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선집에서
(4-3) 어떤 고뇌도 변독위약(變毒爲藥) 할 수 있다
불법(佛法)에는 ‘변독위약(變毒爲藥, 독을 바꾸어 약으로 한다)’이라는 법리(法理)가 있습니다. 이 절(節)에서는 괴로움과 어려움이라는 ‘독’을 신심을 통해 ‘약’으로 바꾸면서 ‘인생의 최후를 승리로 장식하라’고 가르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학회창립 60주년 개막기념 지부장회 스피치에서
(1989년 7월 27일,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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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당연히 승패가 있습니다. 때로는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불법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입니다. 고민이나 어려움이 클수록 신심을 통해 커다란 기쁨과 행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심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모두 자신의 삶을 끝까지 살아가기 위한 신앙이며 행동입니다. 자신이 복덕(福德)을 쌓고 행복한 길을 열기 위한 신심입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로 일희일우(一喜一憂)하거나 마음이 동요하면 신앙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묘법(妙法)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때와 함께 ‘변독위약’ 할 수 있습니다.
‘약’과 ‘독’의 관계를 말하자면, 실은 어떤 의미에서 둘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선이 없습니다. 그 배합이나 복용하는 사람의 생명력과의 관계로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약’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한마디로 “약은 생명을 구하는 독”이라고 표현한 학자도 있습니다.
인생의 승패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최후에 승리하면 모든 것이 ‘약’으로 작용한 결과가 됩니다. 반대로 최후에 지면 그때까지 아무리 ‘약’으로 작용했더라도 결국은 모든 것이 ‘독’이 되고 만 결과가 되겠지요.
그럼 최후에 승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심의 승리’를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승리’이며, ‘삼세(三世) 영원한 승리’로 이어집니다.
(4-4)
미래를
여는 ‘본인묘(本因妙)’의
불법(佛法)
불교(佛敎)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과거에 한 행동이
‘인(因, 원인)’이 되어 현재에 행불행이라는
‘과(果, 결과)’를 초래한다는
‘생명의 인과(因果)’를 설합니다. 단,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간을 필요 이상으로 과거에 얽매이게 하고 삶의 자세를 소극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절에서는 니치렌대성인불법이 인간을 과거에 얽매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늘 현재를 출발점으로 하여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본인묘’의 대법(大法)이라는 점을
제시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전국청년부간부회
스피치에서
(1988년 4월
29일,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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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생명의 인과’ ‘인생의 행불행’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깊은 불행에 빠졌을 때가 아닐까요.
아무 일도
없이 안온할 때에는 좀처럼 생각이 인생의 중대사에 미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고난이야말로 더 깊은 인생으로 가는
소중한 발걸음입니다. 또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본디 아무런
고난도 없는 인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생활도 뒤집어보면 그것이 불행을 느끼는 원인이 되는 경우가 인생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은 경험을 쌓고 나이를 먹을수록 뚜렷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축복받으며 결혼해도 자식이 병에 걸려 태어납니다. 경제적으로 벽에 부딪힙니다. 화재나
사고, 이혼이나 가정불화, 인간관계에서 겪는 갈등 등으로 평생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확실히 범부에게 ‘한치 앞은 어둠’입니다.
불행 따위는 자신과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평온무사하면
무사한 대로 나이가 들수록 허무함이 점점 심해집니다. 바쁘게 충실하게 움직이는 듯이 보여도 자신을 응시하지 못하고
외로움과 쓸쓸함에서 계속 도망치기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웃는 얼굴에
숨겨진 슬픔이 있다, 즐거움 뒤에 공허함이 밀려온다, 이러한 괴로움과 고민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인간은 계속 살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괴로움을 진실한 환희로 바꿀 수
있는가.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크고 근본적인 이 과제를 해결한 것이 니치렌대성인불법(日蓮大聖人佛法)입니다.
대성인불법은
‘본인묘(本因妙)’의 불법입니다. 즉
부처가 되는 근본의 ‘인’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밝히고 오로지 어본존을 수지해야 부처의
‘인행(因行)’도
‘과덕(果德)’도 모두
금세(今世)에서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 획기적인
대법입니다.
어디까지나
미래를 지향하고 미래를 환하게 비추며 나아갑니다. 여기에 ‘현당이세(現當二世)’라는 대성인불법의 진수가
있습니다.
