몸을 망치지 않도록 인생의 패배자가 되지 않도록 세심하고 따뜻하게 지도하셨습니다.
광대무변하고 자애로운 대성인의 격려에 감정이 앞서 단단히 벼르던 깅고도 마음을 풀고 크게 시야를 연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법화경 불경품에서 불경보살의 ‘행동’을 설합니다.
불경보살은 사람들에게 아무리 심한 비난을 받아도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설령 상대가 증상만의 중생이라 해도 그 불성을 존경하고 계속 예배했습니다.
즉 대성인은 시조 깅고에게 욱해서 화를 내거나 경솔한 언동을 하면 안 된다, 몸을 조심하고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려고 불경보살의 행동을 말씀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석존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데 있다고 결론지으셨습니다.
불법이라고 해도 핵심은 인간으로서 삶의 자세, 행동을 설한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심은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심을 근본으로 삼아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활해야 하는지, 나날이 행동해야 하는지, 이 점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성불의 길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난실(蘭室)의 벗과 사귀어 마무(麻畝)의 성(城)으로 되었구나.”(어서 31쪽) 즉 “난실의 벗(덕이 높은 사람)과 사귀어 쑥처럼 굽은 마음이 반듯해졌다.”는 구절은 <입정안국론>의 유명한 어서입니다.
‘난실’이란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난꽃이 있는 방을 말합니다. 난실에 있으면 머지않아 그 향기가 자기 몸에 스며들듯이, 여기에서는 정법(正法)을 믿고 인격이 뛰어난 사람과 사귀는 사람은 어느새 정법에 눈이 뜨일 것이라는 예를 드셨습니다.
‘사귀다’는 실제로 상대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듣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안국론’에서 주인은 찾아온 손님에게 법을 설합니다. 손님이 감정적으로 반발하고 화를 내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돌아가려는 손님을 붙잡아 웃는 얼굴로 차근차근 가르쳐 깨우칩니다.
손님은 ‘자비’와 ‘도리’의 행동을 관철한 주인의 행동과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숭고한 인격을 느끼고 어느새 마음의 문을 엽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릇된 집착을 버리고 정법을 구도하기에 이릅니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입니다.
현실사회를 떠나 불법은 없습니다. ‘인간’을 떠나 불법은 없습니다. ‘법’이 아무리 올바르다고 해도 그저 큰소리로 외치기만 해서는 사람들에게 그 올바름을 쉽게 이해시킬 수 없습니다. ‘법’이 아무리 올바르다고 해도 그저 큰소리로 외치기만 해서는 사람들에게 그 올바름을 쉽게 이해시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불법의 길에서 멀어지고 마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면 ‘광선유포’를 유명(遺命)하신 대성인의 뜻에 어긋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볼 때 먼저 그 사람의 평소 행동을 눈여겨봅니다. ‘생활’이 어떤지, ‘교양’이나 ‘성실’면은 어떤지, 그 눈은 참으로 엄합니다. ‘돈 문제’에 철저하지 못하거나 ‘상식’이 부족하거나 행동이 ‘거만’하면 법이 아무리 올바르다고 해도 사회에서 신용 받을 수 없습니다.
‘신뢰’와 ‘이해’가 중요합니다. 최고의 법을 수지했기 때문에 최고로 인격의 빛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불법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간성의 빛’을 갈고닦으면서 불법에 대한 인식을 넓혔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 사람들과 ‘난실의 벗’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 미래에 대한 전망, 따뜻한 배려, 풍부한 지혜, 사명에 임하는 정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드넓은 경애 등 신심으로 연마한 인간성이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합니다.


