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선집(3월호)
제2부 인간혁명의 실천
제8장 마음만이 중요
이 장을 읽기 전에
1995년 가을, 처음으로 네팔을 방문한 이케다(池田) SGI 회장은 네팔SGI 벗의 다기진 마음을 끌어안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네팔의 모든 것이 가장 풍요롭고 가장 아름답게 보입니다. 진정한 풍요로움은 마음이 아름다운지 어떤지로 결정됩니다. 네팔 여러분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 있습니다.
불법(佛法)은 ‘마음만이 중요하다’고 설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태양처럼 빛내면 모든 것이 빛납니다. 모든 것을 빛낼 수 있습니다, 자신이 태양이 되면 어느새 어둠은 사라집니다. 태양과 같은 신심(信心)에 서면 비애도 비탄도 불행도 없습니다. 언뜻 보기에 불행처럼 보이는 일조차도 인간혁명의 양식으로 삼아 빛낼 수 있습니다. 경애가 바뀌면 경치가 확 바뀝니다. 불법은 그렇게 가르칩니다.”
니치렌불법(日蓮佛法)은 모든 사람이 태양과 같은 크나큰 생명 즉 존귀한 부처의 생명을 똑같이 갖추었다고 설합니다. 그 부처의 생명을 열 때 ‘모든 것이 빛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빛낼’ 수 있습니다. 마음의 변혁이 자신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세계를 바꿉니다.
SGI 회장은 인간혁명의 기반이 되는 ‘마음만이 중요하다’는 철학을 늘 강조합니다.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부처의 경애는 어떠한 것일까요. 부처의 생명을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장(章)에서는 마음의 변혁과 경애혁명에 관한 중요한 지침을 소개합니다.
(8-1) ‘마음만이 중요하다’는 일생을
어서에는 “마음만이 중요하니라.”(어서 1192쪽)고 씌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성훈이 바로 니치렌불법의 핵심이라고 강조하고 마음을 닦아 경애를 넓히는 일이 불법자가 삼아야 할 삶의 자세라고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각부대표자회의 스피치에서
(1988년 2월 25일,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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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성인(大聖人)이 어서 전편에서 내리고자 한 결론은 무엇인가. 그 중 하나는 먼저 ‘어본존 근본’이라는 점입니다. 오로지 순수하게 꿋꿋이 묘법(妙法)을 불러 행한다는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어서 1546쪽)는 일념입니다.
그리고 “다만 마음만이 중요하니라.”(어서 1192쪽)는 성훈은 비록 어본존을 수지하고 제목을 불러도 신심을 하는 자신의 ‘마음’이 광포를 향한 ‘마음’인지 아닌지, 그 오저의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말씀입니다.
행복과 불행, 성불과 불성불(不成佛), 또 불계의 방향으로 가는지 고뇌의 경애로 향하는지 모든 것은 자기 일심(一心)의 묘용(妙用)이자 냉엄한 결과입니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주에도 심법(心法) 즉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에게도 ‘마음’이 있습니다. 신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우주에도 통합니다. 마음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작용합니다.
제멋대로 구는 마음, 푸념하고 불평하는 마음, 의심하는 마음, 요령을 피우는 마음, 만심과 증상만의 마음 등은 자타 함께 불행해지는 인(因)입니다.
그러한 것에 얽매이면 비행기가 짙은 안개 속에서 항로를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 하나 뚜렷이 보이지 않습니다. 선악의 기준도 애매모호해집니다. 자신뿐 아니라 승객이라 할 수 있는 권속도 불행에 빠뜨리고 맙니다.
또 ‘만심’은 예를 들면 마치 말이 날뛰는 것처럼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자신이 그렇게 된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도 걷어차버리고 맙니다. 다시 말해 인간으로서 정상이 아닙니다. 또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전혀 대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만심이나 증상만에 빠진 사람은 불법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입니다.