신심을 한다
해도 결코 괴로움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십계호구(十界互具)가 생명의
실상(實相)이며
불계(佛界)에도
구계(九界)의 고뇌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또 불계도 구계의 현실에서밖에 현현(顯現)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고난에 처했을 때 절대 기죽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부처의 자비라고 확신하고 더욱더 강성한 신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하고
있는데 왜……” 하고 약한 마음으로 의심하면 그 약한 일념이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리에 따라
삼천차원(三千次元)으로 회전하여 더욱 괴로운 경애를
만듭니다. 그러면 강성한 신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시점에서
범부(凡夫)는 알지 못하더라도 긴 안목으로 보면 반드시 그
의미를 알게 됩니다. 또 ‘변독위약’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40년 동안 얻은 체험에 비추어 보아도 절대 틀림없습니다. 5년으로 모르면
10년으로 아는 경우도 있습니다. 10년으로 자각하지 못하면 일생 동안에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삼세(三世)라는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불지(佛智)입니다. (4-5)
어떤
일이 있어도 기뻐할 수 있는 인생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인생의
달인’입니다.
이 절에서는 고난이 있을수록
더욱더 기뻐하며 용감하게 나아가는 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르칩니다.
[이케다 SGl 회장
지침]
각부대표간부회
스피치에서
(1993년 6월
28일,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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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라! 기뻐하라! 인생의 사업, 인생의
사명은 기쁨이다. 하늘을 향해, 태양을 향해, 별을 항해,
풀을 향해, 나무를 향해, 동물을 향해, 인간을 향해 기뻐해야
한다.”(《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기뻐하라!” 이것이 톨스토이가 내린 하나의 결론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뻐할 수 있는 인생, 거기에는 인간이 지녀야 할 위대한 경애가 있고 강함이 있으며 행복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일이든 불평만 늘어놓고 비판만 하는 인생은 설령 겉보기에는 훌륭해 보여도 불행합니다.
톨스토이는 1901년, 교회에서 파문을 당했습니다.
일흔두살이라는 만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해외에서도 존경 받는 위인을 곤란에 빠뜨릴 속셈으로
‘파문’했습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그 권위의 획책에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유유히
내려다보았습니다.
“기뻐하라! 기뻐하라!” 그 신조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톨스토이에게는 불타오르는 ‘투쟁의 일념’이
있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생애는 창작의 고통, 불행한 가정생활, 좋지 않은 건강 상태 등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호의 혼은 어느 어떠한 때에도 ‘기쁨’을
추구했습니다. ‘기쁨’을 만들어냈습니다.
불법에 통하는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니치렌대성인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歡喜) 중의
대환희이니라.”(어서 788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광포의 인생은
‘대환희’의 인생입니다.
더욱이
“유배(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限量)없도다.”(어서
1360쪽) 즉 “유배의 몸이지만 희열은 헤아릴 수
없다.”
“감죄(勘罪)를 당하면 더욱 더욱 기쁨이
더함이라.”(어서 203쪽) 즉 “권력이 처벌을
가하니 더욱더 기쁨이 더하다.”
“대난(大難)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어서 1448쪽) 즉 “대난이 오면
신심이 강성한 사람은 더욱더 기뻐한다.”
또
다쓰노구치법난 때에도 문하인 시조깅고에게 “이처럼 기쁜 일이니 웃으시오.”(어서
914쪽) “이처럼 기쁜 일은 없다. 웃으시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은
고난이 닥치면 “현자(賢者)는 기뻐하고
우자(愚者)는
물러남”(어서 1091쪽)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도전해야 할
것이 있을수록 더욱더 기뻐하며 용감하게 나아갑니다. 씩씩하게 싸웁니다. 이것이 불법의
진수입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기뻐할 수
없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또인가.”
‘큰일이군.”(웃음) 하고 말하며 늘 고개를 숙이고,
괴로운 얼굴로 불평이나 비판만 늘어놓으면 어서에 어긋나고 맙니다.
모든 것에서
‘기쁨’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인생의 달인’입니다.
<사도어서>에는
“현성(賢聖)은
매리(罵詈)함으로써
시험되느니라.”(어서 958쪽) 즉
“현인, 성인은 매리하여 진짜인지 아닌지를 시험합니다.” 하고 씌어 있습니다.
어떠한 비판도 꿋꿋이 견디며 유유하게 기쁨에 찬 인생을 보낼 수 있느냐 없느냐, 거기에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갈림길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기쁨을 찾아낸다.’ 자신이 기뻐하면 주위도 상쾌해집니다. 웃는 얼굴이 넓혀집니다.
가치가 생깁니다. 리더는 무엇보다 모두가 ‘기뻐하며’ 전진할 수 있도록 마음을 써야
합니다.