(20-2) 행동이 빛나는 사람으로
한사람 한사람이 신심으로 갈고닦은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쟁취할 때 광선유포가 확대된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리우데자네이루대표자회의 스피치에서(1993년 2월 10일, 브라질)

마키구치 선생님은 자주 이렇게 지도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꼭 있어야 할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있으면 곤란한 사람이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지역에서도 남들에게 신뢰받고, 존경받고, 호감을 사는 사람, 남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정법을 신앙하는 증거가 됩니다. 그 자체가 광선유포의 전진입니다.
대성인은 시조 깅고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나카쓰카사 사부로 자에몬노조는 주군을 위해서도 불법을 위해서도, 세간에 있어서의 마음씨도 정말 좋았었다 하고, 가마쿠라의 사람들의 입으로 칭송받게 하시라.”(어서 1173쪽)
즉 “‘나카쓰카사 사부로 자에몬노조(시조 깅고)는 주군을 위해서도, 불법을 위해서도, 세간에 대한 마음씨도 훌륭하다, 훌륭하다.’고 가마쿠라 사람들에게 칭찬받도록 하십시오.”
당시 시조 깅고는 참언 때문에 주군에게 외면당하고, 소령을 몰수당하는 등 고난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대성인은 힘든 상황에서도 한탄하지 않고 자신을 갈고닦아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일이 바로 인간의 참된 삶이자 불법자의 길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세간의 이유 없는 비판이나 압박에도 분동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관철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반드시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쟁취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 속에 불법이 맥동하고 신앙의 실증이 나타납니다. 사람으로서 상쾌하고 훌륭한 행동이 바로 올바른 신앙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러분은 좋은 신앙자인 동시에 좋은 국민, 좋은 시민, 좋은 사회인, 좋은 이웃이기 바랍니다. 그러한 행동으로 남들에게 칭찬받고, 존경받고, 신뢰받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그 신뢰의 폭이 넓게, 깊게, 찬란하게 확대되는 곳에 ‘광선유포’가 있습니다.


(20-3) 상식 풍부한 좋은 시민이 되어라
SGI 회장은 처음으로 스웨덴을  방문해 스웨덴SGI 벗에게 벗에게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기본정신을 말했습니다. ‘이웃을 소중히 하자’, ‘자기 나라의 문화나 풍습을 존중하자’, ‘홍교는 서두르지 말자’


이케다 SGI 회장 지침

스웨덴문화회관에서의 스피치(1989년 6월 3일, 스웨덴)