반대로 벗을 생각하는 진심, 주의주장에 살아가는 신념에 찬 마음, 광포를 위해 사명을 완수하려고 싸우는 책임간 넘치는 마음, 불자(佛子)를 지키고 온 힘을 다하겠다는 마음, 보은감사와 환희에 넘치는 마음은 자신뿐 아니라 가정과 가족 그리고 자손만대까지 무한한 복덕을 엽니다. 제천선신이 반드시 지킵니다. 성불할 수 있는 올바른 궤도로 이끌어 줍니다. 그러므로 “마음만이 주요하니라.”는 성훈을 강하게 깊이 가슴에 새기고 일생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8-2) 행복의 근간은 마음을 변혁하는 일
행복은 환경이 아닌 경애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마음만이 중요하다’는 철학을 내걸고 마음의 변혁을 목표로 삼는 창가(創價)의 운동이 바로 행복해지는 근본 궤도라고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각부합동연수회 스피치에서
(2005년 8월 6일, 나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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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고뇌에 부딪히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는 일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생기발랄하게 나아가고 어떤 사람은 한탄하고 슬퍼합니다. 기쁨은 마음이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기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변혁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불법입니다.
남이 봐서 어떠냐가 아닙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환경인데도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마음이 강한 사람, 마음이 현명한 사람, 마음이 늠름한 사람, 마음이 넓은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습니다.
“마음만이 중요하니라.”(어서 1192쪽)
이것이 행복의 근간입니다. 그 근간을 세우는 것이 묘법(妙法)입니다.
대성인은 “진실로 모든 사람이 신심(身心)의 난을 물리치는 비술(秘術)은 오직 남묘호렌게쿄다.”(어서 1170쪽, 통해)하고 단언하셨습니다.
행복은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물건도 아닙니다. 행복은 재산이나 지위, 명성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먼저 제목을 불러야 합니다. 제목을 부르면 생명력이 솟아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즐겁습니다. 벗과 대화하고 만족할 때까지 제목을 부르면서 날마다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를 기뻐할 수 있다, 그러한 모습이 행복의 실상(實像)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창가(創價)의 운동은 이렇게 행복해지는 근본 궤도를 가르칩니다.
신심을 꿋꿋이 관철하면 ‘생(生)도 환희’ ‘사(死)도 환희’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떠한 산도 유유히 타고 넘어 즐겁고 활기차게 나아가기 바랍니다.
(8-3) 불법자의 경애는
이 절에서는 경애혁명을 세 가지 각도로 제시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에 불타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자신을 구축하자고 역설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주부대표자협의회 스피치에서
(1997년 5월 26일, 아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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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자는 어떠한 경애이어야 하는가.
첫째, ‘어떤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거짓이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에 마음이 동요되면 너무나 어리석습니다. 또 불행합니다.
묘법에는 절대 거짓이 없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의 가르침에도 절대 거짓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선유포를 위해 꿋꿋이 살아가는 인생이 가장 현명한 인생입니다.
신앙한다는 이유로 상처받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남보다 몇배로 고생도합니다. 그러나 모두 자신의 수행입니다.
대성인은 “일생성불(一生成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불하려면 반드시 삼장사마(三障四魔)라는 관문을 거쳐야 합니다. 관문을 통과하면 일생성불하여 영원히 부처의 위대한 경애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언제나 희망을 불태우는’ 인생입니다. 희망만큼 강한 것은 없습니다. 묘법은 ‘영원한 희망’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셋째, ‘어떤 때에도 즐길 수 있는’ 경애입니다.
죽는 순간조차 진심으로 웃으면서 ‘아, 즐거웠다. 자 다음은 어디로 갈까.’ 하고 즐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신심의 경애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즐길 수 있는 위대한 경애, 즉 신심은 “환희 중의 대환희”(어서 788쪽)입니다.
(8-4) 감사와 기쁨은 복운을 늘린다
여기서는 감사하고 기뻐하는 신심이 바로 인간혁명을 추진하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규슈•오키나와합동회의 스피치에서
(1998년 3월 3일,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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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이 중요하니라.”(어서 1192쪽) 입니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아, 또 시작이군, 싫어.’ 하며 행동하는냐 ‘좋다, 또 복운을 쌓자.’ 하며 행동하느냐는 작은 차이입니다.
그 작은 ‘차이’가 인생을 크게 바꿉니다. 180도로 바꿉니다. 그 점을 가르친 것이 법화경이자 일념삼천의 법리입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법은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의 법칙을 완벽히 포착했습니다. 최고의 심리학이자 마음의 과학, 의학입니다.
감사와 기쁨은 복운을 늘립니다. 푸념과 불평은 복운을 없앱니다.
