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선유포를 서원하며 창제에 힘쓰면 자신의 흉중에 불계가 열린다
광선유포를 서원하며 창제에 힘쓰면, 자신의 흉중에 지용보살의 대생명이
용현하고, 니치렌대성인의 생명이 맥동해 기심(己心)의 불계(佛界)가
열린다. 그렇게 하는 데에 경애혁명이 있고, 극적인 숙명전환도 있다.
또 홍교를 비롯해 광선유포를 위한 도전과제를 성취하려고 고민하고 창제하는
자체가, 이미 지용보살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실천하는 가운데
개개인이 직면한 여러가지 고뇌도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다. 지용의 위대한
생명이라는 혁혁한 태양이 떠오르면 고뇌의 어둠은 사라지고, 행복으로
향하는 확고한 길을 씩씩하게 끝까지 걸어갈 수 있다.
"처음엔 니치렌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
삼인(三人) 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하느니라" (어서 1360쪽)
는 구절에서 '홀로 서는' 용기 있는 신심에 관해 힘주어 말했다.
"어떤 시대라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광선유포의 근본원리가 '홀로 서는' 정신
입니다. 대성인도, 그리고 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도 결연히 홀로
일어서셨습니다. 이것이 불법의 정신이고, 창가의 사자(師子)가 갖춰야 할
마음입니다. '홀로 서는' 정신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가정과 지역 등
자신과 관련이 있는 모든 세계에서, 묘법을 광선유포하는 모든 책임을 짊어
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이 가족, 친척, 우인 등 다른 어느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인간관계가 있습니다. 묘법에서 보면, 그곳이
사명 있는 본국토(本國土)이고, 그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권속(眷屬)
입니다. 자신이 있는 세계를 광선유포할 자격과 책임이 있는 사람은 자신뿐
입니다. 그러므로 '홀로 선다'는 원리가 중요합니다. 자신은 지금
어본불 니치렌대성인의 심부름꾼으로서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세계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지용보살입니다.
오로지 그 속에 광선유포가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불법을 홍통하는 일은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힘든 싸움
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만큼 허영도, 허세도
통하지 않는다. 성실하게, 진지하게, 끈기 있게, 정열적으로 행동하고 실증을
내면서, 끊임없이 정진(精進)하는 수밖에 없다. 오로지 그렇게 하는 데에
참된 불도수행이 있다.
인생은 관념이 아닙니다. 행동입니다. 인생의 진수(眞髓)를 설한
불법의 생명도 '행동'에 있습니다.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출세의
본회(本懷)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 (어서 1174쪽) 즉 "교주석존이
세상에 나오신 근본 목적은, 사람으로서 행동하는 길을 설하기 위해서다."
몇번이나 배독한 어서입니다.
불법은 '사람의 행동', 즉 인간으로서 '행동'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올바른 행동'에 '올바른 인생'이 있고 '올바른
불법'도 있습니다. 또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어서 1361쪽)
즉 "행과 학이 끊어져 버리면 불법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 ㅡ 불법을 스스로 실천하고 넓히는 '행동'을 떠나서 불법은 없다는 말씀
입니다 입으로 아무리 근사한 말을 해도, 그것만으로는 '불법이 아니다'라는
근본이 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또 "심지를 구식(九識)에 갖고 수행은
육식(六識)에서 하라" (어서 1506쪽) 즉 "마음의 경지를 구식(생명의 근본이
되는 가장 깨끗한 경애)에 두고, 수행은 육식(마음을 단련하는 현실)에 두고
하시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에서 행동하는 일이 바로 불도수행
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법화경에서는 '지용보살'의 모습을 설합니다. (중략)
'행동'이 없으면 '건설'할 수 없습니다. '영광'도 '행복'도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과 사회 만반에 통하는 도리입니다. '행동'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푸념으로 이어집니다. 푸념은 신심을 파괴하고, 행복으로 향하는
궤도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맙니다. 생명은 움직입니다. 우주도 움직입니다.
지구도 움직입니다.
동물도, 식물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모두 움직입니다.
산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인생'은
'좋은 행동'을 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멋진 인생'은 '올바른 행동'을 착실하게
반복하는 데서 꽃을 피웁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앞으로 앞으로
'끝까지 행동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자! 또 뭔가 배우자!' 하는
구도심을 불태워 회합에 간다, '자, 함께 행복해지자!' 하고 가족과 지역 사람
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대화를 넓힌다, 여러분이 그러한 나날의 '행동'에
'불법의 진수'가 맥동합니다. '정법의 공덕'이 빛납니다.
창가학회의 원점은,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의 순교와 그 제자 도다의
옥중오달(獄中悟達)에 있다. 마키구치는 전쟁 때, 군부정부의 탄압을 두려워한
총본산이 방법엄계(謗法嚴戒)의 유계(遺誡)까지 깨고 신찰을 받으려 할 때,
정법정의를 끝까지 지키겠노라며 결연히 일어섰다. 그리고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 말씀대로 국가간효를 외치며 투쟁하다 체포되어 옥중에서 서거했다.
그야말로 마키구치는 법화경을 몸으로 읽고, 여래행(如來行)을 실천했다.