스웨덴을 처음 방문했기에 몇가지 기본적인 것에 관한 소감을 말하겠습니다.
첫째, ‘이웃을 소중히 하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공동체 안에 존재합니다.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자신의 권리나 형편만 주장한다면 사회인으로서 실격입니다.
하물며 어서에는“불법이라고 함은 도리이며”(어서 1169쪽) 하고 씌어 있습니다. 불법을 수지한 우리는 도리를 정확히 분별하고 가장 상식 풍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 이웃집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회관 주변에 사는 분들에게는 특히 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예의를 지킬 필요가 있겠습니다.
만나면 상쾌하게 인사하고, 폐를 끼친다거나 불안감을 주지 않는 등 세심하게 정성껏 끊임없이 배려해야 불법에 대한 공감도 넓힐 수가 있습니다. 또 참된 의미에서 회관이 ‘지역의 행복성’이 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서로에 대한 신뢰가 근본입니다. 독선적이면 안 됩니다. ‘신앙하는 사람들은 과연 다르구나’ 하고 사람들이 안심하고 칭찬하는 곳에서 실제로 지역광포의 흐름도 만들어진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반대로 만나도 인사도 하지 않고 밤늦게까지 큰소리를 내거나,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드나드는 소리, 차나 오토바이 소음 등으로 불편을 주면 이미 사회규범에 위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길에서 떠들거나 담배꽁초를 버릴 때도 주의해야 합니다.
설령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하고 또 가치 있는 운동을 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평소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법입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모습 때문에 광포의 전진이 상당히 늦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불법의 ‘경(經)’이라는 글자는 폭넓게 말하면 일체중생의 생명을 나타낸 표현, 즉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누구나 다 자신의 ‘말투’와 ‘행동’으로 저마다 경을 읽고 있습니다.
남묘호렌게쿄는 최고의 ‘경’입니다. 그러므로 무상(無上)의 경을 수지한 우리의 말과 행동도 가장 세련되게 갈고닦아야 합니다.
둘째, ‘자기 나라의 문화와 풍습 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우주대(宇宙大)의 불법이자 전 세계 사람들을 평등하게 비추는 대법(大法)입니다. ‘일본 종교’가 아닌 ‘인류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묘법을 수지한 우리도 일본의 문화나 사고방식, 언어에 얽메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물론 ‘신심’이라는 일점은 엄격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스웨덴에는 스웨덴의 문화가 있고 전통이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배양된 풍속과 습관이 있습니다. 불법의 근간에 어긋나지 않는 한 그것을 존중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로 쓸데없이 다투거나 완고하게 굴어 편협한 인상을 주고 만다면 불법의 광대(廣大)한 정신에 위배되는 모습입니다.
불법을 근본으로 그 나라의 세법과 국법을 엄연히 지키고, 모든 사람이 신뢰하고 안심하는 ‘좋은 시민’ ‘좋은 국민’이기 바랍니다.
셋째, ‘홍교는 서두르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대성인 불법은 ‘문저하종(文底下種)의 불법’입니다. 스스로 제목을 부르고 널리 불연(佛緣)을 맺어 묘법을 알려주는 것이 수행의 근본입니다. 따라서 상대가 신앙을 하고 안 하고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법을 들려주는 ‘문법하종(文法下種)’도 어본존을 수지하게 하는 ‘발심하종(發心下種)’도 모두 완전히 똑같이 훌륭한 홍교입니다. 공덕에도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인류는 대부분 아직 이 대법의 교의(敎義)도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에 ‘묘법의 씨앗’ 즉 행복과 평화를 싹틔우는 씨앗을 심는 일이 우리 사명입니다.
그때 우리가 그 사람들과 우인이 되어 친하게 사귀고, 성실하게 마음을 나누면 그 자체가 불연(佛緣)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그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떤 때는 자연스럽게 하종불법을 이야기 할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신앙 때문에 논쟁을 하거나 무리하게 강요해서 서로 감정이 상하면 결코 안 됩니다.
어떻게든 신앙을 하게 만들겠다는 진심은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거나 상대를 거북하게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한번 맺은 불연은 때가 되면 반드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20-4) 광선유포는 발밑에 있다
광선유포의 무대는 어딘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실천과 행동이 근본이고, 눈앞의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자애로운 행동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대학부하계강습회 스피치에서(1978년 7월 21일, 시즈오카)


프랑스 문학가 ‘볼테르’는 ‘행복’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 자신을 위해 현명해져라. 이 동지에게 동정을 베풀어라. 다시 말해 타인의 행복 속에서 그대의 행복을 이룩하라.”
“타인의 행복 속에서 그대의 행복을 이룩하라.”는 말은 확실히 명언입니다.
불법에서 설하는 자행화타의 실천에도 통합니다. 자기만의 행복을 좇는 ‘에고이즘’ 속에 참된 행복은 없습니다. 벗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진심으로 격려하는 실천 속에 자신도 행복해집니다. 그러므로 그 행동이 바로 자신에게 가장 ‘현명’한 행동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사소한 실천, 행동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거기에서 인간의 진실이 빛납니다.
루소는 말했습니다. “책에서는 원대한 의무를 설하면서 주위 사람에게는 의무를 게을리 하는 세계주의자를 경계해야 한다.”(《에밀》)
심원한 철학을 논의하는 것도 좋습니다. 원대한 이상도 중요합니다. 훌륭한 어서강의도 좋겠지요. 그러나 입으로는 인류애를 논하면서 주위 사람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악덕한 관념론자가 되면 안 됩니다. 실제로 고생도 하지 않고 고매한 변설에 취해 있는 사람은 고귀한 줄 알고 교만하게 굴지만 실은 가장 하열한 인간입니다.
먼 것을 사랑하기는 쉽고 눈앞의 현실을 살기는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광포라는 장대한 이상을 내거는 동시에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의 생명을 껴안고 또 두 사람의 벗을 껴안으며 광선유포를 위해 하루하루 구체적인 실천을 하기 바랍니다. 실제로 포교라는 수행이며 가장 힘든 작업입니다.