홍교도 ‘남을 구제하고 싶다’ ‘묘법의 훌륭함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행동하기에 위대한 복덕이 넘쳐납니다.
‘마음만이 중요하다’는 이 말이 가장 중요한 말입니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에 보통 금세 ‘푸념’을 하거나 ‘억지’를 부리거나 ‘질투’를 하거나 ‘낙담’하고 맙니다.
그러나 신심하는 사람은 이 점이 다릅니다. ‘푸념’이 없어집니다. ‘불평’을 하지 않게 됩니다. 상쾌하게 자기답게 사는 ‘강함’이 생깁니다. 그 사람의 마음은 ‘감사함’으로 가득합니다.
흔히 도시 사람은 시골을 동경하고 시골 사람은 도시를 동경합니다. 독신은 결혼을 동경하고 결혼한 사람은 독신을 동경합니다. 인간의 심리는 그러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곳’이라는 현실과 투쟁해서 쟁취해야 합니다.
자기 지역을 말할 때도 ‘우리 지역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찬탄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자신감’과 ‘기세’를 만듭니다. 광선유포하는 ‘기쁨’을 넓힙니다.
(8-5) 웃는 사람은 강하다
늘 밝은 얼굴을 한 간디의 일화를 통해 고난을 인간혁명의 기회로 받아들여 밝고 희망차게 꿋꿋이 살아가자고 강조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21세기 어머니와 자녀를 말한다》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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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신심한다 해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납니다. 가정, 일, 자식 등 뜻하지 않은 형태로 숙명의 폭풍이 불어닥칩니다.
그러나 고난을 하나하나 극복하는 과정에 자신의 인간혁명이 있고 가족의 숙명전환이 있습니다. 실은 그때가 바로 더 행복해지기 위해 비약하는 ‘찬스’입니다.
긴 인생입니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겠지요. 한때 졌다고 그것을 부끄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마지막에 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투쟁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역경에 처했을 때 명랑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입니다.
예전에 인도의 간디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간디가 웃고 있는 큰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앞니가 빠진 간디의 표정은 어딘가 익살스럽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간디기념관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외국에서 소개한 간디의 사진은 어떤 이유인지 얼굴 표정이 근엄한 사진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간디는 잘 웃는 사람이었습니다.”
간디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약 내게 유머가 없다면 이렇게 길고 힘든 투쟁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간디는 인도 독립을 위해 무수한 압박과 고뇌를 헤쳐 나왔지만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웃는 사람은 강합니다. 올바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밝고 상쾌합니다.
언제나 여유가 없고 얼굴이 어두우면 주위도 어두워지고 맙니다. 그러면 희망도 활력도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힘들 때일수록 밝은 얼굴로 주위 사람에게 힘을 북돋우며 나아가야 합니다.
희망이 없으면 자신이 희망을 만들면 됩니다. 남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흉중을 불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8-6) ‘다이아몬드와 같은 일념’을 연마하자
마음을 다이아몬드처럼 연마하면 행복경애가 확실히 넓혀집니다. 그 다이아몬드와 같은 일념은 오로지 신심으로 연마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타이기념대표자회 스피치에서
(1992년 2월 2일, 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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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신심을 하는가. 그것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광포의 조직도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 묘법을 철저히 수지한 사람은 절대로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일념이 중요합니다, 대확신이 대복운을 엽니다.
불법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설합니다. 지금은 젊고 희망에 넘치는 미래부와 여자부 그리고 남자부도 시간이 흐르면 늙어갑니다. 인생에는 병드는 괴로움도 죽는 괴로움도 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복덕을 쌓아 반석 같이 빛나는 행복한 인생이 되는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쓸쓸하고 막다른 인생이 되는가.
이 묘법은 ‘생사즉열반’의 대법(大法)입니다. 영원히 젊고 활기차게, 희망을 품고 희망을 실현하면서 꿋꿋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묘법은 ‘번뇌즉보리’의 대법입니다. 고뇌가 있을수록 신심의 경애를 열어 고뇌를 행복의 양식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변독위약(變毒爲藥)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청춘 시절은 괴로움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젊을 때부터 어떠한 고뇌도 고생도 없이 훌륭한 지도자가 될 리 없습니다. 고생해서 자신을 단련하고 자신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니치렌대성인은 “마음만이 중요하니라.”(어서 1192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심의 ‘마음’이 다이아몬드와 같은 사람은 다이아몬드처럼 무너지지 않는 행복의 왕자(王者)입니다. 영원한 승리자입니다. 그 사람이 사는 곳, 가는 곳은 모두 ‘궁전’이 되고 ‘왕궁’이 됩니다. 전 우주를 유연히 바라보는 듯한 경애입니다.
