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法 .SGI

지도선집(7월호)

혜광리 2016. 7. 18. 13:11




- 3부 광선유포와 세계평화 -

19지용보살의 사명과 서원(誓願)


이 장을 읽기 전에

1956, 젊은 이케다(池田) SGI 회장은 오사카투쟁에서 위풍당당한 지휘로 광선유포의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일찍이 SGI 회장은 청년들에게 당시의 비화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사카투쟁 때, 나는 눈에 띄지 않는 행동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회합보다도 일대일 대화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끊임없이 편지와 엽서를 보내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활동이 끝나면 혼자서 남몰래 제목을 불렀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고 화려하지도 갈채를 받는 것도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착실히 투쟁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진지하게 철저히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느냐 아니면 그만두고 마느냐, 거기서 자신의 진짜 신심이 드러납니다.

광선유포의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는 홀로 서는 신심을 자기 생명에 확립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지용보살(地涌菩薩)의 서원을 위해 살 수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법화경은 말법(末法) 악세(惡世)에서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사람들을 위해 진실한 법을 넓히는 지용보살을 설합니다. 오직 지용보살만이 말법의 광선유포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자기 생명이 본디 지용보살이라는 사명을 자각하면 인간은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열 수 있는지 모릅니다.

SGI 회장은 그것을 몸소 실천해 세계 192개국·지역에 위대한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창가학회는 어떤 단체인가.’ SGI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념과 정의 그리고 자애를 겸비한 사람이 모인 단체입니다. 광선유포와 세계평화를 이루는 숭고한 사명을 띤 지용의 동지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가장 의의 있는 궁극적인 인생을 보내는 인간 중의 인간이 모인 단체입니다.”

 

 

문단띠로 사각형입니다.

(19-1) , 지용보살이니라!

 

법화경(法華經) 본문(本門)은 부처의 멸후(滅後),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법화경을 설하고 넓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그때, 석존(釋尊)이 적화(迹化)의 보살들의 간청을 물리치고 멸후에 홍교를 의탁하려고 불러낸 참된 제자가 바로 지용보살입니다. SGI 회장은 법화경의 지혜에서 말법의 광선유포를 짊어질 지용보살의 출현에 관해 자유자재로 말합니다.

문단띠로 사각형입니다.

 

 

묶음 개체입니다.

법화경의 지혜에서

 

(법화경에서 지용보살의 등장을 둘러싸고)

참으로 드라마틱한 등장입니다. 대지가 갈라지고 무수한 보살이 동시에 출현합니다.

더욱이 한사람 한사람이 황금빛을 발합니다. 일체경(一切經)에 나오는 보살 중 지용보살만큼 현란한 보살도 없겠지요. 모든 불국토에서 모여든 적화, 타방(他方)의 보살조차 경탄합니다.

대성인은 적화, 타방의 보살과 지용보살을 견주어, 지용보살의 모습을 마치 원숭이 무리 속에 제석천(帝釋天)이 출현한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비유하셨습니다. 경문에도 지용보살의 모습이 얼마나 존귀한지 씌어 있습니다.

보살이라고 하지만 실은 부처입니다. 지용보살은 어디서왔는가. 천태는 법성(法性)의 연저(淵底), 현종(玄宗)의 극지(極地)”(법화문구)에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생명 오저의 진리이자 근본의 일법(一法)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連華經)를 말합니다.

지용보살은 묘법(妙法)을 근본으로 영원히 행동하는 사람이고 영원히 전진하는 생명입니다. 그 발랄한 에너지를 자기 생명에 솟아오르게 하는 일은, 개인으로 보면 지용의 출현입니다. 지금까지의 작은 자기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바로 경애혁명입니다. 개인의 경애혁명을 한사람 한사람에게 넓힘으로써(이것이 바로 지용의 용출) 사회 전체의 경애를 바꾸는 투쟁입니다. 인류 전체의 경애를 높입니다. 이 변혁이 대지를 부수고에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모든 차이를 뚫고 나가 인간이 간직한 근원의 힘으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지용의 힘입니다. ‘맨몸그대로의 범부, ‘인간 그 자체인 용자가 지용의 긍지입니다. 이른바 지용의 출현은 생명의 저력은 이렇게도 위대하다!’는 장대한 울림입니다. 대지의 울림입니다.

차별은 절대 악()입니다. ‘전도(顚倒)된 마음은 자타(自他) 모든 사람의 생명에 상처를 입힙니다. 인종이나 민족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도, 그 뿌리는 허구(虛構)입니다. 사막에 떠오른 신기루와 같습니다.