(20-5) 신뢰를 넓히는 일이 광선유포
소설 《신·인간혁명》에서는 1977년 2월, 사회 제일선에서 활약하는 벗의 모임에 참석한 야마모토 신이치 회장이 광선유포를 목표로 나아가는 불법자의 소중한 기본자세에 관해 여러 가지 지도를 하는 장면을 그립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신·인간혁명》(제24권 제4장 ‘등대’)에서

신이치는 광선유포라 해도 자신의 발밑을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발밑을 다진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평범한 듯하지만 먼저 건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으로서 또 사회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몸을 소중히 여기기 바랍니다. 건강을 관리해 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예방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 속에 바로 신심의 지혜가 있습니다.”
건강유지는 사회에서 승리하기 위한 중요한 요건이다. 왜냐하면 늘 생명력이 왕성하고 활기가 넘쳐야 힘껏 일도 할 수 있고 직장을 지키는 버팀목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은 도리다. 폭음과 폭식, 수면부족과 과로 등이 이어지면 어딘가에 지장이 생겨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여러 각도에서 연구하고, 가치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모습이 불법자(佛法者)의 자세라고 해도 좋다. 규칙 바른 생활과 상쾌하고 낭랑한 근행으로 생명력을 가득 넘치게 하여 직장과 지역에서 활약해야 한다.
이어서 신이치는 가정의 소중함에 관해 언급했다. 왜냐하면 가정이 반석 같아야만 직장에서도 안심하고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인간의 행복이라고 해도 가정을 비롯한 가까운 곳에 있다. 더욱이 후계자를 육성하기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교육이다. 훌륭하고 모범적인 가정을 만드는 일은 지역광포의 등대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 신이치는, 직장에서 승리하기 위한 불법자의 자세를 이야기 했다.
“직장에서 제일인자가 되려면 먼저 ‘신심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을 철저히 배제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은 ‘일을 신심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하라’는 대성인의 지도에 어긋나는 아견(我見)입니다. 또 만심에서 비롯된 사고방식입니다.
올바른 신심은 최고의 양식(良識)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불법(佛法)은 생활법입니다. 사회에서 신뢰를 쟁취하고, 직장에서 승리의, 실증을 세우는 일이 그대로 인생의 승리로, 불법의 승리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종횡무진으로 활기차게 활약하는 일이 중요하다.
신이치는 참석자를 감싸안듯이 이렇게 말햇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인간관계를 비롯해 다른 종교에서 치르는 의식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럴 때, 융통성 없이 꽉 막힌 생각으로 자신을 옭아매면 안 됩니다. 현명하고 드넓은 마음으로 인간의 연대를 맺는 일이 중요합니다. 니치렌불법은 인간을 위한 종교입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다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길고 긴 눈으로 보고, 가족도 직장동료도 따뜻하게 감싸안으면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불법자가 취해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니치렌교단을 배타적, 독선적, 과격한 집단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니치렌주의라고 자칭하며 테러 등과 연관된 교단도 있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서 ‘부처’를 발견하고, 모든 사람의 행복을 실현하겠다는 니치렌 대성인의 정신을 짓밟는 폭거다. 그런 교단에는 사회를 소중히 여기는 ‘불법즉사회’라는 관점이 빠져 있다.
신이치는 마지막으로 ‘상식을 소중히 하자’고 강조했다.
“몰상식한 언동으로 주위에서 빈축을 사는 사람을 보면 고통점이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만 격하고 화려하게 신심에 힘쓰다가 금방 내팽개치고 마는, 이른바 ‘불 같은 신심’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성인이 ‘받기는 쉽고 가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성불(成佛)은 가지는 데 있으며’(어서 1136쪽) 하고 말씀하셨듯이 신앙의 핵심은 지속에 있습니다. 광선유포는 직장이나 지역에서 인내 강하게 신뢰의 폭을 넓히는 점진적인 발걸음 속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상식 있는 행동이 바로 신심이라는 사실을 알기 바랍니다.”