반대로 겉모습이 아무리 훌륭해도 ‘마음’이 부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신심의 ‘일념’을 ‘다이아몬드’와 같이 갈고 닦아야 합니다. 원석도 갈고 닦지 않으면 빛나지 않습니다.
‘갈고 닦는다’는 것은 제목을 부르는 일을 말합니다. 또 광선유포를 위해 달리는 일입니다. 광포를 사명으로 여기고 노력하는 인생은 반드시 ‘상락의 궤도’에 오릅니다. ‘늘 즐거운’ 위대한 경애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즐겁게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명랑하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위대한 경애를 열기 위한 불도수행입니다.
(8-7) 마음의 스승으로는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
위대한 경애혁명을 하려면 흔들리는 자신의 약한 마음에 휘둘리지 말고 ‘마음의 스승’을 구하고 ‘마음의 스승’이 되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일생성불초강의》에서
(2007년 1월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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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이 중요하니라.”(어서 1192쪽) 마음은 불가사의합니다. 마음의 세계는 무한히 넓힐 수 있습니다. 또 한없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은 맑게 갠 너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듯이 대환희에 넘치는 생명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만물을 밝게 비추는 빛나는 태양처럼 고뇌에 빠진 사람들을 자애롭게 껴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사자와 같이 정의를 위해 떨치고 일어서 사악(邪惡)을 타파할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마음은 드라마 같고 파노라마 같아서 끝없이 변화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가장 불가사의한 점은 불계(佛界)를 용현하는 것입니다. 미혹과 고뇌에 압박 당하는 사람도, 자기 마음의 무대에서 대우주와 융합하는 부처의 생명을 용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큰 변혁을 일으키는 드라마는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불법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위대한 변혁의 가능성과 더할 나위 없는 존극성(尊極性)을 발견했습니다. 대성인은 그 결론으로 중생의 마음을 묘호렌게쿄라는 창제로 철저히 닦으면 어떠한 미혹에 빠진 범부라도 부처의 생명을 열어 아무리 탁악(濁惡)한 예토(穢土)도 청정한 국토로 바꿀 수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묘호렌게쿄는 ‘중생본유의 묘리’, 즉 모든 생명에 본디 갖춰진 본연의 진리를 일컫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묘호렌게쿄의 창제행을 통해 ‘암경(闇鏡)’과 같은 범부의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을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으로 닦아서 불계의 생명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본유의 묘리를 자기 생명에 나타내고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 수 있습니다.
‘묘호렌게쿄’는 참으로 ‘기심(己心)의 법’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창제를 올려 기심을 순간순간 변혁시키면 그것이 생명을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그리고 인생 전체를 변혁하는 일생성불로, 더 나아가 인류를 크게 변혁하는 광선유포라는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모든 차원의 변혁과 약동이 모두 묘호렌게쿄입니다.
묘호렌게쿄가 기심의 법인 이상, 아무래도 반드시 언급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명의 미심’과 ‘법성진여의 묘심’의 관계입니다.
자기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범부가 약한 마음에 이끌리다 보면 마음이 지닌 가능성은 급속히 작아집니다. 그뿐 아니라 약한 마음도 생깁니다. 여기에 일념의 미묘한 문제가 있습니다.
일생성불하는 과정에서 중생 자신이 열쇠인 이상 인간은 약한 ‘마음’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심’입니다.
범부의 마음은 늘 동요합니다. 그 흔들리는 자기 마음을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강조한 성훈이 유명한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어서 1088쪽)입니다.
대성인은 이 ‘마음의 스승’이라는 경문을 여러 번 인용해 문하에게 신심의 지침으로 주셨습니다. 이를테면 ‘마음의 스승’은 인생의 나침반이고 신심의 등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 변하고 움직이는 범부의 약한 마음을 ‘스승’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마음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스승’이 필요합니다. ‘스승’은 법(法)이자 불설(佛說)입니다. 석존은 스스로 깨달은 ‘법을 스승으로 삼아 끝까지 살겠다.’고 서원(誓願)하고 생애 그 서원을 관철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것이 석존이 제자에게 유언으로 강조한 “법을 의처(依處)로 삼을지어다.”라는 삶의 자세입니다.