인류 공통의 생명의 고향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타자와 차이를 더 두드러지게 하여 대립과 항쟁의 원흉이 되고 맙니다. 지금 추구해야 할 것은 인간관의 변혁입니다. 이것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인간이여, 국가나 민족이라는 멍에에 사로잡히지 마라. 또 자신을 무력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마라. 물질의 집합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유전자의 노예라고도 생각하지 마라. 자신은 본디 더없이 무한하고 커다란 가능성을 간직한 존재다.’ 하고 말입니다.

본디 인간은 우주와 하나인 위대한 존재다! 개인의 힘은 이렇게까지 위대하다!’ 이것이 법화경의 메시지입니다.

(‘니치렌과 동의라면 지용보살’)

석존의 말을 듣고 마지못해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웃음). , 우리 차례다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춤추며 나오는 보살이 지용보살입니다. ‘춤추며 나아가는자발적인 신심이기 때문에 영원한 행복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신심의 목적은 영원한 행복입니다. 금세(今世)는 꿈과 같습니다. 그 꿈에서 깨어나 이 일생에서 영원한 행복을 굳히기 위한 신심입니다. 그것을 일생성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금세에 분발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니치렌 대성인은 니치렌과 동의(同意)란다면 지용의 보살이 아니겠느뇨.”(어서 1360)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과 똑같은 마음으로 광선유포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바로 참된 지용보살입니다.

광선유포는 공전(公轉)’입니다. 인간혁명은 자전(自轉)’입니다. 둘은 하나입니다. 니치렌과 동의라면 어떤 것도 두려울 리 없습니다.

마키구치(牧口) 선생님과 도다(戶田) 선생님은 전쟁 때 군부의 탄압에도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대성인의 정신인 사자왕의 마음을 그대로 이어받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원점인 도다 선생님의 오달이 옥중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법화경 때문에 투옥되셨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 지용보살이니라!” 하고 활연히 깨달으셨습니다. 그야말로 대난의 한복판이었기에 인간혁명하신 것입니다. 난즉오달(難卽悟達)입니다.

참으로 니치렌과 동의란다면 자용보살이 아니겠느뇨.”라는 금언을 몸으로 증명하신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격히 말해 난이 없으면 참된 니치렌과 동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옥중오달이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원점입니다. 법화경을 현대에 소생시킨 순간이자 인간혁명이라는 태양이 현대에 떠오른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어둠은 깊고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새벽은 도다 선생님의 흉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지용보살이니라!”

도다 선생님의 이 확신에서 광선유포의 장대한 흐름이 세차게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란 무엇인가를 끝까지 추구해 부처는 다름 아닌 자신이고, 우주의 위대한 생명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다.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발밑을 파라, 그곳에 샘이 있다.’는 말이 유명한데 자신의 근원을 파 내려가니 거기에서 만인에게 공통된 생명의 기반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영원한 우주 생명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그야말로 자신의 근원을 깨달음과 동시에 실은 모든 사람이 본디 지용보살이라는 인류 공통의 기반을 깨달으셨습니다. 생명의 고향을 안 분들이 학회원입니다.

선생님은 흉중의 그 깊은 확신을 어떻게든 학회원과 나누고자 고심하셨습니다. 어느 때는 지용보살 여러분, 해내지 않겠는가.” 하고 외치신 적도 있습니다.

자기 본원의 생명에 끝까지 산 사람이 얼마나 존귀한가. 얼마나 강한가.’

도다 선생님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또 자신의 일생으로 실증을 보여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힘은 위대합니다. 진짜 지용보살이라면 힘이 나오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 확신이 모든 것의 출발점입니다. 자신의 근원에 청정한 우주대의 생명이 펼쳐집니다. 이것을 자각하고 증명하는 일이 인간혁명입니다.

(세간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부처 한 사람모든 민중을 위해 정법(正法) 광선유포를 책임지는 것은 어떠한 국토라 할지라도 늘 지용보살입니다. 왜 그럴까요.

지용보살이란 내증(內證)의 경애가 부처와 똑 같으면서 어디까지나 보살로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보살불(菩薩佛)입니다.

경애가 부처와 사제불이가 아니면 정법을 올바르게 홍통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현실의 탁세(濁世)에서는 세간(世間)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동화되어 들어가지 않으면 광선유포를 할 수 없습니다.

이 두 조건을 다 갖춘 것이 지용보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래신력품 마지막에 이 사람이 세간에서 행하여”(법화경 575) 하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세간에서입니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지용보살은 태양입니다. 여연화재수(如蓮華在水, 연꽃이 물에 있는 것과 같나이다)”(법화경 471)와 같이 세간에 있으면서 세간의 악에 물들지 않는 연화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태양이 되면 인생에 어둠은 없습니다.

자신의 하루하루는 물론 다른 사람까지도 밝게 비출 수 있습니다. 자신이 연화가 되면 번뇌의 수렁도 곧바로 행복의 보리로 바꿀 수 있습니다.

종지용출품에 여연화재수라고 있습니다.