이 순교야말로 사신홍법(死身弘法)의 증거이고, 틀림없이 니치렌대성인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오탁(五濁)이라는 어두운 밤에 멸하려던 정법은
이렇게 명맥이 유지되고, 학회는 대성인에게 직결해 신심의 혈맥을 이어받았
다. 그런 마키구치를 스승으로 정하고 따른 도다는, 스승과 함께 감옥에 들어
갔다. 도다의 가슴에는 범우(凡愚)의 몸으로서 법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법화경을 몸으로 읽을 수 있다는 환희가 맥동했다. 도다는 옥중에서 창제를
거듭한 끝에 '부처'는 '생명'이라고 깨달았다. 이때 난해한 불법의 법리는,
만인에게 인간혁명의 방도를 여는 생명의 철리(哲理)로서 현대에 되살아났다.
또 도다는 창제를 하면서 불가사의한 경지를 터득했다.
도다는 대성인이
지용천계(地涌千界)의 상수(上首)로서 구결상승(口決相承)을 받으신
법화경의 허공회(虛空會)에 참석해, 금색찬연한 어본존에게 합장하고 있는
자신을 감득했다. 도다는 솟아오르는 환희와 법열(法悅) 속에서, 자신은
스승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와 함께 니치렌대성인의 말제(末弟)로서
말법홍통(末法弘通)을 부촉받은 지용보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용보살의 사명은 광선유포다. 도다는 이때, 이 세상에 생(生)을 받은
자신의 '구원(久遠)의 사명'을 깊이 자각했다. '이제 내 일생은 결정되었다.
오늘을 잊지 않으리라. 이 존귀한 대법을 유포하고, 나는 생애를 마치겠다!'
이것이야말로 도다가 옥중에서 오달한 결론이고, 도다가 세운 대업의 원동력
이었다.
또한 이때 <어의구전>의 "영산일회 엄연미산(靈山一會 儼然未散, 영산의
일회, 엄연히 지금도 흩어지지 않았도다)" (어서 757쪽)이라는 구절을 배독
하고 생명으로 실감했다. 도다는 스승에게 수순(隨順)함으로써 대난을 만나
옥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불가사의한 감개를 느꼈다.
그리고 마키구치와 맺은 사제의 유대도 또한 법화경 화성유품의 "재재제불토
상여사구생(在在諸佛土 常與師俱生, 곳곳의 모든 불국토에 항상 스승과 함께
태어나느니라)" (법화경 317쪽)이라는 경문대로, 구원의 옛날부터 영원하다는
사실을 감득했다. 하지만 바로 그 무렵, 스승 마키구치는 가을 서릿발처럼
서늘한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도다는 은사의 3회기 법요에서 마키구치의
유영(遺影)을 향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오열을 참고 이야기했다.
"당신의 광대무변한 자비는 저를 감옥에까지 데리고 가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재재제불토 상여사구생'이라는 묘호렌게쿄의 한 구절을 몸으로
읽고, 그 공덕으로 지용보살의 본사(本事)을 알아, 조금이나마 법화경의
의미를 신독(身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스승 마키구치는 옥중에서 산화하고, 사신홍법이라는 위대한 정신을 남겼습
니다. 그 정신을 이어받은 제자 도다는 살아서 옥문을 나와, 광선유포를 위해
홀로 일어섰다.
이 생사를 꿰뚫은 사제불이의 공전(共戰) 속에 창가의 정신이 있다.
마키구치와 도다를 불이(不二)로 만든 것, 그것은 근원의 스승 니치렌대성인의
유명(遺命)인 광선유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강한 신심의 일념이었다.
(이케다 선생님)는 도다라는 스승이 없으면 광선유포 없고,
민중의 행복도, 세계평화도 실현할 수 없음을 생명으로 느꼈다.
사실 니치렌대성인의 정신은 오직 한 사람, 마키구치의 제자 도다 조세이에게
계승되어, 광선유포의 미래도(未來圖)는 그의 일념 속에 들어 있었다.
부처라고 해도 결코 가공(架空)의 존재가 아니다. 중생을 떠난 부처란 있을
수 없다. 법을 넓히는 사람이야말로 부처의 심부름꾼이고, 그 사람을 지키는
속에 바로 불법의 엄호(嚴護)가 있다. 그러므로 신이치는, 도다의 제자가
되어 스승을 끝까지 지켰다. 그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한 정진
속에서 자기 사명과 힘을 꽃피웠다.
그리고 도다의 정신을 체득하고, 스승의
경지에 다가갔다. 도다 조세이는 '이름 없는 민중'에게 지용의 사명을 자각
하게 하고, 75만 세대를 달성해 육만항하사의 지용보살을 현실에 출현시키는
원리를 나타냈다. 그것은 법화경의 예언을 실현하는 일이자, 니치렌대성인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야마모토 신이치가
그런 스승의 뒤를 이어 창가학회 회장으로서 해야 할 투쟁 또한, 이 지용의
의(義)를 세계에 실현하는 일이었다.
한사람 한사람이 흉중에 지용의 사명을
자각하는 일은, 자신의 존재에 가장 깊은 근원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창조하며, 비애의 숙명마저 광채로 넘치는 사명으로 바꾸고, 자기 생명을
바꾸는 인간혁명의 회전축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사명을 완수할 때,
'한 사람'의 위대한 인간혁명이 이루어지고, 이윽고 한 나라의 숙명전환도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