‘마음을 스승’으로 삼는 것은 ‘자기중심’입니다. 결국은 동요하는 자기 마음에 휘둘려 이기주의에 빠지거나 무명의 늪에 가라앉고 맙니다.
이에 비해 ‘마음의 스승’이 되는 것은 ‘법 중심’입니다. 그리고 ‘자기’와 ‘법’을 연결하는 존재가 불법에서 설하는 스승의 존재입니다.
불법에서 설하는 스승은 중생에게 자신이 의처로 삼아야 할 법이 자기 안에 있다고 가르쳐주는 존재입니다. 법을 체현한 스승, 법과 일체가 된 스승을 구도하고, 그 스승을 모범으로 삼아 제자가 실현할 때 비로소 ‘마음의 스승’이 되는 삶의 자세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일생성불을 하려면 중생이 내포한 ‘마음의 가능성’이 얼마나 넓은지를 교시하는 ‘법의 체현자(體現者)’와 ‘법과 일체화’한 ‘스승’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도 현대에 니치렌불법을 광선유포하려고 일생을 살아오신 여설수행(如說修行)의 스승인 도다 선생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마음의 스승’인 도다 선생님이 계십니다. 지금도 날마다 순간순간 가슴속에 있는 스승과 대화합니다. 이것이 ‘사제불이’입니다.
언제나 자기 마음에 ‘마음의 스승’이라는 규범을 간직하고 ‘마음의 스승’이 설한 대로 싸우는 사람이 ‘법을 근본’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니치렌불법은 어디까지나 ‘사제불이’의 종교입니다.
(8-8) 경애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이 절에서는 생명의 위대한 경애를 열면 자신과 주위 사람들 그리고 국토까지 빛낼 수 있다는 변혁의 원리를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법화경 방편품•수량품 강의》에서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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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에는 이렇게도 씌어있습니다.
“아귀(餓鬼)는 갠지스강을 불로 본다. 사람은 물로 본다. 천인(天人)은 감로(甘露: 불사<不死>의 음료)로 본다. 물은 하나이지만 그것을 보는 중생의 과보(果報: 경애)에 따라 각각 다르다.”(어서 1025쪽, 통해) 보는 사람의 ‘경애’에 따라서 변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경애가 바뀌면 살고 있는 ‘세계’가 바뀝니다. 이것이 법화경의 ‘사(事)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는 극리(極理)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자신이 겪은 수난의 일생을 “일일(日日), 월월(月月), 연년(年年) 난(難)이 거듭하느니라. 사소한 난은 부지기수이고 대난이 네번인데”(어서 200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대성인은 그 대난의 극치라고 해야 할 사도유죄의 나날 속에서 “유배(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없도다.”(어서 1360쪽) 하고 유연히 외치셨습니다. 참으로 우주대의 경애에서 일체를 내려다보셨습니다.
마키구치(牧口) 초대 회장도 “대성인이 사도에서 겪으신 괴로움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10)라며 옥중생활을 견디셨습니다. 그리고 “마음 하나로 지옥에도 즐거움이 있다.”고도 편지에 쓰셨습니다. 당시 검열에서 삭제된 말입니다.
생명의 위대한 경애, 여기에 인간의 극치가 있습니다.
단 한송이 꽃이라도 탁한 공기를 확 바꿉니다. 자신의 환경을 ‘조금이라도 바꾸자.’ ‘좋게 바꾸자.’는 ‘마음’과 ‘결의’가 중요합니다. 하물며 진지한 ‘마음’으로 투쟁하는 사람의 인생이 활기차게 바뀌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반드시 행복해지고 유복해집니다. 그것이 불법의 방정식입니다.
‘마음 하나로 바뀐다.’ 인생은 그렇게 불가사의 합니다. 그러나 틀림없는 진실입니다.
“장미나무에 가시가 있다고 화를 내면 안 된다. 오히려 가시나무가 장미꽃을 피우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힐티 편《마음의 양식》)는 말도 있습니다. 보는 방법에 따라 이렇게 변합니다. 밝게, 아름답게, 넓어집니다.