우리 지용보살은 세간의 수렁 한가운데로 들어갑니다. 결코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절대로 세간에 물들어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냐하면 사명을 잊지 않았기때문입니다.

대성인은 지용보살에 관해 오직 유일대사(唯一大事)의 남묘호렌게쿄를 홍통하는 것을 본()으로 했느니라.”(어서 83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선유포입니다. 절복정신입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신심이 지용보살의 혼()입니다.

지용보살은 아주 먼 옛날부터 한결같이 묘법을 수행했습니다. 묘법근본, 신심근본의 자세로 자신을 단련했습니다.

대성인은 지용보살에 관해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을 단념하셨으리라.”(어서 118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바세계에서 대난도 이겨내고 홍교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불계에 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화의 보살이나 타방의 보살은 어디까지나 성불을 목표로 하는 보살입니다. 그렇기에 사바세계에서 홍교하는 힘든 수행을 견딜 수 없습니다.

구원의 묘법을 배우고 숙달한 본화지용보살(本化地涌菩薩)이기 때문에 그 임무를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먼지도 쌓이면 산이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먼지가 쌓여 생긴 산은 없다. 기껏해야 흙무더기 정도다. 실제로 산은 큰 지각 변동이 있어야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소선(小善)을 아무리 쌓는다 해도 대선(大善)이 되지 않는다.”(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10, 취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선을 계속 쌓아서 성불하려는 것이 적화의 보살이 취하는 삶이라면, 법성(法性)의 연저(淵底), 생명의 오저에서 마치 화산폭발과 같은 기세로 불계의 대생명력을 분출하는 것이 본화의 보살입니다.

지용보살은 늘 묘법을 수행하고, 순간순간 영원한 생명을 호흡하는 보살입니다. 수행하는 모습은 보살일지라도 내면의 경애는 부처입니다.

그러나 부처라고 하면 아무래도 초월적인 존재로 보이기 십상입니다.

지용보살은 어디까지나 철저히 수행하는 인간으로서의 보살입니다. 인간입니다. 여기에 중대한 의의가 있습니다.

인간을 신뢰하고 인간을 위한 신앙을 복권(復權)하는 일이 바로 21세기의 종교를 위한 열쇠입니다.

어느 의미에서 세계는 위대한 인간의 종교.’ ‘생명의 종교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단띠로 사각형입니다.

(19-2) 창가학회원이 바로 지용보살

 

이 절()에서는 법화경을 바탕으로 광선유포를 성취할 지용보살이 갖춰야 할 덕()에 관해 용기, 지혜, 인내력, 인격과 같은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위대한 덕을 체현한 사람이 바로 창가학회원이라고 말합니다.

문단띠로 사각형입니다.

 

   

묶음 개체입니다.  

법화경 방편품·수량품 강의에서

 

 

지용보살은 구원(久遠)의 묘법을 자신의 생명에 소지(所持)한 보살입니다. 대성인은 본법(本法)을 소지한 사람이 아니므로 말법의 홍법에 족()하지 않는 자일까.”(어서 25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법은 남묘호렌게쿄입니다. 말법의 중생을 구제하는 대양약은 수량문저(壽量文底)의 남묘호렌게쿄입니다. 남묘호렌게쿄는 생명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명에 이 법을 소지하고 말법의 중생을 위해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말법의 민중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지용보살의 상수(上首)인 상행보살(上行菩薩)의 재탄(再誕)으로서, 말법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수량문저에 비침된 남묘호렌게쿄를 자기의 혼으로 삼아 그 생명을 어본존으로 도현(圖顯)하셨습니다.

대성인은 이 본법을 수지함은 신()의 일자(一字)이며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을 대치(對治)하는 이검(利劍)은 신의 일자이니라.”(어서 751) “니치렌과 동의란다면 지용의 보살이 아니겠느뇨.”(어서 1360) 하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어본존을 믿고, 대성인과 같은 마음으로 광선유포에 힘쓰는 우리도 대성인과 똑같이 본법을 소지한 지용보살입니다.

법화경 용출품에서는 지용보살을 사바세계 하방(下方)의 공중에서 용출(涌出)한 보살이라고 설합니다. 대성인은 이 하방하방이란 진리이니라.”(어서 75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용보살은 진리의 세계에서 현실의 사바세계로 용출한 보살입니다. 다시 말해, 우주 근원의 대법인 남묘호렌게쿄에서 민중 속으로 뛰어든 용자(勇者)입니다. 그래서 막힘이 없습니다. 묘법의 세계에서 본원의 생명력과 지혜를 무진장으로 퍼 올릴 수 있습니다. 악세 말법에도 몸으로 묘법을 넓히고 대난을 견딜 수 있습니다.