(20-6) 공헌하는 생활을 하여라
여기서는 마키구치(牧口) 초대 회장의 사상을 바탕으로, SGI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자타(自他) 함께 행복한 인생을 목표로 삼아 ‘공헌하는 생활’을 영위하는 고귀한 인간주의의 단체라고 말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SGI환태평양문화…평화회의 스피치에서(1995년 1월 30일, 미국)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기주의에 사로잡히지 말고 타자와 ‘공생’할 수 있는 인격을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탁월한 교육자이신 마키구치 선생님은 ‘자신의 단점을 자각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지성)이 있는 사람’(《창가교육학체계》, 《마키구치쓰네사부로전집》 제5권)을 육성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활용해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는 데 자신의 장점을 아낌없이 내줄 정도의 아량이 있는 사람’을 육성하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이 ‘창가교육’이고, 여기에 ‘창가가족’의 화목이 구축됩니다. 부디 각 나라, 각 지역에서도 그러한 아름다운 ‘이체동심’의 연대로 전진하기 바랍니다.
또한 마키구치 선생님은 인간의 생활을 세 단계로 구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생활(의타적 생활)’, ‘독립한 생활’ ‘공헌하는 생활’입니다. 넓게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삶’이란 인간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각도 없이 환경에 좌우되어 사는, 이른바 ‘자신이 없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종래의 많은 종교는 맹신을 강요해 인간의 자립을 빼앗았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그러한 종속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자립된 인격으로서 자신의 길을 간다, 이것이 ‘독립한 생활’에 해당될 것입니다.
또한 자기만 존귀하다고 오만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헌한다. 자타 함께 행복을 실현하는 인생을 목적으로 삼는다, 여기에 ‘공헌하는 생활’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에서 ‘독립’으로, 나아가 ‘공헌’으로, 한사람 한사람이 향상하고, 있는 힘껏 생기발랄하게 활약하여 빛을 발한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러한 ‘자각한 민중의 연대’를 이룩하자고 외치셨습니다.
SGI는 이 ‘공헌하는 생활’을 영위하는 고귀한 인간주의의 단체입니다. 위대한 ‘생명의 법’에 따라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사람들의 행복’과 ‘사회의 번영’, ‘문화의 흥륭’과 ‘세계평화’를 위해 공헌하고 있습니다.