대성인은 “일심(一心)의 묘용(妙用)”(어서 717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본존을 믿는 ‘일심’에서 불가사의하고 위대한 힘과 작용이 나옵니다. 우리 가슴의 ‘일심’에서 불가사의하고 위대한 힘과 작용이 나옵니다. 우리 가슴의 ‘일심’이라는 근본적인 엔진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곧바로 삼천제법(三千諸法)이라는 톱니바퀴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모두 바뀝니다. 좋은 방향으로, 희망이 가득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부처의 ‘큰 경애’에 감싸일 때, 자신도 주위 사람들도 그리고 국토도 모두 ‘행복’과 ‘희망’의 빛으로 빛납니다. 그것이 ‘사(事)의 일념삼천’의 남묘호렌게쿄의 힘입니다. 다시 말해, 여기에는 역동적인 ‘변혁의 원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8-9) 자신의 사명을 철저히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사명을 철저히 관철하는 삶이 ‘마음만이 중요하다’는 삶의 자세라고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11•18’ 기념합동간부회 스피치에서
(1989년 11월 12일,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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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원하지 않는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때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자기답게 ‘만족’하고 ‘승리’하는 인생을 여느냐가 과제입니다.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고 환경과 남을 원망하면서 일생을 끝내고 만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또 영예영달과 남에게 칭찬받기를 바라며 그것만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한 그러한 불만과 초조함은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욕망은 한 없는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욕망을 충족할 수는 없습니다. 회사에서도 전원이 사장이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상황이 되도록 변혁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위에 현재 자신이 있는 곳, 자신의 ‘성(城)’을 엄연히 지켜야 합니다.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사명을 철저히 완수해 자기 나름의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별다른 화려한 무대도 없이 칭찬도 각광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만이 중요’합니다. 지위가 인간의 훌륭함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환경이 행복을 결정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생명, 우리 마음에는 광대한 ‘우주’가 펼쳐집니다. 그 장대한 경애를 열기 위한 신심입니다.
그 ‘정신의 왕국’을 열면 어느 곳에 있든 자신이 왕자(王者)입니다.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인생의 깊은 묘미를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이른바 세간적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바라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위대해지자’고 마음먹는 사람은 적습니다.
남에게 칭찬받거나 주목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에도 변치 않는 ‘삼세의 행복’을 자신의 생명에 구축하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당사자의 ‘생명력’과 광선유포를 위한 ‘신심’이 그 사람의 훌륭함과 행복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광선유포’라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이상을 향해 날마다 노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보다 많은 인내와 고생이 따르지만 반드시 진실로 ‘만족하는 자신’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남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일시적인 모습이 어떠냐도 아닙니다. 요컨데 마지막에 회시의 미소를 띠는 인생이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일생을 돌이켜 ‘내 인생은 승리했다. 즐거웠다. 후회가 없다.’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승리자입니다.
특히 청년부 여러분은 악전고투하는 상황일지 모릅니다. 화려한 영예와는 인연이 없겠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마다 사명의 천지에서 이상을 향해 계속 노력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했을 때 자기 흉중에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승리의 성’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8-10) 모든 것이 인간혁명의 양식
여기서는 광선유포의 신심에 일어서면 어떠한 병이나 고난도 모두 영원한 행복경애를 확립하는 순풍이 된다고 따듯하게 격려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이와테현총회 메세지에서
(1996년 9월 15일 ‘세이쿄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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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에 생명이라 함은 “엄(嚴)함이라, 삼천나열(三千羅列)이로다.”(어서 741쪽) 하고 씌어 있습니다.
누구라도 그대 자신을 꿰뚫는 인과의 준엄한 법리에서 절대로 도망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도리입니다.
일생 동안 자신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자신이 쌓은 신구의(身口意)의 삼업(三業)에 따라 삼세영원한 생명의 궤도가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니치렌대성인은 광선유포를 위해 기원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자기 일념에 공덕선근이 되어 쌓인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앞의 일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은 불계라는 숭고한 산에 오르는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모두 정상에 서서 멋진 경치를 영원히 즐기기 위해 지금 고개를 하나하나 넘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또 저편에서 희망으로 빛나는 상락아정의 섬을 향해 지금은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가는 때라고 생각하세요.
