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돋이
존 밀턴(1608~1674년)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은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다.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고, 천국을 지옥으로 바꿀 수 있다.”(실락원)
밀턴은 셰익스피어와 함께 칭송받는 , 17세기 영국의 대시인이다.
“자기 마음을 ‘지옥’을 ‘천국’으로 또 ‘천국’을 ‘지옥’으로 바꿀 수 있다.” ― 불법의 일념삼천론(一念三千論)에 통하는 밀턴의 이 말은, 그의 깊은 사색 끝에 도달한 한가지 결론이라 해도 좋다.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 또 인생을 어떻게 느끼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한사람 한사람의 경애세계로 결정된다.
어서에는 “아귀(餓鬼)는 항하(恒河)를 불이라고 보며 사람은 물로 보고 천인(天人)은 감로(甘露)라고 보니 물은 하나이지만 따로따로이니라.”(어서 1025쪽)라고 씌어 있다.
같은 항하(겐지스강)의 물이라도 아귀도(餓鬼道)의 사람에게는 불로 보이고 인간에게는 물, 그리고 천인에게는 감로로 보인다. 보는 사람의 과보(果報)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과보는 과거의 업인(業因)으로 초래된 현재의 생명경애이다. 그 생명상태가 외계의 세계를 어떻게 보고 느끼느냐를 결정한다.
같은 경우라도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이 있다. 또 견딜 수 없는 불행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불법은 자신의 이러한 경애세계를 높이면서 확고한 행복과 사회번영을 구축하기 위한 ‘법’이다.
<1988년 와카야마현기념총회>
- 화광신문 제1157호/ 2016년 4월 1일 -
“기뻐하라! 기뻐하라! 인생의 사업, 인생의 사명은 기쁨이다. 하늘을 향해, 태양을 향해, 별을 향해, 풀을 향해, 나무를 향해, 동물을 향해, 인간을 위해 기뻐해야 한다.”(‘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기뻐하라!” 이것이 톨스토이가 내린 하나의 결론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뻐할 수 있는 인생, 거기에는 인간으로서의 위대한 경애가 있고, 강함이 있다. 행복이 있다.
반대로 어떤 일만 있으면 불평만 늘어놓고, 비판만 하는 인생, 그렇다면 설령 겉보기에는 훌륭한 듯이 보여도 불행하다.(중략)
톨스토이의 생애는 괴로움, 불행한 가정생활, 좋지 않은 건강 등, 모든 상황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문호의 혼(魂)은 어느 곳에서도, 어떤 때에도 ‘기쁨’을 만들어냈다.
불법(佛法)에 통하는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도 그러한 인생을 살기 바란다.
<1993년 6월, 각부대표간부회>
- 화광신문 제1155호,(2016년 3월 18일자)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고뇌를 진실한 환희로 바꿀 수 있는가….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크고 근본적인 이 과제를 해결한 것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佛法)이다.
대성인 불법은 ‘본인묘(本因妙)’의 불법이다. 다시 말해 “부처가 되는 근본의 ‘인(因)’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밝히고, 오로지 어본존을 수지해야 부처의 ‘인행(因行)’도 ‘과덕(果德)’도 모두 금세(今世)에서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 획기적인 대법(大法)이다.
어디까지나 미래를 지향하고, 미래를 환하게 비추며 나아간다. 여기에 ‘현당이세(現當二世)’라는 대성인 불법의 진수가 있다.
신심을 한다고 해서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십계호구(十界互具)가 생명의 실상(實相)이고, 불계(佛界)에도 고뇌의 구계(九界)가 갖춰져 있다. 또 불계도 구계의 현실에 즉(卽)해야만 현현(顯現)한다.
중요한 점은, 고난에 처했을 때 절대 꺾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부처의 자비라고 확신하고, 더욱더 강성한 신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신앙하고 있는데 왜…’라는 약한 마음으로 의심하면, 그 약한 일념이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리에 따라 삼천차원(三千次元)으로 회전한다. 그리고 더욱더 괴로운 경애를 만든다. 그래서는 강성한 신심이라고는 할 수 없다.
범부(凡夫)가 그 시점에서는 알지 못하더라도 긴 안목으로 보면 반드시 그 의의를 알게 된다. 또 ‘변독위약’ 할 수 있다.
<1988년 4월, 전국청년부간부회>
화광신문 제1153호, 2016년 3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