(20-7) 대아(大我)에 사는 보살도(菩薩道)를
SGI 회장이 주장하는 ‘좋은 시민’이란 소아(小我)를 물리치고 대아(大我)에 사는 보살도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SGI 발족 때 한 유명한 스피치에서 그 점을 강조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제23회 1·26 ‘SGI의 날’ 기념제언에서(1998년 1월 26일)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와 의무를 지키는 이유는 정해진 규범이라는 ‘외재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아름다운 생활을 위협받는 상태를 같은 인간으로서 간과할 수 없다는, 억누를 수 없는 ‘내발적인 정신’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인권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보편적인(=자타 함께) 기반이 된다고 저는 외치고 싶습니다.
23년 전(175년 1월), SGI를 발족할 때 나는 ‘자기 자신의 꽃을 피우려는 마음이 아니라 전 세계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존귀한 일생을 보내자.’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만의, 불행’이 있을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행복’도 있을 수 없다, 다른 사람 속에서 자신을 보고 자신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일체성을 느끼는 ‘소아(小我)’를 물리치고 ‘대아(大我)’에 사는 보살도를 함께 나아가자는 진심어린 호소이기도 했습니다.
SGI멤버는 각국에서 좋은 시민으로서 평화, 문화, 교육 운동을 확대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 가장 고뇌하는 사람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이 사람을 격려하자’, ‘저 사람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감싸주고 싶다’는 보살의 마음으로 스스로 솔선하여 이타의 행동을 계속합니다. 이것은 제게 가장 큰 기쁨이자 오늘날 요구되는 ‘인권문화의 창조’로 이어지는 착실한 실천이라고 저는 자부합니다.
여하튼 깊은 생명의 차원에서 한사람 한사람이 책임과 의무와 같은 윤리를 근본에서부터 뒷받침하는 주체성을 능동적으로 확립한다면 반드시 참된 인권문화가 꽃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20-8) ‘지구시민’의 요건
좋은 시민이란 세계시민, 지구시민에 통용됩니다. SGI 회장은 지구시민을 ‘지혜로운 사람’, ‘용감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세 가지 각도에서 말합니다. 그리고 그 모범이 되는 인격으로서 모든 분단과 싸움이 공생과 연대를 목표로 하는 보살의 삶에 빛을 비춥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컬럼비아대학교 교육대학원 강연에서(1996년 6월 13일, 미국)

‘지구시민’의 요건은 무엇인가. 수십년 동안 세계의 많은 분과 대화를 거듭하고 사색하면서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지구시민’은 결코 그저 몇개 국어를 할 수 있느냐, 몇 나라를 여행했느냐 하는 것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외국에 한번도 나간 적이 없어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고 공헌하는 고귀한 서민을, 저는 수없이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구시민’이란 예를 들어,
-. 생명의 상관성을 깊이 인식하는 ‘지혜로운 사람’
-. 인종이나 민족, 문화의 ‘차이’를 두려워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이해하고 성장의 양식으로 삼는 ‘용기 있는 사람’
-. 자기 주변에 그치지 않고 먼 곳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하고 연대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혜’와 ‘용기’ 그리고 ‘자비’를 구체적으로 펼치려면 불법의 세계관 그중에서도 삼라만상의 상의(相依), 상관성의 원리가 확실한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불전(화엄경)에는 다양한 상호의존성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비유가 씌어 있습니다. 생명을 지키고 키우는 대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제석천(帝釋天)의 천궁에는 매듭 하나하나에 ‘보석’이 달린 ‘보물그물’이 걸려 있습니다. 그 어느 ‘보석’에도 서로 다른 ‘보석’의 모습이 모두 비치어 빛난다는 내용입니다.
미국 르네상스의 거장 솔로가 관찰했듯이 ‘우리의 관계성은 무한한 넓이’를 갖고 있습니다. 이 관계를 알 때 서로 살리고 살려 존재하는 ‘생명의 실’을 더듬어가면서 지구의 이웃 사람 속에서 장엄한 빛을 발하는 ‘보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불법은 ‘생명’의 이런 깊은 공감성을 바탕으로 ‘지혜’를 기르도록 촉구합니다. 왜냐하면 이 ‘지혜’가 ‘자비’의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법에서 설하는 ‘자비’란 좋다든지, 싫다든지 하는 인간의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설령 싫은 사람이라 해도 자기 인생에서 보면 어떤 가치가 있고, 자신의 인간성을 깊게 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불법은 이러한 가능성에 눈뜨라고 호소합니다. 또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진지하게 상대를 생각하는 ‘자비’의 마음에서 ‘지혜’는 한없이 솟아난다고 설합니다.
게다가 불법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선성(善性)’과 ‘악성(惡性)’이 함께 잠재한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이 갖춘 ‘선성’을 믿고 그것을 발견하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 ‘용기’ 있는 행동을 지속할 때 ‘자비’가 맥동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의 생명에 깃든 가장 존귀한 ‘선성’을 끄집어내고자 노력하는 도전입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자비’라 해도 ‘용기’가 없으면 실제로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저 관념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불법에서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자비’를 갖추고 다른 사람을 위해 계속 행동하는 인격을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보살’은 시대를 초월해 ‘지구시민’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전에 따르면 석존과 동시대를 산 ‘승만 부인’이라는 여성은 인간교육자로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승만 부인은 모든 사람 속에 있는 가장 존귀한 ‘선성’을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 지키고 기르는 것이‘보살’이라고 설했습니다. 승만 부인은 서원했습니다.
“나는 고독한 사람, 부당하게 감금되어 자유를 빼앗긴 사람,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 재난에 괴로워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을 보면 결코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 사람들을 안온하고 풍요롭게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애어(愛語)’(배려 깊은 상냥한 말을 거는 것 즉 대화)
‘보시(布施)’(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것)
‘이행(李行)’(타자를 위해 행동하는 것)
‘동사(同事)’(사람들속에 들어가 함께 일하는 것)
를 실천하면서 사람들의 ‘선성’을 훈발시켰습니다.
보살의 행동은 모든 사람에게 내재한 ‘선성’을 믿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비유하자면 정밀한 기계로 비행기를 어떻게 안온하게 무사하게 목적지까지 이끌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러려면 ‘파괴나 분단을 초래하는 근원적인 악 또한 인간생명에 내재한다.’는 통찰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불법에서 설하는 ‘원품의 무명’을 정면에서 응시하고 맞서 사워야 합니다.
인간에게 내재한 ‘선성’은 자신과 타자의 ‘공생(共生)’과 ‘연대’를 촉구합니다. 반대로 ‘악한 마음’은 인간을 다른 사람과 분리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을 자연과 갈라놓아 ‘분단’을 초래하고 마는 법입니다.
인간으로서 공통성에 눈을 감고 다른 사람과의 차이에 집착하는 ‘분단’의 병리(病理)는 개인의 차원을 뛰어넘어 ‘집단 에고이즘’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특히 배타적, 파괴적인 민족중심주의, 국가중심주의의 심층에 현저히 드러납니다. 이러한 ‘소아(小我)’를 극복하는 투쟁 다시 말해 ‘대아(大我)’를 각지하고 ‘자타 함께 이익이 되는’ 행동에 자진해서 나아가는 사람이 보살입니다.