모든 것이 자신의 삼세에 걸쳐 멋지게 승리하기 위해 영광스러운 기록을 만든다고 여기고 꿋꿋이 살기 바랍니다.
여하튼 묘법을 수지한 사람에게 헛됨은 없습니다. 주춤거려도 두려워해도 슬퍼해도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영원히 행복해지기 위한 순풍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어떠한 벼라도 늦던 이르던 일년 안에는 반드시 여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사람도 성실히 그리고 끈기 있게 신심을 관철하면 반드시 이 일생 동안에 존귀한 부처의 경애를 쟁취할 수 있다고 대성인은 단언하셨습니다.
(8-11) 상락아정이라는 대아(大我)의 경애
묘법에 살아가는 사람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상락아정의 경애를 열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어떠한 숙명이나 고난에도 지지 않고 신심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SGI유럽총회 스피치에서
(1989년 5월 28일,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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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인은 <어의구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생로병사에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함은 그대로 사덕(四德)의 향을 풍기는 것이니라.”(어서 740쪽) “우리가 생로병사라는 인생의 괴로움을 만났을 때 남묘호렌게쿄를 부르면 묘법으로 장엄한 생명이 되어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이라는 사덕의 진한 향기를 풍길 수 있다.”
사덕은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이자 절대적인 자유와 행복을 나타냅니다.
‘아’는 ‘진실한 자신’ 즉 ‘대아’가 향수(享受)하는 우주대의 자유로운 경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은 부단히 혁신하는 생의 약동이자 모든 정체를 타파하는 생명의 창조적인 진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정’은 위대한 생명력의 분류(奔流)에 의해 소아(小我)에 따른 편협한 에고이즘의 오탁(汚濁)을 정화하는 작용입니다.
그리고 ‘낙’은 순간순간 역동적으로 율동하는 생명의 환희이자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원만한 인격과도 통합니다.
이렇게 묘법의 빛을 받은 인격은 우주대의 자유를 내포한 ‘대아’의 경지에 입각하여 ‘소아(小我)’의 이기적인 방향으로 응집되어 있던 욕망의 에너지(번뇌)마저도 질적으로 전환합니다. 결국 번뇌의 에너지도 빛나는 영지와 자비로 승화시키면서 타자와 공동체 그리고 사회 등 개인을 뛰어넘는 차원으로 힘차게 달립니다.
여기에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의 법리(法理)가 있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데 힘쓰며 자타 함께 참된 ‘인간완성’을 향해 가는 길이 넓고 상쾌하게 열려 있습니다.
‘행복’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이것이 인생의 근본 문제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기 내면의 ‘경애’입니다.
경애가 큰 사람은 행복합니다. 드넓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꿋꿋이 살 수 있습니다. 경애가 강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괴로움에도 지지 않고 유유히 일생을 즐길 수 있습니다.
경애가 깊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인생의 깊은 맛을 음미하면서 영원과도 통하는 의미가 있고 가치 있는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경애가 깨끗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 사람 주위에는 늘 상쾌한 기쁨이 넓혀집니다.
비록 재산이 많거나 지위가 높아도 ‘불행’을 느끼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또 그러한 환경은 늘 바뀌어 언제까지 좋은 상태가 계속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 확립된 자신의 ‘행복경애’를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불도수행을 하는 목적은 이렇게 위대한 생명의 경애를 이룩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쨌든 어떤 일이 있어도 어본존에게서 멀어지면 안 됩니다. 신심의 발걸음을 멈추면 안 됩니다.
인생의 도상에는 여러 가지 고난이 있습니다. 막힘도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강성한 신심을 불러일으켜 창제에 힘쓰기 바랍니다. 숙명이라는 산은 오르기 힘들지만 다 오르고 나면 시야가 확 트이는 법입니다. 신심은 그 일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궁극적으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 행복경애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깊고 튼튼한 신심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뿌리만 내리면 비록 눈보라가 몰아치더라도 태양의 빛을 비추고 물을 주면 반드시 차츰차츰 큰 나무로 성장합니다. 신심과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디 여러분은 이 냉엄한 현실사회 속에서 ‘진실한 불교’를 증명하는 사람으로서 행복의 빛을 명랑하게 넓히는 용자(勇者)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