탁악한 말법에 대성인 말씀대로 현실의 대지에 불법을 넓히는 사람은 모두 지용보살입니다. 오늘날 학회원의 모습은 모두 경문에서 설한 대로 지용보살의 모습입니다.

지용보살은 지념견고(志念堅固, 뜻과 생각은 견고하고)”(법화경 459) 한번 정하면 끝까지 해내는 결의가 굳은 사람, 지속하는 사람입니다. 그 중에서도 다보회 여러분은, 초창 이래 어떤 일이 있어도 신심을 관철하셨습니다. 불퇴전이라는 지용의 훈장을 빛내며 어떠한 중상(重傷)을 받아도 한번 정한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또 경문에는 보살의 도()를 잘 배워서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은 연화가 흙탕물 속에서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법화경 471, 통해) 하고 씌어 있습니다.

학회원은 오탁강성(五濁强盛)한 사회에서도 진흙탕에 물들지 않고, 늠름하고 순수하게 불법의 세계에서 끝까지 살아왔습니다. 현실의 흙탕물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구제했습니다. 이렇게 인간 속에 뛰어드는 것을 꺼리고, 피하고, 그저 산속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지용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어려운 것을 물어도 훌륭히 답하고, 그 마음에 두려움이 없으며, 인욕(忍辱)하는 마음이 확고하며, 단정하고 위덕(威德)이 있어”(법화경 472)라고도 씌어 있습니다.

어려운 것을 물어도 훌륭히는 한마디로 말하면 대화의 달인입니다. 제일선에 살아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근거 없이 욕하는 사람에게는 그럼 인생의 행복이 무엇인지에 관해 대화한 뒤에 다시 얘기합시다.” 하고 한마디로 유연하게 되받아치는 지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어려운 물음에 훌륭히 답하는 능숙한 지자(智者)입니다.

그 마음에 두려움이 없으며 다시 말해 여러분은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투사입니다. 민중을 유린하는 사악한 세력과 맞서 단호히 싸웠습니다.

인욕하는 마음이 확고하며 다시 말해 끈기는 여러분의 진면목입니다.

벗 중에는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멋대로인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절대로 벗을 내팽개치지 않았습니다. 가장 인욕하는 사람입니다. 또 자신의 어려움에도 인욕이라는 두 글자로 승리했습니다. 그야말로 자비의 왕자(王者)’ ‘신념의 왕자입니다.

단정하고 위덕이 있다.” 다시 말해 마음과 생명이 빛납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인간적인 매력이 넘칩니다. 그 풍부한 인덕은 누구나 마음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에게 지용의 힘이 있습니다.

지용보살은 인중지보(人中之寶, 사람 가운데 보배로서)”(법화경 469)입니다. 지역의 보배입니다. 세계의 보배입니다. 그만큼 존귀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에게 지용의 마음이 있습니다. 묘법을 엄호하겠다는 마음이 있고, ‘이 사람을 격려하자’ ‘저 사람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자는 보살의 마음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바로 거기에 법화경의 마음이 있고, 지용보살의 정신이 있습니다.

또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에게는 지용의 실천이 있습니다.

지용보살은 사람들이 가장 괴로워할 때, 슬퍼하고 있는 곳에 태어납니다.

대성인은 말법의 모습을 집심(執心)이 더욱 강성해져서 소()로써 대()를 치고 권()으로써 실()을 파()하여 국토에는 대체로 방법(謗法)의 자가 충만하느니라.”(어서 507)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서는 대소권실(大小權實)의 가르침이 어지럽게 뒤섞인 모습을 지적하신 말씀으로, 현대사회의 정신적 풍조를 제대로 말해줍니다. 낮은 가치관에 심하게 집착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을 좋아하며 위대한 것을 싫어합니다. 일시적인 것과 가짜를 좋아하고 진짜를 싫어합니다. 말법은 얕은 사상과 얕은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고 깊은 생활방식을 경멸하는 시대입니다.

학회원은 그런 전도(顚倒)된 사회에서 목적지를 잃고 방랑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삶을 계속 설합니다. 참으로 한사람 한사람이 대중을 인도하는 우두머리”(법화경 453, 통해) 즉 민중의 리더로서 끊임없이 빛을 보냅니다.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단언하셨습니다.

우리는 말법에 일곱 문자의 법화경을 유포해야 할 대임(大任)을 받들고 출현했음을 자각했다. 이 경지(境地)에 따라 우리의 위치를 판단한다면, 우리는 지용보살이다.”

여러분은 은사의 사자후(師子吼)를 실제로 증명했습니다. 어본불이 그리고 제불(諸佛), 20세기의 지용보살이 완수한 대위업을 얼마나 찬탄하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갈채를 보내겠습니까. 그러나 세계에는 아직도 비참고뇌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는 점점 더 혼미해지고 있습니다. 지용의 장정(長征)은 계속됩니다.