(20-9) 세계시민으로서 영광스러운 인생을
깊은 우정을 맺은 호흐라이트네르 전(前) 로마클럽 회장과 나눈 대화에서 참된 세계시민이란 무엇인가를 제시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 지침

제2총도쿄최고협의회 스피치에서(2005년 11월 18일, 도쿄)

나는 전 로마클럽 회장 호흐라이트네르 박사와 ‘세계시민’의 자세를 거듭 대화했습니다.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시민’이 되려면 가정에서는 좋은 아들딸, 직장에서 좋은 동료, 좋은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근본적인 부분이 뒷받침 되어야 개혁에 더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회장이 말씀하신 ‘인간 한 사람이 그 환경, 지역, 나라 나아가 세계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통합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지적입니다. 창가학회와 SGI는 일관되게 ‘좋은 시민이 되어라’를 목표로 전진했습니다. 또 ‘일가화락의 신심’을 영원한 지침 중 하나로 삼았습니다.
‘세계시민’이라고 해도 자기 가정, 자기 직장, 자기 지역에서 출발하는 이외에 없습니다. 여기에 변혁을 위한 착실하고 확실한 한걸음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합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신념과 정열과 희망을 불태우며 일어서야 합니다.
자신이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생기발랄하게 앞장서기 시작할 때 자기 조직도, 자기 지역도 새로운 약진을 시작합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불법을 말하고 광선유포를 추진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제하고 함께 행복의 길을 걸었는가. 이것이 바로 인생의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 제20장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