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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다이사쿠SGI회장 선생님 말씀 121

혜광리 2015. 10. 10. 20:27

 

 

아귀는 갠지스 강을 불로 본다. 사람은 물로 본다. 천인은 감로(甘露)( 不死의 음료)로 본다. 물은 하나지만, 그것을 보는 중생의 과보(果報)(경애)에 따라서 각각 다르다.(1025, 취의)- 보는 사람의 경애(境涯)에 따라서 변한다. 자신의 경애가 바뀌면 살고 있는 세계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一念三千의 극리).

 

- 유배의 몸이지만 희열은 한량없다(어서160). 마음 하나로 지옥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마음 하나로 변하는 것이 인생의 불가사의(不可思議)().

- 일심(一心)의 묘용(妙用)(어서717). 어본존을 믿는 일심, 거기서 불가사의하고 위대한 힘과 작용이 나온다. 내 가슴의 일심이라고 하는 근본의 일심이 바뀌어 움직이기 시작하면 곧 (일념삼천) 삼천제법(三千諸法)의 톱니바퀴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부 변해간다. 좋은 방향으로, 희망의 방향으로 움직여 갈 수 있다.

 

중생소유락(衆生所遊樂)-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태어났다.

 

- 중생의 가슴속에 있는 부처의 경애를 열어 생명력이 강해지고 풍부해지면 이 사바세계가 즉 중생이 유락하는 낙토(樂土)이다. 이를테면 이 세상을 무대로 우리들은 즐겁게 산다는 인생극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일체중생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이외의 유락은 없느니라. 묘법을 근본으로 했을 때, 이 세상의 고락(苦樂)을 함께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제호미의 인생을 살 수 있다.

 

모든 사람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 이것이 구원의 청정한 바램이며, 생명 근저에서 움직이는 본래의 마음(本心)이다. 이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부처이다. 부처의 커다란 소원이기에 대원이다.

 

일심욕견불 부자석신명 시아급중승 구출영취산(一心慾見佛 不自惜身命 時我及衆僧 俱出靈鷲山)- 마음속으로 부처를 뵙고 싶다고 염원하여 스스로 신명을 아끼지 않게 되면, 부처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나의 생명에 나타난다.

 

창제할 때 여러 가지 잡념이 떠오르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하다. 그런데 진지하게 불러나가면 차츰 어본존 만을 생각하게 된다. 진지하게 염원하는 힘이 있으면 각종 생활의 고뇌가 해결된다. 그때는 부인의 푸념도 자장가로 들린다.

 

관념문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관념이란 마음으로 염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또렷하게 어본존에게 비친다. 그러므로 관념이란 진지한 승부이다. 무엇을 기원하고 있는가. 이것이 그 사람의 경애이다. 기원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또 결의가 담긴 진지한 것이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숙명은 있다. 그러나 숙명을 바로 정면에서 꿰뚫어보고 그 본질의 의미로 되돌아오면 어떠한 숙명도 자신의 인생을 성장시켜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숙명과 싸우는 자신의 모습이 만인에게 인생의 거울이 됩니다. 즉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었을 때 그 숙명은 악에서 선으로 역할을 크게 바꾸어 가게 됩니다. 숙명을 사명으로 바꾼 사람은 누구나 원겸어업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자신의 사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전진해 가는 것이 숙명전환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숙명을 피해 도망가려고 한다면 결국 숙명전환은 늦어집니다.

 

정법비방의 정체는 정법에 대한 불신입니다. 자타의 불성을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이 불신이 불계의 용현을 방해하는 근본입니다. 또 다른 여러 가지 악업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이 불신을 깨고 불계를 열어 나가는 것이 숙명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인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