평화를 위해, 행복을 위해 더욱더 건강하고 명랑하게 그리고 장수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웃는 얼굴을 세계가 기다립니다.

 

 

문단띠로 사각형입니다.

(19-3) 사보살의 역용은 우리 생명에

 

이 절에서는 창가학회원이 바로 현대의 지용보살이라고 말하고, 인간으로서 지용보살의 리더인 사보살(四菩薩)이 갖추어야 할 덕()을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묶음 개체입니다.

전국대표자회의 스피치에서(1996329, 도쿄)

 

 

도다(戶田)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광선유포하겠다는 학회원이 바로 지용보살이다.” “지용보살이라고 정하면 반드시 생각한 대로 생활할 수 있다.”

법화경에는 지용보살의 리더인 사보살이 등장합니다. 상행(上行)보살, 무변행(無邊行)보살, 정행(淨行)보살, 안립행(安立行)보살입니다.

사보살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대성인은 그 일면을 <어의구전>에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와 관련해 논하셨습니다. 우주의 모든 작용을 지수화풍으로 대변할 수 있습니다.

그 근본은 사보살의 작용이자 묘호렌게쿄의 자비의 작용입니다.

<어의구전>의 말씀을 근본으로 리더의 자세를 알기 쉽게 말하겠습니다.

먼저 상행보살의 작용은 과 대응할 수 있습니다.

불은 물질을 태우는 것으로써 행()으로 하고”(어서 751)라고 씌어 있습니다.

불은 물질을 태우는 작용을 합니다. 묘법의 용자(勇者)는 번뇌를 태워 지혜의 빛을 내고 세간의 어둠을 비춥니다.

불꽃이 하늘을 향해 활활 타오르듯 약동하는 기세로 가득 차 주위 사람들을 자시의 뜨거운 일념으로 감쌉니다.

앞장서 일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와 정열의 불꽃을 점화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춥니다. 사회에서도 세계에서도 위대한 지도자로서 작용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상행보살이 갖춘 덕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불법의 리더는 늘 자신을 향상시키고, 늘 앞장서 용기 늠름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자신은 편하게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시키자’ ‘다른 사람을 부리자하고 생각하는 오만한 지도자가 되면 안 됩니다.

무변행보살은 바람과 대응할 수 있습니다.

<어의구전>에는 바람은 진구(塵坵)를 털어내는 것으로써 행으로 하고”(어서 751) 하고 씌어 있습니다.

바람은 먼지나 티끌을 불어서 날려버리는 작용을 합니다. 바람이 무변으로 불어 먼지나 티끌을 불어서 없애듯 어떠한 곤란도 바람 앞의 먼지와 같으니라.”(어서 232) 하고 날려버리고 자유자재로 활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변행보살이 갖춘 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막히지 않는 지혜생명력을 갖추었습니다.

정행보살은 과 대응할 수 있습니다.

물은 물질을 깨끗이 함을 가지고 행으로 하고”(어서 751) 씌어 있습니.

물은 물질을 깨끗하게 하는 작용을 합니다.

도도히 흐르는 물처럼 늘 깨끗한 경애를 유지하고 현실의 오탁(五濁)에 물들지 않으면 만물을 깨끗하게 만듭니다.

탁세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데도 신선하고 아름다운 생명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위에도 청정한 흐름을 넓힙니다.

이것이 정행보살이 갖춘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립행보살은 대지와 대응할 수 있습니다.

대지는 초목을 자라게 하는 것으로써 행으로 하는데”(어서 751) 하고 씌어 있습니다.

대지는 초목을 자라게 하는 작용을 합니다.

다양한 초목을 키우는 대지와 같이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지키고, 평등하게 사랑합니다.

모든 사람을 든든하게 지탱하고, 격려라는 영양을 보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분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괜찮다!’라는 한없는 안도감을 줍니다. 이것이 안립행보살이 갖춘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용보살의 리더인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과 동의(同意)’의 신심으로 광선유포를 위해 꿋꿋이 살면 이 사보살의 역용(力用)이 우리 생명에도 솟아납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이 사보살에게 ()이라는 글자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정말로 의의가 깊습니다.

이 없으면 보살이 아닙니다. ‘행동해야만 부처가 됩니다.

자신만을 위한 인생은 덧없고 천합니다. 남을 존경하고 남을 위해 움직여야 지용보살입니다.

여러분은 상행과 같이 모든 광선유포에 앞장서 무변행과 같이 자유자재로 정행과 같이 깨끗한 마음으로 안립행과 같이 부동의 확신으로 존귀한 학회원을 엄연히 지키기 바랍니다.

사욕(私慾)을 버리고, 훼예포폄(毁譽褒貶) 따위 내려다보며 오로지 사람들을 위해 미래를 위해 꿋꿋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힘이 솟습니다. 그 사람이 부처가 됩니다.

 

 

문단띠로 사각형입니다.

(19-4) 홀로 서겠다고 서원하는 신심

 

소설 ·인간혁명에는 교학의 해1977년 연초에 야마모토 신이치 회장이 세이쿄신문에 게재한 <제법실상초> 강의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회장은 강의에서 홀로 서겠다고 서원하는 신심이야말로 지용보살의 본령이라고 강조합니다.

문단띠로 사각형입니다.

 

 

 

묶음 개체입니다.

·인간혁명(24엄호’)에서

 

 

우리는 지용보살이자 대성인의 본권속(本眷屬)인 구원의 제자이기에 말법 광선유포라는 커다란 무대로 뛰어나왔습니다. 우리는 깊은 사명감으로 대성인에게 직결합니다.

진정으로 광선유포의 책임을 짊어지고 일어서 괴로워하며 고민하고 기원하고 투쟁한다면, 대성인의 남묘호렌게쿄라는 생명이 솟아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의지할 사람이 없어 늘 오로지 홀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감연히 나아가야만 할 때에도 그 확신을 단호히 관철했습니다.“

신이치의 마음에는 늘 대성인 직결의 신심을 관철하는 단체는 우리 창가학회뿐이라는 후지산과 같은 확고부동한 대확신이 있었다.

신이치는 지용보살의 본령(本領)이 무엇인지 깊이 파고들었다.

보살의 본령은 서원(誓願)’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용보살의 서원은 법화홍통(法華弘通)’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주위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광선유포를 서원하는 창제가 중요합니다. 엄하게 말하면, ‘서원하지 않는 창제는 지용보살의 창제가 아닙니다.”

서원에는 마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부처의 생명이 용솟음친다.

신이치는 모든 동지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대공덕을 받기 바랐다. 병고나 경제고 등 모든 고뇌를 극복하고 행복해지기 바랐다. 그렇게 되기 위한 기원의 핵심이 바로 광선유포를 위한 서원이다.

광선유포를 위해서라는 일념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병으로 괴로워하는 경우 이 병을 극복해 반드시 불법의 올바름을 증명하겠습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아무쪼록 커다란 생명력을 주십시오.’ 하고 서원하는 마음이 병을 극복하는 커다란 힘이 된다.

제목을 부르면 당연히 공덕은 있다. 그러나 병을 낫고 싶다는 기원이 깊은 사명감과 일치할 때, 자신의 생명이 근본적인 생명변혁과 경애혁명 그리고 숙명전환을 향해 힘차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광선유포를 서원하며 창제에 힘쓰면, 자신의 흉중에 지용보살의 대생명이 용현하고 니치렌 대성인의 생명이 맥동해 기심(己心)의 불계(佛界)가 열린다. 그렇게 하는 데에 경애혁명이 있고 극적인 숙명전환도 있다.

또 홍교를 비롯해 광선유포를 위한 도전과제를 성취하려고 고민하고 창제하는 자체가 이미 지용보살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실천하는 가운데 개개인이 직면한 여러가지 고뇌도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다.

지용의 위대한 생명이라는 혁혁한 태양이 떠오르면 고뇌의 어둠은 사라지고, 행복으로 향하는 확고한 길을 씩씩하게 끝까지 걸어갈 수 있다.

신이치는 처음엔 니치렌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 삼인(三人) 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하느니라.”(어서 1360)는 구절에서 홀로 서는용기 있는 신심에 관해 힘주어 말했다.

어떤 시대라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광선유포의 근본원리가 홀로 서는정신입니다. 대성인도 그리고 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도 결연히 홀로 일어서셨습니다. 이것이 불법의 정신이고 창가의 사자(師子)가 갖춰야 할 마음입니다.

홀로 서는정신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가정과 지역 등 자신과 관련이 있는 모든 세계에서 묘법을 광선유포하는 모든 책임을 짊어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이 가족, 친척, 우인 등 다른 어느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인간관계가 있습니다. 묘법에서 보면 그곳이 사명이 있는 본국토(本國土)이고, 그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권속(眷屬)입니다.

자신이 있는 세계를 광선유포할 자격과 책임이 있는 사람은 자신뿐입니다.

그러므로 홀로 선다는 원리가 중요합니다.

자신은 지금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의 심부름꾼으로서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세계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지용보살입니다. 오로지 그 속에 광선유포가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불법을 홍통하는 일은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힘든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만큼 허영도 허세도 통하지 않는다. 성실하게, 진지하게, 끈기 있게, 정열적으로 행동하고 실증을 내면서 끊임없이 정진(精進)하는 수밖에 없다. 오로지 그렇게 하는 데에 참된 불도수행이 있다.

 

 

문단띠로 사각형입니다.

(19-5) 행동이 바로 불법자의 본질

 

지용보살은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현실의 대지에서 묘법(妙法)을 실천하고 넓히는 행동이 바로 광선유포의 원동력이라고 말합니다. 

 

 

 

묶음 개체입니다.

전국부인부간부회 스피치에서(1992417, 도쿄)

 

 

인생은 관념이 아닙니다. 행동입니다. 인생의 진수(眞髓)를 설한 불법의 생명도 행동에 있습니다.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출세의 본회(本懷)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어서 1174) 교주석존이 세상에 나오신 근본 목적은 사람으로서 행동하는 길을 설하기 위해서다.”

몇 번이나 배독한 어서입니다. 불법은 사람의 행동즉 인간으로서 행동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올바른 행동올바른 인생이 있고 올바른 불법도 있습니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어서 1361) 행학이 끊어져 버리면 불법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을 스스로 실천하고 넓히는 행동을 떠나서 불법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입으로 아무리 근사한 말을 해도 그것만으로는 불법이 아니다라는 근본이 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또 심지를 구식(九識)에 갖추고 수행은 육식(六識)에서 하라.“(어서 1506) 마음의 경지를 구식(九識, 생명의 근본이 되는 가장 깨끗한 경애)에 두고, 수행은 육식(六識, 마음을 단련하는 현실)에 두고 하시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에서 행동하는 일이 바로 불도수행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법화경에서는 지용보살의 모습을 설합니다.

대지에서 용출한 보살여기에는 여러 가지 깊은 뜻이 있지만, 구원이래 본연의 사명을 띠고 스스로 민중 속으로 뛰어나온 보살이라는 뜻입니.

겉으로 보이는 권위형식따위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깊은 차원의 내용을 설합니다.

또 현실의 대지에서 묘법을 넓히는 사람이 바로 지용보살입니다. 즉 우리를 말합니다. 이 지용보살의 리더인 사보살의 이름은 상행, 무변행, 정행, 안립행입니다.

모두 이라는 글자가 들어갑니다. 일반적으로 지용보살이란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관념이 아닙니다. 자신의 오체로 끝까지 행동하는 모습이 바로 지용보살의 증거입니다.

행동이 없으면 건설할 수 없습니다. ‘영광행복도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과 사회 만반에 통하는 도리입니다.

행동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푸념으로 이어집니다. 푸념은 신심을 파괴하고 행복으로 향하는 궤도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맙니다.

생명은 움직임입니다. 우주도 움직입니다. 지구도 움직입니다. 동물도 식물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모두 움직입니다.

산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인생좋은 행동을 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멋진 인생올바른 행동을 착실하게 반복하는 데서 꽃을 피웁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앞으로 앞으로 끝까지 행동하는 사람승리하는 사람입니다.

! 또 뭔가 배우자!’ 하는 구도심을 불태워 회합에 간다, ‘, 함께 행복해지자! 하고 가족과 지역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대화를 넓힌다, 여러분의 그러한 나날의 행동불법의 진수가 맥동합니다. ‘정법의 공덕이 빛납니다.

 

 

문단띠로 사각형입니다.

(19-6) 지용의 사명을 확대하는 일이 광선유포

 

소설 인간혁명끝부분에는 야마모토 신이치가 제3대 회장에 취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가 삼대(三代)의 사제가 대난을 이겨내고 지용의 사명을 자기 생명에 확립해 그것을 많은 민중에게 넓힌 숭고한 역사를 그립니다. 그리고 지용의 의()를 세상에 실현하겠다는 사제 서원이 바로 광선유포와 세계평화를 이루는 중심축이라고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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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 개체입니다.

인간혁명(12신여명’)에서

 

 

창가학회의 원점은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의 순교와 그 제자 도다의 옥중오달(獄中悟達)에 있다.

마키구치는 전쟁 때 군부정부의 탄압을 두려워한 총본산이 방법엄계(謗法嚴誡)의 유계(遺誡)까지 깨고 신찰을 받으려 할 때, 정법정의를 끝까지 지키겠노라며 결연히 일어섰다. 그리고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의 말씀대로 국가간효를 외치며 투쟁하다 체포되어 옥중에서 서거했다. 그야말로 마키구치는 법화경을 몸으로 읽고, 여래행(如來行)을 실천했다.

이 순교야말로 사신홍법(死身弘法)의 증거이고, 틀림없이 니치렌 대성인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오탁(五濁)이라는 어두운 밤에 멸하려던 정법은 이렇게 명맥이 유지되고, 학회는 대성인에게 직결해 신심의 혈맥을 이어받았.

그런 마키구치를 스승으로 정하고 따른 도다는 스승과 함께 감옥에 들어갔다. 도다의 가슴에는 범우(凡愚)의 몸으로서 법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법화경을 몸으로 읽을 수 있다는 환희가 맥동했다.

도다는 옥중에서 창제를 거듭한 끝에 부처생명이라고 깨달았다. 이때 난해한 불법의 법리는, 만인에게 인간혁명의 방도를 여는 생명의 철리(哲理)로서 현대에 되살아났다.

또 도다는 창제를 하면서 불가사의한 경지를 터득했다. 도다는 대성인이 지용천계(地湧千界)의 상수(上首)로서 구결상승(口決相乘)을 받으신 법화경의 허공회(虛空會)에 참석해, 금색찬연한 어본존에게 합장하고 있는 자신을 감득했다.

도다는 솟아오르는 환희와 법열(法悅) 속에서, 자신은 스승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와 함께 니치렌 대성인의 말제(末弟)로서 말법홍통(末法弘通)을 부촉받은 지용보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용보살의 사명은 광선유포다. 도다는 이때, 이 세상에 생()을 받은 자신의 구원(久遠)의 사명을 깊이 자각했다.

이제 내 일생은 결정되었다. 오늘을 잊지 않으리라. 이 존귀한 대법을 유포하고, 나는 생애를 마치겠다!’

이것이야말로 도다가 옥중에서 오달한 결론이고, 도다가 세운 대업의 원동력이었다.

또한 이때 <어의구전>영산일회 엄연미산(靈山一會 嚴然未散, 영산의 일회, 엄연히 지금도 흩어지지 않았도다)”(어서 757)이라는 구절을 배독하고 생명으로 실감했다. 도다는 스승에게 수순(隨順)함으로써 대난을 만나 옥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불가사의한 감개를 느꼈다.

그리고 마키구치와 맺은 사제의 유대도 또한 법화경 화성유품의 재재제불토 상여사구생(在在諸佛土 常與師俱生, 곳곳의 모든 불국토에 항상 스승과 함께 태어나느니라)”(법화경 317)이라는 경문대로, 구언의 옛날부터 영원하다는 사실을 감득했다.

하지만 바로 그 무렵, 스승 마키구치는 가을 서릿발처럼 서늘한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도다는 은사의 3회기 법요에서 마키구치의 유영(遺影)을 향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오열을 참고 이야기했다.

당신의 광대무변한 자비는 저를 감옥에까지 데리고 가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재재제불토 상여사구생이라는 묘호렌게쿄의 한 구절을 몸으로 읽고, 그 공덕으로 지용보살의 본사(本事)를 알아, 조금이나마 법화경의 의미를 신독(身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스승 마키구치는 옥중에서 산화하고, 사신홍법이라는 위대한 정신을 남겼다. 그 정신을 이어받은 제자 도다는 살아서 옥문을 나와, 광선유포를 위해 홀로 일어섰다.

이 생사를 꿰뚫은 사제불이의 공전(共戰) 속에 창가의 정신이 있다.

마키구치와 도다를 불이(不二)로 만든 것, 그것은 근원의 스승 니치렌 대성인의 유명(遺命)인 광선유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강한 신심의 일념이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도다라는 스승이 없으면 광선유포도 없고, 민중의 행복도 세계평화도 실현할 수 없음을 생명으로 느꼈다.

사실 니치렌 대성인의 정신은 오직 한 사람, 마키구치의 제자 도다 조세이에게 계승되어, 광선유포의 미래도(未來圖)는 그의 일념 속에 들어있었다.

부처라고 해도 결코 가공(架空)의 존재가 아니다. 중생을 떠난 부처란 있을 수 없다. 법을 넓히는 사람이야말로 부처의 심부름꾼이고, 그 사람을 지키는 속에 바로 불법의 엄호(嚴護)가 있다.

그러므로 신이치는 도다의 제자가 되어 스승을 끝까지 지켰다. 그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한 정진 속에서 자기 사명과 힘을 꽃피웠다. 그리고 도다의 정신을 체득하고, 스승의 경지에 다가갔다.

도다 조세이는 이름 없는 민중에게 지용의 사명을 자각하게 하고, 75만 세대를 달성해 육만항하사의 지용보살을 현실에 출현시키는 원리를 나타냈다. 그것은 법화경의 예언을 실현하는 일이자 니치렌 대성인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야마모토 신이치가 그런 스승의 뒤를 이어 창가학회 회장으로서 해야 할 투쟁 또한 이 지용의 의()를 세계에 실현하는 일이었다.

한사람 한사람이 흉중에 지용의 사명을 자각하는 일은 자신의 존재에 가장 깊은 근원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창조하며 비애의 숙명마저 광채로 넘치는 사명으로 바꾸고 자기 생명을 바꾸는 인간혁명의 회전축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사명을 완수할 때, 한 사람의 위대한 인간혁명이 이루어지고, 이윽고 한 나라의 숙명전환도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